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의 구조적 공백
2026년 5월 5일 자정을 넘긴 시각,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 인도 위에서
열일곱 살 여학생이 쓰러졌다.
24세 남성 장 모 씨가 휘두른 흉기가 목을 찌른 뒤였다.
비명을 듣고 6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려온
동갑내기 남학생도 같은 흉기에
목을 두 차례 찔렸다.
여학생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구급대원이 꿈이었다고 했다.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마치고
택시비를 아끼려 걷던 길이었다.
어린이날이었다.
사건은 빠르게 전국으로 퍼졌다.
실시간 검색어를 뒤덮고,
SNS가 달아올랐고,
피해자의 학교인
광산구 소재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성명문을 냈다.
피해 학생이 다니던 학교가 아닌
북구 소재의 고등학교 교지편집부 학생들까지 나서서
사법부에 피의자 신상 공개와
법정 최고형 선고를 촉구했다.
관이 떠나는 날 교정을 채운 통곡이 카메라에 담겼고,
사건 현장에는 노란 리본과 국화꽃이 쌓였다.
그러나 이 글은 그 분노의 온도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 하필 그 길이었는가.
왜 또 광주였는가.
왜 스토킹 신고가
이틀 전에 접수됐는데도 막지 못했는가.
그리고 이 사건이 끝난 뒤,
우리는 진짜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장 씨의 진술은 명확했다.
그는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 두 자루를 들고
범행 장소 인근을 배회했다.
자살할 장소를 찾겠다는 명목이었지만,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실상은 달랐다.
그가 고른 장소는
"아파트와 공사현장,
학교로 둘러싸여 인적이 드물며
평소 지리에 능통했던 지역"이었다.
경찰이 직접 밝힌 표현이다.
그 길을 해부하면 이렇다.
첨단고등학교에서 출발해
남부대학교 시립국제수영장을 거쳐
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인도.
학생들이 매일 통학로로 이용하는 구간이다.
그런데 사건 다음 날 광주시교육청이
긴급 대바카라회의에서 확인한 사실은 이것이었다.
그 통학로 전체에 방범용 CCTV가
단 한 대도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
학교가 셋이나 붙어있는 길이,
가장 많은 학생들이 가장 자주 지나는 그 구간이,
감시의 공백이었다.
장 씨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수사 결과 그는
"지리에 능통한 거주지 인근에서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찾았다"고 진술했다.
흉기는 하나가 아니라 두 자루였다.
하나는 뜯지도 않았다.
남학생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 두 번째 흉기가 쓰였을 가능성을
경찰도 배제하지 않았다.
범행 직후 그는 자신의 차량을 현장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공터에 버리고,
휴대전화 전원을 껐으며,
인근 무인 빨래방에서
피 묻은 상의를 세탁하고
전자담배를 충전한 뒤
현금으로 택시를 갈아탔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것이 우발적 범행인가.
경찰은 계획범죄의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만 범행 대상의 성별과 연령을
미리 정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 무섭다.
누구든 괜찮았다는 뜻이니까.
범행 이틀 전인 5월 3일 새벽,
장 씨는 첨단지구 일대에서
스토킹 가해자로 경찰에 신고됐다.
신고자는 그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외국인 여성이었다.
장 씨가 집 앞을 서성이며
"광주를 떠나지 말라"고 따라다녔고,
실랑이 과정에서 가벼운 폭행도 있었다.
출동한 경찰관은 피해 여성의 몸에서
긁힌 자국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사건은 현장 종결됐다.
피해 여성이 "곧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예정"이라며
사건 접수를 원하지 않았고,
장 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리고 이틀 뒤,
장 씨는 흉기 두 자루를 들고
월계동 인도를 배회하다가
열일곱 살 여학생을 만났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범행 하루 전인 5월 4일,
경북 칠곡경찰서에는 같은 장 씨를
성범죄와 스토킹 피의자로 고소하는 고소장이 접수됐다.
역시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외국인 여성 피해자가 제출한 것이었다.
두 건의 신고와 한 건의 고소.
이 모든 것이 살인 사흘 안에 쌓여 있었다.
경찰이 이 연결고리를 잡지 못한 것은
시스템의 문제다.
광주와 경북 칠곡은 관할이 다르다.
스토킹 신고와 고소가 각각 다른 경찰서에 접수됐고,
피의자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 사이 장 씨는 흉기를 들고 이틀을 배회했다.
이 통학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부대 앞,
전자공고 앞
그 길을 학원 다니며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람들이
광주 곳곳에 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원래 위험한 길이었다고.
