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만 남은 기억

방치된 역사

by다소느림

하나의 부지, 두 개의 풍경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옛 국군광주병원이 있던 자리에,

화정근린공원이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그옆.

뼈대만 남은 건물이 서 있다.

30여 개 동의 규모.

을씨년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두 풍경은 같은 부지 안에 있다.

같은 담장 안에서,

하나는 정돈됐고

하나는 방치됐다.


2024년 7월 1일.

바로 이 부지 안에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가 문을 열었다.


같은 날,

같은 부지 안에서.

한쪽은 완공을 축하했고,

한쪽은 여전히 폐허였다.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


정식 명칭은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행정안전부 산하 법인이다.


5·18과 여순사건,

4·3 등 국가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을 지원하는 게 목적이다.


주소는 광주광역시 서구 월드컵4강로 116번길 19,

옛 국군광주병원 부지.

총사업비 107억 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224㎡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은 상담실과 사무공간.

2층은 다목적실과 물리치료실.

3층은 프로그램실과 야외쉼터.


행안부는 법률 제정에 앞서

2020년부터 광주와 제주에서

치유 시범사업을 운영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성과 광주시의 유치 의사를 고려해,

2021년 광주가 최종 건립 위치로 확정됐다.


계획대로라면 정신적·신체적 치유 프로그램,

1대1 상담 서비스,

슬롯적 치유 프로그램,

방문 치유 서비스까지 갖춰야 했다.


그런데 개관 당일,

지역슬롯의 반응은 축하가 아니라 반발이었다.


행안부가 2019년 성공회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치유센터 조성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광주센터는 최소 61명 규모에

연간 운영비 61억여 원이 필요하다고 추정됐다.


실제 출범한 규모는 이 절반에도 못 미쳤다.

운영비 부담도 문제였다.


행안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경비를

출연 또는 보조할 수 있다'는 치유센터법 제18조를 근거로,

운영비의 절반을 광주시가 부담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용역보고서 추정치가 실제 이용자 수와

차이가 있다는 이유였다.

전액 국비로 운영되는

국가시설을 기대했던 지역슬롯는 실망했다.


당시 5·18유족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5·18유족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겠다고

정부가 내놓은 결과가 고작 이런 수준이란 게 참담하다."


4·3희생자유족회 관계자도 물었다.

"기존 시범사업 때와 국가센터로 출범하는 것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구체적인 숫자를 보면 이렇다.

개관 당일 광주센터의 실제 인력과 예산은

센터장을 포함해 13명,

예산 16억 원.

제주센터는 13명에 14억 원.


성공회대 산학협력단 용역보고서가 추정했던

광주센터 61명·61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다.

계획 대비 인력은 약 21%,

예산은 약 26%에 불과했다.


광주시와 제주도는 급한 대로

올해 최소 운영비 5억 원과

2억 7000만 원을 각각 편성했다.

그리고 이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2025년 9월.

개관 1년 만에,

트라우마치유센터는 운영예산 부족을 이유로

하반기 치유재활프로그램을 모두 중단했다.


107억 원을 들여 지은 건물이,

문을 연 지 1년 만에 프로그램 운영이 멈춘 것이다.

정부가 배정한 예산 11억 원은 상반기에 대부분 소진됐다.

센터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22억 원.


정부는 광주시가 전체 예산의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광주시는 "국가기관인 만큼

정부가 운영비를 바카라임져야 한다"며 맞섰다.


광주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그해 운영예산을 아예 확보하지 않았다.

센터 측은 "광주시에 공문을 보내

예산 지원을 촉구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 중단으로 영향을 받은 등록 회원은,

2025년 8월 말 기준 1340명.

5·18 피해자와 유가족,

여순사건·한국전쟁 피해자,

강제징집과 삼청교육대 피해자,

고문피해자 등이다.


국회는 뒤늦게 법을 개정했다.

기관 운영비는 정부가 전액 부담하고,

사업비만 지자체와 분담하도록.


그 결과 다음 해 광주시가 부담할 몫은

전체 사업비 9억 5000만 원의 절반,

4억 7500만 원으로 줄었다.


107억 원짜리 건물을 지어 놓고,

정작 그 안에서 사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은

1340명의 등록 회원을 앞에 둔 채

예산 다툼으로 멈춰 섰다.


