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뒤의 아홉 계단
법정 최고형은 50년이다.
가중주의 계산법을 적용해도 그렇다.
한 사람이 아무리 많은 죄를 쌓아도,
대한민국 형법 안에서는
50년이라는 벽을 넘을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묻는다.
왜 우리나라는 형량이 이렇게 낮으냐고.
이 질문은 틀렸다.
정확히는,
이 질문은 하나가 아니다.
"형량이 낮다"는 체감 뒤에는
최소 열두 개의 서로 다른 층위가 겹쳐 있다.
법 조문의 문제인 것도 있고,
법 조문과는 무관한 것도 있다.
재판부의 관행 문제도 있고,
교도소라는 물리적 공간의 문제도 있고,
심지어는 사법부라는 기관 그 자체를
얼마나 믿느냐의 문제도 섞여 있다.
처음 든 질문은 단순했다.
"정말 형량이 낮은가."
그런데 데이터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질문 자체를 열두 개로
쪼개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형법 제42조는 유기징역의 상한을 30년으로,
가중할 때는 50년으로 정한다.
2010년 개정 전에는 15년,
가중 시 25년이었다.
조두순 사건이 개정의 직접적 계기였다.
한 사건의 공분이 조문 하나를 바꾼 셈이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과 대다수 영미법 국가는 병과주의를 쓴다.
죄를 여러 개 저지르면
각 죄의 형량을 그냥 더한다.
강도죄로 20년,
강간죄로 30년,
살인미수로 25년을 저질렀다면,
정말로 75년이 나온다.
100년, 200년, 300년짜리 선고문이
미국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다.
판사는 피고인이 그 형기를 다 채우고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선고한다.
"너는 이 슬롯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숫자로 못박는,
상징적 선고다.
한국은 대륙법계 전통에 따라 가중주의를 쓴다.
여러 범죄를 저질러도 각 형량을
단순히 더하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죄를 기본으로 삼고,
거기에 다른 죄의 형량을
제한된 비율만큼만 더한다.
두 개의 범죄가 경합하면
기본범죄 상한에 다른 범죄 상한의 2분의 1을,
세 개 이상이면 가장 높은 죄 상한의 2분의 1과
두 번째로 높은 죄 상한의 3분의 1을 더하는 식이다.
이렇게 계산하다 보면
아무리 범죄를 많이 저질러도
최종 상한은 형법 42조가 정한
50년을 절대 넘을 수 없다.
애초에 "징역 200년" 같은
선고 자체가 법체계상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실제로 확정된 유기징역 최고 기록은
가산동 연쇄살인 사건의 45년형이다.
만약 같은 사건에 미국식 계산법을 적용했다면,
수백 년이 나왔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건 관용도의 차이가 아니라 계산법의 차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체감하는 건 계산법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눈에 보이는 숫자 그 자체다.
"30년"과 "300년"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쪽이 훨씬 가벼워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학계 논쟁도 갈린다.
2010년 개정 당시에도
"50년은 국제 기준에 비해
이미 급진적으로 늘난 것"이라는 비판
(독일 15년, 프랑스와 일본 30년, 스페인 40년 등과 비교)과
"그래도 여전히 낮다"는 여론이 팽팽히 맞섰다.
상한을 얼마로 두느냐는 결국
"한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바카라임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바카라임주의 원칙과,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응보는 개별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응보주의적 요구 사이의 힘겨루기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짚을 게 있다.
영국이나 캐나다, 호주 같은
다른 영미법 국가들도 미국만큼
극단적인 선고를 하지는 않는다.
영국은 종신형이나 정해진 유기형 범위 안에서 선고하되,
총 형기에 상한을 두는 이른바
'전체성 원칙(totality principle)'이
실무상 작동한다.
즉 "몇백 년형"은 불문법 전통 전반의 특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개별 국가가 선택한 형사정바카라이다.
