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어둠 속에 숨다

한 명의 이기심이 수백 명의 시간을 태운다

by다소느림

광주송정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서울 집회를 취재하러 올라가야 했다.

역 주차장에 차를 대고 KTX를 탈 계획이었다.


송정역 일대는 도로가 복잡하다.

신축 아파트 단지와

역세권 개발이 맞물리면서

교통량이 늘었고,

교차로마다 신호가 조밀하다.


신호를 따라 직진하고 있었다.

왼쪽 차선에도 차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161번 버스가

좌회전으로 확 꺾어 들어왔다.


대형 시내버스가 내 차와 옆 차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선택지가 없었다.


왼쪽은 달리는 차,

정면은 버스 측면.


반사적으로 속도를 올려 옆길로 빠져나갔다.

그 순간 뒤따라오던 차와 부딪힐 뻔했다.


버스가 파고들고,

옆 차선 차가 막고,

뒤에서 차가 따라오는 상황.


앞도 옆도 뒤도 막혀 있었다.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버스는 그대로 지나갔다.

심장이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신고는 하지 않았다.

열차 시간이 빠듯했고,

그 버스가 어디 소속인지도 몰랐다.


번호판을 봤지만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161번이라는 숫자만 봤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161번은 광주 버스가 아니었다.

나주교통이 운영하는 나주시 소속 광역버스였다.


광주 도로를 달리고,

광주 시민을 위협하고,

그리고 사라졌다.


이 경험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로 위에서 끼어들기를

경험하지 않은 운전자는 없다.


출근길 고속도로에서,

퇴근길 시내 교차로에서,

IC 진출로 직전에서,

우리는 매일 예고 없이

파고드는 차들을 만난다.


다만 그날 이후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일상적인 위험이,

왜 아무도 제대로 바카라임지지 않는 구조 안에 놓여 있는가.

왜 이 나라 도로에서 끼어들기는 이토록 반복되는가.


네 번 중 한 번은 예고 없이 온다


끼어들기가 왜 이렇게 위험한가.

단순히 공간을 빼앗기 때문이 아니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운전은 본질적으로 예측의 연속이다.

앞차가 어떻게 움직일지,

옆 차가 어디로 갈지를 끊임없이 판단하면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


주행 중 운전자의 뇌는

초당 수십 개의 판단을 내린다.


앞차의 속도 변화,

옆 차선의 흐름,

신호의 변화,

보행자의 움직임.


이 모든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면서 차를 모는 것이다.


그 예측 체계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이

무신호 끼어들기다.


방향지시등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다.

"나는 이쪽으로 이동할 것이다"라는 예고다.

그 예고가 있으면

주변 차들은 속도를 조절하고,

간격을 벌리고,

대응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예고 없이 갑자기 파고드는 차량은

주변 운전자의 판단 체계 전체를 붕괴시킨다.


0.3초 안에 상황이 바뀐다.

그 0.3초 안에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꺾거나 가속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도로에서

이 예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안실련과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결과,

차로 변경 시 방향지시등을 켠 차량은

전체의 57.6%에 불과했다.


10대 중 4대 이상이

깜빡이 없이 차로를 바꿨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2023년 76.00%에서

2024년 75.59%로 오히려 하락했다.


나아지고 있지 않다.

퇴행하고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 38조는

차로를 변경하거나 좌우회전을 할 때

방향지시등을 의무적으로 켜야 한다고 규정한다.


일반도로에서는 30m,

고속도로에서는 100m 이전에 켜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범칙금 3만 원이다.


문제는 이 규정이 단속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로를 바꾸는 차를

경찰이 잡아내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카메라만으로는 포착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 규정은 사실상 선언에 가깝다.


네 명 중 한 명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로를 바꾼다.

그것이 한국 도로의 현실이다.

그 순간 옆 차선을 달리는 운전자는

아무런 예고 없이 공간을 잃는다.


빠져나갈 곳을 찾다가 다른 차와 부딪힌다.

그날 내가 겪은 것처럼.


끼어들기는 통계의 어둠 속에 숨어 있다


끼어들기는 도로교통법상 명확한 위반 행위다.

