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짜리 민주주의

분산이라는 이름의 참여

by다소느림

5월 30일 오후 6시 정각,

전국 3,578개 사전투표소의 문이 닫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잠시 후 발표한 수치는 23.51%였다.

6·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최종 사전투표율.


유권자 4,464만 9,908명 중

1,049만 8,411명이

이틀 사이에 기표소를 거쳤다.


지방선거 기준 역대 최고치.

종전 기록이었던 2022년 8회 지방선거의

20.62%를 2.89%p 웃돌았고,

사전투표 제도가 전국 단위로

처음 도입된 2014년 6회 지방선거의

11.49%와 비교하면 12년 만에 두 배를 넘었다.


언론은 '열기'라는 단어를 썼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숫자를

지지층 결집의 증거라 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심판 민심의 분출이라 해석했다.


두 진영이 동일한 숫자를 앞에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았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사전투표율이 높을수록 저희 당은

고무적으로 생각한다"고 했고,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내 집과 내 재산을 지키려는

유권자의 행렬"이라고 했다.


같은 숫자,

완전히 다른 언어.


그 순간부터 23.51%라는 수치는

더 이상 사전투표율이 아니었다.

각자의 서사를 채우는 재료였다.

그리고 그 재료가 무엇을

실제로 측정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숫자의 용도


사전투표 제도의 도입 논리는 단순했다.


투표율이 무너지고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선거들에서

투표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1996년 15대 총선 투표율은 63.9%로

직전 총선 대비 8%p 급락했고,

2008년 18대 총선은 46.0%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념 성향이 약한 중도 유권자의 증가,

정치 불신의 심화,

정당 일체감 약화,

투표 효능감 저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기존 부재자투표 제도로는

이 하락을 막을 수 없었다.


부재자 신고를 미리 해야 하고,

정해진 투표소에서만 가능하고,

신고하면 본투표를 포기해야 하는 구조였다.


2012년 19대 총선의 평균 부재자 투표율은

총 선거인 대비 1.7%에 불과했다.

참여를 늘리려고 만든 제도가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2012년 2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됐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별도의 신고 없이 신분증만 있으면

투표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전국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것.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이라는 IT 인프라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적용됐고,

2014년 6월 전국 단위로 전면 실시됐다.

결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2014년 11.49%에서

2018년 20.14%,

2022년 20.62%,

2026년 23.51%로

매 선거마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총선에서는 2016년 12.19%에서

2020년 26.69%,

2024년 31.28%로 뛰었다.


대선은 2017년 26.06%에서

2022년 36.93%로 올랐다.


학술 연구에서 추정한 사전투표 제도만의

순수한 투표율 제고 효과는

2014년 1.47%p,

2016년 4.83%p,

2017년 5.56%p,

2018년 4.31%p,

2020년 5.36%p였다.


숫자만 보면 성공한 제도다.

그런데 이 숫자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다.


전체 투표자 중 사전투표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2014년에는 전체 투표자의 20%만이 사전투표를 선택했다.

그런데 2020년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이 비율은 40%를 넘는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투표한 사람 중 47%가 사전투표자였다.

투표한 두 명 중 한 명은

본투표일이 아닌 날 찍은 셈이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전투표가 '원래 안 갈 사람을 끌어내는 장치'에서

'어차피 갈 사람의 날짜를 바꾸는 장치'로

기능이 이동하고 있다는 가능성이다.


물론 두 효과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전투표자 비율이 47%에 달한다는 사실은,

사전투표율이 오른다는 것이 곧

'더 많은 사람이 투표에 참여한다'는 의미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더 결정적인 수치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 기준 미결정층은 12.5%였다.

4년 전 같은 조사에서 6.5%였던 수치가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사전투표율은 역대 최고인데,

누굴 찍을지 모르는 사람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더 많은 사람이 투표장으로 향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확신 없이 향했다.

참여는 양적으로 팽창했고,

확신은 희박해졌다.


MBC 데이터 전문기자의 분석은

이 구조를 명확히 짚었다.


사전투표율이 최고치라도

최종 투표율이 최고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투표일을 사전투표일까지 포함한

3일로 인식하면서 분산 투표하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분석이 제시한

이번 선거 최종 투표율 전망은 53~55%.