건물은 완공됐지만,

그 안의 기능은 완공되지 않은 셈이다.


즉 이 부지 안에서 가장 먼저,

가장 번듯하게 완공된 시설조차,

애초 약속됐던 규모의 절반짜리로 출범했고,

1년 만에 그 절반마저 멈춰 섰다.


그리고 남은 부지,

30여 개의 옛 병원 건물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한 채 남아 있다.


화정근린공원


KakaoTalk_20260704_190539243_08.jpg

옛 국군광주병원과 505보안부대 옛터가 통합된 부지다.

면적은 10만 7606㎡.

축구장 열다섯 개 정도의 크기다.


2007년 국군광주병원이 함평으로 이전하며

부지가 근린공원으로 지정됐지만,

광주시는 오랫동안 조성 예산을 마련하지 못했다.


2022년에 이르러서야 총사업비 111억 원

(토지보상비 71억 원, 공사비 40억 원)을 들여

조성공사에 들어갔다.


5·18 사적23호로 지정된 병원 본관 등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건물은 보존하고,

나머지 훼손된 구간은 녹지와 쉼터로 바꿔,

역사의 기억과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공사에 앞서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맹꽁이의 서식 여부를

확인하는 정밀조사도 진행됐다.

서식이 확인된 구간에는

별도의 서식지를 마련해 방사까지 마쳤다.


2024년 6월,

공원이 준공됐다.

잔디밭, 산바카라로, 놀이터가 조성됐다.


그런데 계획에 있던 '보존'의 대상,

역사적 상징성이 있다던 그 건물들은

지금도 그대로 방치돼 있다.


공원 조경 예산은 집행됐지만,

건물 보존·리모델링 예산은 배정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


518사적지.jpg

이곳은 옛 국군광주병원이다.


1980년 5월.

계엄사에 연행된 시민들이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당한 채

이곳으로 실려 왔다.


치료가 아니라 감시였다.

계엄사 수사관들이 파견돼,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시민들을 취조했다.


구타와 고문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연행된 이들 가운데 자살을 기도한 이들도 많았다.

5·18 최초의 사망자 김경철이

사망 판정을 받은 곳도 여기다.


시민군 부상자들이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지금도 불분명하다.


2007년.

병원이 함평으로 이전했다.

광주시는 이 일대를 근린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했다.

돈이 없어서...


10년에 걸친 계획, 완성된 건 절반의 절반


518사적지 안내문.jpg

2016년.

광주시가 계획을 고시했다.


서구 화정동 옛터와 쌍촌동 505보안부대 옛터를

역사교육공원으로 만들겠다는 내용.

30여 개에 달하는 기존 건물과 시설물을 리모델링해,

트라우마 치료·요양·상담 시설로 쓰겠다는 구상이었다.


2021년.

국립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설립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광주가 유치 도시로 최종 선정됐다.


2022년.

잔디밭과 산바카라로,

놀이터가 조성됐다.

건물은 손대지 못했다.


2024년 6월.

화정근린공원 준공.


7월 1일.

트라우마치유센터 개원.

하지만 애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로.


2016년 계획에 있던 30여 개 건물 가운데.

지금까지 완성된 건 치유센터 건물 하나다.

그마저도 온전한 하나가 아니라,

절반짜리 하나다.


나머지는.

여전히 뼈대만 남아 있다.


5·18 사적지 목록을 정리한 한 자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중에 지정된 505보안부대 터나

구 국군병원 자리는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우범지역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범지역화.

이건 누군가의 감상이 아니다.

관리 실태에 대한 공식적인 지적이다.


옆집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옛 광주적십자병원


국군광주병원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같은 5·18 사적지로 지정된 옛 광주적십자병원이 있다.


2020년 6월.

광주시가 88억 원을 들여 매입했다.

역사문화교육공간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6월.

보수·보강 방안이 결정됐다.

헌혈의 집, 문화예술 창작소, 신생 문화기업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시설로 활용하기로.


본관동 일부 벽돌벽 구조물은 철거 후 원형 복원하고,

나머지 부속시설은 최소한의 보수를 거쳐

원형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1980년 당시 모습을

최대한 간직하도록 보강하는 방안이 채택됐다.


그리고 2026년.

사적지 지정 28년 만에

처음으로 국비가 반영됐다.


설계비 4억 4500만 원.

전체 사업비 290억 원 가운데

정부가 지원하는 건 절반.

