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건강해졌을까

건강이 상품이 될 때

by다소느림

2025년 6월,

경기 성남의 한 상가 건물에

'메가팩토리약국'이라는 간판이 걸렸다.

국내 최초의 창고형 약국이었다.


2026년 7월 기준,

전국 창고형 약국은 40여 곳에서

최대 110여 곳으로 추정된다.


그중 한 곳을 다녀왔더니

약사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매장을 오갔다.

물어보면 제품 위치를 알려주고

뭐가 더 나은지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다이소 직원 같았다.


전문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태도가 그랬다.

매장이 너무 크고 상주 약사 몇 명이

커버할 수 있는 면적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스템 자체가

'먼저 상담하는 약국'에서

'물어보면 답해주는 매장'으로 설계돼 있었다.


이게 불법이냐고 물으면,

아니다.


약사법상 복약지도 의무는

환자가 요청하면 응해야 하는 의무지,

먼저 나서서 붙잡고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다.


창고형 약국은 정확히

이 최소 기준 위에서 세워졌다.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약사라는 직능의 '체감'만

형해화시키는 방식으로.


성남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왔나


메가팩토리약국 1호점은

성남에서 문을 열 때만 해도 실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창고형 약국은 지역별로

이름과 규모를 바꿔가며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경기 고양의 메디타운,

대구의 365큰약국과 메가타운,

전북 전주의 테라메디,

부산 오시리아,

대전의 알약트레이더스,

서울 동대문의 르메디,

서울 용산의 메디킹덤.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구조는 똑같다.


넓은 매장,

쇼핑카트,

셀프 브라우징,

낮은 가격.


광주도 예외가 아니다.


2025년 9월,

광주 광산구 수완지구에 약 230평 규모의

창고형 약국 개설 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실제 개설된 곳은

광산구의 메가스토어약국,

170평 규모다.


광주에는 이미 365광주제일큰약국이라는

76평짜리 창고·마트형 약국도 있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광산구에는 143평 규모의

신규 대형약국이 공사에 들어가

2027년 1월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롯데마트 맥스 상무점 내부에

창고형 약국을 열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광주시약슬롯는 이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제도적 공백과 관리 기준 부재를 이유로,

롯데쇼핑 본사에 입점 계획을 잠정 보류하고

간담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지역 약사는 이렇게 우려했다.

이미 울산 롯데마트 안에는

'메가플러스약국'이 개설·운영되고 있고

롯데마트, 홈플러스, 농심 같은 유통 대기업이

자체 점포 안에 창고형 약국을

무한정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동네약국이 하나둘 문을 닫는 사이,

대형 유통망이 약국이라는 업종 자체를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카트 뒤의 자본


메가팩토리약국을 만든 사람은 정두선 대표다.

서울 종로에서 20여 년 약국을 운영한 약사 출신이다.

그는 국내 처방 조제와 일반의약품(OTC) 시장 비율이

95대5로 극도로 편중돼 있다고 말한다.


대형 병원 앞 좋은 자리는 이미 선점됐고,

권리금이 엄청나 신규 약사들의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7~8조원까지 성장했는데,

일반의약품 시장은 여전히

1~2조원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의약분업 이후 약업계가 처방 시장에만 매달리며

OTC 시장을 방치한 결과라는 것이다.


창업자의 서사는 여기까지는 아름답다.

그런데 숫자를 하나씩 짚어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전국 약국 수는 2021년 23,947곳에서

2025년 25,713곳으로 늘었다.


신규 개국은 그 반대로 갔다.

2016~2019년 연 2,200~2,400곳대였던 신규 개국이

2021년 이후 1,200~1,300곳대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폐업은 완만하게 감소했다.

살아남는 건 큰 약국이었다.


2025년 신규 개설 약국의 평균 면적은

처음으로 75㎡를 넘었다.

직전 4년은 60㎡대였다.

100㎡ 이상 대형약국 비중은

16%를 넘어섰다.


정두선 대표가 말한 '개국 자리 부족'은 사실이다.

다만 그 자리를 대체한 것도 결국 대형화였다.


창고형 약국은 이 흐름의 정점에 있다.

메가팩토리약국은 2025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정보공개서를 등록했다.

창고형 모델 최초의 프랜차이즈화였다.


가입비 1,100만원,

교육비 1,100만원,

보증금 500만원,

기타비용 8억300만원.


초기부담 합계 8억3,000만원.

인테리어 비용만 2억2,000만원.


기준점포 면적은 100평.

