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가 함께 만든 사기극

누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가

by다소느림

빗속의 광주 군공항


2026년 8월 15일,

광복절 오후 4시.

비가 내리는 광주 군공항 정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호남 반도체 성사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고

촛불행동이 주관한

'204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

8·15 호남총궐기'였다.


주최 측 성향의 매체인 자주시보는

이날 전국에서 1천여 명이 모였다고 전했다.

무대에 오른 '백금렬과 촛불밴드'는

민요 뱃노래와 강강술래를 개사해 불렀다.


온라인에 퍼진 영상 속 가사는 이랬다.

"우리 땅에 우리 공장 짓겠다는데",

"시비 털면 재미없당께",

"반도체 공장 부지 찾느라 헤매들 마소."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된 한 소절.

"주한미군만 나가주면은 노다지 땅이네."

이것이 그저 즉흥적인 공연이었다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참가 단체 대표들이 낭독한 공식 문서,

이른바 '촛불 국민 명령서'의 제목은 노래 가사와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국은 호남 반도체 방해 말라!

광주 군공항에서 즉시 철수하라!」

현장 구호도 다르지 않았다.

"호남 반도체 방해하는 미 7공군 규탄한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군공항을 에워싸고

기지 안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이보다 11일 앞선 8월 4일,

경기 평택시 서탄면의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K-55) 정문으로

대학생 8명이 뛰어들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약칭 대진연 소속이었다.


이들은 정문을 통과해

검문소 안쪽까지 뛰어 들어가며 이렇게 외쳤다.

"호남반도체 방해하는 미7공군 박살내자."


미군은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한국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혐의가 무겁다고 판단한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그중 4명에 대해서만 영장을 청구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이 가운데 3명에 대해

"증거 인멸 및 도망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구속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8월 11일,

구속된 3명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과

공동건조물침입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균열이 드러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투자하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들 첨단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그런데 그 산업단지를 조기에 짓겠다며

정작 안보 동맹의 한 축인

주한미군을 몰아내라고 외치는 것은,

온라인 여론에서 즉각 나온 반응처럼

"반도체 최대 고객이 미국인데 반미를 외치는 건

무슨 얘기냐"는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이 균열을 따라가다 보면,

훨씬 더 크고 오래된 구조와 마주치게 된다.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권력과 자본,

때로는 국가정보기관의 자금이 흘러드는

통로가 되어온 조직들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가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반복돼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 시민단체의 생태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규모부터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시민단체가 있는가?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현황에 따르면,

2021년 6월 30일 기준으로

전국에 등록된 단체는

총 1만 5,336개다.


이 가운데 중앙행정기관에 등록된 단체가

1,723개(11.2퍼센트),

시·도에 등록된 단체가

1만 3,613개(88.8퍼센트)를 차지한다.


2017년 기준으로는 중앙 1,624개,

시·도 1만 2,309개,

합계 1만 3,933개였으니,

4년 사이에 10퍼센트 넘게 늘어난 셈이다.


이 증가세를 연도별로 뜯어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보인다.


2008년에는 전년 대비

12.9퍼센트나 늘었지만,

이후 해마다 증가율이 둔화돼

2016년에는 4.4퍼센트,

2019년에는 2.9퍼센트,

2021년에는 2.7퍼센트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2023년에 갑자기

마이너스 10.8퍼센트라는

이례적인 수치가 나타난다.


행정안전부가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요건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면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된 단체들을

대거 등록 말소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이전까지는 등록만 되면

별다른 사후 검증 없이

명단에 계속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제도가 처음으로

'거르기'를 시도한 것이 바로 이 해였다.


광주는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밀집 지역이다


이 글이 광주공항 시위에서 시작된 만큼,

광주의 숫자도 짚어보자.


2023년 12월 기준 광주광역시에는

714개의 비영리민간단체가 등록돼 있다.

중앙행정기관 등록이 12개,

광주시 자체 등록이 702개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일곱 번째로 많은 숫자이며,

서울·부산·인천 세 곳을 제외한

나머지 광역시·도 가운데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서울이 3,009개로 압도적 1위,

경기 2,417개,

전북 1,086개,

부산 854개,

인천과 경남이 각각 788개,

그 뒤를 광주가 잇는다.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이 밀집도가 더 뚜렷해진다.

전국 평균은 인구 3,694명당 단체 1개꼴인데,

광주는 인구 1,988명당 1개꼴이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전북과 제주 다음으로

인구 대비 밀도가 높다.


광주 시민 1,988명 중 1명은

어떤 형태로든 등록 시민단체의 일원이라는 뜻이다.


연도별로 언제 가장 많이 생겨났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광주에서

신규 등록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15년으로,

무려 95개 단체가 한 해에 등록됐다.


그다음으로 활발했던 시기는

단체 설립의 원년이라 할 수 있는

2000년(72개)과 2005년,

2007년(각 35개)이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신규 등록이

단 9개로 급감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우연이 하나 발견된다.

광주 시민단체 등록이 정점을 찍은 2015년은,

뒤에서 자세히 다룰 광주신세계의

특급호텔·복합쇼핑몰 건립 계획이

처음으로 좌초된 바로 그 해이기도 하다.


전국 단위로 보면 더 극적인 사례도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재임 10년

(2011년 10월부터 2020년 7월까지) 동안

서울시에 등록된 시민단체 수는

1,278개에서 2,295개로 늘었다.

