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숲이 수국 포토존이 되기까지
전남 보성군 겸백면 주월산 기슭.
광주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주차장에 차를 댔을 때부터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평일이었다면 한산했을 산골 주차장이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채워져 있었다.
번호판은 광주, 전주, 부산, 서울까지 다양했다.
주차장에서 성림정원 입구까지 걸어 들어가는 짧은 거리.
그 사이에 이미 사람이 넘쳤다.
카메라를 든 사람,
스마트폰을 높이 든 사람,
셀카봉을 편 사람.
커플이 있고,
가족이 있고,
혼자 온 사람도 있었다.
수국 앞에서 포즈를 잡는 사람의 뒤로
또 다른 사람이 줄을 섰다.
포토존마다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생겼다.
입장료 7,000원.
그걸 내고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수국.
수국 앞에서 3분을 서 있다가,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음 포토존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반복됐다.
그 주변으로 수십 년 된 편백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해송이 바람을 맞고 있었고
안개나무꽃이 피어 있었다.
그것들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풍경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 싶었다.
윤제림(允濟林)의 역사는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조금 지난 시절이었다.
한국의 산은 그때 사실상 민둥산이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이 목재를 수탈하기 위해 마구 벌채했고,
전쟁을 거치면서 산림 황폐화는 극에 달했다.
전쟁 직후인 1953년,
한국 산림의 ㏊당 임목축적은 5.7㎥에 불과했다.
1927년 산림통계가 만들어진 이후
최악의 수치였다.
산림의 절반은 헐벗었다.
전국 어디를 가도
풀 한 포기 없이
흙이 드러난 민둥산이 즐비했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가정용 연료로 나무를 베는 일이 일상이었다.
화전(火田)이 성행했다.
도벌(盜伐)은 단속해도 막을 수 없었다.
나무를 팔아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전쟁 후 국가 행정력이 마비된 상태에서
도덕적 규제도 함께 무너졌다.
국토 전체가 사막화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보성 벌교 출신의 고(故) 정상환 선생은
그 시절 양조장과 극장을 운영하며 돈을 모았다.
그가 목격한 것은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민둥산이었다.
어린 시절 아름드리나무 사이를 맴돌며
숨바꼭질하던 기억이 있었다.
그 숲이 없어진 자리를 보며 그는 결심했다.
1964년, 정 선생은 당시 운영하던
양조장과 극장으로 모은 돈 120만 원을 털었다.
당시 120만 원은 서울 서대문극장
한 채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 전 재산을 들여
보성군 겸백면 초암산·주월산 일대
임야 275㏊를 사들였다.
그리고 1969년부터
해송과 편백 등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총 300만 본이었다.
관련 경험이 전혀 없던 그에게
조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나무가 죽으면 다시 심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숲은 후대에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이라는
철학 하나로 버텼다.
그 씨앗이 60년 뒤 337㏊(100만 평)의 숲이 됐다.
국가 차원에서 산림녹화 정바카라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였다.
정부가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강력하게 추진한 결과,
한국 산림의 ㏊당 임목축적은 1953년 6㎥에서 1973년 11㎥,
그리고 2024년 181㎥로 늘었다.
전쟁이 끝난 뒤 70년 동안
숲의 울창함이 30배 증가한 셈이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중
산림 면적이 순감소에서
순증가로 전환된 첫 번째 국가로 기록됐다.
국제슬롯에서 유례없는
산림복구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윤제림은 그 역사의 민간 버전이었다.
국가가 정바카라으로 녹화를 추진하기 전에,
한 개인이 전 재산을 털어 먼저 시작한 기록이다.
아들 정은조 회장은
1976년 서울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 해외 주재원으로 일했다.
이후 창업한 무역업이 성공하면서
도시에서 자리를 잡았다.
보성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선친의 간곡한 부탁으로
정은조 회장은 사업을 청산하고 보성으로 귀향했다.
2020년 산림청은 윤제림을
제1회 대한민국 산림명문가문으로 지정했다.