어두웠고,
인적이 드물었고,
가로등도 충분하지 않았고,
가끔 불안한 일이 있어도 그냥 지나쳤다고.
어떤 이는 학생 시절
그 인근에서 승합차에 탄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쫓긴 경험을 기억한다.
살아있으니 말할 수 있다고 담담하게 덧붙이면서.
이 사건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취약지대에서,
오래 쌓인 방치 위에서 터진 사건이다.
장 씨 한 사람의 광기로 설명하면 편하다.
바카라임의 끝이 명확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이 사건의 절반만 설명한다.
나머지 절반은 그 길을 그 상태로
수십 년 두었던 구조가 설명해야 한다.
학교 셋이 있는 통학로에 CCTV 하나 없는 상태를
누가, 언제, 왜 방치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다음 사건을 막을 수 없다.
광주 광산구 월계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 6월에도 같은 월계동에서
50대 남성이 거리에서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사상하는 사건이 있었다.
유흥업소 이권 다툼이 원인이었지만,
무고한 행인이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사건 이후 치안이 강화됐는가.
통학로에 CCTV가 생겼는가.
2026년 5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같은 동네에서 더 잔혹한 사건이 터졌다.
2025년 2월에는
광주 금남로에서 경찰관이
흉기 피습을 당했다.
2026년 3월에는
광주 서구 쌍촌동 중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동급생 둘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월계동.
사건의 지역과 유형은 달랐지만 패턴은 같았다.
사건이 터지고,
언론이 달아오르고,
경찰 인력이 그 지점으로 쏠리고,
몇 달 뒤 모든 것이 원래로 돌아가고,
그리고 다음 사건이 자랐다.
이것이 이 글이 주목하는 광주의 구조다.
광주가 안전한 도시라는 믿음은 통계 앞에서 흔들린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평균 기준으로,
광역시 인구 1만 명당 5대 강력범죄 발생 건수에서
광주는 서울(127.9건)과 거의 차이 없는 127.5건으로
전국 광역시 3위를 기록했다.
최근 데이터도 다르지 않다.
경찰청 자치구별 5대 범죄 현황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광주에서 범죄 발생 건수가
가장 많은 관서는 광산서로 3,418건이었다.
그 뒤를 북부서가 3,403건으로 바짝 쫓는다.
서부서 2,865건, 남부서 1,458건,
동부서 1,230건이 뒤를 잇는다.
광산서와 북부서,
이 두 관서가 광주 전체 5대 범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번 살인 사건이 발생한 곳은
광산서 관할이다.
영산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북부서 관할,
북구 첨단2지구에서도
최근 청소년 집단이문제를 꽤나 일으키는 모양이다.
두 지역은 생활권으로는 한 동네나 다름없다.
그러나 치안 체계는 각각의 관서가 따로 움직인다.
이 구조가 문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광산서 쪽에 인력이 집중되면,
원래도 살인 건수가 광주 내 최다인
북부서 관할 지역은 더 얇아진다.
그리고 그 공백에서
다음 사건이 자랄 것이다.
이 구조에 이름이 있다.
범죄학에서 말하는 풍선효과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른다.
경찰 인력을 사건 발생 지점으로 집중시키면
다른 지역의 치안은 느슨해지고,
그 느슨해진 자리에서 범죄가 자란다.
2018년 광주 수완지구 집단폭행 사건 때
이 구조를 직접 목격한 이들이 있었다.
당시 남부서 관할에 배치됐던 의무경찰들이
수완지구 사건을 계기로
전원 수완지구로 이동 배치됐다.
광주 남구의 치안은
그 기간 동안 사실상 공백이었다.
일상 방범 순찰이 멈추고,
관할 지역 전체가 얇아졌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지점만 방어하고
나머지는 느슨해지는 구조.
이 구조는 2018년에도,
2026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의무경찰 제도가 2023년에
완전 폐지됐다는 것이다.
한때 치안 현장의 완충 인력 역할을 했던
의무경찰이 사라졌는데,
그 공백을 메울 경찰관 정원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인력이 빠진 자리에서 사건이 터지면,
이제는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폐지 3년 뒤인 지금,
그 구조적 공백은 아직 메워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이상동기 범죄로 분류했다.
흔히 묻지마 범죄라 불리는 유형이다.
경찰청이 공식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23년 이후 이상동기 범죄는 2023년 46건,
2024년 42건, 2025년 39건으로
매년 40건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3년째 제자리다.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
이 중 살인·살인미수가 전체의 35.4%를 차지한다.
3건 중 1건 이상이 생명을 빼앗거나 빼앗으려 한 범행이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이 있다.