약 1.8배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중앙행정기관에 등록된 시민단체는

1,189개에서 1,696개로 약 1.4배,

전국 시·도 전체는 9,020개에서 1만 3,299개로

약 1.5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서울시만 유독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특정 지자체장의 정바카라 성향이

그 지역의 시민단체 등록·지원 규모를

얼마나 크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다.


등록 요건은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걸러내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단체는

어떤 조건을 통과해서 등록되는 것일까?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정한 등록 요건은 다음과 같다.

사업의 직접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여야 하고,

구성원 사이에 이익을 분배하지 않아야 하며,

사실상 특정 정당이나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하고,

특정 종교의 교리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


상시 구성원 수가 100명 이상이어야 하고,

최근 1년 이상 공익활동 실적이 있어야 하며,

정관과 독립된 사무소를 갖추고,

회계장부를 비치해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하며,

사업 실적과 행사 자료 등으로

공공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언뜻 까다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인 설립처럼

엄격한 사전 심사를 거치는 절차라기보다

서류상 요건 충족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에 가깝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특정 정당이나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항이다.


이는 등록 시점에 신청 단체가

스스로 정치적 목적이 없다고

선언하면 통과되는 구조이지,

등록 이후 실제 활동이

정치적으로 흘러가는지를

상시로 재검증하는 장치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2023년의 대규모 말소 사태가,

그동안 이런 사후 검증이 사실상

부재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돈은 어디서 흘러오는가


시민단체 운영의 재원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회원들이 내는 회비,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금과 기부금,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국고·지방 보조금이다.


참여연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시민단체의 회원 회비 납부율은

단체마다 편차가 매우 크다.


잘 운영되는 곳은 60에서 70퍼센트대까지 납부율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7에서 8퍼센트대에 그친다.

이는 대다수 시민단체가 회비만으로

재정을 완전히 자립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50.3퍼센트는

"소액다수 시민의 회비와 모금으로

운영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소수의 거액 후원자나 정부·기업의 큰돈에 의존하면

시민운동의 순수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결과로 분석된다.


반면 47.1퍼센트는 "시민운동의 원칙만 지킨다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보여,

이 문제에 대한 시민슬롯 내부의 시각이 갈려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정부보조금을 받는 단체들의 회계 투명성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하다는 데 있다.


2020년 서울경제의 보도는

이 문제를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표방해온 정의기억연대는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바카라협의회 시절이던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여성가족부 등으로부터

약 13억 4,000만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그런데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에는

이 가운데 5억 3,800만 원만 신고했다.

절반이 훌쩍 넘는 금액이 공시에서 빠진 것이다.

이는 정의연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또 다른 단체는

11개 사업을 수행하며 지난해 약 12억 원을 지원받았음에도

국세청 공시에는 보조금 수익을 0원으로 기록했다.


행정안전부 사업에서는 협동조합 관련 학술단체가,

통일부에서는 다른 단체가 각각 1억 2,000만 원과

1,300만 원을 국고보조금으로 받고도

연말 결산에서 이를 누락했다.


재정 정확성에서 가장 신뢰받는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지원 사업에서도

3,000만 원을 받은 한 금융단체가

이 내용을 국세청에 보고하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이 문제를 이렇게 짚었다.


정부보조금 수익이 발생하면

손익계산서에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기술해야 하며,

보조금을 엉뚱하게 쓰면 법적 처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부실 공시가 적발돼

처벌이나 환수로 이어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시민단체 스스로 신고한 자료가 아니라,

언론이나 시민슬롯의 별도 문제 제기가 있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구조다.


회계 인력을 상시 고용할 여력이 없는

소규모 단체가 많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지만,

그것이 세금의 흐름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케이스 스터디: 대진연이라는 조직


조직의 뿌리와 현재 좌표


이제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대진연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줄여서 대진연은 2018년 3월에 결성된 단체다.

그해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약칭 한대련이 사실상 해체되면서

그 내부의 NL(민족해방) 단결 계열이

새로 조직을 꾸린 것이 대진연의 시작이다.


한대련은 다시 1990년대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서

이어져 내려온 학생운동 계보의 일부다.


한총련은 1996년 대법원으로부터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받은 전력이 있는 조직이다.


대진연의 등록 정보를 확인하면,

등록번호는 862-80-01807이며

서울 동대문구 전농로38길 102,

휘경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후원 페이지에 등재된 현재 대표자는 김수형이다.

다만 나무위키 등의 기록에 따르면

2026년 1월 새 대표를 뽑는 선거에

2002년생 박근하 후보가 출마한 이력도 확인되는데,

이는 조직이 세대교체를 시도하며

젊은 층의 이탈을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진연의 이념적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학생운동 내부의 계보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흔히 대진연은 대한민국 학생운동의

강경 NL 노선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

나무위키를 비롯한 복수의 자료에서 확인된다.


한대련이 해소된 이후 NL 계열의 주류는

오히려 '진보대학생넷' 등 다른 조직으로 흘러갔고,

대진연은 그중에서도 1980년대에서

90년대 사이 형성된 강경파 이론,

즉 단계혁명론과 민족해방 민주주의 통일전선론,

수령론, 품성론 등을 가장 충실히 계승한 소수파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대진연은 학생운동 전체를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노선을 유지해온 소수 분파다.


이 점은 대진연 스스로 밝히는

자기소개와도 상당한 간극을 만든다.


