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어른들

처벌과 용서 사이

by다소느림

하나의 장면, 세 개의 질문


6월 29일.

목동구장.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

배재고 대 광주제일고.


스코어 6대2.

이미 승부가 기운 8회 초.


배재고 더그아웃에서 구호가 나왔다.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원곡의 '안타 치고'를 '스타벅스'로 바꿔 부른 개사곡.

단체 율동까지 곁들여졌다.


이어 한 학생이 외쳤다.

"탱크데이."


두 단어 모두,

40여 일 전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텀블러 이벤트 논란을

정확히 겨냥한 말이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질타했던 사건이다.


그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광주를 연고로 하는 학교의

상대편 더그아웃에서 같은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이 장면 하나가 나흘 만에 정치 뉴스가 됐다.

서울시교육청에 접수된 민원은 956건.

강동구청에 접수된 화환 철거 민원은 154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177명 대상 설문에서

89.8퍼센트가 "학교 내 극우화된 혐오 표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숫자가 이렇게 쌓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의 본질을 말해준다.

원인은 하나인데,

국면은 셋으로 갈라졌다.


첫째,

학생들은 왜 그런 구호를 만들었나.

이건 우발적 일탈인가,


둘째,

협회의 6개월 출전정지는 정당한가.

규정과 선례에 비춰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셋째,

이 사건은 왜 순식간에 진영 공방으로 번졌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지워졌나.

이 셋을 뒤섞으면 결론이 흐려진다.


하나씩 따로,

자료와 데이터로 뜯어봐야 한다.


이 사건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배재고 사건을 '일부 학생의 순간적 일탈'로 규정하는 순간,

진짜 문제를 놓친다.


근거는 숫자에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작년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전국 초중고 교사 1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다.


이 조사는 배재고 사건이 일어나기

무려 다섯 달 전에 이미 완료돼 있었다.

"학교 및 교실 내 극우화된 혐오 표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가."


'심각하다' 응답 89.8퍼센트.

세부적으로는 '매우 심각하다' 61퍼센트,

'심각하다' 28.8퍼센트.


10명 중 9명에 가까운 교사가,

이미 학교 안의 혐오 표현 문제를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학교 및 교실에서 극우화된 혐오 표현을 하는

학생을 목격한 적 있는가."


'매우 자주 있다' 48퍼센트.

'자주 있다' 32.2퍼센트.

합산 80.2퍼센트가 자주 목격했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추정이나 우려가 아니라,

현장 교사들의 직접 목격 경험을 집계한 결과다.


즉 이번 사건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전국중등교사노조 위원장 김희정은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유감스럽지만 현직 교사들에게는

이 사건이 충격이 아니었다고.

오히려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학교 안에 만연한 혐오 문화가,

경기장이라는 가장 공개적인 무대로

옮겨왔을 뿐이라는 진단이었다.


이어지는 발언이 더 뼈아프다.

교육계 밖에서는 이 사건이 충격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오히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이게 이렇게 뉴스화되는 게 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진단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목격담도 있다.

지역의 한 고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학생들이

'~노', '북딱북딱' 등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용어를

일상 비속어처럼 사용한다고 전했다.


기존에 쓰던 비속어마저

이런 용어로 대체됐다고 했다.


과거엔 교사가 지적하면

주변 친구들도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그런 말을 지적하면 오히려

"선생님 좌빨이냐", "전교조냐", "페미냐"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송수연 위원장은

이 현상을 "집단으로 재생산되는 문화"라고 규정했다.


단순한 응원 구호 하나의 우발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대로 두면 더 확산될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공식 성명도 같은 결을 보인다.


사적 공간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머물던

극우 성향의 조롱과 혐오 표현이,

청소년들의 공적 공간과 스포츠 현장에까지 침투한

상징적 장면이라는 것이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성명은 더 직설적이다.

학생 스포츠의 장이 차별과 혐오의 배설구로 전락했다고.


학생들의 집단적 혐오 표현은,

우리 슬롯가 그동안 무엇을 가르쳐왔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은 원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짚었다.


학생들은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해

역사와 슬롯의 단면을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교사는 이를 충분히

교정하고 토론할 수 있는

교육적 권한과 슬롯적 신뢰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구정우 교수의 진단도 이 흐름과 겹친다.

극우 세력이 청소년이나 일부 계층의 호응을 얻으며,

혐오 문화가 슬롯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 사건의 원인은 배재고 야구부 학생 몇 명이 아니다.

