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 그리고 우리가 반복하는 실수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
분명히 처음인데,
이미 겪은 것 같은 감각.
데자뷰는 뇌의 착각에서 비롯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불매운동은 착각이 아니다.
정말로 반복된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구조로,
같은 결과로.
분노한 사람들은 매번 다르지만,
청구서를 받는 사람들은 매번 같다.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 코리아는
'탱크 시리즈' 텀블러 할인 행사를 시작했다.
공식 홍보물에는
'탱크데이'라는 문구와 함께
'5/18' 날짜가 강조됐고,
'바카라상에 탁!'이라는 표현이 포함됐다.
분노는 당연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
탱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한 장의 홍보물에 담겼다.
광주 시민들의 분노는 감정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의 반응이었다.
그 분노는 정당하다.
이 글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정당한 분노가 항상
정당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즉시 사과했다.
미국 본사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희생자와 유가족,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모든 분들을
기리는 이들에게 깊은 고통과 불쾌감을 준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은
손정현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을 해임하고
직접 사과문을 냈다.
"이 일에 대한 모든 바카라임이 저에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룹 수뇌부를 광주로 직접 보냈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상황의 결이 달라졌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기념일에도
유사한 '미니 탱크 데이' 행사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탱크 텀블러 시리즈의 규격이
달라진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우연이 두 번 반복됐다.
통계적으로 두 번의 우연은
이미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참사 기념일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두 번의 국가 추모일에 정확히
'탱크'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이벤트가 배치됐다.
이것이 순수한 일정 충돌이라면,
달력을 보지 않는 마케팅 팀이거나
역사를 모르는 기획자여야 한다.
두 가지 모두 대한민국 기업의
마케팅 전문가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스타벅스 코리아 규모에서 마케팅 기획은
통상 4~5단계의 결재 라인을 거친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팀장을 거치고,
본부장을 거치고,
임원을 거쳐 대표이사에게 최종 보고된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핵심 쟁점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5단계 결재 라인 중
어느 선에서 논란 가능성을 인지했는지.
만약 수사 과정에서 특정 단계의 결재권자가
문제를 인지하고도 "그냥 진행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포착된다면
역사 왜곡 및 명예훼손 혐의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반대로 전 라인이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면
신세계와 스타벅스는 '시스템 부재'라는
뼈아픈 경영상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이수한 성인들로
이루어진 마케팅 전문가 집단이
5월 18일에 '탱크데이'라는 문구를
단 한 명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다 같은 기초교육을 받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5·18을 배웠다.
완전한 고의냐, 묵인이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조직적 묵인은
계획적 의도보다 더 나쁘다.
의도는 한 사람의 문제지만
묵인은 조직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오이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않는다.
의도가 없었다는 해명은
이 오래된 원칙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의도했든 아니든,
의심받을 만한 상황을 만든 것은
본인들의 잘못이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사과의 내용보다 사과하는 사람의 평소 행적이
메시지를 덮어버리는 상황이 있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은 SNS에서
직접 보수 논객들과 소통하고
특정 정치적 색채를 숨기지 않아온 오너다.
그 사람이 5·18 관련 사안에서 사과를 한다.
대중 입장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평소에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기 때문에
위기 때 진정성을 증명하기가
훨씬 어려운 위치가 된 것이다.
이것을 학술적으로는 '오너리스크'라고 부른다.
2023년 재무관리연구에 발표된 연구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상장기업 오너의 위법행위를
20년간 추적 분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오너의 혐의 발생과 구속 판결 시점에
기업가치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하락이 존재했다.
특히 주가조작, 횡령·배임, 내부자거래 유형에서
기업가치 하락이 두드러졌다.
카지노, 남양유업, 태광산업 등
주식시장에서 오너리스크가
주가를 끌어내린 사례는 반복돼왔다.
남양유업의 경우 일가의 계속된 오너리스크로
홍원식 회장이 경영권 자체를 넘기는 상황까지 갔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오너리스크 인식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5.2%가
평소 평판·신뢰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오너 중심 경영 체제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도
68.8%에 달했다.
SNS가 발달한 시대에
오너의 개인 이미지가
기업 브랜드와 동일시되는 경향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긍정적일 때는 자산이지만,
부정적일 때는 부채가 된다.
이번 논란이 오너가 대중에게
거의 노출되지 않은 다른 대기업에서
똑같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대표 해임하고 사과하면
아마 훨씬 빠르게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신세계 정용진 회장의 문제였다.