대진연이 신입 회원을 모집하며 내건 소개 문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학생 단체"이며,

세월호와 5·18 등 슬롯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영상동아리,

노래동아리,

풍물동아리,

환경동아리,

춤동아리,

역사해설동아리 등

다양한 대학생 동아리로

구성돼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나 실제 대외 활동으로 드러나는 이력은

이러한 온건한 자기소개와는

상당히 다른 궤적을 그린다.


한 시사 분석 매체는

이 간극을 이렇게 정리한다.


현재 대학생의 절대다수는

김정은과 조선로동당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고,

탈북과 인권 탄압,

경제 실태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운동 자체가 과거 연세대 사태를 기점으로 쇠퇴하는 가운데,

정작 대학생들은 학생운동보다는 취업과 아르바이트,

자기관리와 취미에 관심을 두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학생운동 조직들이 인권과 노동,

학내 문제로 방향을 틀며

학생들의 생활 문제와 접점을 넓혀가는 동안,

대진연은 자주단결노선을 고수하며

진보적 민생 의제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고,

그 결과 대학생 대중으로부터

더욱 외면받고 있다는 평가다.


요컨대 '대학생 진보연합'이라는 이름과

실제 대표성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최근 1년, 거의 매달 이어진 사건들


대진연이 실제로 대학생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언론 노출 빈도는 그 조직 규모에 비해 대단히 높다.


2026년 한 해 동안 확인된 활동만

시계열로 정리해도 그 밀도를 실감할 수 있다.


5월 7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정문 앞에서

대진연 회원 8명이 기습 집회를 열었고,

경찰은 이들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6월 초에는 6·3 지방선거 개표 결과를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 시위 현장,

이른바 잠실 개표소 사태에서

대진연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서

"재선거만 외치라"는 구호 통일 요구가

대진연의 지침이라는 의심이 퍼졌고,

"대진연 지령문"이라는 제목의 벽보가

현장 곳곳에 나붙었다.


문제는 이 소동이

실체 없는 혼란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지 말자고 요구하던 한 30대 시민이

"대진연"이라고 외치는 다른 참가자에게

얼굴을 폭행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고,

실제로는 대진연과 무관한 일반 시민이

대진연 프락치로 몰려 박제되고

폭행당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 혼란 속에서 정부는 대진연의 실체에 대한

공식 입장조차 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같은 6월,

대진연은 스타벅스코리아 강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매운동과

정용진 신세계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정 회장이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산당이 싫다", "멸공"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이 이유였다.


이 무렵 대진연과 촛불행동 등은

'모스탄 체포단'이라는 이름의 활동을 발족해,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세력을 겨냥한

대응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8월 4일,

앞서 상세히 소개한

오산미군기지 침입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진연 측은 이 시위가 미국이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 건설 사업을 방해하고 있으며,

오산기지에서 고위험 물질인 백린 누출 사고가 있었음에도

공개적인 진상조사나 사과가 없었던 점에

항의하는 성격이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연대 등 관련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평화적 방식의 항의였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주한미군이 욕설과 함께

학생들을 땅바닥에 넘어뜨려 짓누르는 등

폭력을 행사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대진연은 경찰이 이 과정을 방치했으며,

연행 과정에서 학생들을 조롱하고

묵비권 행사를 이유로

면회 요청까지 거절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증거 인멸 및 도망 우려가 있다"고 밝혔고,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구속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은

군사시설 통제구역에 침입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군사시설을 촬영하거나 녹취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8월 11일,

평택경찰서는 구속된 3명을

이 혐의로 수원지검 평택지청에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나머지 불구속 상태의

5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마치는 대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며,

현재 수사 대상자 전원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진연이라는 단체의 정체성 자체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일부 언론은 침입한 학생 중

한 명의 어머니가 페이스북에 올린,

수갑을 찬 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을 소개하며

대진연이 어떤 단체인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대진연과 관련 단체들이 이번 사건을 고리로

주한미군 철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미군 철수와 자주를 앞세운 구호가

북한이 오랫동안 대남 선전에서

되풀이해 온 주장과

겹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8월 8일부터 15일까지는

'9기 대학생 통일대행진단'이

전국 대학생들을 모아

7박 8일간의 행진을 진행했다.


대진연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이런 문구가 게시됐다.


"내란세력 완전히 청산하자!

주권모독 전쟁강요 미국을 몰아내자!

반민주·반통일·반인권 국가보안법 철폐하자!"

같은 게시물에서는 미국이 강제노동을 명분으로

한국산 제품에 1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와 대미 투자 강요를 앞세워

한국 경제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도 함께 담겼다.


그리고 바로 그 기간의 마지막 날인 8월 15일,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광주 군공항 8·15 호남총궐기가 열렸다.


거슬러 올라가면 보이는 반복되는 패턴


이 모든 사건이 2026년 한 해에

국한된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도 짚어야 한다.


대진연의 전신 격인 조직들과

대진연 자체는 지난 여러 해에 걸쳐

거의 매년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2019년 10월 18일,

대진연 회원들은 서울 중구 소재

주한미국대사 관저에 무단 침입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한다는 명분이었다.


담장을 넘어 들어가 반미 구호를 외쳤고,

17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가운데

7명 중 4명이 발부되고 3명이 기각됐으며,

최종적으로 관련자들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슬롯봉사 120시간에서 200시간이 확정됐다.


2020년에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미래통합당,

현재의 국민의힘 전신의 선거운동을

방해한 사건도 별도로 발생했다.