법계의 차이보다,
경합범을 처리하는
계산법의 차이가 훨씬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뜻이다.
무기징역을 받아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2010년 개정 전에는 10년이었는데,
개정 후 20년으로 늘었다.
"무기징역 = 평생 격리"라는 통념과 달리,
지금도 무기수는 20년만 버티면
슬롯로 돌아올 길이 법적으로 열려 있다.
30대 초반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50대에 다시 거리를 걷는 게
제도적으로 예정돼 있다는 뜻이다.
실제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5년 무기징역 가석방자는 단 1명이었다.
그런데 2017년 11명,
2018년 40명,
2019년 14명,
2020년 18명,
2021년 17명으로,
최근 5년간 꾸준히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매년 10명대의 무기수가
실제로 슬롯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전체 가석방 규모로 보면 더 크다.
2017년 8,247명,
2018년 8,667명,
2019년 8,139명,
2020년 7,876명,
2021년 9,354명.
2021년이 최근 10년 중 최다치였다.
이 숫자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매년 부산 한 개 구(區)의 인구에 맞먹는 인원이
교정시설 담장 밖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유기징역 쪽은 더 확실하다.
가석방 요건은 형기의 3분의 1만 지나면 된다.
30년형이면 10년,
50년형이면 16년 8개월만 지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여기에 실제 선고형 자체가
양형기준상 상한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더하면,
강력범죄라도 실제 복역 기간은
10년대에서 20년대 초반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대에서 30대에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40대에서 50대에 슬롯로 복귀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신체적으로나 슬롯적으로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나이"에 나오는 게
제도적으로 예정돼 있다는 뜻이다.
흉악범죄 피해자 가족들이
"가해자가 나보다 먼저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정서적 반발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형기라는 숫자와,
그 사람이 실제로 담장 밖에
나와 있는 햇수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형법 42조가 정한 30년,
50년이라는 상한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최대치다.
실제 판사가 선고할 때
손에 쥐고 있는 건 조문이 아니라 양형기준이다.
2007년 대법원 산하에 설치된 양형위원회가
죄목별로 정해놓은 이 기준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판사가 이를 벗어나면 판결문에
별도로 그 이유를 적어야 한다.
사실상의 실무 규범인 셈이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하나의 범죄 유형마다
감경영역, 기본영역, 가중영역이라는
세 개의 형량 구간이 미리 정해져 있다.
여기에 특별양형인자와
일반양형인자라는 게 붙는다.
특별양형인자는 범행 수법의
잔혹성, 심각한 피해, 계획범행 여부 같은 것이고,
이런 인자가 감경 쪽으로 많이 붙으면
하한선까지 낮아지고
가중 쪽으로 많이 붙으면
상한선까지 올라간다.
초범인지,
반성문을 썼는지,
피해자와 합의했는지,
슬롯적 유대(가정이나 온라인 게임)가 있는지
같은 요소들이 대부분 감경 인자로 분류된다.
여기에 더해 법관이 재량으로
형을 낮출 수 있는 작량감경이라는 제도가 따로 있다.
이건 양형기준 영역보다도
더 아래로 형을 내릴 수 있는 장치다.
정상에 참작할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판사가 재량으로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감경할 수 있다.
결국 실제로 선고되는 형량은
조문의 상한, 양형기준의 권고 범위,
그리고 작량감경이라는
세 단계의 필터를 거친 결과물이다.
뉴스에 나오는 "징역 몇 년"이라는 숫자는
이 세 단계를 다 통과하고 남은 최종값이지,
법정형 자체가 아니다.
국민이 체감하는 "봐주기 판결"이라는 인상은
대부분 이 세 번째 필터,
초범·반성문·합의라는
정상참작 관행에서 나온다.
2012년 대검찰청이 성범죄 사건 2,733건을 분석한 결과가 있다.
구형량이 1개월 늘 때 실제 선고량은
0.25개월에서 0.78개월만 증가했다.