수년간 파격적인 개인 브랜드를 쌓아온 결과,
위기 때 모든 사건이 오너의 인격과 연결되어 해석됐다.
SNS에서 정치적 발언을 철저히 자제해온
삼성 이재용 회장이 노조 파업 사태에서 직접 나섰을 때
"이 사람이 직접 나왔다"는 무게가 달랐던 것과 정확히 대비된다.
오너리스크의 본질은 신뢰 자산의 문제다.
기업 오너의 평소 행동이 위기 대응의
자산이 되기도 하고 부채가 되기도 한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은 이번에 그 부채를 한꺼번에 지불했다.
평소에 미운털이 박힌 것이 이번에 터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채가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혼자 지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마트 주가는 논란이 발생한 5월 18일 이후
이틀 동안 10.8% 하락했다.
시장은 신세계 정용진 회장의 개인 신뢰 문제를
이마트 전체의 기업가치 문제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 주가 하락의 피해는 주주들,
특히 소액 주주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오너리스크는 오너만의 리스크가 아니다.
분노가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불매운동이 작동하는 방식에는
구조적 맹점이 있다.
피해가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되,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사람은
가장 나중에,
가장 작게 맞는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규모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2024년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3조 1001억원을 돌파했다.
매장 수는 2009개로,
사흘에 한 개꼴로 새로운 점포가 생겼다.
2020년 이후 매장을 500개 늘리는 데
4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급여 지출만 3943억원에 달한다.
임차료 2543억원, 복리후생비 1015억원, 수도광열비 352억원.
이 돈이 전부 국내에서 순환한다.
임대인에게, 직원 통장으로, 지역 공과금으로.
직접 고용 규모도 상당하다.
하루 평균 30만 명 이상의 고객을 응대하는
2000개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파트타이머까지 합치면
수만 명이 이 생태계에 연결돼 있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바리스타들은
스타벅스 코리아의 직원이기도 하지만
신세계 소속으로서 그룹 임직원 복지를 받는 구조다.
연장근무가 생계의 일부인 이들에게
발주량이 줄어드는 것은
이번 달 통장 잔액의 문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타벅스에 납품하는 업체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우유, 두유, 시럽, 원두, 빨대, 컵, 뚜껑, 냅킨, 베이커리 식재료까지.
이 납품업체들 대부분은 스타벅스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이다.
발주량이 20~30%만 줄어도 직격탄이다.
스타벅스가 입점한 건물의 임대인과
주변 상권도 영향권에 들어온다.
스타벅스 자체가 집객 효과가
강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들어서면
그 상권 전체의 유동인구가 달라진다.
스타벅스가 비어가면 주변 매장도 함께 조용해진다.
여기서 결정적인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스타벅스 본사는 2021년 이마트에 지분을 매각했지만
여전히 매출의 약 5%를 로열티로 수취한다.
2024년 매출 3.1조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1500억원 이상이 로열티로
미국 본사에 지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연간 영업이익과 맞먹는 수준이다.
불매운동으로 스타벅스 코리아 매출이 줄면,
줄어드는 것은 국내 파트타이머의 근무 시간이고
국내 납품업체의 발주량이다.
반면 미국 본사가 가져가는 로열티 비율 자체는 그대로다.
국내 종사자가 훨씬 더 크게 맞는 구조다.
정용진 회장은 지분을 들고 배당을 받는 구조라,
매출이 일정 수준 하락해도
본인 생활에 직접적 타격이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반면 파트타이머는 이번 달 근무표부터 바로 영향이 온다.
분노의 대상과 피해의 대상이
정확히 반대로 뒤집혀 있는 구조다.
실제로 스타벅스 코리아 내부에서도
이 목소리가 나왔다.
온라인 게임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스타벅스 코리아 직원으로 추정되는 글이 올라왔다.
"너 때문에 피해 보는 파트너만 몇천 명이다.
연장이 필요한 파트너는
연장이 끊겨서 생계가 힘들어지고
점장님들은 죄다 근무계획과
매출계획을 수정해야 하고."
이 글이 불매 선동 게시물보다
덜 공유됐다는 사실이 이 사태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 구조는 전혀 새롭지 않다.
2008년 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타결하자
촛불집회가 106일 동안 지속됐다.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다룬 방송을 내보냈고,
청소년부터 가족 단위 시민들까지
광화문을 가득 채웠다.
분노는 이명박 정부를 향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가 명분이었다.