이미 학교 안에 자리 잡은 언어 문화가,

마침 전국대회 중계 카메라 앞에서 드러났을 뿐이다.


'개인의 일탈'로 사건을 축소하는 순간,

재발 방지는 불가능해진다.


징계는 정당한가: 규정과 선례의 간극


여기서부터는 법리와 형평의 문제다.

감정을 걷어내고 규정과 숫자로만 따져본다.


KBSA와 상위 기구인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을 보면,

'대회 중 발생한 질서 문란 행위'는 명백한 징계 대상이다.

팀 전체가 경기 방해 행위를 했을 때는

출전정지 6개월 이하가 가능하다.


지도자, 선수, 심판뿐 아니라

'운동경기부' 자체도 징계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절차적으로는 흠이 없다.

배재고는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고 수위를 받았을 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런 유형의 행위,

즉 언어적 조롱과 혐오 표현을

구체적으로 상정한 조항이나 선례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근접한 전례는 2022년이다.

한 고교 야구부가 심판 판정에 불복해

선수단 전체가 경기장을 이탈했고,

학부모까지 경기장에 난입해

다음 경기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진 사건이었다.


그때도 출전정지 6개월이 내려졌다.

그러나 그 사건은 경기 운영 자체를

물리적으로 마비시킨 사건이었다.


이번은 언어였다.

혐오 표현만으로 팀 전체가

최고 수위 징계를 받은 선례는,

지금까지 확인된 바 없다.


즉 배재고는 규정상 가능한 최고 수위를 받았지만,

실제 적용 강도로 보면 전례 없는 첫 사례가 됐다.

절차적 정당성과 실질적 비례성은 다른 문제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논쟁은 계속 헛돈다.


해외 비교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교 농구 결승전에서,

백인 위주 우승팀이 라틴계가 많은 상대팀에게

멕시코 전통 음식 토르티야를 던진 사건이 있었다.


결과는 우승 자체의 박탈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 사례가 정반대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데 동시에 쓰인다는 점이다.


"해외는 이보다 더 세게 처벌한다"는 근거로도.

"그러니 한국의 6개월 정도는 오히려 온건한 편"이라는 근거로도.


같은 사례,

다른 결론.

이 자체가 이번 논쟁의 축소판이다.


여기서 두 번째 균열이 드러난다.

이 사건의 처벌이 협회 규정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야구위원회,

KBO의 규약상 신인 드래프트 참가 제한 기준은

'학교폭력' 하나뿐이다.


이번 사건은 그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도권의 한 구단 스카우트는 이렇게 말했다.

"한두 구단이 손을 떼면,

나머지 구단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피해 당사자와 연고가 같은 지방 구단,

그리고 '스타벅스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수도권 구단은,

선수 기량과 무관하게 지명 자체를

검토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규정에는 없는 제재가,

여론을 통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구호를 주도한 건

더그아웃을 지키던 1, 2학년 중심이었다.


경기에 뛰고 있던 3학년 일부는

더그아웃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몰랐다는 증언이 나온다.


팀 전체 징계 아래서,

하지 않은 행동의 대가를

함께 치르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숫자로 짚으면 이렇다.

고교 선수들은 통상 9월 초

대학 원서 접수 때 경기실적증명서를 제출한다.

여기엔 3년간 전국대회와 주말리그 성적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대학 입시 요강은

전국대회 16강 이상부터 가산점을 부여한다.


배재고는 청룡기에서 한 번만 더 이겼으면

16강이 가능한 전력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봉황대기 16강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

스카우트들의 분석이다.


봉황대기는 지역 예선 없이

전국 모든 고교팀이 참가하는 대회로,

입시를 앞둔 3학년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스펙 확보 기회다.


올해 배재고 3학년 중

프로 지명이 기대되는 선수는

2명에서 3명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번 징계로 대통령배(7월),

봉황대기(8월),

전국체전(10월)까지 모두 봉쇄됐다.


기록을 쌓을 기회 자체가

원천적으로 사라졌다는 뜻이다.


한 야구계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선수들이 잘못한 건 100퍼센트 맞다.

그런데 정말 이런 징계밖에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선수들이 진정성 있게 반성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따끔하게 가르쳐줘야 하는데,

여론 무마용 징계만 내리고 진정성 있는 교육은

뒷전으로 밀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대한체육회를 통한 재심청구 기한은 7월 8일까지다.