역대 지방선거 최고치였던 2018년의 60.2%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수치다.


60%를 넘기 위해서는

본투표율이 36.49% 이상이어야 했다.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인데

최종 투표율 전망은 그에 못 미친다.

그 공백 어딘가에,

이 숫자가 포착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투표율이라는 단일 지표는

참여와 확신을 구분하지 않는다.


23.51%는 열기의 수치이기도 하고,

분산의 수치이기도 하며,

확신 없는 동원의 수치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숫자는 말해주지 않는다.


절박함의 농도


전남 38.95%.

대구 18.65%.


두 지역 사이의 격차는 20.3%p다.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

이 숫자를 지역감정으로 읽는 것은

너무 낡은 독법이다.


전남과 대구가 정치적으로 다른 곳이라는 사실은

1987년부터 알려진 것이다.

지금 이 격차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구체적인 무언가다.


4년 전과의 비교가 핵심이다.

2022년 8회 지방선거 사전투표율과

이번 수치를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다.


전북은 24.41%에서 35.05%로

10.64%p 올랐다.

광주는 17.28%에서 27.83%로

10.55%p 뛰었다.

전남은 31.04%에서 38.95%로

7.91%p 상승했다.


전국 평균 상승폭이 2.89%p라는 점을 고려하면,

호남 3개 시도의 상승폭은

평균의 3배에서 4배에 이른다.


반대편에는 경북이 있다.

22.42%를 기록한 경북은

4년 전(23.19%)보다 0.77%p 하락했다.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사전투표율이 전 선거보다 떨어진 지역이다.


대구는 18.65%로 전국 최저였다.

4년 전보다 3.9%p 올랐지만,

전국 평균에 훨씬 못 미쳤다.


이 수치들을 지역별로 나열하면

전체 그림이 보인다.


전남 38.95%

전북 35.05%

광주 27.83%

세종 27.67%

강원 27.05%

경남 24.64%

서울 23.84%

충북 23.56%

제주 22.87%

대전 22.53%

충남 22.48%

울산 22.46%

경북 22.42%

인천 21.62%

부산 21.29%

경기 20.96%

대구 18.65%.


수도권 3개 시도는 서울 23.84%,

인천 21.62%,

경기 20.96%로

전국 평균 안팎에 머물렀다.


경기는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도(1,187만 8,997명)에서

249만 302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해

20.96%를 기록했다는 것은,

이번 선거의 열기가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특히 호남에 집중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격차를 단순한 지역 구도로 소비하면 안 되는 이유는,

호남의 급등이 갖는 정치적 맥락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탄핵 이후 치러지는

첫 전국 단위 선거다.

12·3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정치적 에너지가 특정 방향으로 압축됐다.


호남에서 그 압축이 사전투표율이라는 수치로 표출됐다.

절박함에는 단위가 있다.

그 단위가 %p로 환산되면 10을 넘는다.


경북의 하락은 다른 방향의 이야기다.

사전투표 불신론이 보수 지지층 안에서 확산되면서

의도적으로 사전투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본투표 선택 비율(52.6%)이

사전투표 선택 비율(47.4%)보다 높았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전투표율이 하락한 경북은

그 경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 지역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경북의 하락은 무관심이 아니라,

불신이 만든 선택적 이탈에 가깝다.


동시 실시된 국회의원 보궐선거

14개 선거구의 사전투표율은 24.12%로,

지방선거 전체 평균을 0.61%p 웃돌았다.


최대 격전지로 꼽힌 부산 북구갑은 25.57%를 기록했다.

정치적 관심이 집중된 선거구에서

사전투표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은,

이 수치가 정치 온도계로서의 기능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절박함은 숫자로 나타난다.

다만 그 숫자를 읽는 방법은

17개 시도마다 다르다.


패배를 설명하는 방법


사전투표를 둘러싼 가장 무거운 맥락은

투표율이 아니라 신뢰다.


2024년 22대 총선 직후

동아시아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선관위의 전반적인 투표 관리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59.8%였다.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8.2%,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5.7%였다.

합산하면 33.9%.


유권자 3명 중 1명이 선관위를 믿지 않는다는 수치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 관리 기관에 대한 불신이

유권자 3분의 1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은,

단순한 여론 통계가 아니다.