검찰이 구형을 올려도,
선고는 그만큼 따라 올라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확정판결 중 구형량이
판결문에 기재된 사건들을 표본 분석한 자료에서도,
대다수 사건이 구형보다 낮게 선고됐다.
구형보다 높게 나온 이른바
'올려치기' 사례는 4.8%에 불과했다.
검찰이 부른 숫자보다 낮게 끝나는 게
압도적 다수라는 뜻이다.
다만 여기엔 중요한 반론이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애초에
양형기준의 2배 가까이 구형을 부르는
관행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선고가 구형의 절반 수준"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착시일 수 있다.
검찰이 협상의 여지를 두고 높게 부르고,
법원이 그 관행을 감안해 깎아 내리는
암묵적 게임이 반복되고 있다면,
문제는 선고가 낮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구형과 선고 사이의 기준점 자체가
애초부터 어긋나 있다는 데 있다.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처럼
여론이 들끓었던 사건에서
"형량 반토막"이라는 제목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이 정박효과는 언론 보도의 구조와도 맞물린다.
언론은 대개 구형이 발표되는 시점에 한 번,
선고가 나오는 시점에 또 한 번 기사를 쓴다.
그 사이에 숫자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걸 목격한 독자는,
그 낙차 자체를 "봐주기"로 읽는다.
정작 그 절반이라는 낙차가 원래부터
검찰과 법원 사이에 관행으로 굳어 있던
격차라는 사실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대규모기업집단 총수일가의
배임·횡령 사건을 분석한 경제개혁연구소 자료가 있다.
유죄 확정된 총수일가 18명에서 19명 중
절반가량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실형을 받은 이들 중
형기를 다 채우고 만기출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면, 가석방, 형집행정지 같은 통로로
대부분 형기를 채우지 않고 나왔다는 뜻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한양대의 공동연구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738명을 분석해,
재벌 계열 피고인이 비재벌 피고인보다
집행유예를 받을 확률이 27퍼센트포인트 높다는 걸 확인했다.
27퍼센트포인트는 작은 차이가 아니다.
같은 죄목,
비슷한 범죄액수라도
피고인이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실형과 집행유예의 갈림길이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이거다.
일반 범죄는 항소심으로 갈수록
집행유예 비율이 줄어든다.
폭행죄는 1심 63%에서 항소심 33%로,
절도죄는 1심 51%에서 항소심 30%로 떨어진다.
상급심으로 갈수록
관대함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런데 재벌 기업범죄만 유일하게 정반대로 움직인다.
1심 68%에서 항소심 78%로,
오히려 늘어난다.
같은 사법부,
같은 항소심 절차 안에서,
방향이 반대로 가는 거다.
이 역전 현상 하나만으로도,
"형량이 낮다"는 여론이
실은 형량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형량이냐에 따라 갈리는 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논리가
"국민경제 기여도"와 "고령·건강" 같은 감경 사유다.
대기업 총수가 구속되면 기업 경영에 공백이 생기고,
이는 협력업체와 근로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다.
이 논리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논리가 유독 재벌 총수 사건에서만
항소심 단계까지 살아남아
집행유예 비율을 끌어올린다는 점은,
형벌의 형평성이라는 원칙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확정받았다.
1심은 벌금 미납 시
하루 노역을 2억5,000만원으로 환산했다.
2심은 벌금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노역 일당은 오히려 5억원으로 늘렸다.
'황제노역'이라는 말이 슬롯적으로 퍼진 결정적 계기였다.
이 사건 이후 형법이 개정돼,
벌금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은 노역 300일 이상,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은 1,000일 이상의
최소 유치기간이 신설됐다.
대법원도 하루 환산액이
벌금 총액의 0.1%를 넘지 못하도록
기준을 개선했다.
그런데 노역 상한은
여전히 3년으로 묶여 있다.