그런데 교통사고 통계에서 끼어들기는

단독 항목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최신 법규위반별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이렇다.


전체 교통사고 193,889건 중

'안전운전불이행'이 105,542건으로

54.4%를 차지한다.


사망자는 1,652명으로

전체 2,549명의 64.8%다.


안전운전불이행이란 무엇인가.


부주의 운전,

전방 주시 태만,

급차선변경,

끼어들기가 모두

이 항목 안에 포함된다.


즉 끼어들기로 인한 사고와 사망이

이 거대한 숫자 안에 묻혀 있다.


두 번째로 많은 항목은

'안전거리미확보'로 24,949건,

사망 59명이다.


이것은 끼어들기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앞 차가 끼어들면 뒤 차는 급정거한다.

그 뒤의 차도 연쇄적으로 급정거한다.

안전거리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쇄 추돌이 발생한다.


끼어들기 한 번이

교통사고 통계 두 항목을

동시에 밀어 올린다.


이 두 항목만 합쳐도 130,491건이다.

전체 교통사고의 67.3%다.


한국 도로에서 세 건 중

두 건의 교통사고는 끼어들기와

그 연쇄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끼어들기로 인한 사망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 우리는 모른다.


'안전운전불이행' 1,652명 안에

얼마나 많은 끼어들기 사망이 포함돼 있는지

통계가 분리되지 않는다.

끼어들기가 별도 항목으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수백, 수천 명이 끼어들기와 관련된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는 그 숫자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얼마나 심각한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로,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통계가 없으면 정바카라도 없다.

정바카라이 없으면 구조도 바뀌지 않는다.

끼어들기를 독립된 사고 원인 항목으로 집계하는 것 자체가

이 문제 해결의 첫 번째 과제다.


8.3m 사각지대


끼어들기는 모든 차량이 하지만,

대형차량의 끼어들기는 차원이 다르다.

물리적 조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TAAS 차종별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이 차이가 숫자로 드러난다.


승용차는 130,774건의 사고에서

1,202명이 사망했다.

사고 건당 사망률이 0.92%다.


화물차는 24,464건의 사고에서

594명이 사망했다.

사고 건당 사망률이 2.43%로

승용차의 2.6배다.


같은 사고가 나도 화물차가 연루되면

사람이 죽을 확률이 그만큼 높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더 충격적이다.


화물차는 전체 등록 차량의 15.5%에 불과하지만

교통사고 사망자의 24.3%를 차지한다.


사고를 내는 비율보다

사람을 죽이는 비율이 훨씬 높다.


왜인가.


무게와 사각지대 때문이다.

도로교통공단이 차량 종류별 사각지대 거리를 측정한 결과,

대형 화물차의 우측 사각지대는 8.3m였다.

일반 승용차(4.2m)의 약 2배다.

SUV(5m)와 비교해도 1.7배가 넘는다.


화물차 기사 입장에서

바로 옆에 8.3m 앞까지의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공간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여도

기사는 인식할 수 없다.

그 상태에서 차선을 바꾸면

보이지 않는 차를 밀어붙이게 된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시내버스는 전장 11~12m에 달한다.

좌회전을 할 때 회전 반경이 크고,

뒷바퀴가 앞바퀴와 다른 궤적을 그린다.


내가 경험한 것처럼,

버스가 좌회전으로 꺾어 들어올 때

버스 앞부분은 내 차를 지나쳤지만

측면이 내 차와 나란히 움직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 순간 옆으로 피할 수도 없고,

앞으로 갈 수도 없다.

대형 버스의 측면이

내 차 전체를 덮는 느낌이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경찰청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덤프트럭 등 대형차량의 우회전 보행사고 치사율은

승용차의 27배였다.


1만 대당 사상자 수도 덤프(38.6명),

승합차(10.8명),

화물차 순으로 승용차를 압도했다.


같은 도로 위에서 같은 사고가 나도,

어떤 차와 부딪히느냐에 따라

살고 죽음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대형차량에 대한 끼어들기 규제는

승용차와 동일한 수준이다.


8.3m 사각지대를 가진 화물차나 6톤 버스나,

3만 원짜리 범칙금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위험의 크기와 처벌의 크기 사이에

아무런 비례가 없다.


