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짜리 확신
반도체가 오르고 나서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삼성전자 290만 원,
SK하이닉스 500만 원.
목표가가 나붙자 계좌가 열렸다.
몇 해 전 같은 사람들이 삼성전자
"10만 원 간다"는 말에 샀다가
6만 원대까지 밀려 망했다고
욕했던 바로 그 종목이다.
같은 종목,
같은 사람들,
정반대의 타이밍.
이걸 그냥 "개미는 원래 어리석다"는 얘기로 끝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친다.
개인이 반복적으로 고점에 몰리고
저점에서 흩어지는 이 패턴은,
우연히 반복되는 실수가 아니다.
시장에는 이 변동성 자체를 원료로 삼아
이익을 얻는 참여자들이 따로 있고,
개인의 감정적 반응은 그 원료를
공급하는 쪽에 가깝다.
수수료를 버는 증권사,
정보 비대칭의 우위에 선 기관과 고액 자산가,
그리고 결국 자본이 흘러들어가는 부동산.
이들은 개인이 흥분하고
공포에 질리는 그 리듬을 필요로 한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개인이 왜 늦게 사고
늦게 파는가가 아니다.
그 늦음이 누구에게는 손실이고,
누구에게는 왜 꾸준한 수익원이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2026년 1월 22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 5,000선을 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코스피 5000' 공약이
당선 7개월 만에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월에 6,000선을 넘었고,
3월 중동 전쟁(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잠시 5,000선까지 밀렸다가,
4월에 6,000선을 재돌파했다.
5월에는 7,000선과
8,000선을 연달아 뚫었다.
6월 1일,
코스피는 8,788.38로 마감하며
하루 만에 8,600·8,700·8,800선을 한꺼번에 돌파했다.
이날 코스피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7,000조 원을 넘었다.
6월 중순에는 장중 9,000선을 잠깐 찍기도 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한 기대 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이 코스피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같은 시기 신한투자증권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6년 1분기 주식을 매도한 고객 10명 중
8명이 수익을 냈다.
숫자만 보면
완벽한 승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6월 초,
미국 기업 브로드컴이
실적 전망을 하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AI·반도체 산업에 대한 회의론이 번졌고,
여기에 메타가 남는 AI 컴퓨팅 자원으로
'네오클라우드'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하면서
결정타가 됐다.
시장은 이걸
'컴퓨팅 자원이 남아돈다 → 더 이상 메모리 반도체를 사지 않는다 → 반도체 사이클이 끝났다'는
신호로 읽었다.
7월 2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7.89% 급락했다.
7월 13일,
8.95% 폭락하며
올해 일곱 번째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7월 28일,
중국 반도체 기업 CXMT의 상장과
엔비디아의 순환출자 의혹이 겹치며 10.84% 폭락,
8번째 서킷브레이커가 울렸다.
한 달 동안 서킷브레이커가 네 번,
사이드카가 열다섯 번 발동됐다.
7월 한 달 코스피는 22.19% 빠졌는데,
월중 최저점 기준으로는 34%까지 밀렸다.
이건 외환위기였던 1997년 10월(-27.25%)과
금융위기였던 2008년 10월(-23.13%)의
월간 낙폭을 모두 넘어서는 수치다.
원인으로 꼽힌 건 다름 아닌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종목에 대한 과도한 쏠림,
그리고 이 두 종목에 걸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였다.
반도체 대표주 두 종목이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구조에서,
이 종목들이 흔들리자 코스피 전체가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월 31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17.91% 폭등했다.
1980년 지수 산출을 시작한 이래
46년 역사상 최대 상승률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세웠던
기존 최고 기록(11.95%)을 훌쩍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26% 급등해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는 상한가 제도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상한가를 찍었다.
이날 개인은 겁에 질려 대거 팔아치웠지만,
외국인은 역대 최대 규모인
7조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지금 코스피는 그 반등 이후
다시 회복세를 타고 있고,
6,900선을 되찾은 상태다.
정리하면 이렇다.
8,800에서 5,200대까지
반토막에 가깝게 밀렸다가,
다시 6,900까지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채 두 달이 되지 않았다.
이 두 달 안에 상승할 때의 열기,
붕괴할 때의 공포,
그리고 반등할 때의
뒤늦은 후회가 전부 압축돼 있었다.
