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안보를 논하지 말라

현실을 외면한 정치의 민낯

by다소느림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세력은

오랫동안 같은 주장을 반복해왔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라고.

그 표현이 남북관계를 경색시킨다고.

대화의 가능성을 닫는다고.

평화를 원한다면 자극적인 언어를 자제해야 한다고.


이 주장은 언뜻 점잖고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현실 앞에 놓아보면,

그 점잖음이 얼마나 위험한 눈감음인지가 드러난다.


감정이 아닌 숫자로,

선언이 아닌 기록으로 따져보기로 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총성이 멈췄다.

그러나 북한은 멈추지 않았다.

정전 이후 2022년까지 집계된

북한의 대남 침투도발 건수는 2,002건,

지상·해상·공중을 포함한 국지도발은 1,119건으로

합계 3,121건이 넘는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국회에 제출한 수치만으로도

주요 도발이 221건에 달한다.


70년을 일수로 환산하면

약 2만 5,550일이다.

3,121건을 2만 5,550일로 나누면

평균 8.2일에 한 번꼴이다.


단 한 해도,

단 한 달도 도발이

없었던 시기가 없었다는 뜻이다.

정전 직후부터 1980년까지만 따지면 더 충격적이다.


대남 첩보원이 발각된 횟수가 5,500여 회로,

1.7일에 한 번꼴이다.

같은 기간 우리 군과 경찰에게

사살되거나 생포된 북한 공작원 및 무장공비는 2,973명,

3.3일에 한 명꼴이다.


전쟁이 법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다지만,

이 숫자는 전쟁이 사실상 지속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평화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도발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까지는 공비 침투와 간첩 활동이 주를 이뤘고,

1990년대 이후에는 핵·미사일·해상 도발이 중심이 됐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는 사이버 공격이라는

새로운 전선이 열렸다.


도발의 무기가 바뀌었을 뿐,

적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통령을 죽이려 했고, 여객기를 폭파했다


북한의 도발이 단순한 군사적 긴장 조성이나

협상용 카드에 그쳤다면,

그나마 '관리 가능한 위협'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록은 훨씬 잔혹하다.


1967년 1월,

동해안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호위초계함 당포함이

북한 해안포의 포격을 받아 격침됐다.

승조원 다수가 희생됐다.


이듬해인 1968년 1월 21일 새벽,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서울 한복판까지 침투했다.


목표는 청와대였고,

목적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었다.


이들은 청와대 정문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세검정 고갯길까지 도달했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공비 대부분이 사살됐지만,

경찰관과 민간인도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무장공비 120명이

울진과 삼척 일대에 침투해

약 두 달간 게릴라전을 벌이며

군인과 민간인을 무차별 살해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던

국립극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조총련계 공작원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다.

대통령은 살아남았지만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2년 뒤인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이던

미군을 도끼로 난자해

장교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도끼만행 사건이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해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우리 정부 대표단이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 테러를 당했다.


부총리·외무장관·상공장관·동자부장관·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한

각료 및 외교 사절 17명이 순국했다.

북한 공작원이 설치한 원격조종 폭탄이

묘소 건물 천장에서 터진 것이었다.


3년 뒤인 1986년 9월에는

서울 아시안게임을 방해하기 위해

김포국제공항 청사 쓰레기통에 폭탄을 설치했다.

5명이 사망하고 3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아부다비를 거쳐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이

미얀마 안다만해 상공에서 폭파됐다.

탑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기내에 숨겨둔 시한폭탄이 폭발한 것이었다.


115명이라는 숫자를 잠시 생각해보자.

중형 버스로 치면 두 대,

학교 교실이라면 세 칸이다.

그 사람들 모두가 아무 이유 없이,

단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죽었다.


이것이 북한이 '주적'이 아닌 나라의 행동인가.


서해는 지금도 전쟁터다


냉전이 끝나고 남북 간에

이른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던 시기에도

북한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역설이

북한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1999년 6월 15일,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 7척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해

우리 해군에 선제사격을 가했다.


제1연평해전이다.