충돌하지 않으면?


그날 내가 가까스로 빠져나오면서

뒷차와 부딪힐 뻔했을 때,

만약 실제로 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도로교통법상 진로를 변경하려는 선행 차량은

후행 차량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충분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법원 과실비율 기준에 따르면

이런 끼어들기 사고의 기본 과실비율은

선행 진로변경 차량 70,

후행 피해 차량 30이다.


가해 버스가 70%를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핵심은 이거다.

버스가 끼어들어 내가 피하다 뒷차와 충돌했다면,

161번 버스는 그 충돌 현장에 없다.


버스와 내 차가 직접 부딪히지 않았으니

버스 기사는 사고 현장에 설 이유가 없다.


경찰이 도착하면

내 차와 뒷차 사이의 사고로 처리된다.

161번은 그 사이에 사라진다.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또는 블랙박스 앵글에 161번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면,

버스가 끼어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어렵다.


목격자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내가 "버스가 끼어들어서 피하다 사고가 났다"고 주장해도,

버스 측에서 "우리 버스는 정상 운행했다"고 하면

그것을 반박할 증거가 없을 수 있다.


과실비율 70:30이 적용돼야 할 상황이,

블랙박스 하나에 의존하게 된다.


가해 행위는 있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고가 만들어진다.


버스는 사라지고,

나와 뒷차 운전자만 남아서

서로의 과실을 따지게 된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매일 어디선가 반복된다.

앞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

뒤 차들이 연쇄 추돌했는데,

그 앞 차는 이미 현장을 벗어난 경우다.


피해자들은 서로를 상대로 보험 처리를 하고,

진짜 원인 제공자는 어디선가 다른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것이 끼어들기가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 중 하나다.


잡히지 않으면 3만 원도 없고,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 현장을 떠날 수 있다.


연쇄사고를 유발해도

원인 제공자로 특정되기 어렵다.

끼어들기는 비용이 매우 낮은 위반 행위다.


출구 직전 100미터가 가장 위험하다


시내 도로에서의 끼어들기보다 더 위험한 곳이 있다.

고속도로 나들목(IC)의 진출입로다.

IC 끼어들기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속도 차이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100km/h로 달리다가

진출로에서 줄 서 있는 차량들 사이로

파고드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진출로 대기 차량들은 저속 또는 정지 상태고,

고속으로 달려오다 파고드는 차량은

그 속도 차이를 순식간에 흡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급정거가 발생하고,

뒤따라오는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급정거한다.


고속도로에서의 연쇄 추돌은

시내 도로와 결이 다르다.

속도가 빠를수록 충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한국통신학회 논문은

진출입로 끼어들기를 교통 체증의

근본 원인으로 직접 명시했다.


차량 통행량이 많은 진출입로의 마지막 부근에서

끼어드는 차량이 오랜 시간 기다린 운전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제공하며 사고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나아가

교통 체증 시 IC 진출입로에

LED 가변차선을 설치해

점선을 실선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끼어들기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기술로 막아야 할 만큼,

규범과 단속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더 교묘한 방식도 있다.

휴게소나 졸음쉼터로 진입하는 척하다가

바로 진출로로 끼어드는 것이다.


고속도로 갓길을 달리다가

출구 직전에 본선으로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단순한 끼어들기를 넘어,

다른 운전자들의 예측을 의도적으로 배신하는 행위다.

그 사람이 얼마나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느냐가,

다른 운전자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선택이다.


IC 끼어들기에는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도로 표지판의 문제다.


한국 도로의 표지판은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행정적 요식행위에 가깝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진출로 안내가 부실하다 보니

운전자가 어느 차로로 가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아 뒤늦게 끼어들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잘못 설계된 도로가 끼어들기를 유발한다.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경찰이 끼어들기 집중 단속을 실시하는 곳이 514개 지점인데,

그 중 상당수가 IC 진출입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단속 지점이 514곳이라는 것은,

역으로 그 외 수만 곳의 도로는

단속 공백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착각


이쯤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장이 있다.

"끼어들기가 없으면 오히려 더 막힌다"는 논리다.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는 운전자들이 있다.


