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해요?
계기판을 확인하고,
앱을 열어 인근 주유소들의 가격을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
몇 블록을 더 돌아간다.
리터당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보통의 온라인 게임인이 한 달 유류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10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을 훌쩍 넘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기준으로,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2024년 하반기부터 꾸준한 상승 압력을 받고 있으며,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불안정성은
이 추세를 단기간에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는 메시지는 2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차량 운행을 자제해 주십시오."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십시오."
"에너지를 아껴 주십시오."
이 글은 그 문장들이 왜 지금 시대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지,
그리고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인지를 데이터와 함께 따져보려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이 좁은 해협의 긴장 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선물 시장에서
원유 가격은 즉각 반응하고,
그 신호는 수 시간 안에
국내 주유소 가격 예측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제 스마트폰을 가진 국민들이라면 누구든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가 어떻게
자신의 기름값으로 이어지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정보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위치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유가가
어떤 구조로 형성되는지 알지 못했다.
중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산유국들이 어떤 협상을 하는지,
그 결과가 왜 주유소 가격으로 이어지는지
그 연결고리를 일반 국민들이
직접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정부가 "아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맥락을 모른 채 따랐다.
정보가 권력이었고,
그 권력은 정부가 독점했다.
2025년은 다르다.
지금의 국민들은 유가 상승의 원인을 스스로 검색하고,
정바카라의 효과를 해외 사례와 비교하며,
때로는 정바카라 입안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손안에 쥐고 앉아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내놓는 정바카라의 언어는
5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이 간극이 불신을 만든다.
숫자를 보면 그 구조적 모순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3년 에너지 수급 통계를 보면,
국내 에너지 소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산업 부문으로 전체의 55~62%에 달한다.
발전 부문이 18~22%,
수송 부문이 18~22%,
가정과 상업 부문이 10% 내외 순이다.
그렇다면 정바카라이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개입하는 곳은 어디인가.
수송 부문이다.
차량 운행 제한,
홀짝제, 공공기관 승용차 운행 자제.
그런데 이 수송 부문 전체가
국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남짓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그 20% 안에는 화물차,
버스, 항공, 해운이 모두 뒤섞여 있다.
개인 승용차만 따로 떼어내면,
실제로 정바카라이 겨냥하는 대상이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더 작아진다.
전체 소비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산업 부문에 대한 실질적 규제 없이,
개인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
에너지 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
그것이 지금 정바카라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차량 5부제나 홀짝제가
전혀 효과 없는 정바카라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단기 지표에서는 분명한 효과가 나타난다.
국내외 연구를 종합하면,
차량 운행 제한 정바카라은 시행 기간 동안
차량 통행량을 10~30% 감소시키고,
특정 지역에서는 단기 대기질 개선과
연료 소비 감소를 유발한다.
그러나 해외의 경험은 그 이후를 보여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당국은 강력한 차량 홀짝제를 시행했다.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베이징 시내 교통량은 약 30~40% 줄었고,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는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개선됐다.
국제 언론과 환경 단체들은
이를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난 뒤,
모든 수치는 원래 수준으로 회귀했다.
차량 제한이 해제되자 교통량은 반등했고,
대기질도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이 정바카라은 특정 이벤트를 위한
'관리된 상태'를 만들었을 뿐,
도시의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다.
더 강력한 경고는 멕시코시티에서 왔다.
1989년 도입된 'Hoy No Circula(오늘은 안 된다)' 정바카라은
매일 특정 번호판의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제도였다.
초기에는 교통량 감소와 대기오염 저감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Lucas Hahn 외 다수의 연구자들이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이 정바카라 시행 이후
멕시코시티의 차량 보유 대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제한을 피하기 위해 시민들이 두 번째 차량,
이른바 '세컨드카'를 구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매된 차량 상당수가
저렴한 노후 차량이었다는 점이다.