단 14분간의 교전에서

우리 해군은 북한 어뢰정 1척을 격침하고

경비정 5척을 파손시켰다.


북한 측은 약 50명의 사상자

(전사 20명, 부상 30명)를 낸 반면

우리 측은 9명의 부상에 그쳤다.


압도적 승리였다.

그러나 이 전투가 벌어진 배경이 의미심장하다.


당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바카라이

한창 추진되던 시기였다.

북한에 대해 손을 내밀고,

경협을 논하고,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북한은 서해에서 포를 쐈다.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이번에는 더 참혹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이 끝난 다음 날,

3·4위전을 하루 앞두고

온 나라가 붉은 열기로 들끓던 그날 새벽,

북한 경비정이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을 침범했다.


오전 10시 25분,

경고 한마디 없이

북한 경비정 684호의 85밀리미터 전차포가

우리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향해 불을 뿜었다.


30분간의 교전 끝에 357호는 침몰했다.

전사자 명단이 있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여섯 명이다.


가장 어린 박동혁 병장은

스물두 살이었다.


그 시간 많은 국민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월드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해에서 장병들이 죽어가고 있는 줄 몰랐다.

이것이 제2연평해전이다.


2010년에는 두 번의 대형 도발이 있었다.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던

포항급 초계함 천안함이 두 동강 났다.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피격된 것이었다.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했다.


수색 작업 중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면서

희생자는 더 늘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했다.

자작극이라고 했다.


국제 합동조사단이 북한 어뢰의 잔해를 수거해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부인을 계속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연평도에 포탄이 쏟아졌다.

170여 발이다.


군부대뿐 아니라

민간 주거지역에도 포탄이 떨어졌다.

집이 불탔다.

군인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1953년 정전 이후

북한이 대한민국의 민간 거주지역을

직접 포격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누군가 이것을 두고

'우발적 긴장 고조'라고 불렀다.

우발적이라는 말이

170발의 포탄을 설명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핵탄두 90기, 그리고 미사일의 끝은 서울을 향해 있다


북한의 도발은 재래식 무기에 머물지 않는다.

핵무장은 이미 현실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 9개국이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북한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은 2023년 초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를 80~90기로 추정했다.

국방부 공식 평가에 따르면

북한은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70여 킬로그램 보유하고 있다.


이는 2020년 국방백서 수치인

50여 킬로그램에서 20킬로그램이나 늘어난 것이다.


미사일 개발 속도는 정권이 바뀔수록 빨라졌다.

김일성 시대에 발사된 미사일은 12발이었고

김정일 시대에는 7발에 불과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2022년까지만 96발이 발사됐다.

특히 2012년부터 2022년 사이에 이뤄진

전체 미사일 발사의 약 83퍼센트가

김정은 시기에 집중됐다.


2022년 한 해에만 탄도미사일 37발이 발사됐고,

2024년에도 20차례에 걸쳐

미사일과 방사포가

동해와 서해를 향해 쏘아졌다.


이 가운데는 극초음속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2024년 대한민국을

공식적으로 '주적'이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우리 안의 일부 세력은

'표현의 강경화'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우리를 주적으로 명시한 마당에,

우리가 북한을 주적으로 부르지 않는 것은

일방적인 자기 손발 묶기다.


총 대신 키보드: 21세기의 전쟁


도발의 형태는 진화했다.


총포 대신 해킹,

포탄 대신 악성코드,

공비 침투 대신

사이버 공작원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전선에서

북한은 세계 최강의 공격자 중 하나다.


미국 암호화폐 분석 기업 체이날리시스가

2025년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해커들이 2024년 한 해 동안 탈취한 암호화폐는

13억 4천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약 1조 8천억 원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발생한 암호화폐 해킹 피해

총액 22억 달러의 61퍼센트에 달한다.


전 세계 디지털 자산 해킹 피해의

절반 이상이 북한 한 나라의 소행이다.


2025년 2월에는 규모가 더 커졌다.

북한 해킹 조직 라자루스 그룹이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비트를 공격해

단 하루 만에 15억 달러를 탈취했다.


