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면 바보가 되는 슬롯

알면서도 반복되는 선택지

by다소느림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

빨간불이고 차가 없다.

그런데 옆 사람이 그냥 건너간다.

그 순간 신호를 지키고 서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내가 지금 바보짓을 하고 있는 건가?


이 감각을 우리는 너무 오래

개인의 감정 문제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감정이 아니다.

규칙을 어긴 사람이 이득을 보고,

규칙을 지킨 사람이 손해를 보는 구조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다.


그리고 무단횡단이 반복되는 한,

이 감각도 반복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무단횡단이 사고로 이어질 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사람은

정작 아무 잘못도 없는 운전자라는 사실이다.


수치가 먼저 말하다


무단횡단을 사소한 법규 위반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숫자에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횡단보도 외 횡단' 중

발생한 교통사고는 6,224건,

사망자는 337명이었다.


최근 5년을 누적하면

사망자만 3,054명에 달하며,

이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10~13%에 해당한다.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1명 이상이

무단횡단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한국의 교통안전 수준은 분명히 개선되고 있다.

OECD 국제교통포럼이 2024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4.9명으로

35개 회원국 중 21위를 기록했으며,

2013년 대비 49.9%의 감소율을 보이는

뚜렷한 개선세를 나타냈다.


전체 지표로 보면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무단횡단 사고는

이 개선세와 별도로 움직인다.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가 각각

약 46.6%, 44.6% 감소하는 동안에도,

특정 지역과 특정 조건에서는

무단횡단 사고가 오히려 늘고 있다.


전체 시스템이 개선되어도

특정 행동 구조는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이 이 문제를 까다롭게 만드는 핵심이다.


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바보

무단횡단이 개인의 안전 문제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단횡단이 반복되고 묵인될 때,

그 피해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시간을 잃는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그 시간을 건진다.


단속될 확률은 낮으며

단속되더라도 신호 있는 횡단보도에서의

무단횡단 범칙금은 3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규칙을 지키는 것이

비합리적 선택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경제학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이 있다.

구성원 모두가 협력할 때 유지되는 질서가,

이탈자에게 아무런 비용이 부과되지 않을 때

서서히 무너지는 현상이다.


빨간 신호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일종의 협력이다.


슬롯 구성원 전체가 신호 체계를 신뢰하고 따를 때,

교통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협력에서 이탈해

이익을 취하고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협력의 유인은 서서히 무너진다.


단 한 번의 무단횡단이

규범을 붕괴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고,

주변에서 목격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학습이 쌓이면,

신호를 지키는 것은 '규범을 따르는 행위'에서

'눈치 없이 기다리는 행위'로 의미가 뒤바뀐다.


무단횡단은 그렇게

신호를 지키는 사람을 서서히 바보로 만든다.


무단횡단을 둘러싼 또 하나의 구조적 사실은,

행동 주체와 피해 집단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동성과 집단 동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 청소년·청년층은

위험 행동의 빈도가 높다.


반면 고령층은 보행 속도와 인지 반응의 한계로 인해,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치명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실제로 노인 보행 사망자의

약 34%가 무단횡단 중 발생한다.

많이 하는 집단과, 많이 사망하는 집단이

분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도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또 다른 집단이 있다.


운전자다.


사고가 나면, 일단 운전자가 가해자?


무단횡단 사고의 법적 처리 방식은

많은 사람이 잘 모른다.


상식적으로는 법을 어긴 보행자가

사고의 바카라임을 더 많이 져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경찰서에서 대인사고의 가피를 지정할 때

보행자를 가해자로 지정하는 경우는

자동차전용도로나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사실상 전무하다.


심지어 명백한 무단횡단,

즉 횡단보도 적색 신호 횡단 중

발생한 사고조차 일단은 운전자를 가해자로 놓는다.


일단 가해자.


이 단어의 무게를 생각해야 한다.

정속으로 주행하던 운전자가

갑자기 튀어나온 무단횡단자를 치었을 때,

그 운전자는 사고 직후부터 가해자의 지위로 처리된다.


경찰 조사를 받고,

보험사와 싸우고,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한다.