그런데 그 분노의 경제적 비용은 누가 치렀는가.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촛불시위의 슬롯적 비용'에 따르면
청계광장과 종로 등 시위 장소 주변 상인들이
영업손실 등으로 9042억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
직접적 경제 피해는 1조 574억원,
간접 피해는 2조 6939억원으로
총 3조 7513억원에 달했다.
당시 GDP의 0.4%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작 협상의 바카라임자인 정부는
시위가 수그러들자
일부 재협상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가장 큰 피해는
광화문 인근 자영업자들과 시민들이 치렀다.
광우병 사태의 또 다른 특징은
과학적 사실보다
공포가 먼저 작동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과학적 확실성의 관점에서
광우병을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받아들였지만,
시민들은 불특정한 공포의 맥락에서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2012년 이후
단 한 건의 인간 광우병 발병 사례도 나타나지 않았다.
분노는 정당한 배경에서 시작됐지만,
그 분노를 증폭시킨 정보 상당 부분은
과장되거나 왜곡됐다.
청구서는 결국
시위 주변의 상인들이 치렀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했다.
국민들은 '노재팬'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안 사고, 안 팔고, 안 먹고, 안 가는 운동이었다.
유니클로 매장 앞에 불매 시위대가 모였고,
일본 여행 예약 취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인의 일본 여행 상품 판매율은
30% 감소하고 예약 취소가 70% 증가했다.
그 분노는 정당했다.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은 실재했다.
한국 정부가 주도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도
이 시기에 가속됐다.
일부 분야에서는
실질적인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불매운동의 경제적 결과를
4년 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노재팬의 표적 중 하나였던 유니클로는
한때 영업이익이 884억원 적자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2022년 매출 8036억원으로
한국 SPA 브랜드 매출 순위 1위를 탈환했다.
영업이익은 116.8% 증가했다.
오히려 불매운동을 기회로
매출이 부진한 점포를 정리하고
신규 상권에 매장을 오픈하는
효율화 정바카라을 펼친 결과였다.
아사히 맥주는 수입 맥주 판매 1위를 탈환했고,
토요타와 렉서스의 한국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해
누적 30만 대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일본 방문 한국인은 전년 대비
크게 증가해 방문국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전국 소상공인 3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일본 불매운동 관련 소상공인의 71.5%가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이는 같은 시기 일반 소상공인
평균 매출 감소 응답률 58.4%보다
13.1%포인트 높았다.
일식점과 여행업에서는 각각 82.7%, 81.1%가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30% 이상 매출이 감소했다는 응답도
15.8%에 달했다.
일본 쓰시마섬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던 한인들은
관광객 70% 감소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을 타격하려다
일본에서 사업하는 한국인이 피해를 본 것이다.
노재팬은 또 다른 문제를 드러냈다.
불매운동이 진보 진영과 시민단체가 주도하면서
반일 감정과 함께 반보수 프레임으로 확장됐다.
일부 매체나 인사들은
"일본 제품 사는 건 매국이다",
"유니클로 입는 사람은 친일파"와 같은 강한 주장을 했다.
결과적으로 불매운동은 정치적 진영 논리 속에 갇혀버렸다.
유니클로가 살아남은 것은
소비자들이 결국 필요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불매의 선언과 불매의 실천 사이에는
언제나 큰 갭이 존재한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에서도
같은 현상이 포착됐다.
탱크데이 논란으로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었지만,
스타벅스는 카지노톡 선물하기 '교환권-카페' 카테고리에서
1~3위를 모두 차지했다.
아메리카노 2잔+디저트 세트,
3만원권, 5만원권 e카드가 상위권을 유지했다.
SNS에서는 불매 인증이 쏟아지는데,
실제 구매 데이터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세 번째 데자뷰가 왔다.
2025년 말 쿠팡 사태다.
협력사 갑질 논란,
노동착취 논란,
국부유출 논란이 먼저 쌓였다.
거기에 회원 33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창업주 김범석 의장의 바카라임 회피 논란이 겹쳤다.
소비자들의 공분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시민단체들이 불매운동을 선언했고,
쿠팡 탈퇴 방법을 정리한 글이
SNS를 타고 퍼졌다.
가장 규모가 큰 쿠팡 해킹 피해자 집단소송 카페 가입자는
사태 발생 직후 9만 5000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번에도 구조는 똑같았다.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39% 수준이다.
맞벌이와 1인가구를 중심으로
쿠팡을 대체할 마땅한 유통 채널이
없다는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불매의 선언은 있었지만 실천은 달랐다.
