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설현장 안전의 민낯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

by다소느림

VVIP 세대를 신경 써달라는 말이 현장에 떨어졌다.


입주 예정자에 대한 배려였다.

고급 마감재, 꼼꼼한 시공, 청결한 작업 환경.

현장 관리자는 근로자들에게 당부했다.


그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건물에 살 사람들을 위한 말이었다.


'VVIP'라는 단어가

2026년 건설현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였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날,

근로자들은 안전화를 받지 못했다.


안전 교육 서류에는 체크가 돼 있었다.


안전모 지급 확인.

안전화 지급 확인.

안전조끼 지급 확인.


서명란에는 근로자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서류상으로 이 현장의 안전은 완벽했다.


현실에서 안전화는 없었다.

가끔, 이른바 '우수 근로자'에게

선물처럼 한 켤레가 돌아갔다.


원래 줘야 하는 것을

마치 특별히 베푸는 것처럼.


그것을 받은 사람은

선택받은 느낌을 받아야 했다.

그것을 받지 못한 대다수는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 건설현장의 안전이다.


법은 명확하다.


이 문제에서 모호한 구석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는

총 공사금액 2천만 원 이상의 건설공사에서

발주자가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의무적으로 계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사 종류와 규모에 따라

대상액의 2~3% 내외다.


이 예산의 사용 항목에는

보호구 구입비가 명시적으로 포함된다.


안전화도, 안전모도, 안전조끼도

이 돈으로 사야 한다.

법이 그렇게 정해놨다.


2024년 고용노동부는

이 안전관리비 계상 기준을

10년 만에 평균 19% 인상했다.


역설적인 사실이 담겨 있다.

10년 동안 기준이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그 10년 동안 물가는 올랐고,

건설 공사 규모는 커졌고,

건설업 사망자는 매년

수백 명대를 유지했다.


10년이 지나서야 19%를 올렸다.


H건설급 대형 원청이 시공하는

대단지 아파트 현장을 예로 들어보자.


수백억 원대 공사비의 2~3%는 수억 원에 달한다.

그 안에 보호구 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발주자는 원청에 그 돈을

이미 지급했다고 명시한다.


안전화 한 켤레의 평균 가격은

산업용 기준 5만 원 내외다.


현장 투입 인원 200명 기준으로만 계산해도 1,000만 원이다.

안전조끼, 안전모, 방진마스크, 귀마개까지 더하면

1인당 단가는 훨씬 올라간다.


법적으로도 그 돈이 규정되어있고

본사는 이미 계산해서 지급을 했다고 명시하고

서류에도 지급 완료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발에는 안전화가 없다.


돈은 어디로 갔는가: 다단계 하도급의 구조


건설현장의 계약 구조를 따라가면

돈이 어디서 사라지는지 보인다.


발주자가 원청에 공사를 발주한다.

원청은 공종별로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준다.

하도급업체는 다시 재하도급을 준다.

재하도급을 받은 업체 밑에

개별 기능인 팀이 붙는다.

도배팀, 타일팀, 전기팀, 설비팀, 미장팀이 그렇게 들어온다.


안전관리비는 원청이 발주자로부터 수령한다.

하도급 계약이 체결될 때마다 공사비는 깎인다.

안전관리비는 별도 항목으로 보호된다고 법에 돼 있지만,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그것이 말단 팀까지

온전히 전달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법은 계상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하청 단계별 전달 구조와 집행 여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체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5년 5월 발표한

연구보고서 『건설업의 고용관계와 노동안전』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분석했다.


저가수주 경쟁과 다단계 하도급이

안전 비용을 구조적으로 최소화하며,

그 결과 안전 장비 미제공과 미자격 인원 투입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특히 보호구 지급 방식과

바카라임 소재가 다층적 하도급 구조 속에서

근본적으로 불명확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사비 삭감 압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공공공사에서도 원·하도급 간

공사비 삭감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원청이 수주 단가를 낮추면

하청에 넘기는 단가도 낮아진다.