10명 중 8명이 웃었다는 1분기 통계와,
46년 역사상 최대 낙폭이라는 7월 통계는
서로 모순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구조에서 나온 두 얼굴이다.
지수가 오르는 국면에서는
개인의 매수가 상승을 더 밀어 올리고,
그 상승이 다시 매수 심리를 자극한다.
이 자기강화 국면에서는
누구든 수익을 낼 수 있다.
문제는 이 상승이
레버리지로 뒷받침되는 순간이다.
담보가치가 하루 10% 넘게 증발하면,
시장은 그 사람의 판단이 옳았는지 그른지를 묻지 않는다.
그저 계좌에 걸린 규칙대로 강제로 청산한다.
즉 이 시장은 상승할 때는 개인의 참여를 환영하고,
하락할 때는 그 참여를 기계적으로 처벌하도록 설계돼 있다.
10명 중 8명이 웃었다는 통계와
46년 만의 최대 낙폭은,
같은 시스템이 국면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2020년 3월 코스피가 1457까지 떨어졌을 때,
개인의 연간 순매수는 47조4910억 원이었다.
이듬해 2021년에는 65조9020억 원으로 불어났다.
코로나 상승 구간 동안
코스피가 하락한 날은 124일이었는데,
그중 118일, 95.2%에서
개인이 순매수에 나섰다.
내리는 날마다 어김없이 사들였다는 뜻이다.
2026년 전쟁 쇼크로
코스피가 흔들렸을 때도 패턴은 똑같았다.
하락한 14거래일 동안 개인은
35조4720억 원을 쓸어 담아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업계는 이걸 두고 개인이
학습을 거쳐 정교해졌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개별 종목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시장 전체에 베팅하는 ETF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게 근거다.
이 설명에는 절반의 진실이 있다.
실제로 저점에서 사들이는 타이밍 자체는 개선됐다.
하지만 '무엇을 살 것인가'에서
'얼마를 빌려서 살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용융자 잔액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는 건,
그 정교해진 매수 타이밍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빚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타이밍을 배운 것과
리스크를 배운 것은 다른 학습이다.
개미는 '언제 살 것인가'는 학습했지만,
'얼마나 벌지 않아도 되는가',
즉 레버리지를 줄이는 학습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비대칭적 학습이야말로,
상승장에서 웃고 급락장에서 강제청산당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진짜 이유다.
자본시장연구원이 국내 개인투자자 약 20만 명의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일별 거래내역을 분석한 결과가 있다.
매수가격 대비 주가가 오른 주식을 매도할 확률이,
떨어진 주식을 매도할 확률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오르면 빨리 팔고,
떨어지면 본전이 올 때까지 붙든다.
이걸 단순히
'손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감정 문제로만 읽으면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 반응이
정보와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데 있다.
객관적으로 그 종목의
펀더멘털이 나빠졌든 좋아졌든,
개인의 매도 결정은
'내가 산 가격보다 위인가 아래인가'라는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갈린다.
이건 시장이 주는
새로운 정보를 계속 무시하는 구조다.
반대로 기관과 외국인은
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하며 움직인다.
그러니 처분효과가 강한 개인일수록,
시장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상대적으로 더 늦게,
더 왜곡된 신호로 반응하게 된다.
같은 연구에서 직전 시장수익률이
높을수록 개인의 거래량이 늘었고,
거래빈도가 높은 유형일수록
매수한 주식의 수익률이
매도한 주식의 수익률보다
낮았다는 결과도 나왔다.
정리하면 이렇다.
개인은 가격을 정보로 착각하고,
정보를 감정으로 처리한다.
이 구조를 아는 참여자,
즉 기관과 고액 자산가는
개인의 이 예측 가능한 반응을
거래 상대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국내 개인투자자 17만 명,
거래 521만 건을 분석했다.
매수 후 매도까지 걸린 평균 시간은 9.67일.
전체 거래의 절반은 보유기간이 3일도 안 됐다.
2020년 개인투자자의 연간 거래회전율은
1,600%에 달했는데도
시장 수익률에 미치지 못했다.