2022년 5월 1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5·18 유족단체가 기념식 날만은 자중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음에도 시위를 강행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직접 전화를 걸어 사람으로서 도리를 지켜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2024년 1월 6일에는 김건희 여사 특검을 촉구하며

용산 대통령실 진입을 시도하다가

회원 20여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 목록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거의 매년,

최근 들어서는 몇 달 간격으로 대진연의 이름이

형사사건 기록에 오르내리고 있다.


촛불행동: 다른 조직, 그러나 연결된 네트워크


대진연과 별개의 조직이지만

사실상 같은 진영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이 촛불행동이다.


공식 명칭은 촛불승리전환행동으로,

2022년 결성된 진보 성향 시민단체다.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김민웅은

김민석 국무총리의 친형이다.


촛불행동이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회원단체 명단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언론소비자주권행동, 국민주권연대,

그리고 다름 아닌 대진연이 포함돼 있다.


국민주권연대와 대진연은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복역했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석방 운동,

그리고 김정은 환영 행사를 함께 기획했던

이력이 있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촛불행동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자금 흐름의 투명성 문제다.

경찰은 촛불행동이 2021년부터

온라인 집회를 포함해 서울 중구 청계광장,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등에서

집회를 진행하며 유튜브 중계 영상에

미등록 후원 계좌를 노출하고,

온라인 홍보 포스터에 후원 링크를

게시하는 방식으로 관할청 등록 없이

수십억 원을 모금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행 기부금품법 제4조는

1,000만 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는 자는

반드시 모집·사용 계획서를 작성해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2026년 4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공공범죄수사대는

김민웅 대표와 양희삼 카타콤교회 목사 등 4명을

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다.


양 목사는 이에 대해 촛불행동 초기 시절에

개인 명의 통장으로 후원금을 받은 것이며,

단체가 생기기 이전이라 개인이 받는 것은 문제가 없고,

유튜브를 통한 후원금 모집은 기부자들이

회원에 준하는 성격을 띠므로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반박했다.


촛불행동 측 변호사도 횡령 혐의는 나오지 않았으며

연간 1,000만 원이라는 기준 자체가 너무 오래된 것이라

기소되더라도 헌법재판소로 사건을

가져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다른 하나는 대표 개인의 전력이다.

김민웅 대표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비난할 목적으로

실명을 공개하는 등 2차 가해를 저지른 혐의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됐고,

2024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슬롯봉사 12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 명령이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그는 성범죄 전과자가 됐다.

다만 그는 1심부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모든 판결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촛불집회 활동을

공격하려는 특정 세력의 음모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8월 15일 광주 집회를 둘러싸고는

여당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균열이 있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메가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누구든 일체의 정치적 접근을 절제해야 한다"며,

자신의 친형이 이끄는 단체의

'8·15 호남 총궐기-광주 군공항 에워싸기' 행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촛불행동은 김 후보의 친형인

김민웅 상임대표가 시작한 단체인 만큼,

가족의 정치적 행보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 총리 측은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가

국운을 건 대형 사업인 만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으며,

이에 반미 논쟁을 일으키려는

일부 시민단체의 접근이

프로젝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 청와대의 공식 입장도

집회 측의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


김용범 대통령정바카라실장은 앞서

군공항 일부를 미군이 사용하고 있어

당연히 협의를 시작해야 하는 사항이라며

한미 협의가 이미 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요컨대 이 집회는 '방해'가 아니라

'협의'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며,

이는 집회 측의 프레임보다 한발 앞서 나간

정부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대칭 구조: 이것이 진영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


지금까지 살펴본 대진연과

촛불행동의 사례만 놓고 보면,

이 글은 자칫 진보 진영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구조의 사건이

정반대 진영에서도 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이 문제의 본질이 이념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어버이연합, 그리고 청와대·국정원·4대 재벌의 삼각 커넥션


2016년 폭로되어

한국 슬롯를 뒤흔든 이른바

'어버이연합 게이트'는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건은 그해 터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정운호 게이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대한민국의 4대 게이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겨레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슬롯 각 분야의 좌파 인사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가,

동시에 삼성·현대차·SK·LG 등

재계 서열 1위에서 4위까지의

대기업 자금을 받아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극우 성향 단체들의

관제데모를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주도한 지원 회의에는

매번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이 직접 참석해

지원 대상 단체와 지원 액수 등을 논의했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들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독려하는 등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금 규모의 변화도 흥미롭다.

2014년에는 20억 원대였던 지원금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듬해인 2015년에는

33억 원에서 34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전경련을 통해

어버이연합 등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되고

이어 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지자,

그다음 해의 전체 지원금은

10억 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자금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2016년 4월 시사저널의 보도로 구체화됐다.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반대 집회에

아르바이트 1,200명을 동원했다는 것이었다.


이 매체가 입수한 장부에 따르면,

탈북자들을 일당 2만 원에 고용해

시위에 동원한 정황이 확인됐다.


이를 두고 한 대학교수는

알바 동원 사건에서 안타까운 것은

그 대상이 탈북자들이었다는 점이라며,

북한에 있을 때는 관제데모에

공산주의적으로 동원되더니

남한에 와서는 고작 2만 원을 받고

자본주의적으로 동원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금의 흐름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어버이연합 내부자의 진술이었다.


2017년 9월 21일,

추선희 전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경부고속도로 죽전휴게소에서

약 10회에 걸쳐 국가정보원 직원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았으며,

그 돈을 건네준 인물이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활동 총바카라임자였던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이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이후의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졌고,

2021년 3월 18일 추선희 전 사무총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확정판결 받았다.