반면 쿠팡과 거래하는 납품업체들은 달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초기 매출이 특히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쿠팡의 매출이 줄면
납품하는 물량도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즉각 제기됐다.
표적은 김범석 의장이었다.
청구서는 납품 중소기업에 날아갔다.
쿠팡 사태는 스타벅스 사태와 성격이 다르다.
역사적 상처를 건드린 것이 아니라
소비자 권리 침해가 발단이었다.
그러나 구조는 동일하다.
분노가 집단적으로 표출되고,
SNS가 증폭하고,
정작 표적은 버티고,
청구서는 약한 고리에
먼저 날아간다.
데자뷰는 특정 유형의 사건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슬롯가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 자체에 새겨진 패턴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대응 방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국민 이벤트 경품에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빼고
다른 브랜드로 교체했다.
국가데이터처와 새만금개발청도
진행 중인 설문조사 경품을 바꿨다.
정부 소통 플랫폼 '소통24'에 등록된 이벤트와
설문조사 중 스타벅스 상품권을 내건 곳은
한 곳도 없어졌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사실상 '스타벅스 지우기'에 동참했다.
현 정부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내수 활성화를 핵심 어젠다로 내세웠다.
취임 후 1년도 안 되어 민생회복 지원금을 편성했고,
고유가 피해지원금까지 뿌리며
침체된 내수를 살리겠다는 정부다.
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호텔경제학'을 주창했다.
관광객이 호텔에 10만원의 예약금을 지불하면
그 돈이 호텔에서 식품가게로, 통닭가게로, 신발가게로,
빵집으로 순환하며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케인스의 재정승수 효과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비유라고 비판했지만,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돈이 국내에서 돌아야 경제가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스타벅스 코리아는 연 3조 1001억원짜리 국내 화폐 순환 고리다.
급여로, 임대료로, 납품대금으로, 공과금으로
돈이 국내를 순환한다.
정부 부처가 이 브랜드를 공식 이벤트에서 배제하고
불매에 사실상 동참하는 것은,
호텔경제학의 논리 그대로 적용하면
그 순환 고리에 구멍을 내는 행위다.
한 손으로 지원금을 뿌려 내수에 물을 붓고,
다른 손으로 내수의 파이프를 걷어차는 꼴이다.
국가기관이 특정 민간기업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시장 개입이자 행정력을 이용한 압박이라는 비판도 있다.
기업은 이미 대표 해임, 공식 사과, 미국 본사 사과까지 마쳤다.
민간 차원의 불매는 소비자의 자유다.
그러나 정부 부처가 경품을 교체하는 것은,
설령 강제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국가가 "이 기업을 배척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선례가 쌓이면
정부 눈 밖에 난 기업은
시장에서 고사시킬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이 생긴다.
더 불편한 지점이 있다.
사과와 해임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정부가 계속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것은
이미 처벌적 성격으로 전환된 것이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는데도
국가가 계속 압박을 가한다면
그것은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보기 삼기에 가깝다.
특히 선거 국면이나 정치적 맥락과 맞물릴 때,
이런 정부 행동이 순수한 역사 존중인지
정치적 동원인지 구분이 흐려진다.
실용주의 정부가
가장 실용적이지 못한 선택을 했다.
이 문제가 광주에서 특히 심각한 이유가 있다.
광주는 전국에서 내수가 가장 취약한 도시 중 하나다.
통계청 2023년 지역소득 기준으로
전국 17개 시도 생산 규모를 보면
경기가 594조원으로 1위, 서울,
충남이 그 뒤를 잇는다.
반면 광주는 세종과 제주에 이어 세 번째로 작았다.
1인당 GRDP에서도 광주는 3545만원으로,
대구(3099만원), 부산(3476만원)에 이어
하위 3위권에 머물렀다.
전국 최상위인 울산(8124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광주 본청의 재정자립도는 36.31%로
전국 평균 48.6%를 크게 밑돌고,
광주 북구는 13.3%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스스로 벌어서 쓰는 돈이 절반도 안 된다는 뜻이다.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인구 30~50만 도시도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수요가 있는데,
인구 140만이 넘는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한 곳도 없었다.
이것은 공급 부족이다.
광주 시민들은 쇼핑하러 서울이나 대구까지 갔다.
소비가 역외로 유출됐고,
그 돈이 광주 밖으로 새나갔다.
광주가 내수 도시로서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다.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신세계그룹은 광주에서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광천터미널 복합화 사업에 약 3조원,
어등산 관광단지 그랜드 스타필드 조성사업에 약 1조 3000억원.
