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러 나온 사람들

보도가 외면한 잠실의 진실

by다소느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올림픽공원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한 어르신이 다가오셨다.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이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존댓말이었다.

젊은 사람에게 허리를 반쯤 숙인 채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뭉클했다.

그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날 내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목격한 것은

언론이 보여준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극우 구호도,

폭력도 없었다.


태극기를 든 할머니가 있었고,

아이 손을 잡은 아버지가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청년들이 있었다.


경찰 교대 시간이 되자 박수가 터졌다.


이동통로(편집본).jpg

통행로에는 누군가 직접 써붙인 안내문이 있었다.


쓰레기는 분리수거함에 모였고,분리수거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교통정리(블러처리)(편집의 편집본).jpg

교통정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날씨가 더우니 쿨팩을 나눠주는 사람이 있었고,

생수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쓴다.


나는 촛불집회를 기억한다


나는 촛불집회 보도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번 집회 보도를 본다.

같은 나라, 같은 사람들인데

프레임이 달랐다.


2016년 촛불집회 때도 도로를 점거했다.

광화문 일대가 수십만 명으로 메워졌다.

그런데 언론은 "질서정연한 시민",

"평화로운 민주주의",

"세계가 주목한 촛불"이라고 했다.


집회 후 쓰레기를 직접 줍는 장면은

미담으로 보도됐다.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번 잠실 집회는 어떻게 보도됐는가.

똑같이 쓰레기를 치우고,

통행로를 정리하고,

경찰에게 박수를 보내고,

자원봉사를 하고,

밥과 물을 나눴는데

일부 언론에서 "불법집회",

"극우 시위",

"폭력 우려"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황교안과 전한길을 전면에 세워

집회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보도 방식이 반복됐다.


다른 것은 하나였다.

어느 진영의 집회로 분류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집회는 진영 집회가 아니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로 확인된

참가자 연령 분포는

20대 33%,

30대 22%,

40대 18.8%,

50대 15.8%,

60대 이상 25.2%였다.


전 세대가 고르게 참여했다.

"재선거"라는 구호 하나만 외쳤다.

참정권 침해에 분노한 국민이었다.


언론이 프레임을 선택한 순간,

진실은 지워졌다.


나는 그 진실을 복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사태의 시작: 50%로 낮춘 지침, 4,726장의 공백


2026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송파구 일대 투표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투표용지가 떨어졌다.

유권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투표용지는 나오지 않았다.


잠실2동 투표소에서는

마감 한 시간 전에 용지가 바닥났고,

문정2동 투표소도 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돼 대기자가 발생했다.


대기번호 110번을 받아 든 유권자가

"이게 말이 되느냐"고 외쳤다.

말이 안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투표소 50곳에서

총 4,726장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다.


서울에서만 3,912장이 모자랐고,

잠실4동 제7투표소 한 곳에서만

436장이 부족했다.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추가 발송해야 했던 투표소는

전국 67곳이었다.


이 중 실제로 투표가 잠시라도 멈춘 곳은 22곳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33곳,

인천 6곳,

부산 3곳,

대구 4곳,

울산 2곳,

경남 2곳이었다.


처음 알려진 서울 14곳보다

36곳이 더 늘어난 수치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선관위 스스로 밝혔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 본투표일 투표용지를

전체 선거인 수의 최소 50%만 인쇄하도록

내부 지침을 하향했다.


투표용지 예산은 유권자의 110%를 요구해 확보했는데,

실제 인쇄는 50%만 하도록

스스로 지침을 바꾼 것이다.


선관위는 갈수록 높아지는 사전투표율과 함께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침 변경의 근거로 들었다.


음모론 때문에 투표용지를 줄였다는 논리인데,

그 결과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발생했다.

선관위는 개별 투표소의 사전투표율 등을 고려하지 않고

투표지를 일률적으로 준비하면서

지역별 편차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체 설명이었다.


관리 부실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실패였다.

이번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역대 지방선거 최고치인 23.51%를 기록했다.


사전투표율이 이미 높았다면

본투표 준비량을 더 세심하게 조정했어야 했다.


그런데 선관위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투표율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

선관위의 본래 임무다.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하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 실패를 외부에서

교정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데 있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다.


보도가 보여준 것과 지운 것: 프레임의 정치학


이 사태가 불러온 집회는 6월 5일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이었다.


경찰 1천여 명이 투입돼 투표함을 강제 반출한 뒤에는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이동했다.

