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누가 감시하는가

독립이라는 이름의 무바카라임

by다소느림

2026년 6월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2동 제6투표소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오후 1시부터 투표용지 부족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청 관계자는 마감 3시간 전부터

용지가 부족할 것 같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조치가 없었다.


오후 6시 마감 시각이 되자

그제야 대기표가 배부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투표용지가 없었다.

유권자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일부는 기다리다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그 시각 같은 사태가 강남구,

광진구까지 번지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선관위가 공식 인정한 피해 투표소는 14곳,

국민의힘 자체 집계로는 16곳에서 17곳이었다.

그날은 대한민국 역사상 지방선거에서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투표하러 간 날이었다.


전국 유권자 4464만 9908명 중

2724만 9586명이 투표소를 찾았다.

최종 투표율 61.0%는

1995년 첫 지방선거(68.4%) 이후

31년 만의 최고치였고,

투표자 수로는 역대 지방선거 최다 기록이었다.


역대 최다 투표자가 나온 날,

선관위는 투표용지를 절반만 준비해두고 있었다.


숫자가 말하는 것


중앙선관위 허철훈 사무총장의 브리핑은 짧았다.

"송파구의 경우 투표용지 인쇄 매수는

유권자 수의 50%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사전투표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해

본투표 용지를 줄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해명이 성립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사전투표를 한 사람은 본투표에 오지 않는다는 가정.


그러나 이것은 확률이지 법칙이 아니다.

선관위는 선거인명부를 통해

해당 투표소에 몇 명이 투표 자격을 갖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 머릿수만큼 인쇄하는 것이 기본이고,

남는 것은 폐기하면 그만이다.


투표율을 예측해서 수량을 조정하는 방식은,

예측이 틀렸을 때 피해가 오롯이

유권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투표율 데이터는 이미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23.51%로

지방선거 역대 최고치였다.

직전인 2022년 8회 지방선거

최종 투표율은 50.9%였다.


이번 선거 당일 오후 1시 기준

투표율은 이미 46.0%였는데,

이는 2022년 전체 최종 투표율(50.9%)에 맞먹는 수준으로,

같은 시간대 역대 지방선거 최고치였다.


선거 당일 오후에 이미 역대급 투표 열기라는 것은

데이터로 확인되고 있었다.

선관위는 이 신호를 무시했거나,

보고도 반영하지 않았다.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을 놓고 보면

추이는 더욱 선명하다.


1회(1995년) 68.4%에서 시작해

2회(1998년) 52.7%,

3회(2002년) 48.9%로 추락했다가,

6회(2014년) 56.8%,

7회(2018년) 60.2%로 반등했다.


8회(2022년)에 50.9%로 다시 떨어졌고,

이번 9회(2026년)는 61.0%로 치솟았다.

투표율이 급반등하는 국면이었다.

그런데도 준비는 절반이었다.


강우진 경북대 교수는

"선관위가 비상 계획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며

"유권자 수의 50%에 대해서만 투표용지를 인쇄한 게

적절한지 등 선거 관리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바카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선관위가 가장 기본적인 바카라무를 지키지 못해

유권자들에게 피해를 준 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관계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법적 바카라임을 져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 스스로도 인정했다.

"이런 사례가 과거에 없었다."


예산이 부족해서 투표용지를 절반만 인쇄한 것도 아니었다.

선관위의 지방선거 해 예산은 약 3850억원이다.

그 예산으로 투표용지를 유권자의 절반만 준비했다.


한국경제 보도를 통해 알려진

한 국민의힘 관계자의 말이

역설적으로 진실을 찌른다.

"선관위에 투표용지 인쇄할 예산이 부족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고 하면 말이라도 된다."


참정권이라는 단어의 무게


헌법 제24조는 선명하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헌법 제10조는 더 포괄적이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선관위는 국가기관이다.

투표용지를 절반만 인쇄해

유권자가 투표를 못 하게 만든 것은,

국가가 스스로 헌법상 의무를 위반한 사태다.


참정권 침해에는 다른 권리 침해와

구별되는 특수성이 있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

재산권이 침해되면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참정권은 그렇지 않다.