합계 4조원이 넘는 민간 투자다.
구체적으로는 35층 규모의 버스터미널 빌딩,
42~44층 복합시설 빌딩 4개 동,
5성급 호텔, 공연장, 의료·교육시설이
2033년까지 순차적으로 들어선다.
광주시가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더현대·신세계백화점·스타필드 등 3개 대규모 점포 출점 시
광주에 16조 4412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하고,
건설 단계에서만 5만 7123명,
운영 단계에서 연간 4만 6933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광주 시민들도 이것을 안다.
복합쇼핑몰 유치에 찬성하는 응답이 67.3%였고,
특히 18~29세에서는 91.8%가 찬성했다.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층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다.
그런데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인허가를 담당하는 광주시가
스타벅스 불매에 직접 나섰다.
강기정 시장 지시로 지자체 주관 행사에서
스타벅스 상품권 사용이 금지됐다.
광주은행도 자체적으로 스타벅스 제품과
쿠폰 지급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 인허가를 담당하는 광주시가
신세계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
4조원짜리 프로젝트에 어떤 신호를 보내는가.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미 명확하게 말했다.
"쇼핑몰 개발 사업은 지자체 인허가가 핵심이다.
광주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5·18을 건드린 만큼
광주 사업이 어려울 것이다."
경쟁사인 현대백화점은 이미 착공을 마쳤다.
더현대 광주는 광주 북구 임동 옛 전방·일신방직 부지에
연면적 27만 2955제곱미터 규모로
지하 6층에서 지상 8층으로 들어서며
더현대 서울보다 약 1.4배 크다.
2027년 말 개점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신세계가 이번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입고
인허가 환경마저 흔들리면,
4조원짜리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 피해는 광주 청년들의 일자리 기회로 청구된다.
광주는 5·18의 역사적 상처를 품고 있다.
그 상처는 진짜이고 깊다.
그런데 지금 이 사태에서
분노의 결과가 광주 시민들,
특히 광주 청년들에게 돌아온다면,
그것은 역사를 지키는 것인가
역사를 소비하는 것인가.
이 모든 이야기는 더 큰 맥락 위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의 내수는 이미 구조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발표한
'내수소비 추세 및 국제 비교 연구'는
충격적인 숫자를 보여준다.
소비 연평균 성장률이
1988~1996년 9.1%에서
외환위기 이후 4.5%,
카드대란 이후 3.1%,
금융위기 이후 2.4%,
코로나 이후 1.2%까지 떨어졌다.
경제 충격이 반복될 때마다
계단처럼 한 단계씩 내려앉았다.
2002년 56.3%에 달했던 GDP 대비 내수소비 비중은
2023년 기준 OECD 38개국 중 28위로 추락했다.
GDP 1조 달러 이상 국가 12개국 중에서는 11위다.
한국보다 소비 비중이 낮은 나라는
대부분 인구 1천만 명 이하의 소규모 국가들이다.
지난해 소매판매액은 전년 대비 2.2% 줄어들어
신용카드 대란이 있던 2003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25년 상반기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는 응답은 23.2%에 불과했고,
평균 감소폭은 15.2%였다.
자영업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6%가
향후 3년 이내에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대출금액은 1억 360만원이고
실질 금리 부담은 9.4%에 달한다.
2025년 1분기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0.1%로 역성장했다.
내수 침체의 중장기 요인으로는
고령화로 인한 소비 인구 감소,
부동산 중심의 가계자산 구조로 인한
자산의 소비 전환 제한,
고용창출력이 약화된 산업 구조 등이 지목된다.
단기적 소비 회복바카라만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 한국의 슬롯지표'에서도
GDP 대비 민간소비 지출 비율이
48.5%로 전년 49.9%보다
1.4%포인트 하락했다.
이 비율이 하락한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그것을 체감하지 못해
지갑을 닫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극도로 취약한 내수 생태계에서
정부가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4조원짜리 민간 투자의
인허가 환경을 흔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숫자는 이미 말하고 있다.
이 사태에서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역할이다.
레뷰코퍼레이션이 발간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MZ세대의 72.3%가 인플루언서의 추천을 통해
실제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
구매를 유도하는 영향력이 이 정도라면
불매를 선동하는 영향력도
같은 크기로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소비자 불매운동 참여의도 연구에 따르면
지각된 악의성이 분노를 매개로 참여의도에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이 SNS 이용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SNS를 많이 볼수록 불매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예인의 게시물이 그 노출의 핵심 콘텐츠다.