배재고는 이 절차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왜 유독 진영으로 갈라졌나


이 사건이 정치 공방으로 번진 결정적 이유는,

사안 자체가 아니라 사안이 건드린 소재에 있다.

5·18이라는 상징을 건드렸다는 것.


한국 슬롯에서 이 상징은

이미 정치 지형과 강하게 결합돼 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배재고 스타벅스 구호,

그리고 최욱의 탱크 발언.


전혀 다른 세 사건이 '탱크'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며,

서로가 서로의 진영 논리에 계속 소환됐다.


정치권의 실제 발언들을 시간순이 아니라

입장별로 나눠보면 이 구도가 더 선명해진다.


징계가 과도하다는 쪽.


한동훈 무소속 의원.

배재고 학생들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고 말한 방송인은

사과만 하고 방송을 계속하고 있고,

스타벅스도 영업정지를 받지 않았다며

형평성을 직접 제기했다.


"상황이 다른 선수들에게

일괄적으로 같은 불이익을 주는 것은

사실상 연좌제"라는 표현도 썼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

구호가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한 측면이 있어

부적절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협회의 결정은 지나친 조치라고 밝혔다.


진종오 의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면서도

징계는 가혹하다고 SNS에 썼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배재고 학생들에게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다는 취지의 발언.


국민의힘 이지애 미디어 대변인은 한발 더 나아가,

학생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표현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홍석준 전 국민의힘 의원은

학생들을 징계하면 "공산주의 국가"라는 주장까지 폈다.


징계가 오히려 부족하다는 쪽.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반역사적 혐오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

야구부 해체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인 류근.

야구부 학생들을 용서하자는 말이 나오지만,

잘못 가르친 어른들 바카라임이라면

어른들 전부를 처벌하자고 썼다.


세월호 단식 농성장 앞 '짜장면 사건'까지 소환하며

공동체의 도덕성 붕괴를 지적했다.


그런데 이 발언은 곧바로 부메랑을 맞았다.

류근이 과거 배우 조진웅을 옹호했던

게시물이 재소환되며 '이중잣대' 비판이 일었다.


이 목록을 나란히 놓고 보면

확인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결론이 사실관계가 아니라

소속 진영에 의해 먼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도가 만들어지는 동안,

정작 가장 무게를 실어야 할 목소리는 뒤로 밀렸다.


광주제일고 동문회,

즉 광주 서중·일고 총동창회는

진상조사와 문바카라을 요구하면서도 이렇게 밝혔다.


"우리의 목적은 학생의 나락이 아닌 교육과 정의의 회복."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의 인터뷰도 같은 결을 보였다.


"치유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조롱의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장으로서 또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건 묵과할 수 없다."


동시에 "잘못한, 실수한 학생들을

구성원들과 협의해서 교육적인 측면에서

해결하려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박하성씨도 비슷하게 말했다.


"몇몇 학생의 잘못 때문에

프로 진출까지 막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교육과 제도를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가장 화를 낼 자격이 있는 당사자들이,

가장 신중한 언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화환 전쟁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실제로 벌어진 물리적 풍경을 보면

이 비대칭이 더 뚜렷해진다.


7월 2일,

배재고 정문 앞에 70여 개의 화환이 늘어섰다.

"배재고 탱크데이 야구부"라 적힌 근조화환과,

"보내야지 보내야지, 우리 아들 배재고 보내야지"라 적힌

응원화환이 뒤섞였다.


극우 성향으로 알려진 변호사 이하상의 이름이

적힌 화환도 등장했다.

"스포츠 오염시키는 5.18 거부한다"는 문구였다.


강동구청은 도로법 74조 위반을 근거로 화환을 철거했다.

철거 관련 민원만 154건이 접수됐다.


그러나 철거가 끝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화환은 다시 놓였다.

신원 미상 학생들이 근조화환을 훼손했다는 목격담도 전해졌다.

일간스포츠는 이 상황을 정확히 짚었다.


"배재고 선수들의 조롱과 야유가

불과 며칠 만에 진영 싸움으로 번졌다.

그 사이, 정작 고민해야 할 교육의 문제는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화는 이 사건의 부작용이 아니라,

이 사건이 소비되는 방식 그 자체다.


누가 바카라임의 순서를 거꾸로 세웠나


이제 가장 불편한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먼저,

가장 무겁게 처벌받은 건 누구였나.

학생들이었다.


가장 먼저 행동을 통제할 권한과

의무가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나.

지도자였다.