설계 완료 목표는 2027년.

보수·보강 공사 완료는 2028년.


28년.

한 사람이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슬롯에 나갈 시간 동안.

이 건물은 결정을 기다렸다.


가장 오래 방치된 곳: 옛 광주교도소


옛 광주교도소는 더 오래,

그리고 더 심각하게 방치됐다.


2010년.

교도소가 이전을 시작했다.

이곳은 5·18 당시 계엄군의 차량 집단 사격으로

시민들이 학살되고 암매장된 장소다.


시민 460여 명이 수감됐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청년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2019년.

유골 40여 구가 발견됐다.

5·18 암매장 연관성이 제기됐다.


2020년 9월.

발굴된 유골 1기가

5·18 행방불명자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곳은 흉가가 아니다.

실제 학살의 물증이 나온 현장이다.


그런데 2019년,

정부는 이 부지를 기획재정부 국유재산

선도사업 대상으로 지정했다.

부지 80%는 개발.

20%만 공원으로 보존한다는 안이었다.


지역슬롯는 반대했다.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시신을 매장했던 당사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 아직 증언을 안 하고 있다."


2022년.

정부는 이 사업을 선도사업에서 제외했다.

민주인권기념파크 조성사업도 사실상 종료됐다.


2024년 7월.

"옛 광주교도소 15년째 방치,

정부 미동도 없어."


2025년 7월.

광주시가 기획재정부에 공문을 보냈다.

선도사업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아파트 개발이 아니라 원형 보존으로 가자고.


15년.

정부가 학살의 물증이 나온 땅을

'개발 대상'으로 분류해 놓았던 시간.


방치된 건물이 만드는 위험


방치된 대형 폐건물.

접근이 쉬운 도심 위치.

관리 인력의 부재.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어디든 같은 결과를 낳는다.


흉가 체험의 명소가 되고,

유튜버들이 찾아오고,

사고가 나고,

괴담이 붙는다.


전국 각지에서 실제로 반복돼 온 패턴이다.

폐업한 요양병원,

문 닫은 리조트,

부도난 모텔.


공포체험을 하겠다며 무단 침입한 사람들이

실제 시신을 발견한 사건이 전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법조계는 소유자나 관리 주체의 허가 없이

폐건물에 출입하는 행위가 건조물침입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지만,

처벌은 기대만큼 엄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소유자가 없거나 연락이 끊긴 폐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국군광주병원이 특별해서 안전한 게 아니다.

방치된 다른 모든 건물과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곳은 다르다.

이곳은 국가폭력의 실제 현장이다.

흉가 괴담으로 소비되기에는,

진짜 역사가 너무나도 무겁다.


이걸 "보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국가유산 관리 전반을 보면 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국가등록문화재의 보수정비 예산 지원 현황을

살펴본 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체 대상의 47.3%가

단 한 번도 지원받지 못했다.


절반 가까운 문화유산이 예산 순번을 기다리다

그대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반대로 일부 개별 문화재에는

예산이 수차례 집중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국가유산청의 예산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14년 기준 세출 예산은 5541억 원,

세입 예산은 311억 원에 불과했다.


매년 이 정도 규모의 돈이

문화유산 관리 전반에 지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세출 예산이 1조 원을 넘긴 건

2021년이 처음이었다.


풍납토성 보상비 하나에만

2조 5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국의 크고 작은 사적지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즉 이건 5·18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가유산 관리 체계 전체가,

상징성과 실제 예산 배분 사이에

구조적인 간극을 갖고 있다.


그런데 5·18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조명받는 축에 속한다.


매년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기념일이고,

국민 대다수가 그 이름을 안다.

그런데도 트라우마치유센터는 절반짜리로 출범했고,

나머지 건물은 여전히 뼈대만 남아 있다.


더 심한 사례: 부마민주항쟁


비교 대상을 하나 더 놓아 본다.

부마민주항쟁이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부마민주항쟁 사망자로 인정한 유치준 씨.

그런데도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는 제외돼 있다.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부마항쟁 관련 희생자에게 유공자 지위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유족은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시신은 발견 당시 훼손이 심해

화장 후 지금까지 야산에 임시로 묻힌 상황이다."


정부는 사망 인정 6개월 뒤인 2020년 3월,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게 후속 조치의 전부였다.