국가정보원은 처음에는

이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 비공개 간담회에서

국정원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답했다.


국정원은 또한 어버이연합에 대해

아는 한 금품을 지원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다만 어버이연합을 통해

대공·국가안전 관련 제보를 받거나

자료를 전달받은 사실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법률적으로 허용된 정보 수집 업무 영역이며,

진보단체든 보수단체든 접촉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수사와 언론 보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사자인 추선희 전 사무총장의

검찰 진술과 최종적인 대법원 실형 확정을 통해,

국정원의 최초 부인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정권이 바뀌자 꺼진 스위치


이 사건에서 가장 시사적인 대목은

자금 지원과 활동 수준 사이의 상관관계다.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15년부터 2017년 4월까지,

즉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어버이연합은

총 1,897건의 집회를 신고해 71회를 개최했고,

엄마부대봉사단은 484건을 신고해 39회를 개최했다.


이 둘을 합치면 3년 남짓한 기간에

110회의 집회가 실제로 열린 셈이다.


그런데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즉 이 의원이 자료를 분석한 시점까지

두 단체는 단 한 건의 집회도

개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호 의원은 이를 두고,

최근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사실을 언급하며,

정권 교체 이후 국정원을 통한 자금줄이 끊기면서

활동이 멈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시민단체와

결탁하는 일은 어느 정권에서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회를 신고만 하고 실제로는

열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이 격차는 더 뚜렷해진다.


3년간 신고 건수 1,897건과 484건,

도합 2,381건 가운데 실제 개최는

110건에 그쳤다는 사실 자체도,

이 단체들의 활동이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보다는

조직적이고 계획된 동원의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조직과 동원의 자금줄이

국가정보원이라는 국가기관과

국내 최대 기업들이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결코 순수한 의미의

시민운동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보이는 것


이제 앞서 살펴본 대진연·촛불행동의 사례와

이 어버이연합 사례를 나란히 놓고 문장으로 정리해보자.


먼저 자금 문제를 보면,

진보 진영에서는 촛불행동이

관할청에 등록하지 않은 채

유튜브 생중계와 온라인 포스터를 통해

수십억 원대의 후원금을 모금한 혐의로

대표가 검찰에 송치됐다.


보수 진영에서는 어버이연합이

국정원 심리전단과 4대 재벌 기업의 자금을 받아

세월호 반대 집회 등에 아르바이트와

탈북자를 동원한 혐의가 확인됐고,

사무총장이 실형을 확정받았다.


대표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보면,

진보 진영에서는 촛불행동 김민웅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보수 진영에서는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국정원으로부터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됐다.


권력과의 연결 고리를 보면,

진보 진영에서는 촛불행동 김민웅 대표가

현직 국무총리의 친형이라는

가족 관계로 정치권과 직결돼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어버이연합의 자금줄이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직접 주재한

회의를 통해 조성됐다는 점에서,

국가 권력의 최상층부와 직결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활동 패턴을 보면,

진보 진영의 대진연과 촛불행동은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의제 위에서

오히려 정부보다 한발 앞서 나간

과잉 대표성을 보이며

활동을 활성화하고 있다.


보수 진영의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는 반대로,

우호적인 정권이 물러나고

국정원이라는 자금줄이 끊기자

집회 자체를 아예 중단하는,

스위치가 꺼지듯 멈추는 패턴을 보였다.


이 네 가지 축을 종합하면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시민단체'라는 간판은 때때로

실제로는 정치권력과 자본,

혹은 국가의 정보기관 예산이

여론전을 대행시키는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정권과 이념적 코드가 맞는 단체가

자금과 정치적 비호의 수혜자가 되고,

반대 진영이 집권하면 활동이 위축되거나

멈추는 패턴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반복돼 왔다.


이것은 특정 이념 진영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시민슬롯의 이름을 빌린 권력 대행 구조

그 자체의 문제다.


지역 현장에서 확인되는 또 다른 층위: 광주는 왜 '무산의 도시'가 됐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전국 단위의,

그리고 정치 이념이 뚜렷한 조직들의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시선을 지역 개발 현장으로 옮겨

조금 다른 층위의 문제를 확인해보자.


정치적 이념보다는 생계형 이해관계가

시민단체라는 형태를 빌려

지역 다수의 의견을 압도해온 사례,

바로 광주의 복합쇼핑몰을 둘러싼

30년에 가까운 갈등의 역사다.


반복되는 무산의 기록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2005년,

광주시는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중소상인단체의 요구로

상가면적이 축소되면서 사업성이 떨어졌고,

결국 대기업이 참여를 포기해

16년째 공회전하는 사업이 됐다.


2014년에는 신세계사이먼이

전남 나주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짓기로 하고

전라남도, 나주시와 협약까지 체결했지만,

역시 상인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2015년이다.


광주신세계는 서구 화정동에 지하 7층,

지상 21층 규모의 특급호텔과 복합쇼핑몰을 결합한

대규모 유통 복합시설을 짓겠다며

4,900억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광주시와 협약했다.


계획의 배경에는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고급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당시 광주시장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애초 시장은 신세계 측에 호텔 건립을 제안했으나,

신세계는 호텔 운영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복합쇼핑몰을 함께 짓는 방안을 역제안했고

그렇게 협약식이 진행됐다.


문제는 이 협약식이 진행되기까지,

바로 옆에서 300개 점포가 영업하고 있는

전통 상권인 금호월드와는 단 한 차례의

사전 소통도 없었다는 데 있었다.


