길 끝에서 만난 도시의 시간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 아가페정원이라는 곳이 있다.
메타세쿼이아 약 500주가 40m 높이로 자라
길 양옆에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천천히 걷는다.
무료 입장에 무료 주차,
그런데도 최근에는
주말·공휴일에 회차당 150명,
하루 4회로 인원을 제한하는
사전예약제까지 도입됐다.
규제상 상한선만 놓고 봐도
주말 하루 최대 600명이다.
돈을 받지 않는 정원이
인원을 통제해야 할 만큼
사람이 몰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정원의 시작은
관광이 아니었다.
1970년,
고(故) 서정수 신부와 박영옥 이사장이
노인복지시설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하면서
시설에 머무는 어르신들을 위해 조성한 정원이다.
천주교재단 소유로 50년 넘게 외부에 공개되지 않다가,
2021년 3월 전북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되고서야 문을 열었다.
등록 면적 1만4,049㎡ 가운데
녹지가 1만3,938㎡.
정원의 99%가 숲이라는 얘기다.
이 사실 하나만 놓고 봐도 질문이 생긴다.
관광객을 부르려고 만든 시설이 아니었는데
왜 지금 사람들은 이곳에
인원 제한까지 걸릴 만큼 몰려드는가?
그리고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정원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익산이라는 도시 전체의 이야기로 번져나간다.
정원이 있는 황등에는
170년 가까운 석재산업의 역사가 있고,
대한민국 재계 상위권 기업집단인
하림이 시작된 곳도 황등이다.
조금 더 넓혀보면 익산에는
원불교 중앙총부가 있고,
한때 세계 최대 큐빅 수출지였던
귀금속·보석산업의 역사가 있으며,
국가가 5,500억 원 넘게 투입한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있고,
최근에는 홀로그램·실감콘텐츠 산업까지
육성되고 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가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철도다.
지역 관광정바카라의 통념은
대개 이런 순서를 전제한다.
관광지를 만든다.
사람을 불러들인다.
상권이 생긴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이 순서에서 관광지는 '수단'이고
사람은 '목적'이다.
그런데 아가페정원은
이 공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애초에 관광을 목적으로
설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70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오직 시설에 머무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만 존재했던 공간이,
2021년 개방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인원 제한이 필요할 정도의 명소가 됐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는 사례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은 매년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을 들여
전망대와 테마공원,
포토존을 만든다.
관광지를 '기획'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설을 지었다고
사람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국의 숱한 애물단지 조형물과
흉물 전망대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아가페정원이 보여주는 것은 그 반대의 경로다.
시간과 이야기가 먼저 쌓이고,
관광은 그 결과로 뒤늦게 따라왔다.
이 순서의 차이는 지역 관광정바카라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산을 투입해 시설부터 짓는 방식과,
이미 존재하는 시간의 층위를 발굴해
사람들에게 연결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 정바카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가페정원이 있는
황등이라는 지명을 조금 더 넓혀서 보면,
이 도시가 반복적으로 보여온
패턴이 하나 더 드러난다.
황등은 오래전부터
석재로 알려진 지역이다.
황등석산의 채석 역사는 1858년,
철종 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개발한 이는 청나라 사람이었고,
청일전쟁 이후 운영권이
일본인에게 넘어갔다.
익산석은 표면이 굳고 조직이 치밀해
백제 석재문화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근대에 들어서는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청사,
청와대 영빈관,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까지
모두 황등석으로 지어졌다.
거의 170년 가까이
이 땅을 파내려간 셈이다.
그런데 이 채석장이 최근
완전히 다른 얼굴로 재발견됐다.
지표 아래 80m까지 파내려간 채석장 자리에
지난해 10월 '익산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제1전망대'가 문을 열었는데,
개장 한 달여 만에 방문객이 2만 명을 넘었고
그중 70%가 20~30대였다.
산업 유산이 반년도 안 돼
청년들의 사진 명소로 바뀐 것이다.
지금 이 전망대는 아가페정원과
하루 6회 왕복 셔틀버스로 연결돼 있다.