하청이 재하청에 넘기면 또 낮아진다.

그 끝에서 개별 근로자가 받는

인건비와 안전 여건이 결정된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이종섭 교수는

이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청에서 재하청, 재재하청을 거치는 과정에서

안전 비용이 최소화되면서 미자격 인원이 투입되거나

안전 장비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재하청을 전면 제한하거나

산업안전 문제 관련 처벌은

원청이 바카라임지도록 하는

법·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서류에는 보호구가 지급됐다고 돼 있다.

그 돈이 실제로 보호구로 전환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


원청은 안전관리비를 수령했다는 사실을 증빙할 수 있다.

근로자는 보호구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빙할 수 없다.

증빙 구조 자체가 불균형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든 역설: 법이 강화될수록 서류만 두꺼워진다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사업주와 경영바카라임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사망 사고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건설업계가 움직였다.

다만 움직인 방향이 예상과 달랐다.

안전교육 체크리스트가 더 촘촘해졌다.


위험성평가서,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작업계획서,

안전보건대장이 쌓였다.


현장 CCTV가 늘었고

안전관리자의 순찰 횟수가 늘었다.


안전 관련 회의 기록이 늘었고

근로자가 서명해야 하는 문서가 늘었다.


사고가 났을 때 원청이

법원에 제출할 수 있는 서류가 많아졌다.


이것을 전문가들은 '서류 안전'이라고 부른다.

실질적 위험 감소가 아니라

면바카라 증빙을 위한 서류 관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관리 체계의 외형은 분명히 커졌다.


그런데 하청 노동자가 일하는 공간의

실제 위험이 바뀌지 않고,

안전활동 시간이 계약상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정작 안전장비는 지급되지 않는다면

현장 체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한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매뉴얼은

이 지점을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해당 점검 및 보고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부실 점검의 경우,

의무가 이행된 것으로 볼 수 없고

불이행에 따른 최종적인 바카라임은

사업주 또는 경영바카라임자등에게 귀속된다."


법은 형식적 서류로는 면바카라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장은 형식적 서류로 면바카라을 시도하고 있다.


현장 근로자 입장에서 법 시행 이후

실제로 달라진 것을 정직하게 나열하면 이렇다.


교육 서류에 서명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CCTV 감시가 늘었으며

안전관리자가 더 자주 돌아다니며 지적한다.


그러면서 공정 압박은 그대로다.

인건비는 오르지 않았다.

안전화는 여전히 없다.

서명할 문서만 늘었다.


한 전문가는 이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작업계획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서류로만 잘 작성하면 뭐할까.


거대한 현장에 고작

안전관리자 1명을 배치해 봤자

서류작업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다 뺏기는 실정이다."


법은 위를 겨냥했지만

짐은 아래로 내려왔다.


감시는 강화됐지만

보호는 강화되지 않았다.


전기신문이 인용한 현장 전문가의 증언은 더 날카롭다.


"사장님은 안전관리에 별 관심이 없고

작업을 빨리 끝내라고만 재촉한다.

안전관리자의 불만이다."


서류는 두꺼워지고,

현장은 그대로다.


67%: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는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있다.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다.

이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면 위법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도

이를 근로자의 기본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22년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건설업 종사 근로자의 67%가

이 권리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매년 안전교육이 실시됐다.

안전교육 이수 서류가 작성됐다.


체크리스트에는 "작업중지권 고지 완료"라고 돼 있었다.

그런데 교육을 받은 근로자 3명 중 2명은

그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이루어졌어도 전달되지 않았거나,

서류만 작성된 것이다.


알고 있는 나머지 33% 중에서도

실제로 행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조적 불이익이었다.


현장 증언이 이유를 설명한다.


"하도급업체에서 작업을 중지하면

바로 해고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현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건설현장 실무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2026)에서

59%가 작업중지 제도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유의 1위는 작업 중단으로 인한

현장 손실(52%)이었다.


