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를 잃은 도시

광주 교통 전환의 위기

by다소느림

요즘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다 보면

늘 똑같은 모습이 있다.


배차 앱에 찍힌 '8분 후 도착'이라는 숫자가,

공사 차량에 막혀 15분으로 늘어나는 걸 보면서

차선은 줄었고, 우회 구간은 늘었고,

버스는 제 시간에 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불편은 어제오늘 시작된 게 아니다.


지금 광주는 교통 체계를 뜯어고치는 한복판에 있다.

문제는 무엇을 바꾸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먼저 바꾸느냐다.


3조 원의 약속, 그리고 2030년이라는 거리


광주 도시철도 2호선은 단순한 노선 하나가 아니다.

총연장 41.891킬로미터, 정거장 44개, 사업비 3조 원,

사업 기간 2013년부터 2030년까지

이 숫자들은 광주가 지난 10년 넘게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것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준다.


노선은 광주 도심을 한 바퀴 순환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시청에서 출발해 상무지구, 월드컵경기장, 백운광장, 조선대,

전남대, 첨단지구, 수완지구를 거쳐

다시 시청으로 돌아오는 순환선.


완공된다면 광주의 이동 지형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현재 1단계 구간 시청에서 광주역까지 약 17킬로미터는

공정률 77%로 순항 중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2026년이면 시민들이 기대하던 지하철을 탈 수 있다"며

개통 시점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전체 2호선의 완공은 2단계 공사까지 포함해

2029년 말에서 2030년을 바라보고 있다.

2단계는 2029년 말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부 공구는 계속된 유찰로

공법 변경과 사업비 증액 협의가 진행 중이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그 사이의 시간이다.


999대, 10개 업체, 17년째 묵은 노선


지금 이 순간,

광주 대중교통의 실질적 기반은 여전히 버스다.

광주광역시 시내버스는 대창운수, 을로운수, 현대교통 등

총 10개 운송업체가 운행하고 있으며,

예비차량을 포함해 총 1,044대가 운행 중이다.


노선은 급행 7개, 간선 28개, 지선 61개로 구성돼 있으며,

하루 6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이 버스 위에서 출퇴근을 해결한다.


그런데 이 숫자 뒤에는

불편한 사실이 숨어 있다.


광주시가 2017년 이후

시내버스 노선을 개편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심 곳곳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수완지구·첨단지구 같은 신도심이 급성장했지만,

버스 노선은 7년 넘게 그대로다.


차량 수도 거의 제자리다.

2010년에는 901대였던 시내버스가

현재는 999대로 늘어났다.

14년 동안 98대 증가 연평균 7대꼴이다.


도시 인구와 이동 수요가 그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성장이라기보다 정체에 가깝다.


1조 795억 원


버스 운영의 재정 구조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07년 준공영제 도입 이후

2023년까지 광주시가 시내버스에 투입한 재정 지원액은

무려 1조 795억 원에 달한다.


16년간 1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이 버스에 투입됐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서비스 품질은 제자리다.


왜 그럴까?


핵심은 구조 문제다.

이른바 '끝에서 끝 노선'

도시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이어지는

장거리 노선이 광주 버스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 왔다.


노선이 길수록 버스 한 대가 왕복에 걸리는 시간은 늘어나고,

배차 간격은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돈은 쓰는데 서비스는 나빠지는 역설이다.


배차 간격을 줄이려면 버스를 늘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누적되는 재정 부담에

증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광주는 이미 준공영제라는 구조 안에서

버스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노선 비효율을 그대로 둔 채

차량만 늘리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공사


여기에 도시철도 공사가 덮쳤다.

1단계 1공구(차량기지~운천저수지 3.681km),

2공구(금호지구 입구~풍금사거리 2.891km),

3공구(월드컵경기장~무등시장 2.930km) 등

주요 간선 도로를 따라

굴착 공사가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차선은 줄었고,

교통 흐름은 느려졌다.

그리고 그 영향은 버스가 그대로 흡수했다.


1단계 공사 구간의 도로 포장 복구는

2025년 상반기 완료를 목표로 했으며,

도로 포장이 끝난 뒤에도 정거장 자재 반입을 위해

일부 구간의 교통 통제는 계속됐다.


1단계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2단계 굴착이 시작됐다.

2024년 11월 초부터 8공구를 시작으로

2단계 굴착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결과는 단순하다.

이미 비효율적이었던 버스가,

더 불리한 환경에서 더 비효율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불편은 고스란히

매일 아침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몫이다.


9억 9200만 원짜리 용역, 그리고 '지연'이라는 결론


광주시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2022년부터 2024년 1월까지

9억 9200만 원의 시비를 들여

시내버스 노선 개편을 위한 용역을 추진했다.


간선 중심 재편,

급행 노선 신설,

지선 구조 정비 등

방향 자체는 필요한 내용이다.


문제는 그 결론이다.

2호선 공사 지연으로

시내버스 노선 개편도

불가피하게 지연됐다는 기사가 나왔으며,

광주시 공식 입장 역시 버스 노선 개편은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시기에 맞춰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억 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개편안을 만들었지만,

실행은 지하철 개통 이후로 미뤄졌다.


불편은 지금이다.

해법은 나중이다.


데이터조차 제대로 못 모으는 도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노선 개편을 하려면

어디서 얼마나 타고 내리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광주는 전 구간 대중교통 단일 요금제를 채택해

하차 태그가 의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 대부분이 하차 시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내린다.


정확한 승하차 데이터 수집 자체가 어려운 구조다.

서울, 수도권, 부산, 대전 등의 대도시는

교통카드 승하차 태그 기록을 통해

노선과 배차 간격을 정밀하게 조정하고 있다.


하차 태그가 의무화된 이들 지역은

어디서 많이 타고 내리는지

정보를 정확히 수집할 수 있어

노선 조정을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다.


데이터가 부정확하면

개편 근거도 흔들린다.


시는 하차 태그를 권장하고 있지만,

단일 요금제 구조에서

이를 의무화하기는 쉽지 않다.


개편의 재료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개편 시점만 논의하고 있는 셈이다.


'변화'가 아니라 '순서'


"버스부터 고쳐라",

"공사만 하고 대바카라은 없냐"

이런 반응을 감정적 반발로 읽으면 안 된다.


시민들이 거부하는 건 변화 자체가 아니다.

지금 광주 교통의 실질적 바카라임자인 버스가 개선되지 않은 채,

오히려 공사라는 악조건까지 더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반응하는 것이다.


1조 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붓고도

왜 버스는 나아지지 않는지,

10억 짜리 용역 결과물은 언제 쓰이는지,

그리고 지하철이 다 생기기 전까지

나는 매일 이 버스를 타야 한다는

그 현실에 대한 반응이다.


도시 교통이 한꺼번에 바뀌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전환 과정에는 원칙이 있다.


철도를 짓는 동안 버스를 재설계하고,

환승 구조를 미리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은 불편이 아니라

'이동이 달라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 광주에서 이 세 가지는 각자 다른 속도로,

다른 시간표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1단계 지하철이 개통되는 시점,

광주 시민들이 처음으로 2호선을 타는 그날에도

나머지 절반 이상의 시민들은

여전히 버스로 이동할 것이다.


2단계 완공까지는 아직 몇 년이 더 남아 있다.

지하철이 생겨도 버스가 엉키면

도시 교통 전체의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광주는 지금 교통을 개선하고 있는가.

아니면 불편을 공사 탓으로 유예하고 있는가.

그 답은 내년 버스 노선표에 적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