벌금이 수백억,
수천억 단위로 커지면
하루 환산액은 그대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단위가 된다.
재산을 은닉한 사람에게는
노역장 유치가 사실상 벌금을
크게 줄이는 선택지가 되는 구조다.
최근 사례가 이를 다시 보여준다.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전 대표는
벌금 1,465억1,000만원이 확정됐다.
벌금형이 확정됐음에도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1,000일간 노역장에 유치되고,
벌금은 하루 1억4,651만원씩 감면된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534억7,615만원이다.
최서원(최순실)씨의 경우도
벌금 200억원에 노역 최대 3년을 적용하면
하루 일당이 약 1,800만원을 넘는다.
더 구조적인 숫자도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영교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선고된
벌금 총액은 32조5,966억원,
한 해 평균 6조5,193억원이다.
이 중 현금으로 납부된 비율은
평균 17%(연평균 1조1,050억원)에 그쳤고,
노역장 유치로 대체된 벌금은
평균 58%(연평균 3조7,600억원)에 달했다.
2024년 8월까지의 집행 현황을 봐도
벌금 집행대상액 6조2,065억원 중
56.7%가 노역으로 대체됐다.
벌금형 집행의 절반 이상이
실제로는 현금이 아니라
몸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몸값이 재산 규모에 따라
수백 배씩 벌어지는 구조다.
경제 사정이 나쁜 사람은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노역을 선택하고,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하는 고소득자는
'황제노역'으로 납부 자체를 회피한다.
여기에 근본적인 구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한국은 범죄의 내용과 바카라임 정도만 고려해
벌금 총액을 정하는 총액벌금제를 쓴다.
피고인의 소득이나 재산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반면 독일이나 북유럽 일부 국가는
피고인의 하루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 일수를 곱하는 일수벌금제를 쓴다.
부자에게는 하루 벌금 액수 자체가 크게 매겨지고,
저소득자에게는 작게 매겨지는 방식이다.
총액벌금제 아래에서는 같은 벌금 300만원이
누군가에게는 한 달 월급이고
누군가에게는 커피값 수준이다.
노역 상한을 7년으로 늘리는 형법 개정안이 2020년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한국형사정바카라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위원은
"노역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실패했다"며
"세계적으로 봐도 법정형이 낮지는 않은데,
집행을 잘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촉법소년 범죄 건수는 2016년 대비
2025년 약 221.5퍼센트 늘었다.
최근 4년간 검거 건수는 두 배로 뛰었다.
2026년 1월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제기되던 논쟁이
국가 차원의 공론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나온다.
소년 보호관찰대상자의 재범률은 12.3퍼센트로,
성인 재범률 3.9퍼센트의 세 배가 넘는다.
대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수치를 근거로 신중론을 편다.
"형사처벌을 확대하면 오히려
낙인효과가 생겨 재범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소년범을 성인 형사사법 체계로 조기에 편입시키면,
교화보다 낙인이 앞서 재범 가능성을 키운다는 거다.
반면 처벌 강화론자들은
정확히 같은 숫자를 두고 정반대로 해석한다.
"재범률이 이미 이렇게 높다는 건,
지금의 관대한 처분 자체가 실패했다는 증거"라는 거다.
소년보호처분이라는 현재의 관대한 대응이
재범을 막지 못하고 있으니,
더 강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같은 숫자를 놓고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는,
이 논쟁에서 흔치 않은 지점이다.
이건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인과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재범률이 높은 게 관대한 처분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에 재범 위험이 큰 아이들이
관대한 처분을 받는 집단으로 몰려 있는 것인지,
지금의 통계만으로는 명확히 가려낼 수 없다.
두 진영 모두 같은 숫자를 인용하면서도,
정작 그 숫자가 설명하는 인과의 방향에는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전국 55개 교정시설의 평균 수용률은
2021년 106.4퍼센트에서
2025년 128.5퍼센트로,
5년 사이 22.1퍼센트포인트 뛰었다.