심지어 "지퍼 합류처럼 써야

교통이 원활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렸다.

그리고 이 착각이

끼어들기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된다.


먼저 개념을 분리해야 한다.

지퍼 합류(Zipper Merge)는

차선이 줄어드는 합류 구간에서

양쪽 차량이 번갈아 진입하는 방식이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권장하는 합법적 운전 방식이다.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어디서 합류하는지,

어떤 순서로 합류하는지가

모든 운전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앞차가 먼저,

그 다음 차가 끼고,

그 다음 차가 먼저.

규칙이 있다.


반면 한국 도로에서 일어나는 끼어들기는 다르다.

차선이 줄어드는 합류 구간이 아니라,

멀쩡히 뚫린 도로에서 일방적으로 파고드는 행위다.


규칙이 없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파고들지

주변 차량은 알 수 없다.


그 예측 불가능성이 급정거를 만들고,

급정거가 연쇄 반응을 만들고,

연쇄 반응이 정체를 만든다.


"끼어들기가 교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주장의 실체는 이것이다.


내가 끼어들면 나는 빨리 간다.

그러나 내 뒤에 있던 차들은 더 느려진다.

내가 얻은 시간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수십 명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다.

교통 전체의 흐름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수의 시간을 착취한 것이다.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미네소타 교통부가 고속도로 합류 구간에서

끼어들기와 지퍼 합류를 비교 실험한 결과,

지퍼 합류 방식이 교통 흐름을 최대 40% 개선했다.


일찍 차선을 변경하는 방식,

즉 미리 끼어드는 방식은 오히려 정체를 심화시켰다.

예측 가능한 합류는 흐름을 만들고,

예측 불가능한 끼어들기는 흐름을 깨뜨린다.


"끼어들기가 없으면 더 막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끼어들지 못하면 내가 더 늦는다."


교통 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손실 위에 서 있다.


한 명의 끼어들기가 수백 명의 시간을 태운다


끼어들기가 교통사고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도,

단 한 번의 끼어들기가

수 킬로미터의 교통 정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을 '유령정체'라고 한다.


특별한 원인 없이 고속도로가

갑자기 막히는 현상이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답답함을 안다.

분명히 앞에 사고도 없고,

공사도 없고,

좁아지는 구간도 없는데

차들이 멈춰 서 있다.


수 킬로미터를 기어가다

갑자기 뻥 뚫리는 경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더 황당한 그 정체의 원인이 끼어들기다.


작동 원리는 이렇다.

한 차량이 차선을 바꾸면서

뒤따르는 차가 속도를 줄인다.

그 감속이 연쇄적으로 뒤로 전파된다.


처음에는 시속 5km 감속이지만,

100대의 차를 거치면서 그 감속이 증폭된다.

결국 수 킬로미터 뒤에서는 완전한 정차로 바뀐다.

끼어든 차량은 이미 앞으로 가고 없는데,

그 뒤에서는 차들이 멈춰 서 있다.


끼어든 사람은 시간을 벌었고,

그로 인해 정체에 갇힌 수백 명은 시간을 잃었다.

한 사람의 '조금 빨리 가려는' 선택이

수백 명의 시간을 빼앗는다.


연료를 낭비하게 만든다.

후방 차량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그 불안감이 또 다른 급차선변경으로 이어진다.


도로 위의 분노가

더 많은 끼어들기를 낳는 악순환이다.

끼어들기는 전염된다.


TAAS 도로형태별 교통사고 통계에서도

이 맥락이 보인다.


단일로(고속화도로, 자동차전용도로 포함)에서

발생한 사고는 82,974건이지만

사망자는 1,515명이다.


교차로 사고 93,792건에서

사망자 879명인 것과 비교하면,

사고 건수는 적어도

사망자가 훨씬 많다.

건당 사망률이 1.83%로

교차로(0.94%)의 약 두 배다.


고속 구간에서 끼어들기로 시작된 사고는

그만큼 치명적이다.

속도가 빠른 단일로에서의 연쇄 추돌은

교차로 사고보다 두 배 더 많이 사람을 죽인다.


주차위반보다 가벼운 위반, 억제력 없는 처벌


이 모든 위험에 대한 처벌이 얼마인가.