산림청이 대를 이어 산림을 모범적으로 경영하는
가문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윤제림은 제1회 수상
3개 가문 중 하나였다.
정은조 회장이 가업을 이은 뒤
윤제림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선친이 1차 산업,
즉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 집중했다면,
2세대는 그 숲 위에 산업을 올렸다.
임산물 생산·판매(1차)에
숙박·편의시설(2차)을 더하고,
관광·체험·정원(3차)을 붙였다.
이른바 산림형 6차 산업 모델이다.
국내에서 이 모델을 성공적으로 완성한 사유림 사례로
윤제림은 자주 언급된다.
지금의 윤제림은 하나의 복합 공간이다.
편백나무 피톤치드 숲길,
민간정원 성림원,
족욕과 반신욕이 가능한 치유센터,
숲속 야영데크 15개소,
숲속의 집 12동,
아치하우스 18동,
단독숙박시설 6동.
동시에 3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주월산 정상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모노레일 임산물 체험,
숲 해설 프로그램,
숲 인문학 강의까지 붙었다.
초암랜드에서는
산마늘, 취나물, 도라지, 더덕, 표고버섯, 산수유, 고로쇠 등
임산물을 직접 채취·판매한다.
전남도 민간정원 제12호로 지정된 성림원은
정은조 회장 어머니 최성림 원장의 이름을 딴 정원이다.
2020년 정식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성림원 안에는 수국원 1과 수국원 2가 있고,
두 수국원 사이는 편백 힐링 숲길로 이어진다.
봄에는 붓꽃과 안개나무꽃,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팜파스와 핑크뮬리,
억새원까지 계절마다 다른 식물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리고 그 안에 수국 4만 본이 심겼다.
6월이 되면 하늘빛, 보랏빛, 분홍빛 수국이
구간별로 배치된 숲길을 따라 만개한다.
파스텔톤의 색이 걸음마다 바뀐다.
KBS '1박2일', tvN '바퀴달린 집'이 촬영지로 선택했다.
방송이 나갔고,
SNS에 퍼졌다.
연간 방문객은 15만 명에 이른다.
입장료는 처음에는 없었다.
수십 년간 무료로 개방했다.
60년 가까이 가꿔온 숲을
공공에 열어놓은 것이다.
방문자 편의시설 확충을 이유로
2023년 6월 1일부터 유료로 전환됐다.
전환 당시 성인 기준 6,000원이었다가
이후 7,000원으로 올랐다.
청소년 6,000원, 유아 5,000원.
경로·장애인·보성군민·숙박객은 할인이 적용된다.
337㏊ 사유림을 수십 년간
공공에 무료로 열어놓다가
상업화로 전환한 것이다.
국내 최대 민간 사유림이
관광 상품이 되는 과정이었다.
윤제림의 수국이 구간마다 색이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는 방문객은 거의 없다.
수국의 꽃 색은 토양의 산도(pH)에 따라 결정된다.
정확히는 토양 속 알루미늄 이온의 흡수 여부가 핵심이다.
수국 꽃 안에는 델피니딘(delphinidin)이라는
안토시아닌 색소가 있다.
이 색소가 토양에서 흡수된 알루미늄 이온과 결합하면
청색 계열의 복합체(메탈로안토시아닌)를 형성한다.
결합하지 않으면 붉은색·분홍색으로 남는다.
토양이 산성일수록(pH가 낮을수록)
알루미늄 이온이 물에 녹아 식물 뿌리가 흡수하기 쉬워진다.
그 결과 파란색 꽃이 핀다.
토양이 알칼리성에 가까울수록(pH가 높을수록)
알루미늄이 수산화 이온(OH⁻)과 결합해
물에 녹지 않는 앙금이 되어버린다.
뿌리가 흡수하지 못하니 분홍색으로 핀다.
수치로 보면 이렇다.
pH 4.5 이하 강산성 토양에서는 짙은 파란색.
pH 5.0~5.5에서는 파란색 계열.
pH 6.0 전후에서는 보라색·자주색 계열.
pH 6.5 이상 중성·알칼리성에서는 분홍색.