이에 자영업자 단체들이

광주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신세계 복합쇼핑몰 건립반대추진위원회'와

'중소상인살리기 광주네트워크' 소속 상인들은

서구의회 앞에서 대형쇼핑몰 입점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결국 광주시는 소상공인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이유로

2년여를 끌다가 이 사업을

최종적으로 무산시켰다.


2017년,

신세계는 규모를 기존 계획의

40퍼센트 수준으로 대폭 축소한 안을 다시 제안했지만,

이 역시 반대에 부딪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신세계는 눈을 돌려

광주 대신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길을 택했고,

그렇게 대전에는 백화점이 들어섰다.


이 갈등의 구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체불명의 시민단체 하나가 대기업 투자를 막았다"는 식의

단순한 통념과는 다른 그림이 나온다.


2010년,

기업형 슈퍼마켓,

이른바 SSM의 입점을 저지하는 투쟁이

벌어졌을 때의 연합 구도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당시 중소상인살리기 광주네트워크,

슈퍼마켓협동조합,

전통시장상인연합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민주노동당,

광주·전남진보연대,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여덟 개 이상의 단체와 정당이

연일 시내 곳곳에서 집회를 열며 연대했다.


즉 반대 운동의 실제 동력은

생계가 걸린 소상공인 조직이었고,

여기에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시민단체와

진보 정당이 결합해 조직적 무게와

정치적 명분을 함께 실어주는 구조였다.


이 점에서 광주의 개발 무산의 역사는

앞서 다룬 대진연이나 어버이연합처럼

순전히 정치적 동기로 움직이는

조직의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수의 조직된 이해관계가

다수의 잠재적 수혜자를 압도하는 구조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패턴을 공유한다.


통계로 확인되는 격차, 그리고 여론과의 괴리


이렇게 30년 가까이 이어진 무산의 역사는

실제로 도시의 유통 인프라 격차라는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2022년 기준으로 대형 복합쇼핑몰은

부산에 세 곳, 대전에 두 곳,

대구에 한 곳이 운영 중이었고

대구에 두 곳이 추가로 건설되고 있었으며

울산에도 한 곳이 문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광주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창고형 대형 할인마트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에 네 곳,

대구에 세 곳,

대전에 두 곳이 있었지만,

광주에는 롯데마트 맥스 상무점

단 한 곳뿐이었다.


5성급 특급호텔의 격차는 더욱 컸다.

부산과 울산 지역에는 총 열두 곳이,

대구에는 두 곳이 있었지만

광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개발 무산의 역사가

정작 광주 시민 다수의 뜻과는

어긋나 있었다는 점을

여론조사가 분명히 보여준다.


2022년 4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가

광주 지역 언론사의 의뢰를 받아

광주시 성인 남녀 8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7.3퍼센트가

광주에 복합쇼핑몰을 유치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27.7퍼센트에 그쳤다.

즉 세 명 중 두 명 이상이

찬성했다는 뜻이다.


이런 시민 다수의 뜻과

실제 정바카라 결과 사이의 오랜 간극은

시민들의 직접적인 항의로도 표출됐다.


2023년,

사업 지연에 지친 시민들은

광주 임동의 옛 전남방직 부지 인근에

항의성 현수막을 내걸었다.


"무산 무산 또무산 무산의 도시 무산광역시",

"대기업이 들어오겠다고 해도 밥상 걷어차는 광주",

"청년들 다 떠난다 복합쇼핑몰 착공하라"는 문구들이었다.


온라인상에서도 복합쇼핑몰의

신속한 추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금호월드 같은 기존 유통시설이

이미 있는데도 만족을 모른다는 반박도 있었지만,

대체로 여론은 답답함을 표출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는 유독 지역 시민단체와 소상공인 단체 등의 입김이

다른 지역보다 강했던 곳이라며,

지자체에 투자를 제안해도

이들의 반발로 번번이 합의가

좌절됐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다른 지역의 경우 정치색이 있는 반대가 있더라도,

주변에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오르고 편의가 좋아진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광주는 그런 실익보다 시민단체의 입김이 더 강해 여론과 분위기,

대화 자체가 지속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반대 측의 논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그렇다고 해서 반대 측의 논리를

무시해서는 균형 잡힌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중소상인네트워크는 2015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반대의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대형쇼핑몰이 입점한 이후

인근 소상공인 1개 점포당

월평균 매출액이 46.5퍼센트 감소했고,

금액으로는 월평균 약 1,300만 원의 매출 하락,

하루평균 방문 고객 수는 40.5퍼센트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단체는 또한 광주가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 비율이 30퍼센트를 넘어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가장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형 유통시설이 추가로 들어오면

많은 중소상인이 생계 터전을 뺏기는

위태로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0년 SSM 저지 운동 당시

이미 광주 시내에는 대형마트가 13곳,

SSM이 15곳 들어와 있어 유통점이

사실상 포화 상태였고,

점포당 인구는 4만 7,788명으로

인천 다음으로 높은 밀집도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역외 소비 문제도 제기했다.


한국은행 목포본부와 광주전남본부가

2020년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하며,

광주 지역 규모 점포 35개 가운데

약 90퍼센트 이상이 본사를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두고 있어,

대형 복합쇼핑몰 입점이 결국

지역 자본의 역외 유출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반대 논리는

단순한 기득권 수호로 치부하기 어려운,

실증적 근거를 갖춘 주장이다.