6월 6일 하루 만에 경찰 비공식 추산 3만여 명이 집결했고,

6월 7일에는 낮 12시 3천 명에서

오후 6시 2만 명으로 불어났다.


6월 8일 자정에도 8천여 명이 자리를 지켰다.

일부 언론도 단편적으로 다른 장면을 포착했다.


참가자들이 경찰 교대 과정에서 박수를 보냈고,

태극기를 버리지 말고

다음 참가자를 위해

반납해달라고 안내하는 모습이 있었으며,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정리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은 본문이 아니라

곁가지로 처리됐다.


황교안과 전한길을 전면에 세우고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은 배경으로 밀어넣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 집회 전체를 극우 집회로 인식하게 된다.


"선관위 직원 100여 명 고립" 보도도 실제와 달랐다.

연합뉴스는 당초 개표소 내에 있던 것으로 알려진

선관위 직원 20~30명은 경기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선관위는 투표함이 안전한 곳에 보관되고 있다고 했다.

더욱이 시위 참가자들은

선관위 직원들에게 식량과

물을 직접 구해 건네주기도 했다.


구호는 "밥먹어"였다.

이것은 적대적 봉쇄가 아니었다.

감시였다.


내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도 이와 일치했다.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있었고,

세대가 섞여 있었으며,

분란을 유발하려는 일부를 막아낸 것도

그 자리에 있던 2030 청년들이었다.


그 장면은 어떤 언론에도 나오지 않았다.


대진연으로 지목된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청년들이 막아냈다


현장에서 대진연으로 지목된 이들이

마찰을 유발하려는 행동을 한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낸 것은

집회에 나온 2030 청년들이었다.


대진연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의 약칭으로,

2018년 3월 10일 공식 설립된

NL 계열 학생운동 단체다.


NL은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의 약자로,

반미·자주통일을 핵심 노선으로 삼는 운동권 계열이다.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확정 판결한 한총련의

후신 계보를 자처한다.


대법원은 1998년 한총련 5기 집행부를 이적단체로 규정했고,

이후 10기까지도 "이적단체성이 청산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대진연은 그 한총련 계보를 이으면서도

새 이름을 달고 있어 동일한 판결이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이 단체는 과격한 행동으로 진압 당하는 장면을

홍보에 활용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온 단체다.


주한미국 대사관저 침입으로 4명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고,

나경원 의원실 기습 점거,

5·18 기념식장 앞 시위 강행,

대통령실 무단 침입 시도 등

기록된 사건들이 있다.


이름은 대학생 단체지만

실제로는 30대가 넘는 구성원이 많고,

전 대표 김한성은 만 31세에 대학을 졸업한 이력이 있다.


잠실 집회 현장에서 이 단체와 관련한

긴장이 실제로 감지됐다.


"대진연 지령문"이라는 제목의 종이가

현장 곳곳에 붙여졌고,

참가자들 사이에서 프락치 의심이 확산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내가 현장에서 목격한 것은

그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잡으려는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분란을 유발하려는 외부의 시도를,

집회 참가자들 스스로가 막아낸 것이다.

이것이 이 집회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어떤 언론에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인은 원래 그랬다: 위기 앞에서 먼저 나선 사람들


한국인은 평소에 치열하게 다툰다.

정치 성향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세대도 다르다.

그런데 나라가 위기일 때는

항상 먼저 나섰다.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전국에서 줄을 섰다.


결혼반지를 빼고,

돌반지를 가져왔다.


세월호 참사 때 자원봉사자들이 진도로 몰렸다.

코로나19 때 마스크 대란이 왔을 때

의료진에게 물자를 보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촛불집회 때 집회가 끝나면

쓰레기를 직접 줍고 갔다.


3·1운동,

4·19혁명,

5·18, 6월 항쟁.


매번 그랬다.

국가가 국민을 배신했을 때,

국민이 먼저 나섰다.


조직도 없이,

지도자도 없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그것이 역사를 바꿨다.


이번 잠실 집회도 그 문법으로 읽힌다.

선관위가 투표용지를 준비하지 않았을 때,

정치권이 침묵했을 때,

국민이 먼저 나왔다.


쿨팩을 나눠주고,

재활용을 하고,

통행로를 정리하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그 사람들을 극우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라가 위기일 때 먼저 나서는 것이

한국인의 오래된 방식인데,

그것을 진영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가.


이건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진영이 덮은 것


이 집회를 극우 집회로 규정하는 프레임에는

구조적 이해관계가 있다.