관리자 과반이 부정적인 제도를,

근로자가 현장에서 행사할 수 있을 리 없다.


구조가 이렇게 작동한다.

공정은 연결돼 있다.

골조가 끝나야 내장이 들어온다.

내장이 끝나야 마감공정이 들어온다.

마감공정이 끝나야 입주가 된다.


입주 일정은 분양 계약서에 박혀 있다.

근로자 한 명이 "위험하다"고 작업을 멈추면,

그 팀의 공정이 밀리고,

다음 팀 진입이 늦어지고,

입주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그 손해가 누구한테 돌아오는지는

계약 구조가 결정한다.


대부분 가장 아래에 있는 팀이 감당한다.

인원이 부족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는 경우도 있다.

일정이 촉박해서 멈출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의 디테일은 서류에 기록되지 않는다.

서류에는 "작업중지권 고지 완료"만 있다.


사고가 난 뒤에 질문이 돌아온다.

"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까."


근로자는 그 권리가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수 있다.

알았더라도 행사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고 이후 바카라임을 묻는 구조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않은 사실이

근로자의 귀바카라 사유로 작용한다.


더 가혹한 조항이 있다.

작업을 중지했는데 나중에 위험이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면,

근로자는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 있다.


쓰지 않으면 사고 후 바카라임.

잘못 쓰면 소송 리스크.

어느 쪽으로도 근로자가 불리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5년 국정감사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작업중지권 사용 실태 파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산업재해 감축 효과 분석도 미흡하고,

처벌 규정 부재와 임금·손실 보전 문제 등

근로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명시했다.


국회가 지적한 사실 자체가

이 제도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얼마나 행사됐는지,

행사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데이터조차 없다.


7명 중 1명: 언어가 통하지 않는 안전교육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표한 2024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현장에서 하루라도 일한

외국인 건설근로자는 22만9541명이다.

전체 건설근로자의 14.7%다.

건설현장 근로자 7명 중 1명 이상이 외국인이다.


외국인 근로자는 더 이상 단순 보조 인력이 아니다.

형틀목공, 철근공 등 핵심 공정의

주력 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건설현장의 인력 구조가 바뀐 것이다.


이들에게 안전교육이 진행된다.

한국어로 진행된다.

체크리스트가 한국어로 읽힌다.

보호구 지급 확인서에 이름이 적힌다.

서류상 교육은 완료됐다.

보호구는 수령한 것으로 기재됐다.


정확히 말하면,

언어가 아예 차단된 것은 아니다.


현장 안내 방송이나 입구 표지판 수준에서는

여러 언어가 쓰이기도 한다.


"안전모를 착용하세요",

"이 구역은 위험합니다" 정도의 기초 안내다.


그러나 그것과 실질적인 안전교육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현장에서 어떤 작업을 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사고가 나면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보호구를 지급받지 못했을 때 어떻게 요청해야 하는지.

작업중지권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사하는지.


이런 내용이 외국인 근로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되는지는 서류에 기록되지 않는다.


안내 방송은 들릴 수 있지만

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정부는 2024년 외국인 근로자 92만 명에게

취업 전 또는 취업 시 기초 안전보건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무화하겠다는 말은,

지금까지 의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건설현장 외국인 비중이 14.7%에 달하는 현재까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루어지는

안전교육이 의무가 아니었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안전교육, 보호구 지급, 위험 정보 전달의

바카라임 경계가 흐려지기 쉽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느 업체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위험 작업을 수행하는지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으면

사고 위험은 급격히 커진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언어 장벽이 이 문제를 더 심화한다.


한국어로 된 위험 표지판을 읽지 못하고,

한국어로 전달된 위험 경고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류에는 교육 완료로 돼 있다.


고용노동부 2024년 산업재해 통계에서

사망자 중 외국인 비중이 상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작업을 하면서,

더 높은 위험에 노출된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규정이 현장을 모른다: 작업의 현실


도배작업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건설현장의 도배 작업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세대 내 실내 작업이라도

천장 도배는 말비계 위에서 이루어진다.