다만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대형 유통시설 입점의 경제적 효과를

둘러싼 이 논쟁 자체가 아니라,

그 논쟁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시민 다수의 의견을 확인하는 공식적인 절차,

즉 투표나 공론화 과정 없이,

소수의 조직화된 이해관계자들의

반복적인 반대만으로 30년 가까이

사업이 좌초와 재추진을 반복해온

이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 사례는 앞서 다룬

정치적 이념 단체들의 사례와는 동기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직된 소수가 산발적인 다수를

압도하는 동일한 현상을 보여준다.


전장연: 절차의 유죄와 의제의 정당성이 충돌하는 지점


지금까지 다룬 사례들이

비교적 명확하게 문제적인 구조를 보여준다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약칭 전장연의 사례는

훨씬 복잡한 딜레마를 던진다.


시위의 기원과 20년의 궤적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2001년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벌어진 한 사고에서 출발한다.


휠체어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이른바 교통약자법이 제정됐지만,

전장연은 이후로도 20년 넘게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 문턱이

여전히 높다고 주장하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왔다.


2021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에 당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택 앞에서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을 촉구한 것을 계기로

본격화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는,

2026년 7월 기준으로 69차까지 진행됐다.


법원의 유죄 판단


이 시위의 법적 성격에 대해

사법부는 비교적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2년과

2023년에 있었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대해

전차교통방해죄와 업무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이 기소한 혐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한 활동가는 2022년 4월 시청역 승강장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며 출입문과 승강장 사이에

전동휠체어와 몸을 끼워 넣어

약 85분간 열차가 출발하지 못하게 했고,

다른 활동가는 2023년 4월 명동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약 15분간

열차 출입문이 닫히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에서 이것이 시위의 일환이더라도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서울교통공사의 입장도 강경하다.

공사는 전장연이 내세우는 요구사항이

장애인 일자리 확보와 예산안 통과 등

공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임에도,

지하철 내 시위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이른바

'가성비 좋은 시위'라는 이유로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사는 또한 지하철 이용 시민을 볼모로 삼는

불법 시위는 완전히 중단돼야 한다고 밝히며,

서울 지하철 전 구간의 엘리베이터 설치가

2025년 말이면 완료될 예정이라는 점을 근거로

시위를 계속할 명분이 이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2026년 8월 상황을 보면

이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장연은 그해 1월,

지방선거까지 지하철 연착 시위를

유보해달라는 정치권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위를 중단했다가,

6개월 만인 7월 2일

다시 시위를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8월 3일에는

4호선 혜화역과 1호선 노량진역이

각각 최대 46분간 무정차로 통과하는

실제 운행 차질이 빚어졌다.


8월 19일,

전장연은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과의 면담을 앞두고

매일 예정했던 시위를 당분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박 장관은 그에 앞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 예산은 집회나 시위의 강도에 따라

결정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였다.


보조금 논란, 그러나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전장연을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보조금 문제다.

국민의힘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는

전장연을 이른바 '이권 카르텔'로 지목하며

보조금 논란을 제기했다.


이 특위가 근거로 삼은 것은

서울시가 지원하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이었다.


이는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운 중증 장애인과

탈시설 장애인을 위해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해

일자리를 마련하는 사업이다.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가

2026년 3월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이 공공일자리 직무 활동의

50.4퍼센트가 집회와 시위,

캠페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서울시는 지하철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이 공공일자리가 집회·시위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지적이 언론과 의회에서 연초부터 제기됐다고 설명하며,

집회신고 여부와 무관하게 집회·시위·캠페인 활동을

일자리 활동에서 제외하고

선전전이나 촉구·결의·투쟁대회,

기자회견, 가두행진 등과 유사한 행위도

인정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만 여기서 균형을 위해 짚어야 할 것은,

서울시 스스로도 이 공공일자리 예산과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법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사안은 어버이연합처럼

자금 지원과 시위 동원이

명백한 인과관계로 확인된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의혹은 제기됐지만,

그것이 조직적으로 기획된 자금 유용이었는지,

아니면 공공일자리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자발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다.


방식의 위법성과 의제의 정당성은 별개의 문제다


전장연 사례가 앞서 다룬

대진연, 촛불행동, 어버이연합의 사례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법원이 인정한 전차교통방해죄와 업무방해죄는

시위의 방식, 즉 절차적 위법성에 대한 판단이다.

반면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의제 자체의 정당성은 별개의 문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이 판결을 비평하며 지적한 대로,

지하철 선전전과 탑승 행동이

절대적 소수인 장애인들의

불가피한 표현 수단이었고,

그 결과 저상버스 도입과 탈시설 정바카라 진전 등

우리 슬롯에 수많은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누구도 쉽게 부인하기 어렵다.


참여연대는 또한 진영을 달리하는

비장애인들의 적법한 집회와 시위 역시

늘 일정한 불편을 동반한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즉 전장연 사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이 단체도 문제가 있으니 없애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어려운 질문,

즉 "정당한 의제를 관철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이는 대진연이나 어버이연합처럼

그 존재 자체의 정당성이

처음부터 의심받는 조직들의 문제와는 층위가 다른,

훨씬 섬세한 접근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구조적 진단


지금까지 살펴본 다섯 개의 사례,

즉 대진연과 촛불행동의 반미 활동,

어버이연합의 관제데모,

광주 복합쇼핑몰을 둘러싼 개발 갈등,

그리고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관통하는 구조적 요인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진입은 쉽고 퇴출은 어렵다


앞서 확인했듯

비영리민간단체의 등록 요건은

회원 100명 이상,

설립 1년 이상의 활동 실적,

정관과 독립 사무소 구비 등으로,

이는 법인 설립처럼 엄격한 사전 심사라기보다는

서류상 요건 충족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에 가깝다.