묘역 관리도,

사망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추모 표석 설치도 없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조차 정부 예산을 받아

계승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정작 사망자 현장 기념이나

유족 위로 방문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한 분석은 이렇게 설명한다.

5·18은 전두환이라는 뚜렷한 대상이 있어 계속 회자됐지만,

부마항쟁은 유신 세력의 소멸과 함께 회자될 동력을 잃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정치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놓이며,

자연히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방향으로 갔다는 지적이다.

기억의 지속성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5·18은 아직 정치적으로 필요하니까

기념식은 성대하게 열리고,

실제 현장 관리와 시설 운영은

절반짜리로 남아 있어도 되는가.


선언의 크기, 예산의 크기


매년 5월이 되면 광주는 국가기념일의 도시가 된다.

대통령이 참석하고 정부 인사들이 헌화한다.

'광주정신', '국가폭력의 상징'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그런데 그 상징의 실제 물리적 현장은 이렇다.

107억 원짜리 트라우마치유센터는

계획된 61명·61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명·16억 원으로 출범했고,

1년 만에 프로그램이 전면 중단됐다.


28년 만에 겨우 설계비 4억 4500만 원을 받은 건물이 있다.

15년째 표류하다 최근에야 방향을 튼 학살 현장이 있다.

그리고 30여 개 동은 여전히 뼈대만 남아 있다.


같은 시기,

정부는 다른 곳에 훨씬 큰 예산을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AI를 축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됐다.

10년간 2000조 원 규모의 투자가 거론된다.

비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설치비의

최대 100%까지 국비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미래 산업 투자와 과거사 정비는 성격이 다른 예산이다.

같은 기준으로 줄 세울 수는 없다.


다만 이 사실은 남는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준비 예산 573억 원은 국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정부는 대신 지방채 발행을 권했다.

광주 재정자립도는 2018년 기준 49.0%로,

몇 년째 하락 추세였다.


미래 산업에는 조 단위의 예산과

특례가 신속하게 움직인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는,

억 단위의 예산조차 수십 년을 기다려야 겨우 붙는다.

그마저도 붙고 나면 지자체와

절반씩 나눠 부담해야 한다.


"기억하겠다"는 선언의 크기와.

그 기억을 실제로 지키는 데 들어가는 예산의 크기가.

너무나 다르다.


다르게 풀어낸 사례들


방치가 유일한 답은 아니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던 건물이다.


2018년,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이곳을 활용한 민주인권기념관 건립을 발표했다.


설계 공모를 거쳐 완공됐다.

M1(신관)과 M2(옛 대공분실)로 구성돼,

취조실 등 고문의 흔적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전시·교육 공간으로 바꿨다.


방치가 아니라 활용.

숨기는 게 아니라 마주 보게 하는 방식.


광주에도 비슷한 시도가 이미 있었다.

옛 광주교도소 부지 일부에 들어선

광주솔로몬로파크.

법무부가 운영하는 법 교육 체험시설이다.

모의법정, 모의국회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광주시는 이곳을

"5·18사적지인 옛 광주교도소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체험이 가능하고 교육이 가능하다.

동시에 역사의 무게를 지울 필요도 없다.


전북 익산의 교도소 세트장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곳은 폐교 부지에 처음부터

촬영용으로 지어진 세트다.

실제 수감의 역사도,

실제 희생자도 없다.


그래서 죄수복 체험이나 포토존,

호러 축제 같은 오락 콘텐츠로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


옛 광주교도소는 다르다.

DNA로 확인된 암매장 현장 위에,

같은 방식의 오락을 얹을 수는 없다.

그래서 광주시가 택한 건 교육이었다.


방향은 이미 나와 있지만

문제는 속도와 예산이다.


뼈대만 남은 건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만 판단할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을씨년스러운 흉가다.

누군가에게는 술자리 괴담의 소재다.


누군가에게는,

그날 이곳에서 고문받았던 사람들의

마지막 물리적 증거다.


이 세 가지 인식 중 무엇이 남을지는,

결국 이 공간을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방치는 선택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다.


절반짜리로 문을 여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다.


광주가 통합특별시로 새 출발하는 지금.

국가가 균형발전과 미래산업에

조 단위 예산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하는 지금.


뼈대만 남은 저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다음 예산이 붙기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그리고 그 기다림의 값은,

누가 바카라임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