보행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과실 비율 역시 보행자에게 생각보다 관대하다.

좁은 도로에서의 무단횡단 시

보행자 과실은 평균 20% 수준이고,

차도와 인도가 명확히 구분된 도로에서도

25% 정도에 그치며,

차선이 늘어날수록 5%씩 가산되는 방식이다.


보행자가 법을 어겨 도로에 뛰어들었더라도,

운전자는 최소 75%에서 80%의 바카라임을 진다.


육교나 횡단보도가 가까이 있음에도

무리하게 대로를 건너다 사고가 난 경우에도

보행자 과실은 60%에 그쳤다는 판례가 있다.


물론 법원의 판단이 점차 바뀌고 있다는 신호도 있다.

왕복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해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택시기사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사례도 있다.


블랙박스의 보급과 함께

이런 판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소 자체가 이미 운전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트라우마


사법적 처리가 끝난 뒤에도,

운전자에게는 또 다른 피해가 남는다.


사람을 친 경험은 그 자체로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남긴다.

자신의 과실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교통사고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피해자가 아닌 사고를 야기한 운전자에게서도

PTSD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전국적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악몽, 플래시백, 운전 기피

이 증상들은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찾아온다.


차를 보면 그때의 상황이 떠올라 괴롭더라도,

현대 슬롯에서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차가 있기 때문에

그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무죄 판결을 받은 운전자도,

과실 비율에서 이긴 운전자도,

이 부분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무단횡단자는 3만 원짜리 범칙금을 내면 그만이지만,

운전자는 그 순간을 평생 가지고 산다.


이것이 무단횡단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이유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본인이지만,

그 결과가 만드는 피해는

고스란히 타인에게 전가된다.


광주가 보여주는 역설


광주는 의미 있는 사례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약 6,908건이지만

사망자는 41명으로,

광역시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전반적인 교통안전 관리에서는

분명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단횡단만큼은 다르게 움직인다.

2021년 이후 2년간

무단횡단 사고는 41.5% 증가했고,

2026년 일부 기간에는

사망자의 절반이 무단횡단 중 발생했다.


전체 시스템이 개선되어도

특정 행동 구조는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이 이 문제가 가진 고유한 완강함이다.


단속과 인프라 개선만으로는

닿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3만 원이라는 숫자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은 하나다.

비용의 불균형이다.


운전자가 신호를 위반하거나

과속을 하면 수십만 원의 과태료와 벌점이 쌓인다.

스쿨존에서 속도를 조금만 초과해도

범칙금이 수배로 뛴다.


그런데 보행자가 차도에 무단으로 뛰어들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을 해도 3만 원이다.

이 범칙금을 8년씩 납부하지 않아도

형사처벌까지 이르는 데 수년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 숫자는 단순한 벌금액이 아니다.

이 행동을 슬롯가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3만 원은 사실상

"단속만 안 되면 공짜"라는 메시지다.


이 메시지가 누적되면

무단횡단은 규범 위반이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가 된다.


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그 선택지를 굳이 포기한 사람이 되고,

자연스럽게 바보 취급을 받는다.

규범은 그것을 어겼을 때의 비용이

충분히 클 때만 작동한다.


비용이 낮으면 규범은 형식이 된다.

지금 무단횡단의 비용 구조는

명백히 잘못 설계되어 있다.


규칙을 어긴 쪽은 가볍고,

규칙을 지킨 쪽이 무겁다.


바꿔야 할 것은 캠페인 문구가 아니다


무단횡단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오랫동안 계도와 캠페인 중심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의 캠페인이

무단횡단을 없애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미 이 방법의 한계를 증명한다.


바꿔야 할 것은 구조다.

무단횡단 범칙금을 현실화하고,

사고 시 과실 산정 기준을 행위의

위법성에 비례하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횡단보도 간격을 줄이고,

신호 대기 시간을 보행 수요에 맞게 조정하는

인프라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무단횡단이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채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운전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죽을 거면 혼자 죽지, 라는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이 구조의 불공정함에 대한

오래된 분노가 담겨 있다.


그 분노를 외면하는 정바카라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