18년치 상장기업을 분석한 논문은
'복권성향'이 강한 종목,
즉 확률은 낮지만 터지면 크게 버는 종목일수록
개인의 자기과신이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이 자기과신은 개인투자자 거래비중이
높아질수록 더 강해졌다.
여기서 짚어야 할 건
왜 이 습관이 20년 넘게
학습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답은 보상 구조에 있다.
복권형 매매는 대부분 손실로 끝나지만,
아주 가끔 크게 터지는 순간이 있다.
이 간헐적 보상은 심리학에서
가장 강력한 중독성 강화 패턴으로 꼽힌다.
매번 지더라도,
한 번의 대박이
그 이전의 모든 손실 기억을 압도한다.
그래서 이 행동은
실패를 거듭해도 소거되지 않는다.
2026년 1분기,
매도 고객의 평균 수익이
1월 692만 원에서 전쟁 여파가 반영된
3월 398만 원으로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이 간헐적 보상의 진폭도 커지고,
그 진폭이 다시 다음 매매를 부추긴다.
미래에셋증권이 고객 240만 명의
1년간 수익률을 조사했다.
70세 이상 59%,
60대 50%,
50대 47%.
20대와 30대는 31%였다.
2026년 상반기 조사도 비슷했다.
50대 36.77%,
20대 25.08%.
같은 기간 코스피는 77% 올랐다.
가장 잘한 50대조차
지수 상승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서학개미 분석에서
20대 남성의 매매회전율은
219.5%로 전 연령대 최고였고,
부모가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성년자 계좌의 회전율은 62.1%로 가장 낮았다.
이 대비를 흔히
'경험의 차이'로 설명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계좌 수로는 20대가
전체 개인투자자의 14.1%를 차지하는데,
보유 주식 수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투입할 수 있는 자본 자체가
절대적으로 작다는 뜻이다.
자본이 작으면 한 번의 손실이
계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느껴지고,
그 압박이 더 잦고 더 공격적인 매매로 이어진다.
반대로 2026년 상승장 분석에서는
자산 규모가 클수록
수익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잔액 10억 원 이상 고액 자산가는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 분산해
투자할 여력이 있었던 반면,
소액 개미는 반도체의 빈자리를
변동성 큰 종목으로 채우려다
낮은 수익률에 허덕였다.
실제로 최근 상승장에서
주가가 오른 종목은
지수가 6.45% 급등한 날에도
전체의 22.4%에 불과했다.
즉 '경험'이 아니라
'분산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가 수익률을 갈랐다.
이건 학습으로 극복되는 문제가 아니다.
작은 자본으로 시장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리 학습해도 구조적으로
같은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다.
투자 성과의 격차가
자본의 격차를 다시 벌리는 순환이,
시장 안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2019년 말 619만 명이던
국내 주식투자 인구는 두 배 넘게 늘었다.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투자자가 됐고,
그만큼 재테크 유튜버,
이른바 핀플루언서 의존도도 커졌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인기 유튜브 주식채널의
언급 종목을 추적했더니,
언급 당일 초과수익률이 있었고
긍정적으로 언급된 종목은
20거래일 동안 그 흐름이 이어졌다.
다만 이미 시장의 관심을 받던 종목이
언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인과관계의 모호함 자체가 핵심이다.
시청자는 유튜버의 언급을
'선행 정보'로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오르고 있는 종목을
뒤늦게 확인하는' 구조에 가깝다.
증권사보다 유튜버를 더 믿는 사람이 늘면서,
핀플루언서 추천 종목이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사례도 보고됐다.
투자 앱의 커뮤니티 기능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용자 1인당 커뮤니티 방문이 하루 30회를 넘고,
'수익 상위 5%' 배지 같은 장치가
성과를 과시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설계는 우연이 아니다.
거래가 잦을수록 플랫폼과
증권사의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에서,
정보의 실시간성과 슬롯적 비교는
거래 빈도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불법 리딩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NS와
텔레그램을 매개로 한 불법 투자 리딩 민원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초기에 소액 수익을 내주며 신뢰를 쌓고,
집단 매수를 유도한 뒤,
가격이 뛰면 잠적한다.
이건 개인의 심리적 반응 패턴,
즉 신뢰가 쌓이면 의심을 낮춘다는 반응을
정확히 겨냥해 설계된 사기 구조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판단이 좋아질 거라는 상식과 달리,
정보 환경 자체가 개인의 빠른 반응을
유도하도록 최적화돼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바꿔야 한다.
