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팽창의 시대
2026년 대한민국 예산이 727.9조 원을 돌파했다.
2020년 592조 원에서 출발해
불과 6년 만에 135조 원 이상 불어난 규모다.
연평균 증가율로 환산하면
약 3.5%에 달하는 속도다.
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도
같은 기간 31.8%에서 37.5%로 상승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대개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그래도 OECD 평균(45~50%)보다 낮잖아요.
여유 있는 거 아닌가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문장 안에 빠진 단어가 하나 있다.
속도다.
한국은 지금 '부채가 적은 나라'가 아니라
'가장 빠르게 늘리는 나라'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차이는 숫자의 크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올해 초 발표된 2025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 국가채무(D1 기준)는
1,304조 5,000억 원에 달했다.
전년도에 비해 무려
129조 4,000억 원 늘어난 수치다.
1997년 공식 집계를 시작한 이래
단 한 해에 이만큼 증가한 것은
코로나 위기가 정점이던 2020년(+123.4조)과
2021년(+124.1조)을 포함해 역대 세 번째다.
그리고 그 세 번 모두가
최근 5년 안에 몰려 있다.
정부의 중기재정계획을 보면
앞으로의 궤적은 더 가파르다.
국가채무는 2026년 1,415조 원,
2027년 1,532조 원,
2028년 1,664조 원,
2029년 1,788조 원으로 치달을 것이 전망된다.
연 평균 121조 원씩 늘어나는 셈이다.
이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올해 1분기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47.2%로
1990년 집계 이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IMF는 지난해 재정 점검 보고서에서
한국의 일반정부부채가 2030년이면
GDP의 64.3%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예산정바카라처(NABO)도 2033년 국가채무비율이
57.7%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숫자만 보면 여전히 일본(200%),
미국(107%), 프랑스(107%)보다 낮다.
하지만 프랑스는 바로 이 부채 누적으로 인해
최근 국가 신용등급이 AA-에서 A+로 강등됐다.
절대 수치가 아니라
방향과 속도가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사례다.
727조 원이라는 숫자는
그냥 '국가가 가진 돈'이 아니다.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예산의 재원을 크게 나누면
국세가 약 60%,
각종 기금 및 세외수입이 약 15%,
나머지를 국채 발행과
기타 수입이 채우는 구조다.
표면상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핵심은 단 하나의 사실에 있다.
세금만으로는 다 메울 수 없다.
문제는 이 불균형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수는 기대만큼 늘지 않는다.
국회예산정바카라처는 5년간 국세수입이
정부 예상보다 17조 원 낮을 것으로 봤다.
반면 지출은 의무지출을 중심으로
꾸준히 팽창하고 있다.
세수 둔화, 복지 확대,
반복되는 추경 편성이라는
세 가지 힘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국채 의존 구조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굳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의 재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단순한 지출 증가가 아니라
수입과 지출 사이의 구조적 괴리다.
재정 팽창의 가장 큰 엔진은 복지다.
국회예산정바카라처에 따르면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2021년 199.7조 원에서
2026년 269.1조 원으로
5년 만에 35% 가까이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로 환산하면 6.15%다.
한국의 공공슬롯복지지출 연평균 증가율(2011~2021년)은
12.2%로 OECD 평균 5.7%의 약 두 배에 달한다.
복지 확대 자체를 나무라기는 어렵다.
한국의 공공슬롯복지지출은 GDP 대비 여전히
OECD 평균(23%)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증가는 이른바 '따라잡기' 단계였다.
앞으로의 증가는 성격이 다르다.
IMF의 최신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금 지출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5년 사이 GDP의 0.7%만큼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G20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상승 속도다.
같은 기간 일본은 0.2%, 독일 0.3%, 미국 0.5%다.
건강관리 지출 증가 속도도 미국(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인구 고령화가 재정 압박의 새로운 엔진으로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기초연금 하나만 봐도
그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다.
2025년 기준 기초연금 지급 총액은
24.3조 원으로 GDP의 약 0.91% 수준이다.
그런데 현재의 인구 고령화 속도와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2050년에는 58.9조 원으로 불어난다는 추계가 나와 있다.
25년 만에 두 배 이상이다.
이 비용은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납세자가 되는 시점에 청구된다.
현금성 지원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2020년 긴급재난지원금(총 14.3조 원) 당시
한국개발연구원 분석을 보면,
지원금 지급 직후 카드 매출은 7.3% 늘었고
소상공인 매출은 11.1% 반등했다.
실제 소비 증가 효과도
26~36% 수준으로 측정됐다.
현금을 나눠주면 소비는 실제로 늘어난다.
이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효과의 수명이 문제다.
지원금의 90% 이상은 지급 후
1~2개월 안에 소진됐고,
이후 소비는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경제학적 언어로 표현하면,
이는 성장이 아니라 '시간 이동'이다.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당겨온 것에 가깝다.