한쪽에서는 100년 넘게 돌을 캐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세기 동안 나무를 길렀다.
그리고 같은 황등에서,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식품기업 하나가 시작된다.
1978년 3월,
황등농장이 설립됐다.
지금의 하림이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11살 때 외할머니에게 받은
병아리 10마리로 사업을 시작했고,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8세에 이미
닭 5,000마리와 돼지 700마리를 기르며
사업자등록을 했다.
이후 농장과 공장,
시장을 잇는 이른바
'삼장(三場) 통합' 체제로 사업을 키웠고,
2018년 기준 하림그룹의 총매출은 8조6,000억 원,
총자산은 11조9,000억 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26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9년 3월에는 하림지주가
익산에 신사옥을 짓고 입주했는데,
이는 대기업 지주사 본사가
지방 소도시로 이전한
국내 최초 사례였다.
지금 하림그룹은 전북에만
17개 계열사 본사를 두고
55개 사업장에서 2,700여 개의
직접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1970년 아가페정원이 시작되고,
8년 뒤 같은 황등에서 하림의 전신이 출발했다.
한쪽은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다른 한쪽은 산업으로 성장했다.
면 단위의 작은 지역 하나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성장사가
겹쳐 있는 셈이다.
이 우연 같은 겹침을
그저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익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성격의 조직들을 반복적으로
끌어들여 온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거의 언제나 같은 하나의 조건이 등장한다.
오늘날 익산역은 호남선과 전라선,
장항선, 호남고속철도가 만나는
전북권 핵심 철도거점이다.
행정 중심이 전주라면
철도 교통에서는 익산의 존재감이 훨씬 크다.
2025년 기준 익산역은
연간 682만여 명이 이용하는
전북권 핵심 교통거점으로 집계됐고,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의
'복합환승센터 혁신모델컨설팅 지원사업' 공모에도
최종 선정돼 선상역사 면적을 기존 2,424㎡에서
최대 1만424㎡까지 4배 가까이
확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1912년 3월,
호남선과 군산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이리역이었다.
근대 철도망이 구축되면서
이리는 빠르게 교통의 요지로 성장했다.
사람과 물자가 모였고,
도시가 커졌으며,
그 편리한 접근성은 이후 종교와 산업,
기업이 이 도시를 선택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됐다.
물론 원불교와 하림,
국가식품클러스터가 모두
'철도 때문에' 익산을 선택했다고
단순화하는 건 곤란하다.
각각의 입지 결정에는
토지와 산업기반,
인적 관계,
행정정바카라,
물류 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익산이 오랫동안 외부의 조직과
산업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도시적 조건 가운데
교통이 매우 중요한 축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 철도가 익산에 항상
성장만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
인천을 출발해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현 한화)의 화물열차가
다이너마이트 914상자(22톤)를 포함해
총 40톤의 고성능 폭발물을 실은 채
이리역 4번 입환대기선에서 대기하던 중 폭발했다.
위험물은 역에 대기시키지 말고
곧바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이 화약열차는 이리역에서
40시간 가까이 머물러 있었다.
전라북도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사망 59명, 중상 185명, 경상 1,158명으로
총 1,402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완파된 가옥이 811동,
반파가 780동,
소파가 6,042동.
1977년 기준 재산피해액만 61억 원이었는데,
당시 이리시의 1년 예산이
약 41억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시 1년 예산을 넘어서는 피해였다.
폭발 지점에는 깊이 15m,
폭 30~40m의 웅덩이가 파였고,
반경 8㎞ 내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
이재민만 1,674세대,
7,873명에 달했다.
이건 단순한 철도사고가 아니라
사실상 도시 전체가 피해를 입은 재난이었다.
게다가 전쟁도,
자연재해도 아닌,
안전관리와 위험물
운송 과정에서 벌어진
명백한 인재였다.
이 사건을 익산의 도시사 위에
겹쳐 놓으면 역설이 선명해진다.