수국이 생육 가능한 pH 범위는 4.5~7.0이다.
단, 흰색 수국은 예외다.
안토시아닌 색소 자체가 없어
토양 pH와 무관하게 흰색을 유지한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흰색 안개나무꽃이
윤제림에 있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희귀한 식물종이 살 수 있는
토양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심지어 한 나무 안에서 분홍 꽃과
파란 꽃이 동시에 피도록 품종 개량된 수국도 있다.
꽃이 피어난 뒤 시간이 흐르면
색이 바뀌는 수국도 있다.
분홍으로 시작했다가 연두색이 되고,
가을엔 갈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수국의 꽃말이 '변심'인 이유다.
윤제림이 색깔별로 구간을 나눠
수국을 배치한 것은 단순한 조경 결정이 아니다.
구간마다 토양 pH를 다르게 관리했다는 뜻이다.
파란 구간은 산성 토양으로,
분홍 구간은 중성에 가깝게
토양 산도를 조절했다는 의미다.
60년 가꾼 숲 위에 색을 과학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방문객 대부분은 그 사실을 모른다.
파란 수국 앞에서 파란색이 예쁘다고 사진을 찍는다.
분홍 수국 앞에서 분홍색이 예쁘다고 사진을 찍는다.
그 색깔 뒤에 있는
토양 관리의 역사를 묻는 사람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수국 자체는 별거없었다.
분명히 예쁘다.
4만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있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충분히 강렬하다.
색깔별로 배치된 구간을 걸을 때
발걸음마다 풍경이 바뀌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그 주변에 60년의 시간이 담긴 337㏊의 숲이 있었다.
전쟁 후 민둥산에서 시작한 한 가문의 이야기가 있었다.
해송과 편백 6만 본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있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안개나무꽃과 구상나무,
주목 등 희귀종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있는데,
사람들은 수국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음 포토존으로 이동했다.
이건 윤제림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수국 명소들이 인공 정원 형태로 조성된 반면,
윤제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울창한 숲이다.
60년 가까이 한 가문이 정성으로 돌본 사유림이다.
그 깊이와 밀도는 어떤 인공 정원과도 다르다.
인공 정원의 수국은 조성된 것이고,
윤제림의 수국은 살아있는 숲 속에 심어진 것이다.
편백과 해송이 만들어낸 숲 그늘 아래 수국이 피어 있다.
그 공간감이 다르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그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6월의 수국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배경이 인공 정원인지 60년 사유림인지는
피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보성 녹차밭이 그랬다.
150만 평 규모의 대한다원.
1957년부터 조성된 한국 최대 다원.
한국 녹차 생산량의 약 40%를 보성에서 생산한다.
1939년 일제강점기에 일본 기술자들이
최적의 홍차 재배지로 선정하면서
시작된 역사가 있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됐다가
1957년 다시 재배를 시작했다.
그 긴 역사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성 녹차밭을 찾는 이유는 하나다.
산비탈을 따라 등고선처럼 펼쳐진 초록 풍경 사진 한 장.
"보성 하면 녹차밭"이라는 단일 이미지가 수십 년 동안 고착됐다.
윤제림도 지금 그 경로를 걷고 있다.
60년의 숲이 6월의 포토존으로 소비된다.
그 경로가 완성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퍼플섬이 그랬다.
신안군 반월·박지도.
섬 전체를 보라색으로 도배한 관광 프로젝트다.
2020년 CNN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top 100'에 선정했다.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그 섬에 살던 사람들의 일상,
섬의 원래 풍경,
지역 어업과 농업의 이야기는 사라졌다.
색깔이 먹어치운 것이다.
윤제림은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방향은 같은 길을 걷고있다.
수국 정원을 다 보고 나서
차를 몰아 주월산 정상부로 올라갔다.
윤제림에서 차로 올라가야 하는 거리다.
걸어가기엔 좀 먼 거리다.
윤제림 관계자가 "올라가보세요"라고 추천해줬다.
올라가는 길은 잘 정비돼 있었다.