특히 "정치적 목적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항은

등록 시점의 자기 선언에 의존할 뿐,

등록 이후 실제 활동이 정치적으로 흘러가는지를

상시로 재검증하는 절차는 사실상 부재해왔다.


2023년,

행정안전부가 처음으로 실시한

등록요건 전수조사에서

전국의 등록 단체 수가

하루아침에 10.8퍼센트나 줄어든 것은,

그동안 이런 사후 검증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둘째, 회계 투명성과 처벌의 실효성이 지나치게 약하다


정의연이 국고보조금 13억 4,000만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국세청 공시에서 누락한 사례,

촛불행동이 수십억 원대의 후원금을

관할청 미등록 상태로 모금한 사례에서 확인되듯,

세금이나 대규모 후원금이 흘러 들어가는 통로에 대한

회계 감시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위반이 확인되더라도 실제 처벌이나

환수로 이어지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애초에 언론이나 시민슬롯의 별도 문제 제기가 없으면

적발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다.


정부보조금 수익은

손익계산서에 반드시 기재해야 하고

위반 시 법적 처벌도 가능하다는

회계 전문가의 지적이 있지만,

실제 제도의 집행력은

이 원칙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정치권력과의 유착이 조직 활성화의 상시적 유인으로 작동한다


어버이연합 사건에서 확인된

청와대-국정원-4대 재벌의 커넥션,

촛불행동 김민웅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의 형제 관계,

전장연 보조금을 둘러싼 여야 간의 정치적 공방까지,

시민단체가 정치권력과 맺는 관계는

매번 논란의 핵심에 자리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정권과

이념적 코드가 맞는 단체가 활성화되고,

반대 진영과 가까운 단체는 위축되거나

활동을 멈추는 패턴이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반복돼 왔다.


이는 시민단체가 본래 수행해야 할

독립적인 감시자로서의 역할이,

실제로는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없애기보다 걸러내는 제도로


이 모든 사례를 종합했을 때,

흔히 나오는 "시민단체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은 정확한 처방이 아니다.


시민단체는 본래 다수결로는

쉽게 결정되지 않는 가치와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다.


전장연이 20년 넘게 주장해온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여론조사를 돌리면

언제나 소수 의견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의제를,

다수의 불편 앞에서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시민단체의 정상적인 존재 이유다.


문제의 핵심은 같은

'시민단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과,

특정한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소수 집단이

'시민 전체'를 참칭하며 다수의 의견을

가로막는 조직이 뒤섞여 있다는 데 있다.


대진연과 촛불행동,

어버이연합처럼 정치권력이나

국가기관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조직,

광주 복합쇼핑몰 반대 연합처럼

생계형 이익단체가 진보 정당·단체와 결합해

30년 가까이 지역 개발을 사실상 거부권으로 막아온 조직,

그리고 전장연처럼 정당성이 인정되는 의제를

법원이 유죄로 판단한 방식으로 관철하려는 조직은

각기 다른 층위의 문제이며,

하나의 해법으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개혁의 방향은 무엇인가?


진입 장벽을 무작정 높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회원 100명을 채우지 못하는

소규모 신생 피해자 모임이나 인권단체가

가장 먼저 걸러질 위험이 있는 반면,

이미 조직력과 자금력을 갖춘

정치색 짙은 대형 단체는

그 문턱을 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입 요건을 강화하는 주체가

결국 정부라는 점에서,

이것이 특정 정권의 성향에 따라

"우리에게 불리한 단체를 걸러내는"

정치적 표적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도 상존한다.


따라서 더 현실적이고 정교한 개혁은

등록 시점의 문턱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되,

등록 이후의 감시 체계를 훨씬 촘촘하게 만드는 데 있다.


첫째, 국고와 지방보조금을 받는 단체는

외부 회계감사 결과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위반이 확인될 경우 등록 말소와

형사처벌을 실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둘째, 정치적 중립성 요건을

등록 시점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매년 재검증하는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광주 복합쇼핑몰 사례처럼

다수 시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 개발 사안에서는,

특정 단체의 무기한 반대가 사실상의 영구적인 거부권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공론화 기한을 명시적으로 정한

절차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투명성 강화와 결사의 자유 보장 사이의 균형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1년

'Americans for Prosperity Foundation v. Bonta' 판결에서,

비영리단체에 후원자 명단 공개를 의무화한 캘리포니아 주법이

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를 침해한다며

6대 3으로 위헌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는 투명성을 명분으로 한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정당한 결사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확인되는 문제는

이 미묘한 균형점을 논하기 이전 단계,

즉 세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회계 투명성조차 제대로 담보되지 않고,

등록 시점 이후의 정치적 중립성 검증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훨씬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민단체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모세혈관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확인한 것처럼,

그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언제나 순수한 공익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때로는 국가정보기관의 예산이,

때로는 특정 계층의 생계 이해관계가

시민이라는 이름을 빌려 흘러들었다.


이 서로 다른 성격의 흐름들을 정확히 구별해내고,

진짜 공익을 대변하는 목소리와 권력·자본의

대행자를 가려내는 제도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슬롯가 마주한,

이념 논쟁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