철도 덕분에 성장한 도시가,
바로 그 철도에서 발생한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사고를 낸 한국화약은 통합돼 한화그룹으로 성장했고,
사고를 수습한 한국철도공사도 거대 공기업으로 커졌다.
반면 이리역 폭발사고 추모비는
지금도 익산역 광장이 아닌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세워져 있어,
역 광장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가 관리에 실패하면,
같은 구조가 위험을 확대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1977년의 이리역 폭발사고는
이를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익산은 여전히 그 철도를 도시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삼고 있다.
익산을 선택한 조직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종교 쪽에서 나온다.
원불교의 교단 중심인 중앙총부가
익산에 자리 잡은 것은 1924년이다.
원불교 공식 역사자료에 따르면
소태산 박중빈과 제자들은
교화 거점을 물색하다
이리 일대를 답사했다.
"이리 부근은 평야의 중심지에 있어
무산대중의 생활 터전이 될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하여 교화의 기지로 적당하다"는 것이
당시 판단이었다.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리지점이 들어서며
신도시로 개발되던 이리시가 인구 급증으로
호남 중심지로 부상하던 상황도
입지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
원불교가 여기서 특별한 이유는,
이 도시를 선택한 배경이
하림이나 국가식품클러스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이면서도,
'교통이 편리한 평야 지대'라는 조건만큼은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데 있다.
종교와 자본,
국가정바카라이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교단 초기 구성원들은 소
작농과 엿장사로 생계를 이었고,
여성 교역자들은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밤에 모여 공부를 이어갔다.
처음부터 거대한 시설이 있었던 게 아니라,
사람이 먼저 있었고 사람이 머물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지금 중앙총부와 원광대학교를
포함한 부지는 약 50만 평에 이르고,
대각전과 본원실,
공회당 등 8개 건물이
국가등록문화재 179호로 지정돼 있다.
지난해 익산성지 건설 100주년을 맞아
4월 한 달 방문자 수가 1만7,000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코로나19 회복기인 2022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
익산에서 종교는 건물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도시의 근현대사와 함께 성장해온
하나의 거대한 생활·교육·문화권에 가깝다.
익산을 철도와 산업의 도시로만 보면
놓치는 지점이 있다.
시간을 1,400년쯤 되돌리면
익산의 좌표는 완전히 달라진다.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는
공주·부여의 유적들과 함께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이를 475년부터 660년까지
백제 후기의 정치·문화적 발전을 보여주는
8개 유적으로 설명하는데,
그중 익산의 두 유적은 사비시대 백제의 부도(副都),
즉 제2수도와 관련된 유적으로 평가된다.
익산을 단순히 '백제의 수도'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백제 후기 왕도체제와 밀접히 연관된
핵심 거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다.
이 사실은 익산의 시간축을 극적으로 늘려놓는다.
지방 중소도시로만 여겼던 공간 아래에
고대 왕도와 불교문화의 흔적이 있고,
그 위에 근대 철도도시가 만들어졌으며,
다시 종교와 산업,
대학과 기업이 겹겹이 들어왔다.
익산을 어느 한 시점에서만 보면
정체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도시는 새로운 정체성이
이전 정체성을 대체하지 않고,
그 위에 계속 쌓여왔다.
익산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산업사가 있다.
귀금속·보석 산업이다.
익산을 한때 '보석의 도시'라 불렀지만,
이 표현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익산에서 보석 원석이
대량 생산됐다는 뜻이 아니라,
이 도시의 강점은 가공과 제조에 있었다.
1971년 신흥동 수출산업단지 조성,
1973년 제2수출자유지역 지정을 거쳐
1979년 이리귀금속단지가 조성됐다.
준공 당시 공식 명칭은
'이리귀금속보석수출공업단지'였고,
수출전용공단이라 원석 수입까지 국가가 통제했다.
가공업체가 집적되고
기술과 숙련노동이 축적되면서
1980년대 큐빅 지르코니아
합성석 연마기술이 히트를 쳤고,
익산은 세계 최대 큐빅 수출지가 됐다.
한때 1만여 명 가까운 근로자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산업은 영원하지 않았다.