집회가 극우로 분류되는 순간,

그 집회가 제기하는 문제인 참정권 침해,

선관위 바카라임,

재선거 요구는 진영 논리로 덮인다.


"극우 집회니까 무시해도 된다"는 논리가 작동하고,

선관위는 바카라임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선관위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투표용지가 부족해서 투표를 못 한 유권자가

진보 성향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똑같이 참정권을 침해당한 것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은

서울 송파·강남·광진권이었다.

이 지역의 본투표 표심이 부분적으로 누락됐다면,

그 피해가 특정 진영에만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보면

이 질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출구조사에서 민주당 정원오 후보가 51.4%,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46%였다.

5.4%포인트 차이의 정원오 우세였다.


그러나 개표 13시간 만에 오세훈 후보가 역전했고,

최종 결과는 정원오 48.4%,

오세훈 48.9%였다.


단 약 4만 표 차이의 초박빙이었다.

역전의 배경으로 개표가 더뎠던 송파·강동에서

대거 표가 나왔다는 분석이 있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집중된 바로 그 지역이다.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조차

"기초의원 선거 같은 경우엔

몇십 표 차이로 당락이 좌우될 수 있어

선거 관련 소송이 분명히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언급했다.


피해를 입은 유권자가 몇 명이든,

어느 성향이든,

참정권은 헌법 제24조가 보장하는 권리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침묵했는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뒀다.


서울 하나를 문제 삼으면

전체 결과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작동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참정권을 침해당한 유권자 앞에서 설득력이 없다.

민주화세대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훼손됐을 때 침묵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1980년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세대가,

국민의 투표권이 행정 실패로 침해됐을 때

정치적 유불리를 먼저 계산한다면,

그 침묵은 2030 청년들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


잠실 집회에 나온 청년들 중

상당수는 그 세대의 자녀들이다.


성역의 구조: 대통령도 손댈 수 없는 헌법기관


이번 사태가 드러낸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관위의 헌법적 구조다.


헌법 제7장은 선거관리를

입법·행정·사법·헌법재판과 함께

독립된 별개의 헌법기관에 맡기고 있다.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네 곳이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헌법 제114조가 그 근거 조문이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된다.

위원 임기는 6년이다.


1960년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가

4·19 혁명을 촉발했고,

그 반성으로 제2공화국이

선관위를 행정부로부터 분리된

헌법기관으로 만들었다.


권력이 선거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박아 넣은 제도였다.

당시의 취지는 정당했다.


그런데 이 독립성이

이번에는 바카라임 면제의 방패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 참정권은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헌법적 권리이며,

이번 사태는 국민주권의 근간을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스스로

"선관위가 행정부·입법부·사법부와 마찬가지로

독립기관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권한과 의무,

바카라임을 지닌다"고 확인했다.


대통령이 독립기관임을 강조하면서

수사를 지시하는 모순된 구도가 만들어졌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됐다.

그러나 합수본이 할 수 있는 것의 천장은

이미 정해져 있다.


검찰 관계자 스스로

"고의적인 투표 방해 행위라면 처벌할 수 있지만,

단순히 직무 태만이라면

형사 처벌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담당 기관의 징계를 요청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선관위한테 선관위 직원 징계를 요청하는 구조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의 관봉권 폐기 사건도

특검이 수사했지만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관련자 징계 및 제도 개선만 요청하고

무혐의 처분된 전례가 있다.


국무총리 김민석은

"감사원을 포함해 외부에서

감시할 시스템이 없어 문제"라고 직접 인정했다.


대통령도,

감사원도,

어느 행정기관도

선관위에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없다.


헌법이 그걸 막고 있다.

이 구조를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 개정은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석이 필요하다.

22대 국회 범야권은 192석이었다.

8석이 부족했다.


윤석열 정권 당시 민주당이

아무리 의석이 많아도

선관위 관련 헌법 개정은 불가능했다.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개헌이 추진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여당 일방 개헌은

절대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3·15 부정선거의 교훈으로 만든 독립기관이,

66년 후 자신의 실바카라에 아무도

바카라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가 됐다.


독립성의 취지는 권력의 개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선관위 스스로의 무능과 부실을

외부에서 교정할 수단이 없다.


합법적 수단으로는 선관위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고,

비합법적 수단은 헌법 파괴다.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나갈 사람의 사퇴: 노태악 위원장의 94일


6월 5일,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를 발표했다.


바카라임을 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퇴 발표 직후 드러난 사실이 있다.

노 위원장은 올해 3월 3일

이미 대법관 임기가 만료됐다.