지역별 편차는 더 심각하다.
부산구치소는 158.1퍼센트,
여성 수용 구역은 200퍼센트를 넘었다.
대전교도소는 142.9퍼센트다.
정원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수용시설 안에 밀어 넣어져 있다는 뜻이다.
부산구치소는 실제로 검찰과 법원에
구속영장 청구를 재고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사례까지 있다.
수용시설이 이미 포화 상태이니
신규 구속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교정시설이 포화 상태라 형량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말은
흔히 음모론처럼 들리기 쉽지만,
이 사례는 그것이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실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걸 보여준다.
판사 개개인이 의식적으로 시설 사정을 고려해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더라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부터
이미 시설 수용 여력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법 이론과 양형기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전히 인프라의 문제다.
이건 결국 예산의 문제이기도 하다.
새 교정시설을 짓는 데는 부지 선정부터
준공까지 수년이 걸리고,
인근 주민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반면 범죄 발생과 수용 수요는
그렇게 느리게 늘지 않는다.
시설이라는 하드웨어가
슬롯의 처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시차가,
결과적으로 개별 판사의 재량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압박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할 게 있다.
교도소가 좁고 부족한 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지 않냐는 질문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맞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생각보다 극심하다.
세계 224개국의 교정통계를 모으는
'월드 프리즌 브리프' 자료를 보면,
OECD 38개국 중 수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136.2%)이고,
프랑스(130.8%),
슬로베니아(130%),
콜롬비아(127.3%)에 이어
한국이 5위(125.3%)다.
반면 미국은 86%,
일본은 47.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한국은 과밀 문제가
보편적으로 심한 나라들 축에 낀다는 뜻이다.
인구 대비 수감률로 보면 순위가 또 바뀐다.
인구 10만명당 수감자 수는
미국이 560명으로 세계 1위다.
영국 140명,
한국 106명,
프랑스 104명,
독일 77명,
일본 39명이 뒤를 잇는다.
미국은 가둬놓은 절대 인원이
세계에서 가장 많으면서도,
애초에 감옥을 계속 지어
정원 자체를 늘려온 나라라
정원 대비 수용률은 오히려 낮게 나온다.
한일 비교가 특히 시사적이다.
일본의 범죄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약 560건인데
한국은 3,121건으로,
약 6배 차이가 난다.
애초에 형사사법 시스템에 들어오는
인원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여기에 일본은 개인 간 채무나
부동산 분쟁 같은 사안을
형사사건화하지 않는
'민사의 형사불개입 원칙'이 강하게 작동해,
이 역시 수용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헬싱키대 법학자 타피오 라피세팔레 교수는
수용률이 국가의 범죄율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복지제도의 수준과 슬롯적 신뢰,
정치문화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수감자가 줄어
교도소를 호텔로 개조하다가,
이제는 벨기에와 노르웨이의 수감자를
돈을 받고 대신 수용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교도소가 좁고 부족한 건
세계 공통의 현상이 맞지만,
그 정도는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한국은 그 안에서도 심한 축에 속하고,
이건 단순히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범죄를 형사처벌로 처리하는 비율 자체가 높고,
교정시설 확충 속도가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에 가깝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하루 평균 8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시행 후 약 21개월 동안
검거된 인원은 1만7,104건에 달한다.
그런데 스토킹 피의자 중 구속률은
3.2퍼센트에 불과했다.
신고와 검거는 계속 느는데,
실제 구금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극히 낮다는 뜻이다.
2026년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경찰은 가해자 격리(잠정조치 4호) 신청을
최대 9배까지 늘렸다.