현행법상 끼어들기 적발 시

승용차 기준 범칙금 3만 원,

벌점 10점이다.


3만 원.


불법 주정차 과태료(4만 원)보다 낮다.

신호위반 범칙금(6만 원)의 절반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끼어들기가,

길가에 차를 잘못 세우는 것보다

가벼운 위반으로 분류된다.


비교해보자.


미국에서는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로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40만 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된다.


독일에서는 위험한 끼어들기에

200유로(약 32만 원) 이상의 벌금에

운전 금지 처분까지 가능하다.


영국에서도 위험한 진로변경은

최대 무기한 운전 금지까지 갈 수 있는

심각한 위반이다.


한국 끼어들기 범칙금은

미국의 약 13분의 1,

독일의 약 10분의 1 수준이다.


단속 체계도 허술하다.

끼어들기 집중 단속을 실시하는 곳이 514개 지점이다.

전국의 도로 연장이 약 11만 킬로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단속 지점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514개 지점 밖의 도로는

사실상 단속 공백이다.

그 공백 안에서 끼어들기를 해도

걸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걸리지 않으면 3만 원도 내지 않아도 된다.


더 중요한 맥락이 있다.

끼어들기 과태료가 신설된 것이

2022년 7월이다.


불과 4년 전까지는

현장 단속이 아니면

과태료조차 부과할 수 없었다.

카메라에 찍혀도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즉 4년 전까지

이 나라 도로에서 끼어들기는 사실상

처벌 불가능한 행위였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범칙금이 3만 원인 한.

억제력이란 무엇인가.


위반으로 얻는 이득보다

처벌의 비용이 클 때,

사람들은 행동을 바꾼다.


끼어들기로 5분을 아낄 수 있다면,

3만 원짜리 위반이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질 수 있다.

더구나 걸릴 확률이 낮다면.


범칙금 3만 원은 위반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위반의 원가를 바카라정해주는 것에 가깝다.

3만 원을 내면 끼어들 수 있다는 구조다.

이 구조가 끼어들기를 반복하게 만든다.


빨리빨리 문화


끼어들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설명이 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다.


실제로 이 문화는 실재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빨리 가고 싶어한다.

기다리는 것을 못 견뎌한다.

줄 서 있는 것 자체가 손실처럼 느껴진다.

이 심리가 끼어들기로 표출된다는 분석은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빨리빨리 문화가

끼어들기를 만든다는 설명은 절반만 맞다.

나머지 절반을 보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독일 사람들은 느긋한가.

그렇지 않다.

독일 아우토반에서 200km/h로 달리는 운전자들이

느긋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가.

도쿄 출근길 지하철에서 뛰는 사람들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아니다.


바쁜 사람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약속에 늦은 사람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런데 독일과 일본의 도로에서

무신호 끼어들기는 한국보다 훨씬 드물다.


왜인가.


처벌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위험한 끼어들기는

200유로 이상의 벌금에

운전 금지 처분까지 가능하다.


일본에서 진로변경 위반은

반칙금 6,000~7,000엔(약 6만~7만 원)에

벌점이 부과된다.


한국 3만 원의 두 배 이상이다.

더 중요한 건 단속 방식이다.

카메라 단속이 체계화돼 있고,

걸릴 확률이 높다.


바쁜 마음이 있어도,

걸렸을 때의 비용이 크면 행동이 바뀐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문화는 구조가 만든다.


한국에서 끼어들기가 빈번한 것은

한국 사람의 DNA에 끼어들기 유전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끼어들기를 해도 걸리지 않고,

걸려도 3만 원이고,

연쇄사고를 내도 현장을 떠날 수 있는 구조가

끼어들기를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끼어들기를 유발하는 게 아니라,

끼어들기를 허용하는 구조가

빨리빨리 문화를 끼어들기로

표출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화를 탓하는 것은 쉽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구조를 바꾸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문화가 바뀐다.

순서가 있다.


2km마다 한 번, 구조가 기사를 몰아붙인다


161번 버스가 그날 왜

좌회전으로 파고들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내버스 기사들이

왜 급하게 모는지는 구조적으로 설명이 된다.