1998년 IMF 외환위기와 내수 붕괴,
인건비 상승을 거치며 익산의 귀금속산업은 침체를 겪었다.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공장은 태국·중국·동남아시아로 옮겨갔다.
대신 익산은 2002년 개관한 보석박물관을 통해
11만8,000여 점의 보석·광물을 전시하며
산업의 역사를 문화·관광자원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1978년 개설된 원광대 귀금속보석공예과는
국내 최초의 관련 전공 학과로
지금도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황등석 채석장의 최근 재발견 역시
이와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산업으로 쓰이던 공간과 기술을
관광과 문화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시도다.
이는 익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산업도시들이 공통으로 마주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산업이 쇠퇴한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철거할 것인가,
산업유산으로 보존할 것인가,
관광자원으로 전환할 것인가?
익산은 지금 여러 방식으로
그 답을 시험하고 있는 도시다.
산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축이 식품이다.
익산 식품산업의 최대 프로젝트는
국가식품클러스터다.
이건 지자체 단위의 소규모 산업단지가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국내 농어업 경쟁력을 높이고
식품산업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추진한 국가사업이다.
사업시행자는 LH이고,
2012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이 열렸다.
산업단지 면적은 232만㎡,
약 70만 평.
총사업비는 5,535억 원으로 계획됐다.
국비 2,026억 원,
지방비 743억 원,
민자 2,766억 원이다.
정부가 제시한 기대효과는 더 컸다.
식품기업·연구소 150~160개 유치,
입주기업 매출 15조 원,
수출 3조 원,
고용 2만2,000명.
계획대로였다면 이 프로젝트는
익산의 산업단지 하나가 아니라
지역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수준의
사업이 됐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숫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2021년 8월 기준 입주기업은 106곳,
분양률은 71.4%였다.
풀무원 김치 수출공장과 프롬바이오,
프레시지 등이 입주해 있고,
2016년 9월에는 과천에 있던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이
익산으로 통째로 이전했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과
대기업 본사를 동시에 유치한 흔치 않은 사례다.
당초 목표와 실제 실적 사이의 간극은 결코 작지 않다.
그렇다고 이 프로젝트를 한마디로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하다.
식품산업은 공장을 지었다고
곧바로 수출과 고용이 발생하는 산업이 아니고,
기업지원시설과 연구개발 기반이
축적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후속 사업도 추진 중이다.
그러니 평가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성공했나 실패했나"가 아니라,
5,000억 원 넘는 공공·민간투자로
실제 어떤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졌는가,
그 투자가 익산 시민에게 어떤 일자리로 돌아왔는가,
그 일자리의 임금과 안정성이
청년을 정착시킬 만큼 경쟁력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산업단지에 기업이 들어오는 것과,
사람이 그 도시에 정착하는 것은
결코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익산의 산업사에는
예상 밖의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석재도,
보석도,
식품도 아닌 홀로그램이다.
익산시는 2017년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초융합 홀로현실 산업발전전략 방안'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이 산업 육성에 뛰어들었다.
2019년 6월 '홀로그램 기술개발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고,
과기정통부는 전북(익산)과
경북(구미)에 2020~2027년 8년간
총사업비 1,818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별도로
2019년부터 5년간 249억 원을 투입해
전국 유일의 '홀로그램 콘텐츠 서비스센터'를 세웠다.
2020년부터 기업 유치를 본격화한 지 5년 남짓,
2026년 5월 페어엑스와의 투자협약을 끝으로
협약기업 수는 50개에 도달했다.
전국에서 대기업을 제외한
홀로그램 기업이 약 100여 개인데,
그 절반이 익산과 손을 잡은 셈이다.
다만 이 숫자를 읽을 때는
층위를 구분해야 한다.
협약을 맺은 50개 기업 가운데
실제 익산으로 본사나 연구소를
이전한 곳은 21개다.
'협약'과 '투자완료', '기업이전', '실제 신규고용'은
지방자치단체 기업유치 실적에서 서로 다른 단계이고,
이를 뭉뚱그려 '유치 성과 50건'으로만 발표하는 것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인상을 줄 수 있다.