이 순서가 정확히 뒤바뀌어 있다.

고교 야구 경기 구조상 감독은

흔히 3루 베이스 코치를 겸직한다.


전국대회 우승 이력이 있는

고교 야구팀 B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도 실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타자와 투수, 작전에 집중하다 보면

더그아웃 소리가 잘 안 들릴 수도 있다.

배재고 감독도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몰랐을 수 있다."


"상대 팀 코치가 문제 제기를 하고 심판이 나서면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건데,

그 과정이 조금 아쉽다."


실제로 배재고 코치진은

구호를 현장에서 직접 듣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몰랐다는 사실 자체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몰랐다는 사실이

곧바로 면바카라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포츠경향은 이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선수들이 선을 넘는 야유를 보낼 때,

현장에서 가장 먼저 제어하고 교육했어야 할 사람은 지도자다."

"배재고 야구부 지도자들은 이를 하지 못했고,

상대팀 지도자의 어필이 나온 뒤 심각성을 깨달았다."

"만일 배재고 지도자가 미리 이런 응원을 하지 못하게 했다면,

아무런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판 바카라임론도 함께 제기된다.

"과도한 응원이 나오면 이를 경고하고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심판에 있다.

심판조차 상대팀 지도자의 어필을 받은 뒤

사태 심각성을 깨달았으니,

징계를 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KBSA의 실제 대응은

이 바카라임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선수단에는 즉각 최고 수위 징계를 내렸다.

지도자와 심판에 대한 징계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유보했다.

KBSA의 공식 설명은 이렇다.


"지도자 및 선수에 대한 징계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출전제한 기간 중 면밀한 조사를 진행해

대상자를 특정하여 해당 기간 내

스포츠공정위원회를 다시 개최하여

심의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늦게 사태를 통제할 수 있었던 학생들이,

가장 먼저 가장 무겁게 처벌받았다.

가장 먼저 통제했어야 할 어른들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D감독의 코멘트도 이 비대칭을 지적한다.

"논란이 크게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스포츠공정위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하지만,

야구부 선수들의 미래를 고려한다면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스포츠경향의 결론은 더 날카롭다.

"어린 선수들의 과도한 일탈을 방조한

어른에 대한 징계는 유보되고,

선수들에게 직접적 피해가 가는

징계를 먼저 내린 데 대해,

KBSA가 여론재판과 함께

제 식구 감싸기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비대칭이야말로,

이번 사태에서 가장 구조적인 문제다.


학생들의 잘못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 잘못을 처리하는 순서가,

어른들의 바카라임 회피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한 야구계 관계자의 마지막 코멘트가

이 부분을 요약한다.


"선수들은 미성년자들이다.

어떻게 벌을 주고 어떻게 교육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며,

비슷한 사태를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길인지,

지금부터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대바카라을 제시해야 한다."


사과문이 두 번이나 무너진 이유


배재고의 초기 대응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른들의 실패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지점이기 때문이다.


1차 사과문의 한 문장이다.

"해당 학생 선수를 즉시 제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중계 영상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항의가 나오기 전까지,

제지의 흔적은 없었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쳤다.

사과문에는 구글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사용했을 때

찍히는 워터마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학교는 부랴부랴 워터마크가

없는 버전으로 재업로드했다.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여기서부터 번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나온 2차 사과문은

표현의 수위가 확연히 달라졌다.


"단순한 일탈이나 실수가 아니라,

윤리와 역사 인식이 총체적으로 붕괴된 사안."


광주제일고와 광주 시민,

국민 모두에게 사과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이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방문 점검 결과는 조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다.

구호를 선창한 건 배재고 2학년 학생 1명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뒤따라 후창했다.

'탱크데이'는 또 다른 학생 1명이 외쳤다.


당시 광주제일고 코치는

심판에게 곧바로 항의했다.

배재고 수석코치는

학생들의 구호를 직접 듣지 못했다.


공수교대 시점,

더그아웃에서 상대의 항의 내용을

전해 듣고서야 학생들을 훈계했다.


몰랐다.

그래서 늦었다.

그런데 사과문에는

"즉시 제지했다"고 썼다.


이 모순이 논란의 무게중심을 옮겨놓았다.

학생의 잘못에서,

어른의 대응으로.


서울시교육청 조사에서 확인된

또 다른 진술이 있다.

구호를 선창한 학생은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원래 있던 응원가를 개사해 부른 것"이라고 진술했다.