한국소비자원이 시내버스 11개 노선 23대,

마을버스 14개 노선 28대를 GPS로 직접 조사한 결과,

100km당 평균 62.6회의 급출발·급가속·급감속·급정지 등

위험운전행동이 확인됐다.


시내버스만 따지면 100km당 50.4회다.

약 2km마다 한 번꼴로 위험운전이 발생한다.

조사 대상 51대 중 8대(15.7%)는

정류장에 완전히 정차하기 전에 승하차 문을 개방했고,

2대(3.9%)는 문이 열린 상태에서 출발했다.


이것은 개별 기사의 문제가 아니다.

광주 준공영제를 포함해 전국 대부분의 준공영제는

배차간격을 지자체가 정하고

운수사가 그 계획에 따라 운행하는 구조다.


기사는 정해진 배차 간격을 맞춰야 한다.

배차를 지키지 못하면 운수사 운행 평가에 반영된다.

평가가 나빠지면 재정 지원에 영향이 간다.

기사는 회사의 압박을 받는다.


교통이 막히면,

배차시간이 늦어지면,

승객 승하차가 길어지면

배차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올린다.

급정거, 급출발, 차선을 가로질러 파고드는 좌회전.

구조가 기사를 그렇게 만든다.


화물차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화물차 기사들은

건당 운임 구조 아래서

더 많은 물량을 빠르게 소화해야 한다.


시간이 곧 수입이다.

IC 진출로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곧 손실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공회전 비용'이라고 표현한다.

기다리는 동안 연료는 소비되는데

수입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 압박이 무리한 끼어들기로 이어진다.


화물차 사고에서 사망자가

승용차의 2.6배가 나오는 구조적 배경이다.


승용차 운전자라고 다르지 않다.

출근 시간에 늦은 온라인 게임인,

약속에 늦은 사람,

빠른 길을 찾는 배달 기사.

이들이 끼어들기를 하는 이유는

도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간 압박과 낮은 처벌 비용이

만들어내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끼어들기를 운전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절반만 맞다.

나머지 절반은 끼어들도록 만드는 구조에 있다.


당신의 안전은 당신이 지켜야 한다


그날 나는 운이 좋았다.

속도를 올려 옆길로 빠져나갔고,

뒷차와는 아슬아슬하게 부딪히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운이 나빴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고가 났을 것이다.


나와 뒷차 운전자가 서로의 과실을 따졌을 것이다.

161번은 현장에 없었을 것이다.

블랙박스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면

버스가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들이 남아서 수습했을 것이다.

치료비, 보험, 수리비, 출근 지각.

그 모든 것을 나와 뒷차 운전자가 감당했을 것이다.


161번 버스는 다음 날도

그 도로를 달렸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도로에서 끼어들기 문제의 본질이다.

가해 행위의 비용은 낮고,

피해의 비용은 피해자가 진다.


걸리지 않으면 3만 원도 없다.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 현장을 떠날 수 있다.

연쇄사고를 유발해도

원인 제공자로 특정되기 어렵다.

이 구조가 끼어들기를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든다.


안전운전불이행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1,652명이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의 64.8%다.


이 숫자 안에 끼어들기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몇 명인지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는 끼어들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채로,

매일 그 도로를 달린다.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끼어들기를 독립된 사고 원인

항목으로 집계해야 한다.


범칙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3만 원짜리 위반을 해외 수준인

30만 원 이상으로 올려야 억제력이 생긴다.


연쇄사고 유발 차량에 대한 법적 바카라임

추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블랙박스 영상 확보를 사고 처리의

기본 절차로 제도화해야 한다.


IC 진출입로 단속 카메라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도로 표지판을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버스와 화물차 기사들이 무리하게 달릴 수밖에 없는

배차 구조와 운임 구조를 바꿔야 한다.


3만 원짜리 끼어들기가

1,652명의 사망을 만드는 구조는,

개인의 각성을 기다리는 것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도로 위에서 당신의 안전이

오로지 당신의 운과 반사신경에 달려 있는 한,

이 문제는 계속된다.


오늘도 어딘가의 도로에서,

누군가의 차선으로 깜빡이 없이 파고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