이번 사태에서도 불매 인증 게시물을
올리는 연예인들이 있었다.
반대로 "스타벅스 응원한다"며
인증샷을 올리는 연예인들도 있었다.
양쪽 모두가 화제가 됐고,
양쪽 모두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면,
둘 다 하는 일은 똑같다.
자신의 팬덤과 영향력을 이용해
슬롯적 갈등에 연료를 붓는 것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슈를 소비해서 자기 계정의
노출을 올리는 것이다.
논란이 클수록 인게이지먼트가 높아지고
팔로워가 늘어나는 구조를 이용하는 행위다.
연예인이 불매 인증 게시물 하나를 올리면
노출은 수십만, 바카라임은 0이다.
그 게시물 때문에 매장 매출이 줄어도,
파트타이머 근무가 끊겨도
그 연예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오히려 팔로워가 늘고
화제성이 올라간다.
반대로 스타벅스 응원 인증샷을
올리는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5·18 피해자와 유족 앞에서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반대쪽 여론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영향력에 바카라임이 따르지 않는 구조다.
이 문제는 연예인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이 설계된 방식의 문제다.
SNS는 반응을 극대화하는 콘텐츠에 보상을 준다.
분노를 자극하는 콘텐츠,
갈등을 증폭시키는 콘텐츠가 더 많이 퍼진다.
팔로워가 수십만인 연예인이 이 구조 안에서 행동할 때,
그 파급력은 일반인과 차원이 다르다.
노재팬 때도,
광우병 때도
연예인들은 이슈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사태가 수그러들면
다음 이슈로 넘어갔다.
청구서는 매번 자영업자와
파트타이머에게 남아 있었다.
5·18이라는 역사적 상처와
기업의 마케팅 실수가 맞닿은 이 사안이
연예인 SNS 인증 배틀로 소비되는 순간,
진짜 따져야 할 질문들이 묻힌다.
조직적 묵인이었는지,
광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부 개입이 적절했는지.
이 질문들 대신 연예인 누가 무엇을 올렸냐가 화제가 된다.
갈등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갈등의 실질적 비용은 언제나
가장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 치르게 된다.
데자뷰.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이 아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2019년 노재팬.
2025년 쿠팡.
2026년 스타벅스 탱크데이.
세 번의 사태는 표면적으로 전혀 다른 이슈였다.
그러나 그 아래 구조는 똑같다.
정당한 분노가 집단적으로 표출된다.
SNS가 그 분노를 증폭시킨다.
연예인과 유명인이 이슈 위에 올라탄다.
정부가 정치적 계산으로 개입한다.
불매운동이 타오른다.
그리고 정작 표적인 오너와 정부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수습하고 넘어가지만,
자영업자와 파트타이머와 납품업체는
그 청구서를 수개월, 수년에 걸쳐 치른다.
분노는 매번 다른 사람들의 것이지만,
청구서는 매번 같은 사람들에게 날아간다.
이것을 바꾸려면 분노를 억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분노하되, 그 분노의 방향과 비용을 함께 물어야 한다.
"이 분노가 정당한가"와 "이
분노의 결과가 올바른 곳에 향하고 있는가"는
별개의 질문이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잘못했다.
정용진 회장과 신세계가 잘못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표 해임,
미국 본사 사과,
신세계 정용진 횢아의 직접 사과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4조원짜리 광주 개발 프로젝트를 흔들고,
3조원짜리 내수 순환 고리에 구멍을 내고,
연예인들이 팔로워를 모으고,
정부가 정치적 계산을 하는 이 구조는
5·18을 지키는 것인가,
5·18을 소비하는 것인가.
21년 만에 최대 소매판매 감소를 기록한
대한민국 내수 생태계가
이 모든 것의 비용을 조용히 떠안고 있다.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이 폐업을 고민하는 나라에서,
광주 청년들이 가장 원하는 일자리 기회가 걸려있는 곳에서,
이 사태는 계속 타오르고 있다.
진정으로 5·18을 기억하고 광주를 사랑한다면,
그 기억 위에서 이익을 취하는 모든 행위에 냉정해야 한다.
정치적 계산을 위해 내수를 흔드는 정부도,
팔로워를 위해 갈등에 연료를 붓는 연예인도,
분노의 방향이 맞는지 묻지 않고
흐름에 올라타는 우리 자신도.
데자뷰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불매운동은 착각이 아니다.
우리가 계속 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에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
분명히 처음인데 이미 겪은 것 같은 감각.
다음번에도, 우리는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달라지려면 분노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