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팔고 단속망을 산 나라
2007년 12월 26일 밤,
강원도 평창군의 영동고속도로 둔내터널 양쪽 끝에
낯선 카메라 두 대가 설치됐다.
구간단속의 시작이었다.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의 차량 통과 시간을 측정해
그 사이의 평균 속도를 계산하는 이 장치는,
단속 카메라 앞에서만 속도를 줄이고
지나치면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아버리는
이른바 '캥거루 운전'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논리는 단순했고, 그래서 강했다.
어디서 찍히는지 알 수 없다면,
전 구간을 내내 조심해야 한다.
단속의 공간이 점에서
선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구간단속은 수백 개소에 수천 킬로미터로 불어났다.
2017년에는 나무위키 한 문단에
전부 기재할 수 있을 만큼 드물었던 구간단속이,
2025년에는 별도 문서가 필요할 만큼
촘촘하게 전국 고속도로를 덮었다.
한국도로공사는 구간단속 카메라의 설치 위치,
운영 구간, 단속 시작일을
공공데이터포털에 공개하고 있다.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이 데이터는,
이 나라의 고속도로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단속망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숫자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18년의 시간 동안,
그 수천 킬로미터의 카메라는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됐는가.
구간단속의 원리를 교통공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설계의 논리는 타당하다.
기존 지점단속은 고정된 카메라 위치가
내비게이션에 등록되고
운전자들에게 공유되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
카메라 300미터 전부터 속도를 줄이고,
통과 직후 다시 가속하는 패턴이 일상이 됐다.
안전을 위한 장치가 요령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구간단속은 이 구조를 바꿨다.
시작 지점에서 찍히면 그게 이미 증거다.
끝 지점까지의 평균 속도가
제한속도를 초과하면 단속된다.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작 지점의 순간속도,
끝 지점의 순간속도,
그리고 전 구간 평균속도를
동시에 측정하는 3중 단속 체계가 도입됐다.
카메라 앞에서만 줄이는 요령이 원천 차단된다.
구간단속 진입 전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게
시작 지점 순간단속에 걸릴 수 있고,
끝 지점 직전에만 줄이는 것은
끝 지점 순간단속에 잡힌다.
중간에 아무리 과속하더라도
평균이 제한속도를 넘으면 단속된다.
꼼수의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졸음쉼터에 잠깐 멈추거나
휴게소를 우회하는 방식이 거론됐지만,
진출입로에 별도 카메라가 추가되면서
이마저도 막혔다.
구간 중간의 나들목에서 빠져나갔다가 재진입하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허점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쓰는 순간,
단속을 피하려다 갑작스러운 차로 변경과
합류 구간 통행으로 오히려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는 분명히 존재한다.
박제진 외(2008)가 대한교통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구간단속 설치 후 평균 구간통행속도는
21.4%에서 31.0%까지 감소했다.
이호원 외(2013)가 한국ITS학회 논문지에 게재한
미시령동서관통도로 분석은 더 극적이다.
구간단속을 전 구간에 설치했을 때
월간 교통사고 건수는 45.9% 감소했다.
그리고 장비를 철거하자 사고는
설치 전 대비 65.1% 다시 증가했다.
도구가 사라지자 현실이 돌아왔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충돌 역학의 관점에서
속도 감소의 효과는 직관보다 훨씬 크다.
물체의 운동에너지는 질량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이다.
시속 100킬로미터와 120킬로미터의 차이는
20킬로미터가 아니라 에너지 기준으로 44% 차이다.
같은 차가 같은 벽에 충돌했을 때,
120킬로미터의 충격은 100킬로미터보다
거의 절반 가까이 더 강하다.
이 맥락에서 구간단속이 평균 속도를
5~10킬로미터라도 낮춘다면,
그 효과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해외에서도 같은 결과가 확인된다.
영국 교통부는 과속단속 카메라가
인명 피해 충돌 사고를 22% 감소시키고,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을
42% 줄인 것으로 추정했다.
2017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 연구는
영국 도로에 카메라 1,000대를 추가하면
연간 최대 19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뉴질랜드 교통청은
이 결과를 참고해
전국 17개 구간에
구간단속 설치를 확대하고 있으며,
2026년부터 본격 단속에 들어간다.
구간단속은,
올바르게 쓰인다면,
효과적인 도구다.
이 점을 먼저 인정해야
이후의 논의가 공정해진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고속도로에서 벌어지는 일은
'올바른 사용'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서산영덕고속도로 청주에서 상주 방향.
총 구간 79킬로미터.
이 도로에서 구간단속이 적용되는 거리는 55킬로미터다.
전체의 70%다.
보은 나들목에서 상곡교까지 23킬로미터가 1차 구간단속,
상곡교에서 내서4터널 입구까지 12.7킬로미터가 2차 구간단속.
2연속으로 이어진다.
반대 방향인 상주에서 청주 방향은
56킬로미터로 더 길다.
내서4터널에서 화서2터널 입구까지 13.3킬로미터,
화서2터널에서 수문교까지 14.9킬로미터,
수문교에서 보은 나들목까지 8.6킬로미터.
3연속 구간단속이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장 기록이다.