몰랐다는 학생의 진술과,

몰랐다는 코치의 진술.


두 개의 '몰랐다'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미성년자의 무지다.

다른 하나는 지도자의 관리 실패다.

둘을 같은 무게로 다룰 수는 없다.


경기 후 배재고 코치진은 상대 더그아웃을 찾아 사과했고,

광주제일고 코치는 나중에 배재고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사안이 커질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을 만큼,

현장의 양쪽 지도자들 사이에는

오히려 인간적인 소통이 있었다.


그런데 그 소통이 학교 차원의 공식 대응,

즉 사과문의 정확성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배재고 재학생의 익명 인터뷰도 이 지점을 보여준다.

"처음에 떴을 때는 그렇게 심각한 줄 애들이 다 몰랐다.

사과문까지 올라오고 하니까 이제 심각해지는구나 느꼈다."


학생들의 인지 속도보다,

사태의 확산 속도가 훨씬 빨랐다는 뜻이다.


관용이 사라진 게 아니라, 조건이 사라졌다


왜 요즘은 누가 죽어야 끝나는가.

이건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의 잘못은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소화되고 흩어졌다.

목격자는 제한적이었고,

기억은 자연히 흐려졌다.


지금은 다르다.

영상은 영구히 남는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은 순식간이다.

전 국민이 동시에 목격자가 된다.


신상은 특정되고,

근조화환은 실물로 학교 정문까지 배송된다.


관용이라는 마음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다.

관용이 작동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사라졌다.

예전엔 시간이 저절로 잊게 해줬다.

지금은 누군가 의식적으로

"이제 됐다"고 말해줘야만 멈춘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발언이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2일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문이었다.


"서울교육을 바카라임지는 교육감으로서,

광주제일고 학생선수와 학부모,

동문,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광주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바카라임을 통감한다."


그리고 다음 문장이 핵심이다.


"학생 스포츠에서 징계는 끝이 아니라

교육적 회복의 출발이어야 한다."

징계와 용서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사 스타강사 최태성도

비슷한 성찰을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배재고의 전신인 배재학당 사진과 함께였다.


"이 학교가 내세운 것은 섬김이었다."

"요즘 벌어지는 모습을 보며,

저를 포함한 우리 기성세대는

과연 대한민국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절실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이 두 목소리,

교육감과 대중 강사의 발언은 결이 같다.


지금 이 사건에서 부족한 건 처벌이 아니라,

"이제 됐다"고 말해줄 주체다.

협회는 6개월이라는 끝을 정해줬다.

여론은 끝을 정해주지 않는다.


설동훈 전북대 슬롯학과 교수의 진단이

이 문제를 정리한다.


"충분한 진상조사와 반성,

교육을 거쳐 단계적으로 바카라임을 묻는 것이 바람직하다.

슬롯적 분노가 학생의 평생 직업까지

박탈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세 겹의 실패, 하나의 질문


이 사건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려는 시도는 전부 실패한다.


"배재고가 나쁘다"는 문장은 절반만 맞다.

학생의 잘못은 분명하지만,

그 잘못이 이 사건의 전부는 아니다.


"협회가 과했다"는 문장도 절반만 맞다.

절차는 정당했지만,

선례 없는 최고 수위 적용이라는 사실은 남는다.


"진영 싸움이 문제다"는 문장도 절반만 맞다.

정치화는 원인이 아니라,

이 슬롯가 5·18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의 증상이다.


세 겹의 실패가 겹쳐 있다.


학생의 잘못.

어른의 바카라임 회피.

슬롯의 소비 방식.


이 셋을 분리해서 봐야,

각자의 몫을 정확히 물을 수 있다.


7월 6일,

배재고 방문단 약 80명이 광주를 찾는다.

교직원, 지도자, 학생선수, 학부모, 교육청 관계자가 함께한다.


광주제일고를 방문해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갖고,

5·18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앞서 한 차례 방문 시도는 불발됐다.

광주제일고 측이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며

재고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게 절차의 끝인지,

회복의 시작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같은 시기,

같은 '탱크'라는 단어를 쓴

방송인은 사과 한 번으로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단어를 마케팅에 쓴 기업은

영업정지를 받지 않았다.


미성년자에게는 인생을 건 징계를,

공인과 기업에게는 사과 한마디를.


이 비대칭을 그대로 둔 채,

학생들에게만 '어른다운 바카라임'을 요구하는 슬롯가.

정작 어른들 자신에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