경찰이 2023년부터 이 범죄를
별도 유형으로 분류하고
"예방 가능한 범죄"로 규정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3년 뒤 건수는 그대로다.
선언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바로 그 숫자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범죄를 묻지마라는 말로 뭉개는 것이다.
동기가 없어 보이는 것과
동기를 분석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장 씨는 "사는 게 재미없었고,
자살을 고민하다 범행을 결심했다.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이 말 안에는 극단적 고립,
슬롯적 단절,
자포자기식 분노가 응축되어 있다.
그는 정신질환 병력도 없었고,
음주 상태도 아니었다.
경찰은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에 관계없이,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이 된 게 아니다.
무언가 무너지는 과정이 있었다.
2023년 서울 신림역,
경기 분당 서현역,
2024년 전남 순천 조례동,
2026년 광주 월계동.
사건의 지도가 촘촘해지고 있다.
피의자들의 진술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살고 싶지 않다,
사는 게 재미없다,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었다.
이것이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특정한 슬롯적 조건
고립, 박탈, 단절이 임계점을 넘을 때
폭력으로 터지는 패턴인가.
패턴이 반복된다면,
원인도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CCTV가 늘었고
블랙박스가 달린 차가 늘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이 모든 것을 기록한다.
그런데도 강력범죄는 어두운 골목에서
환한 거리로 나왔다.
신림역 지하,
서현역 앞 광장,
그리고 월계동 인도.
모두 사람이 지나는 공간이었다.
연쇄범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흔적이 너무 많이 남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계획하고 숨기는 범행은 점점 어려워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이상동기 범죄다.
계획이 없으므로 사전에 탐지할 단서가 없고,
피해자와 관계가 없으므로 예측할 패턴이 없다.
감시 인프라는 "잡힐 게 두렵다"는
전제 위에 억제력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어차피 잡혀도 상관없다"는 사람에게,
혹은 잡히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CCTV는 억제력이 되지 않는다.
장 씨는 CCTV가 없는 길을 골랐고,
범행 후에는 무인 빨래방에서
피 묻은 옷을 세탁하며 전자담배를 충전했다.
자살을 고민했다던 사람의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치밀하다.
잡히지 않으려 했는가,
아니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에게 이미 일상이었는가.
경찰이 밝혀야 할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대낮의 번화가에서 벌어지는 범행도 늘고 있다.
2023년 서현역 사건은 백화점 앞 광장이었다.
이상동기 범죄 피의자 중 일부는
오히려 사람이 많은 곳을 고른다.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
기억되고 싶다는 욕구,
공포를 최대화하려는 의도.
CCTV가 많은 곳이 오히려
그 욕구를 채워주는 무대가 된다.
감시 슬롯가 만들어낸
또 다른 역설이다.
이 사건에서 국가가 실패한 지점은 하나가 아니다.
스토킹 신고 현장 종결,
관할 간 정보 공유 부재,
통학로 CCTV 부재.
그리고 그 위에 더 오래된 실패가 있다.
범죄피해자 구조제도가 도입된 지 34년이 됐다.
그럼에도 구조 대상은 여전히
사망·장해·중상해 피해자에 한정된다.
외국인 배우자나 과실로 발생한 사건 피해자는
구조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지급액의 상한은 사망 당시
월급액의 48개월분이다.
평생의 트라우마를,
무너진 가족의 생계를,
4년치 월급으로 환산하는 나라다.
반면 가해자의 교정·재활에는
국가 예산이 직접 투입된다.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재범 방지를 위해 출소 이후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밝히며
출소자 취업 지원, 주거 지원, 심리 상담을 운영한다.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게 아니다.
재범을 막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막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균형이다.
가해자 재활에 쓰는 자원에 비해
피해자 회복 지원이 너무 빈약하고,
그 빈약한 지원마저 민간 위탁 구조에 기대고 있다는 것.
국가가 직접 바카라임지는 영역과
민간에 떠넘기는 영역의 차이가
그대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차이로 드러난다.
가해자가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동안,
피해자가 기억할 권리,
회복할 권리,
안전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가족은
관을 붙잡고 무너졌고,
그 옆에서 국가는 14일에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사건의 분수령은 한 명의 남학생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비명을 들었을 때,
그는 왕복 6차선 도로를 뛰어 건넜다.
목을 두 차례나 찔렸고
쫓아오는 장 씨를 밀어내고 벗어나면서도,
피를 흘리며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이 칼에 찔렸다."
그 전화가 신고로 이어졌고,
장 씨의 동선이 추적됐고,
11시간 만에 검거가 이뤄졌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 있다.