제한속도인 시속 110킬로미터로
쉬지 않고 달려도 20분이 걸린다.
그 20분 내내 카메라가 시간을 재고 있다.
이 도로의 나무위키 항목에는
"실제로 차량통행량이 조금씩 늘어나면
곧바로 차량정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유령정체현상으로
운전자들의 불만이 매우 큰 상황이다"라고 적혀 있다.
공식 통계나 언론 보도가 아닌,
이 도로를 실제로 달리는 운전자들이
경험으로 기록한 현실이다.
유령정체는 도로공학에서
이미 오래전에 그 메커니즘이 밝혀진 현상이다.
2008년 나고야대학의 물리학자
스기야마 유키 연구팀은 실험으로 이를 증명했다.
22대의 차량을 둘레 230미터짜리 원형 트랙에 올려놓고
시속 30킬로미터로 균일하게 달리게 했다.
처음에는 매끄러웠다.
1분이 채 되지 않아
한 지점에서 차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멈추려 하지 않았고,
사고도 장애물도 없었다.
운전자들이 완벽하게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가,
정체를 만들어냈다.
연구팀의 한 인터뷰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다.
"만약 로봇이 운전했다면, 정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구에 주목한 것은 수학자들이었다.
MIT 응용수학팀은 이 현상을
'jamiton(재미톤)'이라 이름 붙이고,
그 수학적 구조를 분석했다.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유령정체의 방정식은 폭발이 만들어내는
폭굉파(detonation wave)의 방정식과
구조적으로 동일했다.
차량 밀도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작은 교란이 자기 유지적인 정체 파동으로 증폭된다.
이 파동은 차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뒤쪽을 향해 전파된다.
MIT팀은 논문에서 이 모델이
"사고 위험 밀도가 높은 구간을
예측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썼다.
다시 말하면,
차량 밀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지점이
사고 위험 지점이 된다.
이제 구간단속 구간 진입 장면을 떠올려보자.
수십 대의 차가 동시에 속도를 줄인다.
순간적으로 차량 밀도가 높아진다.
MIT가 지목한 바로 그 조건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안전을 위해 설계된 장치가,
정작 유령정체와 그로 인한
추돌 위험의 씨앗을 심는다.
2022년 UC버클리 연구팀이
내슈빌 고속도로 I-24에서
100대의 차량을 동원해 실시한 실험은
이 역학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인간 운전자만으로 달릴 때는
정체 파동이 반복적으로 발생했지만,
AI 크루즈 컨트롤이 장착된 차 한 대를 섞자
파동이 완화됐고 전체 연료 소비량이 40% 줄었다.
인간의 불균일한 속도 반응이 정체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불균일함은 구간단속 구간 진입이라는
집단적 자극 앞에서 더욱 증폭된다는 것이다.
구간단속 논의의 아래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제한속도다.
한국 고속도로의 기본 최고속도는
편도 2차로 이상 기준 시속 100킬로미터다.
이 숫자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명시돼 있다.
1979년에 90킬로미터로 낮아졌다가
1981년에 100킬로미터로 환원됐고,
그 이후 45년 가까이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
경찰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노선에 한해
최대 120킬로미터까지 지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2025년 4월 기준 120킬로미터 구간은
충남 안성맞춤 나들목~남안성 분기점 단 하나뿐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죽림 분기점~매송 나들목,
경부고속도로 양재~천안 일부 구간이
110킬로미터로 지정돼 있을 뿐,
전국 대부분의 고속도로는 100킬로미터 기준을 적용받는다.
그사이 자동차는 다른 물체가 됐다.
1981년 한국 도로를 달리던 차와
2025년의 차는 제동 성능,
타이어 마찰계수,
차체 강성,
능동 안전장치의 수준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르다.
ABS(잠김방지 제동장치)는 기본 사양이 됐고,
차선 이탈 경고,
자동 긴급제동,
전방 충돌 경고 시스템이
대중차에도 탑재된다.
고속도로 포장 기술과
도로 표면 마찰 계수도 크게 향상됐다.
내비게이션이 모든 차에 깔려 있어
경로 이탈이나 급격한 차로 변경이 줄었다.
그런데 기준이 된 숫자는 45년 전 그대로다.
국제 비교를 하면
이 숫자의 낯섦이 더 뚜렷해진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130킬로미터로 적용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오스트리아가 그렇다.
유럽에서도 보수적이라는 스위스조차 120킬로미터다.
독일 아우토반은 구간에 따라
제한이 없거나 권장 속도 130킬로미터를 운영한다.
이들 국가의 고속도로 사망률은 한국보다 낮다.
단순 비교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변수가 많다.
하지만 덴마크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덴마크가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110킬로미터에서 130킬로미터로 올렸을 때,
사고율은 감소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스웨덴은 120킬로미터에서
110킬로미터로 낮추자 사고율이 줄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경부고속도로 양재~천안 구간을
110킬로미터로 상향했을 때
사고율이 감소했다는 자료가 있다.
이 세 가지 사례는 상반돼 보이지만,
사실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제한속도의 절대적인 수치보다,
그 숫자가 실제 도로 흐름과
얼마나 일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통공학에는 '85백분위 속도 원칙'이 있다.