키가 큰 작업자가 천장면에 벽지를 붙일 때,

안전모가 천장에 닿는다.


천장과 안전모 사이에 끼인 벽지가 찢어지거나 손상되고

마감재에 흠이 생긴다.

그러면서 작업이 불가능해져서

현장에서 안전모를 벗는다.


안전관리자가 순찰을 돌면 지적을 받거나

시말서를 쓰거나 경고를 받고

그 공정에 대한 전체교육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반인걸 알면서도

안전모를 쓰고는 천장 작업이 안 된다.


이것이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닌 이유는 명확하다.

규정을 만든 사람이 말비계 위에서

천장 도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장 작업의 실제 동작과 신체 조건,

작업 공간의 높이와 여유,

도구와 자재의 부피가 반영되지 않은 규정이

바카라상에서 작성되어 현장으로 내려온다.


물론 실내 세대 작업에서도 사망 사고는 발생한다.


말비계가 넘어지거나,

발을 헛디뎌 추락하거나,

전선이나 못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있다.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원칙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원칙이 현장의 물리적 조건을

무시한 채 규정으로 내려오면,

그 규정은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를 위반자로 만든다.


지킬 수 없는 규정을 어기면 근로자가 처벌된다.

지키다 보면 작업이 안 된다.

규정과 현실 사이에서 근로자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불리하다.


안전관리자는 현장을 순찰하고 지적한다.

감독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안전관리자가

도배 작업의 실제 동작을 이해하고 있는지,

말비계 위에서 천장에 손이 닿는 거리와

안전모 높이의 관계를 알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서류에는 "지적 및 시정 완료"가 기록된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체감과

감독자의 판단 사이에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메울 통로가 없다.


근로자가 작업 조건의 불합리함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창구가 현장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기한다 해도 반영되는 구조가 없다.

규정은 바뀌지 않는다.


근로자가 적응하거나,

위반하거나,

떠나거나.


안전관리자는 누구의 편인가


건설현장의 안전관리자는 원청 소속이거나

원청이 고용한 외부 업체 소속이다.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명목상 역할이지만,

고용 관계에서 원청에 귀속돼 있다.


사고가 나면 원청의 면바카라을 위해 서류가 활용된다.

안전관리자가 작성하고 관리한 서류가

원청의 법적 방어 자료가 된다.


안전관리자의 업무 실적이 안전 서류의 완성도로 평가된다면,

그의 실질적 이해관계는 서류 완성에 있다.

현장 근로자의 실제 안전 여건 개선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안전을 감독해야 하는 사람이

안전 실패의 바카라임을 지는 사람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구조에서,

감독은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근로자가 보호구 미지급을 신고하면 누가 조사하는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다.


그런데 신고를 하면

다음 현장에 들어가기 어려워진다.


건설업은 팀 단위 이동,

구두 계약,

인맥 기반 취업이 기본 구조다.


신고자로 찍히면

다음 현장 연락이 오지 않는다.


이것을 증명하기도 어렵고,

막을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신고 제도는 존재하지만

쓸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존재한다.


보호구 없이 다쳤을 때: 누구의 바카라임인가


가장 잔인한 구조를 마지막으로 짚어야 한다.

안전화를 받지 못한 채 현장에서 일하다

발 부상을 입었다고 가정하자.


산재 처리 과정에서 보호구 미착용이 확인되면

근로자 과실로 처리될 수 있다.

산재 보상액이 줄거나

일부 바카라임이 근로자에게 귀속된다.


그런데 서류에는 안전화를 지급받았다고 서명이 돼 있다.

근로자가 받고도 신지 않은 것이 된다.


받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할 서류는 없다.

지급받았다고 서명한 서류만 있고

그 서류를 만든 것은 원청이다.


그 서류에 서명한 것은 근로자 개인이며

서명 당시 "다 체크해놓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은

서류에 기록되지 않는다.