제도 작동의 전제 조건이

균열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 불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추적하면

하나의 기점으로 수렴한다.


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가져갔다.

미래통합당은 103석에 머물렀다.

보수 진영의 참패였다.


패배에는 설명이 필요했다.

후보의 문제도,

메시지의 문제도,

구도의 문제도 아닌

다른 설명이.


그것이 사전투표에서 발견됐다.

사전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본투표보다 높게 나온다는 통계적 현상.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이것을

조작의 증거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논리는 이렇다.

사전투표자와 본투표자는 같은 유권자 집단이므로

대수의 법칙에 따라 득표율이 동일해야 한다.

다르게 나왔다면 누군가 개입했다는 뜻이다.


이 전제는 통계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대수의 법칙은 동일한 조건에서의

반복 시행에 적용되는 원리다.


사전투표자와 본투표자는

처음부터 동질 집단이 아니다.

사전투표에는 온라인 게임인, 청년층, 화이트칼라의 참여율이 높고,

이들의 정치 성향 분포는 전체 유권자 평균과 다를 수 있다.


같은 선거를 치르지만,

다른 집단이 다른 날 투표한다.

그러면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조작이 아니라 표본의 차이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제기한 선거무효소송은

2022년 7월 28일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판결문은 명확했다.

"원고가 비정상 투표지라고 골라낸

투표지에 대한 감정 결과

정상 투표용지에 기표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전국 253개 선거구에 동시에

위조된 사전투표지를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통상적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이 주장이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 판결문에 명시했다.


판결문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이기지 못했다.

음모론은 근거가 기각될 때마다

새로운 주장을 생산했다.


서버 해킹, 중국 개입, 투표함 바꿔치기.

반박이 음모론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반박 자체가 선관위의 은폐 시도로 재해석됐다.

이미 신앙의 단계에 진입한 구조 앞에서

팩트 체크는 설득력을 잃는다.


이준석 당시 최고위원이 반박에 나섰을 때,

그는 자신의 발언 일부가 잘려나가

'논리 박살남'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으로

재유통되는 것을 경험했다.


음모론이 유튜브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정치권 안으로 진입하는 데는 4년이 걸렸다.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사전투표 폐지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두 건 발의했다.


김민전 의원은 "선거관리의 연속성,

선거절차의 투명성·공정성을 담보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를 댔고,

장동혁 의원도 별도 법안을 제출했다.

유튜브 댓글이 입법 의제로 전환됐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여야 대표 모두 사전투표를 했고

공개적으로 참여를 권유했다.

폐지를 주장하는 정당이

참여를 독려하는 자기모순.


이 모순은 음모론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방식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의심은 선거 패배 후에 소환되고,

승리가 예상되면 침묵한다.


이 구조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

22대 총선에서 음모론자들의 전제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민주당이 사전투표를 조작한다는 주장을 믿고

사전투표를 회피했던 보수 지지층이

막상 사전투표장에 대거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전투표가 민주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공식 자체가 깨졌다.

음모론이 만든 행동이

음모론의 전제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제도 개선이 불신을 잠재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번 선거에서 나왔다.

선관위는 6·3 지방선거에서 사용할

사전투표함 받침대를 투명 재질로 바꿨다.


이유는 명확했다.

기존에는 흰색 플라스틱 받침대 위에

천 주머니 형태의 행낭이 올려지는 구조였는데,

투표 종료 후 개표소로 이동할 때

내부 행낭만 분리해 이송하는 모습이 촬영되면서

"투표함이 바꿔치기됐다"는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받침대를 투명으로 바꾸면

행낭의 존재 자체가 눈에 보이니

그 의혹을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 개선 조치는 음모론의 구조 안에서

역설적으로 작동한다.


받침대를 투명으로 바꿨다는 사실 자체가,

이전까지 뭔가 불투명하게 운영됐다는

방증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자 입장에서는

"우리가 문제를 제기했더니 결국 바꿨다,

그러면 전에는 무언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리로

이 개선을 소비할 수 있다.


투명성 강화가 의혹의 소재가 되는 역설이다.

제도를 개선하면 "전엔 문제가 있었다는 거냐"가 되고,

개선하지 않으면 "왜 안 바꾸냐, 숨기는 거냐"가 된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불신에 재료를 제공한다.