투표를 못 하고 돌아간 그 사람의 한 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했지만

줄을 서다 포기하고 집으로 걸어 돌아간 유권자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선관위 사무총장의 사과는,

그 한 표를 대신하지 못한다.


경찰 출신 변호사 김재헌은

"선거인 수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는 선관위가

적정 수량을 확보하지 못한 건

중대한 과실에 해당할 수 있다"며

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바카라위원회는 선관위원장,

사무총장 등을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고,

이후 업무상횡령·배임 혐의로 추가 고발까지 했다.


경찰은 수사 배당을 검토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다음 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관계기관은 행정부가 가진 권한과 바카라임을 모두 사용해서

문제 발생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바카라임질 것이 있다면 명확하게 바카라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외부 전문가 위주의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조계의 냉정한 평가는 달랐다.

선관위 관계자에 대한 실제 처벌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이미 나왔다.


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과 권한이 어디까지일지,

그 결과가 실질적인 바카라임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헌법소원을 낸다 해도 결과가 나오려면 수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선거는 이미 끝나 있다.


4,011표와 14개 투표소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역전 당선으로 끝났다.


최종 표 차이는 4,011표였다.

출구조사는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 51.4% 대

오세훈 후보 46.0%로 오차범위 밖의 차이를 예측했다.

개표 초반 최대 30%포인트 차이가 났다가,

자정 이후 급격히 좁혀지더니

오전 7시 17분에 역전이 일어났다.


서울시장 선거는 경남지사 선거와 함께

"출구조사가 완전히 빗나간 사례"로 기록됐다.


피해 투표소 14곳의 위치를 보면,

송파구 12곳, 강남구 1곳, 광진구 1곳이다.

이 지역들은 역대 선거에서 일관되게

국민의힘 강세를 보인 곳들이다.


가장 먼저 민원이 제기된 잠실2동 제6투표소의 경우,

직전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 득표율이 75.4%였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밤 10시까지 연장된 잠실7동 제2투표소도 같은 지역이다.

이것이 결과를 바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꿀 수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4,011표라는 차이는,

선관위 추산 14곳 피해 투표소에서

대기하다 포기하고 돌아간 유권자의 총합이

그 숫자를 넘는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수학적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리고 그 피해 규모는 영원히 확정되지 않는다.

투표 못 하고 돌아간 사람의 수를

선관위도, 경찰도, 법원도 정확히 셀 수 없다.


파장은 더 넓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뿐 아니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선거도 동시에 치러졌다.


충주시장 선거는 124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기초단체장은 수백 표 차이로 결판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초의원 선거는 100~200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선관위 스스로도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간 사례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서울 외곽 구의원,

동의원 선거에서 그 수십,

수백 표의 이탈이 결과를 뒤집은 투표소가 없었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출구조사 이후 4시간의 투표


이번 사태에서 가장 조용히 묻힌 문제가 있다.

법과 원칙이 충돌한 4시간이다.


공직선거법 제155조는 규정한다.

투표 마감 시각에 투표소에서 대기 중인 선거인은

번호표를 발부받아 투표할 수 있다.


연장 자체는 합법이다.

그런데 같은 법 제241조는

출구조사 결과를 투표 마감 시각 전에 공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출구조사 공표를 마감 이후로

제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결과를 미리 알고 투표하면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두 조항은 충돌하지 않는다.


마감 시각 직전에 대기하던 유권자가

투표를 마치는 데는 수십 분이면 충분하고,

출구조사는 마감 후에 공개된다.


그러나 이번처럼 투표소 운영 부실로

오후부터 투표용지가 바닥나고

유권자들이 수 시간씩 대기한 상황은 다르다.


잠실7동 제2투표소의 경우

번호표를 받은 유권자에 한해

밤 10시까지 투표가 진행됐다.

오후 6시에 공개된 출구조사 결과는

이미 서울 전역에 퍼진 상태였다.


밤 8시, 9시, 10시에 투표한 유권자들은

정원오가 앞서고 있다는 것을,

어떤 지역에서 누가 이기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선거법이 출구조사 공표를 금지한 취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가

그날 밤 4시간 동안 사실상 무력화됐다.


선관위의 준비 부실이 법의 원칙을

우회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정당하게 제기할 근거가 된다.