지원금이 끝나는 순간,
수요도 함께 사라진다.
이를 수치로 보여주는 개념이 재정승수(fiscal multiplier)다.
정부가 1원을 지출했을 때
경제 전체가 얼마나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이 지표에서,
한국의 현금성 지원은 대체로 0.2에서 0.8 사이로 추정된다.
10조 원을 풀어도 경제는
2조에서 8조 원 정도만 반응한다는 뜻이다.
일부 분석에서는 1을 넘지 못한다고도 본다.
재정 확대의 경제적 효율이
마냥 높지 않다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은 본질적으로
두 개의 진실이 동시에 맞닥뜨리는 구조다.
소비를 즉각 끌어올리고
취약계층의 충격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그 효과가 지속되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이 두 평가는 모두 맞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다.
진짜 질문은 그 다음에 있다.
그 효과가 과연 국채를 발행할 만큼,
미래 세대에 비용을 넘길 만큼 가치 있는가?
이 질문을 묻는 순간,
논쟁의 무게 중심은 '얼마나 효과적인가'에서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로 이동한다.
그리고 정치적 언어 안에서
이 질문은 너무나 자주 실종된다.
정치 무대에서 재정 지출은 대개 당위로 포장된다.
국가는 위기에 대응해야 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는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장 뒤에는
항상 물어야 할 질문이 따라붙는다.
어떤 돈으로 쓰느냐는 것이다.
세금을 걷어 쓰는 것과
기존 예산을 재배치해 쓰는 것,
그리고 국채를 발행해
미래 세대의 몫을 당겨 쓰는 것은
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행위다.
세 번째 방식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재정이 버퍼 역할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구분이 정바카라 담론 안에서 지워지는 순간,
지출은 결과만 남고
비용은 조용히 증발한다.
유권자는 지원금을 받는 지금을 경험하지만,
그 청구서는 예산안 논의가 끝난 훨씬 뒤에,
다음 세대의 납세고지서 형태로 돌아온다.
단기적 복지 지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구 구조 변화가 재정에 가하는 장기 압박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현재 0.91 수준으로 세계 최저권에 머물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고,
2035년에는 30%,
2050년에는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변화가 재정에 미치는 충격은 단선적이다.
세금을 내는 인구는 줄고,
연금·의료·요양 등 수급 인구는 늘어난다.
IMF가 한국의 연금 지출 증가 속도를
G20 선진국 중 가장 빠른 것으로 지목한 것은
이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세수 기반이 줄어드는 속도와
복지 수요가 늘어나는 속도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재정의 '수입-지출 가위'가
벌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은 다르다.
국가는 화폐를 발행할 수 있고,
국채를 차환할 수 있으며,
세대를 넘어 채무를 분산시킬 수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국가 재정을 가계 살림에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구조의 방향성은 다르지 않다.
수입이 정체하는 가운데
지출만 계속 팽창한다면,
어느 지점부터는 다음 달 카드값을
또 다른 카드로 막는 것과 닮아가기 시작한다.
규모가 다르고 시간 축이 길 뿐,
원리는 같다.
문제는 그 임계점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계점은 언제나
도달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2010년대 초 유럽 재정위기가 그랬다.
국채 금리가 순식간에 치솟고
국가 신용등급이 연달아 강등되던 그 봄이,
지금의 한국과 전혀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모든 재정 지출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핵심 질문은 그 돈이 미래에도 가치를 남기는가이다.
도로, 연구개발, 교육, 디지털 인프라에 쓰인 돈은 투자다.
10년 뒤에도 생산성과 소득으로 되돌아온다.
반면 소비성 현금 지원은 지출된 순간 사라진다.
경기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만,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의 소비 지원은
그 자체로 정당성이 있다.
사람이 쓰러지는데 장기 투자 효율을 따지는 것은 냉혹하다.
그러나 위기가 일상이 되고,
지원이 정치적 관성이 되는 순간,
재정의 성격은 달라진다.
긴급한 완충재가 아니라
구조적 비용이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예산 안에서
그 경계선이 얼마나 명확하게 그어져 있는지,
솔직히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
지원금은 지금의 소비를 만든다.
그 비용은 미래로 넘어간다.
그 미래를 살아갈 세대는
오늘의 혜택을 직접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구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이 국채의 기능이고,
재정 정바카라의 원리다.
문제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직하게 묻는 일이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한 해 동안만 국가채무가 129조 원 늘었다.
2029년이면 연간 100조 원 이상 증가하는 것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나와 있다.
IMF는 2030년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GDP의 64.3%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갚아야 하는지,
그 부담이 공정하게 분배되는지
이 질문들이 예산안 심의장 밖으로 나와
슬롯 전체의 토론이 되어야 할 때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돈을 쓰는 것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을 빌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빌린 시간의 청구서는,
언제나 우리가 잊을 만할 때쯤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