기존 약국 체인의 기준점포가

보통 10~20평인 걸 감안하면,

5배에서 10배 큰 규모다.


정보공개서상 실제 가맹계약은 아직 0건이다.

재무제표 항목도 전부 공란이다.


자산도,

부채도,

매출도,

임직원 수도 0.


서류상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은 사업이다.


그런데도 개별 점포는 계속 커지고 있다.


경기 하남 500평.

서울 금천 600평.

서울 용산 700평.

서울 동대문 1,000평.


서울 강동에서는 법사위가

'창고형' 명칭 규제 법안을 의결한 바로 다음 날,

'창고형 약국'이라는 간판을 내건 신규 매장이 문을 열었다.

향후 전문의약품 입고와 처방 조제까지 예고한 채로.


법이 쫓아가는 속도보다,

매장이 커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기존 약국 체인들도 가만있지만은 않는다.


온누리약국 2,073개,

메디팜 1,133개,

옵티마 879개,

휴베이스 690개.


이들은 약사의 전문성을 앞세운 체인이었다.

이제 이들도 대형화·가격 경쟁

대응 전략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창고형 약국이 '싸다'는 이미지를 선점하면서,

업계 전체의 경쟁 문법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젊은 약사들에게는 이 구조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전북 전주의 한 창고형 약국은

근무약사에게 세후 월 1,000만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세전 약 1억7,000만원을 제시했다.


부산 오시리아의 한 곳은 연봉 1억원에

타지역 거주자에게 교통비와 숙소까지 지원했다.


같은 시기 약사국가시험 합격자는

2025년 2,073명,

2026년 1,747명이었다.


매년 1,700~2,000명대의 신규 약사가 배출되고,

그중 다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개국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창고형 약국의 파격 급여는

이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실질적인 탈출구이자,

동시에 기존 약사 슬롯에서는

배신처럼 읽히는 선택지가 됐다.


실제로 부산 동래의 한 창고형 약국 개설약사는

약사 커뮤니티 약준모로부터 회칙위반으로 제명됐다.

돈은 창고형으로 흐르는데,

명예는 그러지 못했다.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2026년 7월,

제주의 한 대형 창고형 약국이

갑작스럽게 영업을 중단했다.


약국장이 새벽 시간 거래처에

의문스러운 문자를 남긴 뒤

재고 의약품이 외부로 반출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경찰이 출동했고

약국장 측은 일시적 영업 중단이자

도난 피해라고 해명했다.


전북의 한 창고형 약국은

대규모 할인 이벤트 직후

돌연 문을 닫았다.

국내 첫 창고형 약국

폐업 사례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또 다른 한 곳은 일반의약품을

낱개로 소분·재포장해 팔다가

보건소 계도를 받았다.


무자격자 판매 의혹으로 고발까지 당했다.

임대료 갈등설이 겹치면서

결국 영업을 종료했다.


서울 강동 포레온 일대에서는

창고형 약국 진출을 두고

인근 18개 약국이 술렁였다.


저렴한 일반의약품이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

인근 병원의 처방까지 끌어오는

유인바카라이 될 수 있는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지금까지는 일반약과 영양제 영역의 경쟁이었다면,

강동에서는 처방 조제 영역까지

침투하려는 조짐이 처음으로 감지됐다.


한편에서는 CF 모델을 모집하며

브랜드 마케팅 단계로 넘어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 강서·동대문·중랑의

창고형 약국들이 오픈을 줄줄이 미뤘다.


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약은 신선식품과 달리

한 번에 많이 사서 비축해둘 수 있어서,

지속적인 내방 고객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약국이 늘어날수록 숨 고르기가 현실화될 거라고.


확산과 붕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산업 분석가들은 단기(6~12개월)엔

출점과 확산이 계속되지만,

중기(1~3년)엔 운영비·규제·복약지도 병목이 나타나고,

장기(3년 이상)엔 소수만 살아남는

양극화가 예상된다고 봤다.


거품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 모델이 영원히 지금 속도로

확장할 거라는 전제 자체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홈플러스 법인회생 절차와 맞물려,

2026년 1~5월에만 입점 약국 8곳이 폐업했다.


창고형 약국이 대형 유통망 안에

들어가 있는 구조 자체가,

그 유통망의 부침을 고스란히 떠안는

리스크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카트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


창고형 약국에서 가장 조용히,

가장 빠르게 무너지는 건 안전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의약품 중독으로 진료받은 10대 환자는

2020년 1,375명에서

2024년 1,918명으로 늘었다.

39.49% 증가다.