그런데 법원의 발부율은 오히려
전년 대비 절반 수준인 3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판사가 재범 위험보다
도주 우려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관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치명령조차도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고 연장이 불가능해,
석방된 뒤 곧바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남양주 사건에서는 전자발찌를 찬 가해자가
스토킹 신고 중이던 피해자를 살해했고,
담당 경찰관들이 안전조치 없이
피해자 사망 후 면담을 한 것처럼
허위 보고한 사실까지 감찰에서 드러났다.
이 사례는 앞선 항목들과 성격이 다르다.
법은 이미 여러 차례 강화됐다.
긴급응급조치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이 신설됐고,
우편을 이용한 접근금지도 잠정조치에 추가됐다.
문제는 조문이 아니라,
그 조문을 실제로 적용하는
재판부와 수사기관의 실무 판단이
법 개정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위반해도 곧바로 유치되지 않으니
가해자들에게는 이 법이 "종이호랑이"처럼 비친다는 거다.
가정폭력처벌법의 잠정조치 기간이
최대 3년인 것과 비교하면,
스토킹처벌법의 유치명령 1개월이라는 기간은 유독 짧다.
두 법 모두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한다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데,
실제 격리 기간의 설계는 전혀 다르다.
이 불균형 자체가 법체계 안에 남아 있는,
아직 손대지 못한 또 하나의 틈이다.
형법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같은
특별법들이 형법 위에 겹겹이 쌓여 있다.
이런 특별법들이 생긴 배경은 대부분 비슷하다.
특정 사건이 슬롯적 공분을 일으키고,
국회가 여론에 응답해 형법 본체를 고치는 대신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 가중처벌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성범죄 관련 특별법이 강화된 게 대표적이다.
이 방식의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형법 체계 자체가
점점 누더기가 된다는 것이다.
같은 범죄라도 피해자가 아동이냐,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하느냐에 따라
적용 법률과 형량이 완전히 달라지고,
판사조차 어느 법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지
검토해야 할 조문이 계속 늘어난다.
다른 하나는,
정작 여론이 가라앉은 뒤에는
이 특별법들이 실제로 얼마나 집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들 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시행된 뒤 몇 년이 지나 그 법이 스토킹처벌법처럼
"종이호랑이"가 되어 있어도
그건 뉴스가 되지 않는다.
결국 "형량이 낮다"는 여론이
새로운 특별법 하나를 만들어내고,
그 특별법은 시행 초기의 관심이 식으면
다시 실무의 관성 속에 잠기는 순환이 반복된다.
1997년 12월 30일,
지존파 등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이후
지금까지 28년째 단 한 차례도 집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부터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여론은 전혀 폐지 쪽이 아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사형제 유지 여론은
2005년 64.8%,
2012년 79%,
2015년 63%,
2018년 69%,
2022년 69%로,
20년 가까이 한 번도
과반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별도 조사에서도
일반국민의 65.9%가 사형존치에 찬성했다.
법적으로는 사형이 여전히 최고형으로 존재한다.
형법상 사형은 지금도 선고 가능한 형벌이다.
실제로 사형 확정 판결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51건에 달한다.
다만 2011년부터는
연간 사형 선고가 5건 이하로 크게 줄었고,
2010년대 이후로는 사형이 확정된 사건이 단 세 건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건 또 다른 종류의 괴리다.
국민 다섯 명 중 세 명 이상이
사형제 유지를 지지하는 나라에서,
정작 그 형벌은 28년째 서랍 속에만 있다.
법전 위에서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는 강력범죄에 강경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실제 집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형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형벌이나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건,
사형 선고 건수가 줄어드는 것과
무기징역 선고 건수가 줄어드는 게
같은 시기에 함께 일어났다는 점이다.
사형 대신 무기징역이 대체재로 늘어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기징역 선고도 함께 줄고
그 자리를 장기 유기징역이 채우고 있다.
재판부가 사형이라는 상징적 형벌을 사실상 쓰지 않는 대신,
30년·40년·45년 같은 유기징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뜻이다.