암호화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해킹 사건이다.


이 금액은 북한이 2017년부터 2023년까지

6년에 걸쳐 탈취한 총액의 절반에 해당한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사이버·신기술 담당 부보좌관 앤 뉴버거는

"북한이 암호화폐 해킹을 통해 미사일 프로그램 자금의 절반을 충당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털릴 때마다,

그 돈의 일부가 우리를 향한

미사일을 만드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사이버 해킹만이 아니다.

북한은 GPS 교란 공격도 지속하고 있다.

누적 피해 건수는 7,270건으로,

2024년 한 해에만 약 2천 건의 피해가 집계됐다.


이 공격으로 인천공항 인근 항공기의 항적이

비정상적으로 표시됐고,

어민들은 투망 좌표를 잃었으며,

차량 내비게이션이 오작동했다.


2024년에는 오물과 쓰레기,

전단을 담은 풍선 수천 개가 남쪽으로 날아왔다.


풍선에 부착된 타이머와 자동폭발 장치가

수도권 상공에서 터지며 전단이 쏟아졌다.

빌라 옥상에 떨어져 물탱크가 파손되고,

주차된 차 지붕이 뚫렸다.


이것이 도발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인민들은 굶고, 정권은 핵을 쌓는다


북한의 경제 현실은 도발의 성격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2024년 기준 북한의 명목 GDP는

약 43.7조 원으로 대한민국의 60분의 1 수준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171만 9천 원,

남한의 5,012만 원 대비 3.4퍼센트에 불과하다.


UN 통계 기준으로

북한의 1인당 GDP는 667달러 미만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이나 소말리아와 같은 수준이다.


전 세계 195개국 중 183위다.

전력 보급률은 57.5퍼센트로,

나머지 42퍼센트의 주민은 전기 없이 산다.

이 나라가 매년 수조 원을 핵과 미사일에 쏟아붓는다.

주민이 굶는 동안 ICBM을 쏘아올린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주민의 생존보다 군사력 과시가 우선인 정권이다.

그런 정권이 협상에 진정성을 가질 리 없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러우전쟁


2024년 6월,

김정은과 푸틴은 평양에서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조약에 서명했다.


같은 해 10월,

북한군 1만여 명이 러시아 군복을 입고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됐다.

북한군이 동유럽 전장에서

실전을 치르고 있다.


그 경험과 전술,

기술이 다시 평양으로 돌아온다.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에 첨단 무기 기술과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


아산정바카라연구원은

"2025년은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이자 노동당 창건 80주년으로,

북한이 어느 때보다 더 거친

대남 공세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전 경험을 쌓은 군대가

핵을 들고 다시 우리를 향해 올 수 있다.

이것이 현재 진행형의 안보 현실이다.


화전양면전술의 70년


주적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늘 같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그러나 역사는 이 논리가

틀렸음을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제1연평해전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바카라이 한창이던 1999년에 일어났다.


제2연평해전은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되던

2002년에 벌어졌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운영되던 2020년에

북한은 개성공단 내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대화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

동시에 미사일을 쐈다.


이것을 북한은 화전양면전술이라 부른다.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준비한다.

표현을 자제한다고 해서

도발이 줄어든 역사적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던 정부 시절에

도발이 더 잦았던 적도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특정 정부 임기 동안 북한의 대남 도발 횟수가

이전 정부 대비 6배에 달했다.


유화 정바카라이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들이 대답해야 할 질문들


숫자를 다시 나열한다.


6.25전쟁 국군 전사자 13만 7,899명.

민간인 포함 남한 피해자 약 100만 명.

정전 이후 대남 도발·침투 3,121건.

KAL 858편 탑승객 115명 전원 사망.

천안함 전사자 46명.

연평도 포격 사망자 4명.

아웅산 테러 순국 17명.

2024년 암호화폐 해킹 피해 13억 4천만 달러.

GPS 교란 누적 피해 7,270건.


이 앞에서 주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쪽이 설명해야 한다.


설명할 수 있다면 설명해보라.