온라인에서 "남고생이 도망갔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
그의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상처를 조금 입고 도망간 것처럼 말하는 걸 보고 마음이 무너졌다."
목을 두 차례 찔리고 출혈이 심해
의식이 흐려지는 상태에서 현장을 벗어난 것이다.
그 남학생은 이후 PTSD 증상을 겪고 있다.
범인의 얼굴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낯선 사람이 가까이 오면 몸이 굳는다고 했다.
수술 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는 경찰이 되겠다고 했다.
그 남학생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목격자가 없는 심야,
CCTV가 없는 인도,
차량을 버리고 현금으로 이동한 가해자.
피해자 신원 파악도 늦어졌을 것이고,
용의자 특정도 훨씬 더디었을 것이다.
장 씨가 준비한 두 번째 흉기는
뜯지 않은 채 발견됐다.
그것이 쓰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SNS가 없던 시대였다면,
이 사건은 전국 이슈가 됐을까.
광주는 서울이 아니다.
지방 도시의 사건은
전국적 공분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유가족이 현장에서 무너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고,
학생들이 성명을 내고,
SNS에서 공분이 퍼졌기 때문에
이 사건은 지금의 무게를 얻었다.
조건이 하나라도 달랐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고 지나간 사건은 얼마나 될까.
목격자가 없었거나,
기록되지 않았거나,
SNS가 없던 시대에 묻혔거나.
광주에서,
혹은 전국의 다른 도시에서.
솔직히 말하면,
다음 사건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이상동기 범죄는 예측이 어렵고,
규칙성이 없으며,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보다 나아질 수는 있다.
우선 가장 즉각적인 것부터.
학교·학원 밀집 통학로에 대한
CCTV 설치 기준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사건이 터진 뒤에야
"거기 CCTV가 없었네"가 된다.
사전에 취약지대를 정기 점검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같은 일은 반복된다.
학교가 셋 있는 길에 카메라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사건 이전에 아무도 몰랐다고 하기는 어렵다.
몰랐다면 점검하지 않은 것이고,
알았다면 방치한 것이다.
스토킹·가정폭력 신고의 현장 종결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가 접수를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이 종결되더라도,
사후 모니터링은 의무화돼야 한다.
특히 신고 이후 가해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는
더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
이번 사건은 그 교훈을 피로 썼다.
관할 간 피의자 정보 공유 시스템도
실시간으로 작동해야 한다.
광주 스토킹 신고와 경북 고소장이
각각 다른 경찰서에 접수됐고
연결되지 않은 채 사건이 터졌다.
행정 편의를 위해 그어진 관할 경계가
치안의 구멍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력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풍선효과를 막으려면 사건 발생 시
기존 인력 재배치가 아니라
별도 특별 순찰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의무경찰이 폐지된 뒤
그 공백을 채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3년이 지났다.
인구 대비 경찰관 수를 늘리는 것이
근본 해법이지만,
예산과 시간이 드는 만큼
중기 계획이라도 나와야 한다.
그리고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
슬롯적 고립과 단절에 대한 조기 개입 체계다.
장 씨처럼 "사는 게 재미없어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었다"는 진술이 반복된다면,
그 말 뒤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정신건강 조기 개입,
고립된 사람들이 슬롯와 연결될 수 있는 통로.
이것이 CCTV만큼이나 치안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아직 이것을 치안 정바카라으로 다루지 않는다.
열일곱 살이었다.
구급대원이 꿈이었다고 한다.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마치고
택시비를 아끼려 걷던 길이었다.
어린이날 자정이 막 지난 시각,
그 아이는 그 길위에 있었다.
그 길이 원래 위험했다는 것을,
그 아이는 알았을까.
알면서도 걸었을까.
아니면 그냥 집에 가는 길이었을까.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관이 떠나는 날 교정을 가득 채운 통곡이 있었다.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흩날리는 현장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른들의 글이 쌓였다.
부모는 현장을 다시 찾아 무너졌다.
"어떻게 여기서."
미안함이 진심이라면,
그 미안함은 이번 한 번으로만
소진되지 않아야 한다.
언론이 떠나고,
카메라가 치워지고,
다음 사건이 터질 때까지
그 길이 여전히 어둡고 CCTV가 없다면,
미안함은 말뿐이었던 것이다.
사건은 끝났다.
피의자는 구속됐고,
14일부터 신상이 공개된다.
그러나 그 통학로는 아직 그대로다.
다음 어린이날에도,
그다음 어린이날에도,
그 길을 걷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안전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최소한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