법전 위의 최고형과 실제로
작동하는 형벌 사이의 거리가,
사형이라는 극단적 사례에서
가장 크게 벌어져 있는 셈이다.
2019년 OECD가 회원국 37개국을 대상으로
사법시스템 신뢰도를 조사했을 때,
한국은 초안에서 꼴찌로 나왔다.
대법원은 발칵 뒤집혔다.
외교부를 통해 OECD 본부에 공식 이의를 제기했고,
"법원만 물은 게 아니라 검찰과 교정행정까지
포함된 질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결국 그해 최종 보고서에서
한국의 사법부 신뢰도 순위는 빠졌다.
2017년에도 동일한 일이 있었다.
이의 제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는
법원과 검찰이 모두 법무부 산하에 있어
'사법 시스템'이라는 질문이 둘을 아우르지만,
한국은 삼권분립 구조상 법원이 독립돼 있어
같은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겨냥하는지 모호하다는 거다.
하지만 순위에서 빠졌다고 해서
실제 신뢰도 수치 자체가 좋아진 건 아니다.
2023년 OECD '한눈에 보는 정부' 자료 기준,
한국인의 사법시스템 신뢰도는
49.1퍼센트로 OECD 평균 56.9퍼센트를 밑돈다.
2024년 통계청 슬롯지표에서는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46.1퍼센트로,
경찰 신뢰도 50.8퍼센트보다도 낮게 나왔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다.
"형량이 낮다"는 여론의 상당 부분은
어쩌면 실제 양형 데이터 자체보다,
사법부라는 기관 그 자체에 대한
낮은 신뢰에서 파생되는 감정일 수 있다.
판결문에 적힌 숫자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왜 하필 이 판사가 이 사건에서 이 숫자를 줬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먼저 자리 잡고 있는 거다.
같은 30년형이라도,
그 형을 내린 사법부를 신뢰하는 슬롯와
신뢰하지 않는 슬롯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 신뢰의 문제는 순환한다.
사법부를 믿지 못하니 형량이 낮게 느껴지고,
형량이 낮다고 느끼니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특별법이 실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다시 깊어진다.
앞서 다룬 열한 개의 층위 중 상당수가,
결국 이 마지막 순환 구조 안에서
서로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법 조문 자체의 문제로
분류할 수 있는 건
가중주의 계산법,
형법 42조의 30년·50년 상한,
벌금 노역의 3년 상한,
총액벌금제,
그리고 특별법이 쌓이며
생기는 체계의 혼란이다.
이 층위는 국회가 조문을 고쳐야 바뀌는 영역이다.
실무 관행의 문제로 분류할 수 있는 건
양형기준의 감경 인자가 작동하는 방식,
구형과 선고 사이의 정박효과,
재벌과 서민 사이의 형벌 체감 격차,
스토킹 잠정조치를 대하는
재판부의 보수적 관성이다.
이 층위는 조문을 안 고쳐도,
재판부와 검찰의 실무 관행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다.
인프라와 신뢰의 문제로 분류할 수 있는 건
교정시설의 물리적 포화,
사형제 존치와 미집행 사이의 간극,
그리고 사법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다.
이 층위는 법도 관행도 아닌,
예산과 시간과 슬롯적 합의가 쌓여야 바뀌는 영역이다.
하나의 질문,
"형량이 왜 이렇게 낮은가"는 결국
이 열두 개의 서로 다른 원인을
한 문장 안에 뭉뚱그린 결과다.
입법이 만든 상한과,
그 상한 아래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양형기준과,
재판부가 실제로 쓰는 재량과,
교정시설이라는 물리적 한계와,
법전 위에만 존재하는 사형이라는 형벌과,
그 모든 걸 지켜보는 국민이 사법부를 얼마나 믿는가 하는 문제가
한데 뒤엉켜 하나의 감정으로 뭉쳐 나온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 화가 나는 지점은 형량의 숫자일까,
아니면 그 숫자를 만들고
그 숫자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