같은 기간 전체 환자는

오히려 1.46% 줄었다.


10대만 유독 늘었다.

10대 여성은 40.92% 늘어

10대 남성(34.04%)보다

증가 폭이 컸다.


5년 누적 8만268명.


'OD파티'라는 말이

SNS에서 돌기 시작한 것과 같은 시기다.


한 기자는 서울 시내 창고형 약국 다섯 곳을 잠입취재했다.

다섯 곳 모두 수면유도제나 감기약을

대량으로 구매할 때 신분증 확인이나

구매 제한이 없었다.


다른 기자는 서울 용산의 창고형 약국에서

수면유도제 등 일반의약품 7상자를

아무 제지 없이 구매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15세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동네약국은 미성년자에게 안 팔거나 캐묻는데,

창고형은 의심을 덜 받고 살 수 있다고.


정두선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 사건 실체가 불명확하다고 반박한 바 있다.


숫자와 현장취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제도의 구멍이 겹친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이른바 DUR은 처방과 조제 시점에

병용금기·연령금기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처방기관이 처방정보를 심평원에 전송해야 작동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안전상비의약품도

마찬가지 사각지대에 있다.


여러 점포를 돌면 사실상

무제한으로 살 수 있다는 허점이 이미 지적돼왔다.


창고형 약국의 셀프브라우징·현금판매 구조에는,

DUR이 원천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

카트를 끌고 매대를 도는 그 순간,

안전장치는 이미 꺼져 있다.


국회도 이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한 의원은 2025년 오남용우려

일반의약품에 대한 복약지도 의무화,

미성년자에 대한 적정사용량 초과판매 금지,

판매기록 5년 보존 의무를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기도약슬롯는 정바카라토론회를 열고

'OD파티를 막자'는 쪽과

'약사에게만 족쇄를 채우는 것 아니냐'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


정작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뚜렷한 대바카라을 내놓지 않았다는 지적이

여러 언론에서 반복됐다.


세계는 이미 겪은 길


한국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이 지점을,

다른 나라들은 이미 오래전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통과했다.


프랑스는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공중보건법은 약사 본인이

자신의 약국을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못 박았다.


한 약사가 하나의 약국만 가질 수 있다.

첫 개설은 인구 2,500명 기준,

이후 추가 개설은 인구 4,500명당

1곳이라는 쿼터까지 있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코스트코 약국이나

월그린 같은 체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처방약과 일반약을 함께 파는

'파르마시'는 반드시 약사가 운영해야 하고,

화장품과 건기식만 파는 '파라파르마시'는

약사가 없어도 되지만 의약품은 못 판다.


대량판매의 욕망은 파라파르마시 쪽으로,

그리고 아벤느·유리아쥬·라로슈포제 같은

더마코스메틱 브랜드로 흘러갔다.


2024년에는 대형마트에서

일반약을 팔 수 있게 하자는 논쟁이 격화되며

약사들이 전국 파업까지 벌였다.


같은 해 12월,

오남용 우려가 있는

슈도에페드린 함유 감기약은

아예 처방약으로 전환됐다.


일본은 반대로 문을 열었다.

등록판매자라는 별도 자격을 만들어,

약사가 아니어도 일반의약품 2·3류는

팔 수 있게 했다.


대신 관리는 촘촘하다.

2026년 5월 개정법은 특정 성분을

'지정남용방지의약품'으로 못박고,

18세 미만에게는 소량만,

연령 확인 후에만 팔도록 의무화했다.


일본 드럭스토어 시장은

2024회계연도 기준 10조307억엔,

전년 대비 9.0% 성장하며

사상 처음 10조엔을 넘겼다.

점포 수는 23,723개.


그중 조제를 겸하는 매장의 매출은

1조5,205억엔으로 8.4% 늘며

전체 조제시장의 18.4%까지 파고들었다.


상위 10개 체인이 시장의 80%를 가져간다.

2025년 12월에는 업계 2위 쓰루하와 웰시아가

경영통합을 발표하며 약 2조엔 규모의

공룡 그룹이 탄생했다.


미국은 자유롭게 두되,

인력 기준으로 관리한다.

캘리포니아는 약사 1명당 테크니션을 1명까지,

약사가 늘면 테크니션 비율도 늘어나도록 법으로 정해뒀다.

텍사스는 커뮤니티약국 기준 1대4다.


코스트코 약국은 회원제 매장이지만,

처방약만큼은 비회원에게도 팔아야 한다는 게

연방 규정과 여러 주법의 명문 조항이다.