반박이 증거가 되고,

개선이 자백이 되는 구조.


이것이 이 불신이 팩트 체크나

제도 개선으로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다.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했다.

6명의 군인이 전산실에서 통합명부시스템 서버와

보안장비가 구축된 컨테이너 서버의 사진을 촬영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체포 직후

공개한 자필 편지에는 12·3 비상계엄 선포 이유 중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이 명시돼 있었다.


극우 유튜브에서 수년간 요구해온 선관위 서버 확인을,

국가 공권력이 계엄이라는 형식으로 실행했다.


음모론이 국가 행동의 근거가 된 순간이었다.

이 5년의 경로를 요약하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선거 패배 → 설명의 필요 → 음모론 생산 → 콘텐츠 유통 → 정치인 동조 → 입법 의제화 → 국가 행동.


사전투표 제도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이 제도를 겨냥한 것이다.

불신의 대상은 선관위가 아니었다.

선거 결과였다.


선관위는 그 불복의 언어가

착지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표적이었다.


이 사실을 가장 냉정하게 증명하는 것은 또 다른 데이터다.


22대 총선 직후 조사에서 사전투표와

당일 투표 선택 비율을 정당 지지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지지자의

65% 이상이 사전투표를 선택했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본투표 선택자(52.6%)가

사전투표 선택자(47.4%)보다 근소하게 높았다.


제도에 대한 불신과 투표 방식 선택이

정치적 성향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제도를 의심하는 사람과

제도를 회피하는 사람이 같은 집단이다.


불신은 증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에서 나온 것이다.


1049만 명의 선거


사전투표율 23.51%와

선관위 불신 33.9%는 같은 시대의 수치다.


1960년 부재자투표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참여율은 총 선거인의 3~4%에 불과했다.

신고 절차가 번거롭고,

신고하면 본투표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52년이 지난 2012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신분증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나

별도 신고 없이 투표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적용됐고,

2014년부터 전국 단위로 운영됐다.


그해 처음 치러진 사전투표에서

11.49%의 유권자가 참여했다.

역대 지방선거 최고치라고 했다.


12년이 지난 2026년,

사전투표율은 23.51%가 됐다.

역대 지방선거 최고치라고 한다.


이 말은 2014년부터 매 지방선거마다 반복됐다.


2018년 20.14%도,

2022년 20.62%도

모두 '역대 최고치'였다.


지방선거마다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수순이 됐다.

역대 최고치라는 표현이

뉴스가 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 1,049만 명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기표소에 섰을까.

그리고 그 결과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뢰할 준비가 됐을까.


제도가 도입되고 참여는 두 배가 됐다.

그런데 신뢰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히려 제도의 성장과 불신의 확산이

같은 시간 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참여와 신뢰는 다른 축이다.

더 많은 사람이 투표장을 찾는다고 해서

더 많은 사람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라는 사실과

유권자 3명 중 1명이 선관위를 불신한다는 사실은 모순이 아니다.

동시에 성립하는 두 가지 현실이다.


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될 때의 목표는

투표 참여를 늘리는 것이었다.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

투표 행위는 더 편리해졌고,

더 많은 사람이 더 이른 날 기표소를 거친다.


그런데 편의가 의미를 대체하지는 않는다.

투표가 쉬워진 만큼,

투표를 통해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감각도

함께 쉬워졌는지는 다른 문제다.


역대 지방선거 최종 투표율은

2002년 월드컵 기간에 겹쳤던

3회 지방선거에서 48.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그해 한국 축구 대표팀은 4강에 올랐고,

국민의 관심은 온통 경기장에 쏠려 있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26년,

사전투표율은 역대 최고를 찍었다.

그러나 최종 투표율 전망은 53~55%에 머물렀다.


사전투표가 본투표를 대체하는 만큼,

본투표의 의미가 희석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49만 명이 이틀 동안 사전투표소에 섰다.


그들 각자가 어떤 이유로,

어떤 확신으로,

혹은 어떤 불확신을 안고

그 줄에 섰는지를 23.51%라는 숫자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를 누가 받아들이고

누가 거부할 것인지도 이 숫자는 예고하지 않는다.

투표함은 가득 찼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개표가 끝난 뒤에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