지역경제 효과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더 세밀한 질문이 필요하다.
몇 명이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가?
신규채용 가운데 익산 거주자는 몇 명인가?
평균임금은 어느 정도인가?
이전 기업들이 몇 년 뒤에도 익산에 남아 있는가?
지역 대학 인재가 이 기업들에 취업하는가?
그 매출 가운데 얼마가 지역경제 안에서 다시 소비되는가?
실제 해외시장 진출 사례는 분명히 있다.
레인보우핀토스는 두바이에 현지법인을 세웠고,
와이에이피와 더가람은 홀로그램 제품을
두바이에 수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업유치를 위해
기초단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면
익산시를 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이 산업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지금 결론 내리는 건 시기상조다.
오히려 지금은 익산이 전통 산업도시에서
첨단산업도시로 실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지역에서 성장한 대기업의 이야기에는
대개 성공 서사만 따라붙는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의 하림을 들여다보면,
성장 이면에 쌓인 논란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림 계열사 9곳이 김홍국 회장의 장남 김준영씨가
100% 지분을 가진 비상장 계열사 올품에 부당 이익을 제공했다며
총 49억7,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고가 매입, 통행세 거래, 주식 저가 매각 등이 그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소액주주들이 김홍국 회장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배구조의 핵심에는 올품이 있다.
하림지주 지분 약 25%를 보유하며
사실상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다.
2012년 당시 20세였던 김준영씨가
올품 지분 100%를 물려받으며
증여세로 100억 원을 낸 것을 두고,
자산규모 10조 원대 그룹의 지배권을
그 정도 세금으로 넘겼다는 비판이
여전히 따라붙는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신선육 가격 담합에 대해서는
하림홀딩스(현 하림지주 전신)에
171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2023년 10월에는 '하림 동물복지 통닭'에서
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김홍국 회장이 "친환경 농장은
소독약을 쓰지 못해 벌레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고 해명한
발언 자체가 다시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재무 리스크도 불거지고 있다.
사료·양돈 계열사 팜스코의 부채비율은
2022년 340%에서 2024년 말 606.84%까지 치솟았고,
부진이 이어지는 하림산업에는 하림지주가 2022년 자회사 편입 이후
지금까지 유상증자로 총 1,800억 원을 출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김홍국 회장은 사육농가 처우 문제와 관련해
"농가들은 본인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계열주체로 이동할 수 있다"며,
다양한 인센티브로 농가 평균 조수익을
1억2,800만 원까지 끌어올렸다고 강조해왔다.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 하나를 두고
성장의 '규모'와 성장의 '방식'을
함께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업이 커지는 것과,
그 성장의 방식이 건강한 것은
전혀 다른 질문이다.
여기까지 익산의 산업사를 따라오면
낯선 위화감이 든다.
철도가 있고KTX가 있다.
원불교 중앙총부가 있고 원광대학교가 있다.
하림이 있고국가식품클러스터가 있다.
석재산업과 귀금속·보석산업의 역사가 있고
백제의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가 있으며
이제는 홀로그램 기업까지 유치하고 있다.
전통산업과 첨단산업,
교육과 종교,
문화유산과 교통이
한 도시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2026년 2월 기준 익산시 총인구는 26만6,797명.
장년기(26.57%)와 노령기(25.84%)를 합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2018년 1월 심리적 저항선인
인구 30만 명이 무너졌고,
2020년 순천시에,
이어 여수시에도 밀리며
'호남 5대 도시'로 전락했다.
시민단체 좋은정치시민넷 분석에 따르면
2016년 4월 이후 약 3만3,780명(11.2%)이 감소했다.
순유출이 2만3,799명,
자연감소가 9,816명이고,
연평균으로는 약 3,556명씩 줄어든 셈이다.
전북 평균 감소율(-7.4%)을 훨씬 웃돌고,
호남 5대 도시 가운데 감소율이 가장 높다.