세 나라 다 창고형 매장의 존재를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 안에서 무엇을 팔 수 있고

그걸 누가 감독하느냐를 정교하게 설계했다.


한국은 아직 그 설계도가 없다.

돌이켜보면 한국이 드럭스토어 형태를 시도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1980~90년대부터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복잡한 의약품 취급 규정과 약사들의 낮은 관심 속에

본격적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올리브영, 랄라블라, 롭스, 부츠 같은

브랜드들이 도전했지만 2020년대 들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창고형 약국은 이 실패의 역사 위에서,

이번엔 자본과 규제 공백과 소비 트렌드가

우연히 맞아떨어지며 처음으로 성공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30~40년 늦게 찾아온 성공이,

지금 안전판 없이 질주하고 있다.


지금 국회를 오가는 건 명칭 규제법 하나다.


'창고형', '마트형' 같은 단어를 간판에서 지우라는 법.

서영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네트워크 약국 금지법'은

2026년 4월 23일 이미 본회의를 통과했다.


약사나 한약사가 어떤 명목으로도

약국을 2곳 이상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남인순 의원의 명칭 제한법은

2026년 7월 29일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만 남았다.


통과되면 공포 후 3개월,

기존 약국엔 6개월의 추가 유예가 붙는다.


실질적으로 9개월 안에

간판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정은경 복지부장관은

'팩토리', '창고형', '최다', '최고' 같은

소비자 혼동 명칭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명칭 규제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복약지도와 인력 기준 같은 안전관리 강화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국회에는 이 밖에도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법안,

약국 개설 시 외부자본 개입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법안,

OD 오남용을 막기 위한 판매기록법이 계류돼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위원회 파행이 길어지면서

심사 자체가 밀리고 있다는 게 최근 상황이다.


간판을 바꾼다고,

매장 안의 구조가 바뀌지는 않는다.


카트에 담기는 것의 실제 값


가격은 정말 쌀까?


품목마다 다르다.

타이레놀이나 박카스,

파스류는 동네약국보다

10~30% 저렴하게 나온다.


아시클로버 연고 같은

흔한 상비약은 동네약국 4,000원에서

창고형 2,000~2,500원까지 떨어진다.


반면 판콜이나 훼스탈, 게보린 같은

일부 품목은 특정 창고형 약국이

오히려 동네약국보다 11~18%

비싸게 판다는 실측도 있었다.


개설 초기 파격가로 소비자를 끌어모은 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을 슬쩍 올리는 경향도 관찰됐다.

'창고형=무조건 저렴'이라는 통념은,

적어도 품목별로 뜯어보면 절반만 맞는 말이다.


소비자 반응은 뒤섞여 있다.

카트를 끌며 마트처럼 둘러보고

직접 고를 수 있어 편하다는 후기가 많다.


특히 예전 같으면 약사에게 뭘 물어보면

꼭 사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꼈다는 소비자들에게,

눈치 보지 않고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오픈런과 주말 계산 대기가 한 시간을 넘긴다는 불만,

복약지도가 체감상 부실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품목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홈플러스 금천점에 입점한 메가팩토리는

마트가 휴업에 들어가자 약장 옆에

라면과 햇반, 과자, 김, 음료를 진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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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건강' 코너 옆에 라면과 과자를

묶어 파는 기념 이벤트도 있었다.

여기에 동물용 의약품과 반려동물 사료까지

취급 품목이 넓어지고 있다.


약국인지,

마트인지,

이제는 경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카트에 담기는 것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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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질문을 하나 더 던져야 한다.


애초에 카트 안에 담기는 그것들은,

정말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을까?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제15조 2항 단서는 이렇게 규정한다.


질병의 치료·예방 효과가 있는 원료나 성분은,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시행규칙 제20조의3도 같은 원칙을 재확인한다.

성(性)과 관련된 기능이 있는 원료도

마찬가지로 배제된다.


효과가 확실하면 의약품이 된다.


효과가 애매하면,

혹은 애매하게 설계되면,

건강기능식품이 된다.


법이 그렇게 만들어놨다.

광고 규정도 이 경계를 엄격히 지킨다.


건강기능식품 표시·광고심의위원회는

질병의 예방·치료 효능이 있는 것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는 표시,

식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표시를

전부 금지 대상으로 규정한다.


업체가 아무리 효과를 강조하고 싶어도,

"이거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표현 자체를 법적으로 쓸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인 10가구 중 8가구는 건강기능식품을 산다.

2024년 구매 경험률 82.1%.