넓은 주차장도 있었다.
주월산(舟越山).
보성군 겸백면과 조성면의 경계,
호남정맥 위에 솟은 해발 557m의 산이다.
산 이름의 유래가 흥미롭다.
옛날 득량만 바닷물이 거센 폭풍으로 밀려와
배가 이 산을 넘어갔다고 해서 주월산(舟越山),
'배가 넘어간 산'이라는 뜻이다.
윤제림 내 배 모양 전망대도
그 유래를 형상화한 것이다.
정상부의 활공장은 단순한 레저 시설이 아니다.
국제 패러글라이딩 대회가 열린 이력이 있다.
정상까지 차로 오를 수 있도록
도로가 잘 정비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폐쇄된 곳이다.
폐쇄 안내가 붙어 있었다.
시설은 남아 있지만 운영하지 않는다.
관리 인원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꽤나 많이.
활공장 자리는 주월산 정상부에서
가장 탁 트인 곳이었다.
패러글라이더가 이륙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니
당연히 사방이 막힘없이 열려 있었다.
나무도,
건물도,
그 무엇도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동쪽으로는 고흥 두방산과 병풍산이 보였다.
남쪽으로는 예당평야와 득량만이 펼쳐졌다.
서쪽에는 보성읍내가 내려다보였다.
북쪽으로는 초암산 능선이 이어졌다.
그리고 남쪽으로 펼쳐진
저 드넓은 논판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평야처럼 보이지만 저 땅은 원래 바다였다.
1931년 일본 양정간척회사가
득량만 방조제를 쌓아 바다를 막았다.
갯벌이 논이 됐다.
간척 면적 1,700㏊.
지금 저 들판에서 '예당쌀'이 난다.
예로부터 맛이 좋기로 유명한 쌀이다.
더 있다.
그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일제는 1932년 산 너머 보성강에 댐을 쌓고
2.2㎞의 터널을 뚫었다.
76m의 낙차를 이용해
1937년 수력발전소를 만들었다.
그 발전소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남한에 현존하는 최고령 수력발전소다.
88년째.
해발 557m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논 한 장 안에 일제강점기
간척, 댐, 터널, 수력발전의 역사가 겹쳐 있다.
입장료가 없다.
당일 관리 인원도 없었다.
별도의 안내판도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와 있었고
아래 윤제림에서 추천을 들었다고 했다.
구전으로 알려진 곳이다.
수국 정원에서 줄 서서 사진을 찍던 사람들과 달랐다.
이곳에는 평야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냥 풍경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말없이 오래.
더 오래, 더 조용히 머물렀다.
입장료 7,000원짜리 수국 정원에서는
사람들이 3분 만에 사진을 찍고
다음 포토존으로 이동했다.
입장료 0원짜리 활공장에서는
사람들이 풍경을 봤다.
어느 쪽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지는 모르겠다.
보성군의 인구는 오랫동안 줄어들었다.
이촌향도의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1991년 인구 10만 명 선이 붕괴됐다.
83,893명으로 내려앉았다.
이후 천천히 감소세가 이어졌다.
2009년 5만 명 선이 무너졌다.
2021년 5월에는 4만 명 선도 붕괴됐다.
2026년 현재 보성군은 전국 인구 소멸 위험 지역 14위다.
가임기 여성 인구가 너무 적어
출산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아도
인구 감소를 막기에 역부족인 구조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2025년 5월 기준 보성군 체류 인구는 25만 명을 넘었다.
주민등록 인구의 약 6배다.
주민은 4만 명이 남았지만,
어느 시점에서든 25만 명이
이 지역 안에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 인구도 2022년 473명에서
2025년 1,504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더 놀라운 수치가 있다.
보성군은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많은 순유입을 기록했다.
2025년 기준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380명 많았다.
30년 만의 인구 순유입이다.
합계출산율은 1.32명으로
전국 7위에 진입했다.
2022년 0.79명에서
3년 만에 이뤄낸 반등이다.
보성군은 2026년을
인구 소멸 위기 극복의 '골든타임'으로 선언했다.