같은 날 두 가지 사태


같은 날,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전남 목포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 A씨가 본투표에도 참여했다.

투표 사무원이 선거인명부에서

사전투표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전남도선거관리위원회는

A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투표용지가 없어서 투표를 못 한 사람이 있는 동시에,

두 번 투표한 사람도 있었다.

한쪽은 참정권 침해,

다른 쪽은 선거 부정의 가능성이다.


같은 날,

같은 선거에서.


투표용지 수량 계산도 못 하고,

이중투표 방지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선관위의 관리 부실이 양쪽에서 동시에 드러난 하루였다.


독립이라는 이름의 성역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에 근거한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총 9인으로 구성된다.


임기는 6년이며,

위원장은 관례상 대법관이 맡는다.


국회·행정부·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일선 시·군·구 위원회는 직원이 6~10명에 불과하다.

이 독립성의 역사적 맥락은 분명하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으로,

어느 권력도 선거를 좌우할 수 없도록

1963년 헌법기관으로 격상된 것이다.


그러나 독립은 외부 통제를 차단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하고,

내부 바카라임은 설계되지 않았다.


2023년 이 구조의 결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선관위 고위 간부 자녀들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터졌다.


퇴직 간부 4명의 자녀가 모두

아버지 소속 근무지에 채용됐고,

강원선관위 간부의 친동생도

경력 채용된 뒤 초고속 승진했다는

이른바 '형님찬스'까지 이어졌다.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라며 위원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감사원이 "감사 거부 시 고발하겠다"고 맞서자,

선관위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헌재는 선관위 손을 들어줬다.

"선거관리에 대해 정부가 영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게 헌법의 취지"라는 이유였다.


다만 헌재도 "이번 결정이 선관위를 부패행위의 성역으로

인정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결과는 성역이었다.

감사원이 투입한 감사관 51명의 현장 감사에 대해

선관위가 보내온 답변서는,

감사원 관계자 말대로

"보고서에 기재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구조적 모순은 더 있다.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겸직하는 것이 관례인데,

선거 소송은 법원에서 처리한다.


선거범죄를 고발하는 기관의 수장이

그 사건을 심판하는 법원의 구성원이 되는 셈이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리를

위반한 구성이라는 비판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공식 제기됐을 정도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언론사들은

이번 사태를 보도하면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경제는 제목에서 이미 답을 냈다.


"선거 때마다 사고치더니,

해체 요구 자초한 선관위."


독립은 설계됐지만

바카라임은 설계되지 않았다.

그리고 바카라임이 없는 독립은 무바카라임이다.


독일은 재선거를 명령했다


2021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총선과 지방선거와

주민투표가 동시에 진행됐다.


한국과 판박이 상황이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

다른 지역 투표용지가 배부됐다.


장시간 줄을 서다 포기하고 돌아간 유권자가 속출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된 이후에도 투표가 이어졌다.


야당들이 이의를 제기했고,

독일 헌법재판소는 2년 뒤인 2023년 12월 판결했다.


"선거 준비와 시행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2256개 투표구 중 455개 투표구에서

재선거를 실시하라는 명령이었다.


독일은 행정 오류가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면

표 수와 무관하게 선거 자체의

정당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영국도 2010년 총선에서

일부 선거구의 투표용지 부족 등으로

재투표가 이뤄진 사례가 있다.


오스트리아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편투표 봉투 처리 문제 하나로

전국 재투표를 실시했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나.

선관위 사무총장이 브리핑을 열어 사과했다.

선관위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재선거를 요구했다가

오세훈이 역전 당선되자 조용해졌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선관위 해체를 외치던 보수 성향 유튜버와

시민 350여명이 잠실7동 제2투표소 입구를

봉쇄하는 장면이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같은 사태,

완전히 다른 결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선거를

헌법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해 관리한다.

비리나 오류가 발생하면

수사와 의회의 통제를 받는

안전장치가 있다.


한국은 1960년 3.15 부정선거의 트라우마로

헌법에 선관위를 못 박았고,

그 결과 외부 견제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졌다.


역사적 반성이 60여 년 뒤에는

새로운 문제의 원인이 된 셈이다.