대법관을 퇴임하면

선관위원장직에서도 동시에

물러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후임 인선 절차가 막히면서

임기가 끝난 지 94일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물러났어야 할 사람이

94일을 더 있다가,

그 기간에 사상 최악의 사태가 터지자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까지만 위원장직을 맡기로

이미 확정돼 있던 노 위원장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사퇴를 하고 있다"며

"이번 사안은 선관위 자체의

존폐가 걸린 문제로 선관위 해체까지 필요한 상황인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노 위원장 재임 중 선관위는

반복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2023년 고위직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졌고,

직무감찰로 드러난 추가 특혜 채용 사례가 이어졌으며,

2025년 대선 사전투표 용지 반출 논란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졌다.

매번 사과가 있었다.

매번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선관위원장이 대법관 출신인 것 자체가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선거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의 판사들이

선거범죄를 고발하는 선거관리기관의 주체인 모양새가 된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기초적인 법리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어차피 나갈 사람이 사퇴했다.

그것을 바카라임이라 부를 수 없다.

그리고 그 사퇴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재선거는 가능한가: 법이 말하는 것과 시민이 원하는 것의 간극


집회 참가자들은 재선거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재선거는 어떻게 가능한가.


지방선거의 경우 먼저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소청을 제기해야 한다.

선거소청은 지방선거에서

선거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치 절차다.


6월 8일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이

서울시장 선거 무효 소청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절차가 시작됐다.


소청 결과에 불복하면

그때 법원에 선거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서울시장 같은 광역단체장 선거는

대법원에 선거소송을 제기한다.


대법원 단심으로 진행되는 선거소송은

소 제기 후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리는 게 원칙이다.


원칙일 뿐 의무가 아니다.

2020년 21대 총선 때 제기된 선거소송이

7개월 넘도록 처리되지 않은 전례가 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이 따로 있다.

공직선거법 제224조는 선거소송에서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해서만

선거 무효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단순히 선거 규정 위반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무효 결정이 불가능하다.


위반이 없었다면 당락이

실제와 다르게 나왔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표 차이는 약 4만 표였다.

전국 피해 투표용지는 4,726장이었다.


표 차이와 피해 규모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점에서

법원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구조다.

재선거를 원하는 정치적 주체도 사실상 없다.

민주당은 전체 압승 국면에서

재선거 논의 자체가 불리하다.


국민의힘은 소청을 제기했지만

재선거가 실제로 이뤄질 경우

이번에 이긴 서울시장 자리를 다시 걸어야 한다.


오세훈은 5선 서울시장으로서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재선거 리스크를 감수할 유인이 없다.


피해 당사자인 유권자만 재선거를 원하는데,

그 유권자들의 요구를 실현해줄 정치적 주체가 없다.


시민들은 "잘못됐으니 다시 하라"고 한다.

법은 "잘못됐어도 결과가 안 바뀌면

다시 안 한다"고 한다.


정치권은 확신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

줄 수가 없는 구조다.


성난 민심이 잠재워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어르신이 다가오셨다.


나라를 지키러 나온 청년들에게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존댓말로.

허리를 반쯤 숙인 채로.


나는 그날 현장에서

어느 정당의 집회를 보지 않았다.


투표를 하러 갔다가

투표를 못 한 사람들의 분노가

모인 자리를 봤다.


경찰에게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을 봤다.

재활용을 직접 하는 사람들을 봤다.

통행로를 직접 정리하는 사람들을 봤다.

날씨가 더우니 쿨팩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봤다.

분란을 막아내는 청년들을 봤다.

그리고 젊은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어르신을 봤다.


한국인은 평소에 치열하게 다툰다.

그런데 나라가 위기일 때는 항상 먼저 나섰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 사람들은 좌도 우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참정권은 헌법 제24조가 보장하는 권리다.


그 권리가 훼손됐을 때,

그것을 관리해야 할 기관이

스스로 내부 지침을 낮춰

투표용지를 50%만 인쇄했을 때,

위원장은 이미 임기가 끝났는데

94일을 더 자리를 지키다

사퇴로 바카라임을 면했을 때,

대통령도 국회도 감사원도

실질적으로 손댈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재선거의 가능성은 법적으로 극히 낮다는 것이 확인됐을 때,

그리고 민주화세대라는 사람들이 침묵했을 때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그것을 극우 집회라고 부르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덮는 일이다.


본질은 이것이다.

국민이 투표를 하러 갔는데

투표용지가 없었다.

바카라임질 사람은 없다.

다시 투표할 수도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