도로의 실제 교통 흐름에서 하위 85%에 해당하는 속도,
즉 전체 운전자 중 85%가
자연스럽게 달리는 속도 근방에
제한속도를 설정해야
교통 흐름이 안정되고
사고 위험이 낮아진다는 원리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실제 고속도로 흐름과
제한속도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위험하다.
제한속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법을 어기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속도 편차가 커지며,
오히려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경찰청은 한국 고속도로 제한속도가 낮은 이유로
"평지가 적고 산악지형이 많다"는 점을 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1970년대 건설 기술로 완성된 많은 구간은
곡선 반경이 작고 경사가 급하다.
이런 구간에서의 100킬로미터 제한은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개통된 직선 고속도로,
설계속도가 120킬로미터 이상으로 계획된 노선에까지
같은 기준을 일괄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도로의 설계속도와 실제 제한속도가
다른 구간이 전국에 다수 존재한다.
이건 안전 설계의 실패가 아니라 규제의 관성이다.
2024년 광주광역시에서 단속된
교통법규 위반 건수는 67만 6,498건이다.
이 중 속도위반이 55만 78건이다.
전체 단속의 81%가 과속이다.
광주 단 한 곳에서 한 해
55만 건이 넘는 속도위반이 적발된다.
이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한 가지 해석은 이렇다.
광주 시민들이 유독 법을 무시하며 운전한다.
그러나 이건 설득력이 없다.
전국 어느 도시를 봐도
비슷한 비율이 나온다.
다른 해석은 이렇다.
제한속도 기준이 실제 도로 흐름과
맞지 않는 구간이 그만큼 많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특별히 위험하게 달리지 않아도,
현행 기준에 따르면 일상적으로 위반자가 된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조항을 보면,
속도위반 단속은 실제로 카메라 성능과 오차를 고려해
일정 여유를 두고 작동한다.
제한속도 100킬로미터 구간에서는
약 10킬로미터의 여유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질적으로는 110킬로미터 안팎에서
단속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여유 범위조차 많은 운전자들이
'실질적인 제한속도'로 인식하고 달린다.
법정 제한속도가 100이고 실질 흐름이 110이면,
구간단속이 100 기준으로 작동하는 순간
그 10킬로미터의 괴리가
고스란히 과태료 고지서로 돌아온다.
위반자를 만드는 구조다.
TAAS(교통사고분석시스템)
2024년 도로종류별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전체 196,349건의 사고 중
고속국도에서 발생한 사고는
5,311건으로 2.7%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망자는 187명으로
전체 2,521명의 7.4%를 차지한다.
고속도로는 사고 빈도는 낮지만 치사율이 높다.
이는 고속도로에서의 속도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동시에, 사고의 절대 다수는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국도(22,307건)와 특별광역시도(77,560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도 있다.
구간단속이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확대되는 동안,
사고가 집중된 도심 도로에서의 안전 투자는
어떤가 하는 질문도 따라온다.
구간단속에 대한 비판을
구간단속 자체의 부정으로 읽으면 안 된다.
이 칼럼이 말하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구간단속은 설계된 용도대로,
즉 사고 위험이 집중된 특정 구간의 과속을
억제하는 데 쓰인다면 효과적인 도구다.
미시령의 숫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문제는 도구의 남용이다.
79킬로미터 고속도로 중 55킬로미터를
단속 구간으로 덮는 것이 안전 설계인지,
아니면 단속망 구축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도로에 어떤 사고 이력이 있을 때
구간단속을 설치하는가.
그 기준은 명문화돼 공개돼 있는가.
설치 이후의 실제 사고 감소 효과는
구간별로 추적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는 상태에서,
구간단속 구간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제한속도 기준의 현실화라는 과제는
수십 년째 방치돼 있다.
1981년의 숫자가 2025년 도로를 지배하는 동안,
차량 성능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도로 설계 기준이 120킬로미터 이상인 노선에
100킬로미터 제한이 붙고,
그 위에 구간단속이 얹힌다.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집단적 위반과
집단적 단속의 구조다.
모든 사람이 법을 어기게 되면,
법은 규범이 아니라 걸림돌이 된다.
나고야대학 연구팀의 실험은
이 문제의 본질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22대의 차가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한 속도로 달리려 했는데 정체가 생겼다.
로봇이 운전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정체였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도로는 그 불완전함을 수용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벽한 기준을 요구하며
카메라로 그것을 강제하는 방식이,
얼마나 오래 작동할 수 있는가.
안전한 도로를 만드는 것과
단속 구간을 늘리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전자는 도로 설계,
제한속도의 현실화,
위험 구간의 선별적 관리,
그리고 운전자 교육이 함께 가야 한다.
후자는 카메라와 예산이면 된다.
후자가 훨씬 쉽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천 킬로미터의 카메라가
이 나라의 고속도로를 덮었다.
그 카메라들이 찍어내는 것이 위반 장면인지,
아니면 우리의 불합리한 기준을 증명하는 장면인지.
그것을 구분하는 일이,
지금 이 도로 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