최근 10년간 청년 2만539명이 순유출됐고,
그중 약 70%가 타 시도로 이동했다.
이동 사유는 직업, 주택, 가족 순이었다.
지방도시의 인구감소를 설명하는 익숙한 논리가 있다.
교통이 불편하다,
기업이 없다,
대학이 없다,
산업기반이 약하다,
문화유산이나 관광자원이 부족하다.
그런데 익산은 이 어떤 설명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철도가 있고
대학이 있고
지역에서 성장한 대기업이 있다.
국가가 수천억 원을 투입한 산업단지가 있고
첨단산업까지 유치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구는 줄어든다.
물론 최근에는 반전 신호도 있다.
2025년 9월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26만7,505명으로 순유입이 500명을 넘었고,
같은 해 전북 14개 시군 가운데
30대 청년 인구 유입 1위를 기록했다.
인구 20만 명 이상 비수도권 기초단체 가운데 드문 사례다.
그러나 이 반전 신호를 곧바로
추세 전환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질문의 전환이다.
기업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기업이 어떤 일자리를 만들어내느냐.
산업단지가 있느냐가 아니라
청년이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경력을 쌓을 수 있느냐.
KTX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KTX가 사람을 익산으로 데려오는지,
아니면 더 빠르게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지.
교통망 개선은 지방에
늘 유리하게만 작동하지 않는다.
좋은 교통은 기업과 관광객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주민들에게 더 큰 도시로 옮겨갈
편리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접근성의 역설이다.
익산의 KTX가 지역 정착의 기반인지,
수도권과의 생활권을 좁혀
인구 유출을 가속하는 요소인지는
장기적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익산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여기에 있다.
지방정부는 오랫동안 기업을 유치하면
사람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어왔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공장을 유치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인구를 늘린다는 공식이다.
기업 → 일자리 → 인구 증가.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는 그 사이에 수많은 변수가 끼어든다.
청년들이 원하는 임금인가?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인가?
배우자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가?
교육·주거·문화·의료 환경은 충분한가?
한 기업을 떠난 뒤에도
같은 도시에서 새 온라인 게임을
구할 수 있을 만큼 노동시장이 넓은가?
결국 사람은 '회사 하나'를 보고 정착하지 않는다.
도시 전체의 가능성을 보고 정착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업유치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주민등록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이상한 상황이 반복된다.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와
홀로그램 산업 역시 결국
같은 시험대 위에 있다.
기업 몇 개를 데려왔는가가 아니라,
그 산업이 익산 안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익산의 긴 시간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이렇다.
백제 후기에는 왕도체제의 핵심 공간이었다.
근대에는 철도가 들어오며 이리가 성장했다.
1924년 원불교 중앙총부가 자리 잡았다.
황등에서는 석재산업이 성장했다.
1970년 아가페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라는 상처를 입었다.
1978년 황등농장에서 하림의 역사가 시작됐고,
1979년 이리귀금속단지가 조성됐다.
2010년대 국가식품클러스터가 구축됐고,
2020년대 홀로그램·실감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되고 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익산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왕도에서 철도도시로,
철도도시에서 종교와 산업의 도시로,
산업도시에서 식품산업의 국가거점으로,
그리고 다시 첨단산업 도시로.
이 도시의 역사는 기존 산업 하나가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이 완전히 대체한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층이 기존 도시 위에
계속 덧붙여진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오늘의 익산에는
서로 다른 시대가 동시에 남아 있다.
왕궁리에서는 백제가 보이고,
익산역에서는 근대와 현대의 철도가 보이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는 20세기 신종교의 역사가,
황등에서는 석재와 하림의 시작이 보인다.
보석박물관에서는 제조업의 한 시대가,
국가식품클러스터에서는 국가 산업정바카라의 현재가,
홀로그램 산업에서는 도시가 그리는 미래가 보인다.
이 정도로 서로 다른 시간의 층을
한 도시 안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국가식품클러스터에는 계획 기준
5,535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홀로그램 산업에도 8년간 1,818억 원,
별도로 249억 원이 들어갔다.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예산을 투입하고 기업을 유치한다.