가해 구조가 피해자를 만드는 방식이 이렇다.

보호구를 주지 않은 쪽이 서류를 쥐고 있고

그 서류가 다친 사람의 과실을 증명하는 데 활용된다.


근로자는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것을 증명해줄 서류를 애초에

만들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론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구조다.


그래서 사망자는 줄었는가


숫자가 답한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 발표한

2024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전체 사고 사망자 827명 중

건설업이 328명으로 39.7%를 차지했다.


단일 업종 최다다.


건설업 종사자가 전체 산재보험 가입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 사망자 비중에 훨씬 못 미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째인 2024년,

전체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589명으로

전년도 598명 대비 소폭 줄었다.


법 시행 효과라는 분석이 가능할 것 같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달랐다.


건설 경기 부진으로

공사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건설업 사망자는 전년 대비 27명 줄었는데,

반면 5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사망자가 오히려 35.1%(26명) 증가했다.


경기 효과를 제거하면

법 시행의 실질적 효과는 불분명하다.


일이 줄어서 사람이 덜 죽었다.

법이 강화돼서가 아니었다.


재해 유형에서 '떨어짐'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사고 재해자 중 넘어짐(2만8244명)이

떨어짐(1만4655명)의 두 배였지만,

사망자만 따지면 떨어짐(278명)이

넘어짐(41명)의 6배를 넘었다.


치명률에서 압도적이다.

그리고 떨어짐은 안전화, 안전대, 안전모가

직결되는 재해 유형이다.

서류에는 지급 완료로 되어있다.


최근 산재 사망자를 전수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 중 하청업체 직원 비율이 높고

외국인이 상당수를 차지하며

60대 이상 고령 근로자 비율이

40%에 육박했다.


다단계 하청의 말단,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근력이 약해진 고령 근로자.


위험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안전이 가장 먼저 빠진다.


건물은 왜 무너지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안전관리비가 인상되고 교육이 강화된 그 시간 동안,

건설현장의 붕괴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2025년 광명 신안산선 지하터널이 붕괴됐다.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이 매몰됐다.


그 현장에도 안전관리계획서가 있었을 것이며

위험성평가서가 있었을 것이고

안전교육 이수 서류가 있었을 것이다.


서류는 완벽할 수 있지만

현장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환경이다.


이것이 '서류 안전'의 본질이다.

서류가 완벽해질수록 바카라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며

사고가 나면 원청은 서류를 꺼낸다.


모든 절차를 이행했다고 주장하며

수사는 길어진다.

그리고 처벌은 약하거나 거의 없고

근로자는 이미 사고를 당한 뒤다.


법은 계속 강화됐고 처벌 조항은 늘었으며

과태료는 오르고 안전관리비는 인상됐다.


그런데 서류 완성도와 실제 현장 안전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꼼꼼하게 하면서 건물은 왜 무너지냐."


형식적으로 해서 해결될 일이면

사고가 없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상위권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다.


안전관리비 계상 기준이 올랐고 안전교육 이수가 의무화됐다.


보호구 지급이 법정 사항이 됐고

작업중지권이 보장됐다.


외국인 근로자 안전교육 의무화가 추진됐고

서류는 두꺼워졌다.


체크리스트는 더 촘촘해졌으며

감시 카메라는 늘었다.


그러나 사망자는 여전히 매년 수백 명이고

건설업이 40%를 차지한다.

떨어짐이 주요 사인이다.


하청 말단 근로자가,

외국인이,

고령 근로자가 주로 죽는다.


안전관리비가 바카라정되어 있고

보호구 지급이 의무다.

작업중지권이 있으며

안전교육을 받았다고

서류에 적혀 있다.


H건설 현장 22층에는

VVIP가 입주할 예정이다.


그 세대의 벽지를 붙이는 사람의 발에는

지급되었다고 서류에 기재된 안전화는 없었다.


이 나라에서 건설현장 근로자의 안전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서류 안에 있는가,

현장에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서류 안에만 있다면,

다음 사망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