구매 가구 수는 1,779만3천가구로,

2020년 대비 161만 가구 늘었다.


연평균 약 40만 가구씩 꾸준히 늘어난 셈이다.

예전엔 51세 이상이 주 소비층이었다면

지금은 2030세대와 10세 이하 아동까지

소비 비중이 늘고 있다.


61세 이상 고연령층은 홍삼을 가장 많이 찾고,

10세 이하 아동과 2030세대는

프로바이오틱스 비중이 20%를 넘는다.


시장 규모는 그런데 늘지 않는다.

2021년 5조6,902억원에서

2022년 6조1,498억원으로 급증한 뒤,

2023년 6조1,415억원,

2024년 5조9,531억원으로 줄었다가,

2025년 5조9,626억원으로

겨우 0.2%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체 국면'이라고 부른다.


먹는 사람은 늘고,

쓰는 돈의 총액은 정체한다.


낱개로,

더 자주,

더 싸게 사는 방향으로

소비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소비의 목적도 달라졌다.

예전엔 '전반적인 건강 증진'을 위해

막연히 하나쯤 챙겨 먹었다면,

지금은 면역력(1순위 기준 7.8%),

눈 건강(6.8%),

항노화(6.3%)처럼

구체적인 신체 기능을 겨냥한

소비가 늘고 있다.


수면 건강 제품군은

전년 대비 15.2%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무엇을 위해 먹는지는 갈수록 뚜렷해지는데,

정작 그게 효과가 있는지는 갈수록 흐려진다.


창고형 약국이 정확히 그 지점을 노렸다.

목적이 뚜렷한 소비자가

스스로 성분을 비교하며

카트에 담는 방식은,

상담이 필요한 처방약보다

셀프서비스 유통에 훨씬 잘 들어맞는다.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찾아서


그렇다면 그렇게 사들이는 것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2024년 6월,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진이

성인 약 40만 명의 20여 년치 데이터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JAMA에 발표했다.


만성질환 병력이 없는,

대체로 건강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연구 초기 참가자 39만여 명 중

약 16만5천 명이 사망했다.


매일 종합비타민을 복용한 사람들의 사망 확률은,

복용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4% 더 높았다.

더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빨리 죽었다.


연구진은 이렇게 썼다.

종합비타민이 초래할 수 있는

해로움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고,

심각한 질병이 생긴 뒤에야

비타민을 챙겨 먹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경향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어느 쪽이든,

"사망 위험을 줄인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애스턴 의과대학의 영양사 드웨인 멜러는

"비타민과 미네랄 보충제가 그 자체로

건강에 해로운 식단을 고칠 수는 없다"고 짚었다.


참고로 미국 성인 3명 중 1명,

영국 성인의 거의 절반이 종합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국내 메타분석 전문가인

국립암센터 명승권 교수의 말은 더 단호하다.

개별 임상시험은 대상자 수와

연구비 지원처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갈린다고.


이런 오류 요인을 걷어내는 메타분석을 거치면,

대부분은 효과가 없다고 나온다고.


벌에 쏘였을 때 된장을 바르고

체했을 때 손을 따는 민간요법과,

"연구와 논문으로 입증됐다"는

홈쇼핑 속 간증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뜻이다.


같은 시기,

한국인의 몸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4년 비만·고혈압·당뇨병·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이

전년 대비 모두 증가했다.


비만은 11.5%포인트,

고혈압은 4.3%포인트,

당뇨병은 2.4%포인트,

고콜레스테롤혈증은 5.0%포인트 늘었다.


성인 비만율은 3명 중 1명,

34.4%.


10년 전 26.3%에서

30.8% 늘었다.

남성 비만율은 48.8%로

30~50대 절반이 비만이었다.


최근 10년간 지방 섭취와 비만,

고콜레스테롤혈증은 계속

나빠지는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20대 남녀는 음주,

신체활동 부족,

지방 섭취,

비만이 모두 늘었다.


영양제 매대가 넓어지는 속도와,

국민의 몸이 나빠지는 속도가

같은 그래프 위에 있다.

인과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상관은,

우리가 기대한 방향과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메가팩토리약국을 만든 정두선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 반응이 오기까지

2~3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랐고

그동안 이런 업태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목마름은 진짜였을 것이다.

다만 그 목마름을 채운 게

갈증을 해소해줄 물이었는지,

아니면 갈증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게 해주는 무언가였는지는,

아직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우리가 사 가는 건,

정말로 건강일까?

아니면 건강해지고 있다는,

값싸고 편리한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