그런데 아가페정원에는 처음부터
그런 거대한 계획이 없었다.
1970년 누군가가 노인들을 위해 나무를 심었고,
50년 가까이 일반인은 그 존재조차 몰랐다.
2021년 뒤늦게 문을 열었을 뿐인데,
지금은 인원을 제한해야 할 만큼 사람이 몰린다.
이 대비는 우연이 아니라 질문이다.
사람을 불러오기 위해 설계된 적 없는 공간에 사람이 몰리고,
사람과 기업을 불러오기 위해 수천억 원을 투입한 산업정바카라은
여전히 '사람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물론 정원과 산업단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나는 휴식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를 움직이는 산업기반이다.
하지만 두 공간이 던지는 질문은 꽤 닮아 있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인가,
시설인가,
기업인가,
교통인가,
아니면 그곳에서 살아갈 이유인가?
익산을 들여다볼수록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백제는 왜 이 지역에
왕궁과 거대한 사찰을 지었을까?
왜 근대 철도는
이곳을 거점으로 성장했을까?
원불교는 왜 익산에 중앙총부를 뒀을까?
왜 황등에는 석재산업이 발달했을까?
왜 하림은 황등에서 시작했을까?
왜 국가식품클러스터는 익산에 들어왔을까?
왜 익산은 다시 홀로그램 산업을 선택했을까?
각 질문의 답은 조금씩 다르다.
지리도 있고 교통도 있고,
토지도 있고 사람도 있으며
정부정바카라과 우연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들을 한곳에 모으면
또 하나의 질문이 만들어진다.
그토록 많은 산업과 조직이 익산을 선택했는데,
왜 정작 사람은 이 도시를 떠나는가?
어쩌면 앞으로 익산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새로운 산업 하나를 더 찾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익산에는 이미 많은 것이 있다.
새 산업을 하나 더 유치하는 것보다,
지금 존재하는 산업과 대학, 교통, 역사, 관광, 문화가
서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국가식품클러스터의 기업이 지역 대학의 인재와 연결되고,
홀로그램 기업의 일자리가 지역 청년에게 경력이 되고,
황등의 산업유산이 아가페정원과 연결돼
새로운 관광동선이 되고,
백제문화유산을 찾은 관광객이
익산역을 거쳐 도시 안에서 하루 이상 머물고,
지역에서 성장한 기업의 성과가 다시
지역의 생활환경과 일자리로 돌아가는 구조.
그 연결이 만들어져야 한다.
도시는 시설의 합이 아니다.
공장 몇 개,
관광지 몇 곳,
대학 하나,
KTX역 하나를 합친다고
자동으로 매력적인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시는 도시가 된다.
아가페정원의 메타세쿼이아는
하루아침에 지금의 높이까지 자라지 않았다.
500주의 나무가 40m 숲터널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걸렸다.
도시도 비슷할지 모른다.
산업단지 하나를 만든다고,
기업과 투자협약을 맺는다고,
정바카라 하나를 발표한다고 곧바로
사람이 정착하지는 않는다.
산업이 일자리가 되고,
일자리가 생활이 되고,
생활이 관계와 문화가 되고,
그 경험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사람은 도시에 뿌리를 내린다.
익산은 이미 수많은 씨앗을 심어놓은 도시다.
백제의 유산도 있고 철도가 있으며,
대학과 기업이 있고
식품산업과 첨단산업도 있다.
문제는 더 많은 씨앗을 심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심어놓은 것들이 과연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를 바라봐야 한다.
과거의 익산은 여러 번 선택받았다.
왕도 공간으로 선택됐고,
철도의 거점이 됐고,
종교의 중심지가 됐고,
기업의 출발지가 됐고,
국가산업정바카라의 대상지가 됐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에는 기업이나 정부가
익산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익산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익산을 선택해야 한다.
메타세쿼이아가 반세기를 버텨 하나의 숲이 되었듯,
결국 도시의 성장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시간을 쌓고 싶어 하는가로 증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