이 모든 숫자가 주적의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외교적 고려라면 어느 수준까지의 도발을

감내하는 것이 적절한가.


천안함이 침몰해도,

연평도에 포탄이 쏟아져도,

우리 공무원이 바다 위에서 사살돼 소각당해도,

그래도 주적이 아닌가.


주적이라는 단어가 자극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도발이 자극적인가,

그것을 사실대로 부르는 말이 자극적인가.


광주의 자충수: 정율성 거리


현실을 외면하는 정치의 민낯은

비단 국회 안에만 있지 않다.

광주광역시가 그 구체적인 사례다.


광주 남구 양림동 일대에는 2009년부터

'정율성로'라는 이름의 도로가 있다.

233미터에 걸쳐 이 인물을 기념하는

전시물이 늘어선 거리도 조성돼 있다.


광주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에는 동구 불로동 일대에

4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정율성 역사공원'을

추가로 짓겠다고 발표했다.


매년 5천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광주MBC는

정율성 동요대회를 열었고,

지역 초등학생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다.


정율성은 누구인가.


1914년 광주 출신이다.

그러나 그의 이력은 그 이후부터가 문제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가로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해방 후에는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 협주단장을 지내며

'조선인민군 행진곡',

'조선 해방 행진곡' 등

북한 군가를 다수 작곡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중공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서울이 함락된 뒤에는 궁정악보를 약탈해 중국으로 가져갔다.

종묘제례악과 연례악 등 2부 18집 분량이었다.

그 악보는 사후 그의 아내가 1996년에야

한국 정부에 반환했다.


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 정착했다가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을 피해

중국으로 귀화했고 1976년 사망했다.


항일운동가라는 명분이 남아 있냐고 물을 수 있다.

국가보훈처가 2018년 서훈 심사에서 내린 결론이 있다.


"독립운동 성격이 불분명하다."


공식적으로 독립유공자 인정이 부결된 인물이다.

그의 항일 공적이라는 것은 대부분

측근의 일방적 증언에 기댄 것으로,

객관적으로 입증된 자료가 없다.


광주시가 내세운 논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대의 아픔을 감싸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관광객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아픔이라는 논리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6·25에서 전사한 국군 13만 7,899명도,

연평도에서 숨진 장병들도,

천안함의 46명도 모두 시대의 아픔 속에 있었다.


중국 관광객 유치라는 논리는

국가 정체성을 관광 수익과 맞바꾸겠다는 말이다.

그 논리라면 무엇이든 돈이 된다면

기념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과는 어땠는가.


논란이 불거진 직후

광주광역시의 다음 해 국비 예산안이

전년 대비 972억 원 삭감됐다.


광주 시민 전체가 쓸 수 있는 예산이

정율성 사업 하나 때문에 1천억 원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전사한

고 서정우 해병대 하사의 부모가

기념사업 중단을 요청했지만

"중단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것이 '현실을 외면하는 정치'의 지역판이다.

북한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과

북한·중공군 군가 작곡자를 기념비로 세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불편한 진실은 감추고,

비판하는 쪽에는 '색깔론'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 사이 실질적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스스로 욕먹을 짓을 자처하고,

그 비용은 광주 시민이 치른다.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광주의 이름이

왜 이런 식으로 소비돼야 하는지,

광주 시민 스스로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안보는 감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징병제 국가다.

매년 수십만 명의 청년이 군대에 간다.


그 이유는 하나다.

북방에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직시하면서도 정치적 이유로 외면한다면,

그 정치세력은 이 나라의 안보를 논할 자격이 없다.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는 것은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는 것이다.

위협을 위협으로 명명하는 것이다.


그 인식 위에서만 실질적인 안보가 가능하고,

그 인식 위에서만 진정한 대화도 가능하다.

상대가 나를 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뤄지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북한은 숨기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선언했고,

핵으로 선제타격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적화통일을 당 강령에 명시하고 있다.


그 앞에서 우리만 눈을 감는 것이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패배의 준비다.


3,121건의 기록이 있다.

그 기록 앞에서 주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있다면,

그 말을 전사자들의 유가족 앞에서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