지수가 오르고 개인이 활발히 거래할 때,
그 활동에서 가장 확실하게
이익을 보는 쪽은 누구인가?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권·선물회사 61곳의
2025년 당기순이익 합계는
동학개미운동이 뜨거웠던
2021년 기록마저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한 대형 증권사만 봐도
한 해 순이익이 1조 원을 넘었다.
이 구조를 이해하려면
증권사의 수익원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
수수료와 신용공여 이자.
둘 다 '거래량'과
'레버리지 사용량'에 비례한다.
즉 증권사의 이익은
개인이 옳은 판단을 내렸는지와 무관하다.
개인이 9.67일마다 사고팔든,
신용융자로 무리하게 베팅했다가
반대매매를 당하든, 그 모든 행위가
증권사에는 동일하게 수익이다.
오히려 반대매매가 폭증했다는 건
신용공여 규모 자체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므로,
증권사 입장에서는 그 국면조차 나쁘지 않다.
개인의 손실과 증권사의 이익이
같은 거래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
이게 바로 이 시장에서 유일하게 국면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수익 모델이다.
변동성은 개인에게는 리스크지만,
그 변동성을 촉진하는 쪽에는 안정적인 매출이다.
이 패턴이 주식시장만의 이야기라면,
우연이라고 넘길 여지가 있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시장,
비트코인에서도 같은 실험이
세 번 넘게 반복됐다.
2017년 말,
비트코인이 처음 2,000만 원을 돌파했다.
"1억 간다"는 전망이 쏟아졌고,
대학생들까지 뛰어들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그런데 2018년 각국 정부의
규제 충격으로 시장은 무너졌다.
그해 12월,
가격은 430만 원 선까지 주저앉았다.
고점 대비 80% 넘게 증발한 것이다.
이 폭락장에서 대다수는 손절했다.
그리고 2020년 말부터
다시 상승이 시작됐다.
2021년 4월 13일,
비트코인은 처음 8,000만 원을 돌파했다.
2018년 저점에서 이미 이탈한 사람들은
이 상승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달,
중국이 암호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은 다시 붕괴했다.
한 달여 만에 가격은
3,800만 원까지 떨어졌다.
8,000만 원 부근에서 뒤늦게 올라탄 사람들이,
이번엔 5,000만 원 아래에서 물량을 던졌다.
이후 2021년 11월 두 번째 고점을 찍고
2022년 크립토윈터로 다시 급락한 뒤,
시장은 몇 년간 긴 침체기를 지났다.
그리고 2025년 10월 7일,
비트코인은 12만6,198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1억7,000만 원 안팎까지 올라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가상자산 현물 ETF가
미국에서 승인되고 기관 자금이 유입되면서,
이번엔 '기관이 검증한 자산'이라는 서사가
뒤늦게 올라탄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타이거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23억 달러,
약 3조5,0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갔는데,
이는 올해 월간 기준 최대 이탈 규모였다.
이 자금 이탈이 가격 하락을 부르고,
그 하락이 다시 선물시장의 레버리지 포지션을
연쇄적으로 청산시키면서 낙폭을 키웠다.
주식시장에서 봤던 신용융자발
반대매매 폭증과 정확히 같은 메커니즘이,
이번엔 코인시장에서 재현된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2,000만 원에 사서 430만 원에 던지고,
8,000만 원까지 오르는 걸 구경만 하다가
다시 5,000만 원 아래에서 던지고,
1억7,000만 원 근처에서 뒤늦게 몰려 사서,
지금 다시 반토막 난 계좌를 붙들고 있다.
같은 사람들이,
다른 자산에서,
같은 실수를 세 번만 반복한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세대의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자산에서,
정확히 같은 곡선을 그렸다.
이건 특정 세대나
특정 자산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격이 오르면 서사가 따라붙고,
그 서사가 뒤늦은 진입을 정당화하고,
레버리지가 그 진입을 증폭시키고,
조정이 오면 그 레버리지가 강제로 청산된다.
주식이든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이 네 단계는 자산의 종류와 무관하게 반복된다.