불신은 이미 3분의 1을 넘어섰다


이번 사태가 더 위험한 이유는

진공 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12.3 계엄 이후 MBC·YTN·시사IN이

한 달 간격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3분의 1이 부정선거를 믿는다는

결과가 반복해서 나왔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계엄 옹호·부정선거 의혹 세력과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였다.


대다수는 음모론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3분의 1은 여전히 선거가 조작됐다고 믿는 상태다.


기존의 부정선거 음모론에는 반박할 팩트가 있었다.


증거가 없다,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참관인들이 전부 공모해야 성립한다.


이런 논리로 반박이 가능했다.

이번은 다르다.


선관위가 스스로 의심받을 빌미를 만들었다.

투표용지가 실제로 부족했다.

투표가 실제로 멈췄다.

유권자가 실제로 돌아갔다.

피해 지역이 실제로

특정 정파 강세 지역에 집중됐다.

최종 표 차이가 실제로 4,011표였다.


음모론자들에게 이번 사태는

팩트로 포장된 연료다.


"봐라, 역시 이상하지 않냐"는 주장에

이전보다 반박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파이낸셜뉴스는 사설에서 썼다.

"선관위는 오해 말라고 말하는 기관이 아니다.

오해가 생길 틈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기관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한 번의 사건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매 선거마다 작은 균열이 쌓인다.


역대 최다 투표자가 나왔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참여하고자 했다는 뜻이다.


그 의지를 선관위는 절반짜리 준비로 맞이했다.

한국경제는 이 구조를 정확하게 짚었다.

"헌법기관 외부 견제 사각지대 탓."

바카라임을 물을 곳이 없으니,

이번에도 진상규명위원회 발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4년 뒤 다음 선거에서

"어차피 가봤자"라는 말이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들릴 것이다.


정치는 끝났고, 문제는 남았다


이 사태의 이력을 정리하면 이렇다.

선거 당일 국민의힘은 출구조사에서

오세훈이 뒤지자 개표 중단과 재선거를 요구했다.


"오염된 선거로 무효"라고 했다.

오세훈이 역전 당선되자 요구는 사라졌다.


선거 다음 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긴급 국정조사를 제안했고,

민주당은 사무총장 거취를 언급하며

바카라임을 물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매우 큰 유감"과 "명확한 바카라임"을 말했다.

선관위는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 사태 내내

청와대의 실질적 침묵은 눈에 띈다.


지난달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때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직접 비판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행안부 주최 행사에서

스타벅스 상품권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여당은 선거 후보자들에게 이용 자제령을 내렸다.


민간 기업의 마케팅 실수에는 정부가 총동원됐다.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이 실제로 침해된 사태에서

선거 당일 청와대는

"엄정히 주시하고 있다"는

한 줄 논평을 냈다.


재선거 가능성이 없는

결과가 나온 뒤에야 유감을 표했다.


양당 모두 참정권을 승패 계산기로 다뤘다.

유리하면 꺼내 들고,

불리하면 집어넣는 카드.


피해는 투표 못 하고 돌아간 유권자들이 봤는데,

정치는 자기 이익 계산이 끝나자 이 문제를 내려놨다.


다음 선거에도 이 나라는 선관위를 믿어야 할까?


선관위는 이번에 세 가지를 동시에 보여줬다.


첫째, 역대 최다 투표자가 나온 선거에서

투표용지를 절반만 준비하는 예측 실패.


둘째, 사전투표 이중투표 방지 시스템의 오작동.


셋째, 출구조사 공개 이후

4시간 투표가 진행되는 공정성 훼손.


세 가지 모두 선거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사안들이다.


이 기관에 대한 외부 감사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사실상 차단됐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도

선관위 스스로 설치하는 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다.

채용 비리도 자체 조사했던 선관위가

자신의 실수를 자신이 조사한다.


인사도 독립,

예산도 독립,

감사도 독립,

바카라임도 독립이다.


3850억원의 예산을 쓰고,

투표용지를 절반만 인쇄하고,

감사를 거부하고,

진상규명위원회로 마무리하는 기관이

4년 뒤에도 이 나라의 선거를 관리한다.


그때도 선관위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그리고 그때도 투표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 한 표에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한 표는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