294억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 시행계획을 추진 중이다.
보성 프롬나드 조성,
율포 청년활력 플랫폼,
벌교꼬막 리본 프로젝트,
창업 지원 사업 등이 포함됐다.
주민은 떠났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늘고 있다.
윤제림 연간 방문객은 15만 명이다.
그들 대부분은 외지인이다.
수국 사진을 찍고,
편백 숲길을 걷고,
체험 프로그램을 하고 떠난다.
겸백면 주민이 아니다.
그들이 쓰고 간 돈이
지역 경제에 얼마나 남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인구 소멸 위기의 땅에
주말마다 외지인이 몰린다.
생활 인구가 주민등록 인구의 6배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해석이 필요하다.
지역이 살아나는 것인가,
소비되는 것인가.
그 경계는 생각보다 불분명하다.
보성은 녹차로만 알려진 지역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된다.
같은 보성에 윤제림이 있고
공룡알 화석지(천연기념물 제418호)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공룡알 둥지 100여 개가 발견된 곳이다.
대원사 6㎞ 왕벚꽃 터널이 있다.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입상작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
태백산맥 소설의 배경 벌교와 조정래 문학관이 있다.
율포해수녹차탕이 있다.
그러나 "보성 하면"이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하나다.
녹차밭.
이유는 숫자에 있다.
150만 평 규모의 대한다원 녹차밭.
한국 녹차 생산량의 약 40%를 보성에서 생산한다.
1939년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역사.
이 압도적인 숫자와 역사가
다른 모든 자원을 지워버린다.
드라마와 광고가 반복적으로
보성 녹차밭을 배경으로 선택하면서
이미지가 고착됐다.
광주에서 차로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보성의 관광은 대한다원 한 곳에 집중된다.
윤제림이 수국 명소로 SNS에서 부상한 것은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신호였다.
60년의 산림 역사,
국내 최대 사유림,
산림형 6차 산업 성공 모델이라는 맥락이 충분했다.
단순한 포토존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 산림사의 한 단면으로 읽힐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맥락을 읽지 않는다.
수국 사진을 읽는다.
지금 윤제림의 SNS 이미지를 검색하면
나오는 것의 90%는 수국이다.
편백숲을 올린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수국 사진이 훨씬 더 많은 반응을 받는다.
알고리즘이 수국 사진을 더 많이 노출하면
더 많은 사람이 수국 사진을 찍으러 온다.
그 사이클이 반복된다.
60년의 숲이
6월 한 달의 포토존으로 정의되고 있다.
주월산 폐쇄 활공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되게 조용했다.
수면에 바람이 잔물결을 만들었다.
산그늘이 호수 가장자리를 덮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 아름다움의 아래층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곳에 있던 사람 중 몇 명이나 됐을까.
저 논은 원래 바다였다.
일제가 방조제를 쌓아 갯벌을 논으로 만들었다.
그 물을 대기 위해 산 너머 보성강에
보성강댐을 쌓고 터널을 뚫었다.
그 발전소가 88년째 돌아가고 있다.
그것을 알고 보는 풍경과 모르고 보는 풍경은 다르다.
아래 성림정원에서는 수국 앞에 줄이 서 있었다.
입장료 7,000원을 내고.
60년 전 민둥산에 나무를 심은 사람은
"숲은 후대에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했다.
그 말이 옳았다.
숲은 유산이 됐다.
그런데 그 유산을 소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가문이 60년 가꿔온 숲은
연간 15만 명이 찾는 수국 포토존이 됐다.
보성군 인구 4만 명이
소멸 위기를 겪는 동안
체류 인구는 25만 명을 넘었다.
유산을 만든 사람과 유산을 소비하는 사람이 같지 않다는 것.
60년을 가꾼 사람과 6월 한 달을 즐기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
이것이 윤제림과 보성군 겸백면이 지금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어떤 유산을 후대에 물려줄 것인가.
누가 그 유산을 소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소비는 무엇을 남기는가.
보성군 겸백면 주월산 기슭에서,
그 질문들이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