말하자면 이건 특정 시장의 결함이 아니라,
변동성이 존재하는 모든 시장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공통 운영체제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 요동치는 시장에서 살아남은 차익은,
혹은 겨우 지켜낸 원금은 결국 어디로 가는가?
한국은행의 '우리나라 주식 자산효과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보면,
무주택 가계는 주식 자본이득 1원이 생기면
부동산 자산이 0.7원 늘어난다.
주식으로 번 돈의 약 70%가
부동산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무주택 가계의 유주택 전환 확률은
전체 평균의 두 배가 넘는 23.1%였다.
서울 아파트 매입자금조달계획서의 주식·채권 매각대금 비중은
작년 5월 4.9%에서 올해 1월 8.9%로 뛰었고,
15억 원 이상 고가주택 매입자금 중
이 비중은 올해 4월 13.2%까지 치솟았다.
30대는 특히 가상화폐 매각대금을
주택 자금으로 보탠 사례가 가장 많았다.
이 흐름이 말해주는 건 단순하지 않다.
변동성이 큰 자산에서 수익이 나면,
그 수익은 즉시 변동성이 낮은 자산으로 옮겨간다.
즉 주식과 코인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다.
부동산이라는 최종 목적지의 존재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더 위험한 자산에
더 대담하게 뛰어들게 만드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잃어도 그만, 따면 집으로'라는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럼에도 가계 자산의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가구 자산에서 금융자산 비중은
2019년 24.5%에서
2025년 24.2%로 오히려 소폭 줄었고,
실물자산 비중은 75.5%에서 75.8%로 늘었다.
주식시장의 활황이 20년 가까이 반복돼도
한국 가계의 자산 구성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순환 구조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보유 금액은 60조6000억 원으로,
1년 전 121조8000억 원에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같은 시기 코스피는 5000선을 넘어 6000선까지 올라섰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유리한 재테크로
'주식'을 꼽은 응답은 37%,
부동산은 22%였고,
반년 전 9%였던 가상자산 선호도는
3%까지 쪼그라들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국내에서 빠진 코인 자금이
전부 사라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타이거리서치와 체이널리시스의 분석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까지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 거래소로 이동한 가상자산 규모는
약 700조 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만 약 168조 원이 해외로 빠졌고,
국내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에 낸
수수료만 약 5조 원으로 추정된다.
타이거리서치는 이걸
국내 수요가 줄어든 게 아니라,
국내에서 채워지지 못한
파생상품·온체인 서비스 수요가
해외로 옮겨간 결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이 맞다면,
결론은 이렇다.
국내 규제가 특정 상품을 막으면,
자금은 사라지지 않고
규제가 없는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부동산 규제가 강해지면 주식으로,
주식이 과열되면 코인으로,
코인이 막히면 해외 거래소로.
이 각각의 국면에서 개인은 매번
'지금 이 자산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규제와 유동성의 빈틈을 따라
이동하는 자본의 흐름을 뒤쫓고 있을 뿐이다.
이 흐름을 설계하는 건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그 흐름이 만들어낸 변동성 안에서,
매번 조금 늦게 반응하는 참여자로 남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개인은 오른 주식을
서둘러 팔고 떨어진 주식은 붙든다.
평균 9.67일 만에 사고팔고,
신규 진입자 열에 여섯은 손실을 본다.
가장 활발히 거래하는 20대 남성이 가장 못 벌고,
이건 경험이 아니라 자본 규모의 문제로 나타난다.
지수가 6000을 넘는 화려한 순간과,
사흘 만에 19%가 빠지며 반대매매가
245% 폭증하는 순간은 같은 시장,
같은 설계 안에서 번갈아 나타난다.
이 모든 국면에서 변동하지 않고
꾸준히 이익을 얻는 참여자가 있다.
수수료와 신용공여로 버는 증권사,
정보 비대칭의 우위에 선 고액 자산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본이 흘러드는 부동산 시장이다.
개인의 조급함과 공포는 실수가 아니라,
이 구조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에 가깝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개미는 항상 늦게 사고 늦게 파는가"가 아니라,
"누가 개미의 그 늦음을 필요로 하는가"라고.
같은 실수를 수백만 명이 20년 넘게 반복하고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이 시장이 원래 그렇게 설계돼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