배출가스 기준이 낮은 오래된 차량들이 도로에 쏟아지면서,
대기오염은 정바카라 시행 이전보다
악화되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는 냉혹하게 결론지었다.
"이 정바카라은 차량 수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늘렸다."
2016년 인도 델리에서 시행된 홀짝제도
비슷한 한계를 드러냈다.
시행 기간 일부 구간에서 교통 흐름이 개선됐지만,
델리 대기질 연구센터(TERI)의 후속 분석에 따르면
미세먼지 등 핵심 오염 지표의 개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델리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이
차량 배기가스뿐 아니라 산업 매연,
건설 먼지, 농업 부산물 소각 등
복합 요인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개념이 있다.
에너지 경제학에서 말하는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거나
소비가 강제로 줄어들면,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 소비를 보충하는 경향이 있다.
연료비가 절약되면 더 많이 운전하거나,
더 큰 차를 구매하거나,
다른 에너지 소비를 늘린다.
차량 제한이 생기면
제한을 우회할 방법을 찾는다.
인간의 행동 패턴은
제도적 압박에 저항하며
균형을 회복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2000년대 초
영국 서섹스대학교 에너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에너지 효율 개선의 리바운드 효과는
경우에 따라 절약 효과의 10~100%를 상쇄할 수 있다.
즉, 아낀 만큼 다시 쓰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차량 5부제가 작동하는 방식도 똑같다.
운행을 못 하는 날,
일부 시민은 카풀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택시를 부르거나,
렌터카를 이용하거나,
가족의 차를 대신 운행하거나,
아예 세컨드카를 장만한다.
정바카라이 바꾸는 것은 행동의 '형태'이지,
에너지 소비의 '총량'이 아닐 수 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지 않냐"는 질문은
직관적으로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제학은 이 직관에 중요한 조건을 달아 놓는다.
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량 변화 정도를 측정하는 개념이
'수요의 가격탄력성(Price Elasticity of Demand)'이다.
탄력성이 높으면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소비가 크게 줄고,
탄력성이 낮으면 가격이 올라도 소비가 별로 줄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다수의 에너지 경제 연구에 따르면,
휘발유의 단기 수요 탄력성은
대체로 -0.2에서 -0.3 수준이다.
이는 가격이 10% 오를 때
소비가 고작 2~3% 줄어든다는 뜻이다.
장기적으로는 -0.6~-0.8까지 올라가지만,
그것도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 탄력성이 이렇게 낮을까.
차량은 현대 슬롯에서
'선택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국민들에게,
온라인 게임과 학교를 오가는 차량 운행은
포기할 수 없는 필수 행동이다.
출퇴근을 위해 기름을 넣어야 한다면,
가격이 1,800원이든 2,200원이든 큰 차이가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이 맥락에서 "줄여라"는 메시지는
구조적 한계를 외면한 채
개인의 의지에 모든 바카라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IEA와 OECD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들에게
제시하는 정바카라 방향은 단순 절약과는 결이 다르다.
IEA의 '2023 World Energy Outlook'과
OECD의 에너지 정바카라 리뷰는
공통적으로 네 가지를 핵심 축으로 제시한다.
같은 성과를 더 적은 에너지로 달성하는
기술·제도 혁신인 에너지 효율 개선,
내연기관 수송을 전동화하는 전기차 전환 가속,
발전원 구조를 탈탄소화하는 재생에너지 확대,
그리고 가격 신호와 인센티브를 통해
소비 패턴을 시장 친화적으로 유도하는
수요 반응 시스템 구축이다.
핵심 방향은 명확하다.
"덜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쓰게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 자체를 억누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소비하는 방식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이 방향을 앞서 실행에 옮긴 나라들의 결과는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노르웨이는 2023년 기준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어섰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수치가 아니다.
전기차 구매에 대한 공격적인 세제 인센티브,
전국 단위의 충전 인프라 투자,
내연기관차의 도심 진입 제한을
수십 년에 걸쳐 일관되게 결합한 결과다.
독일은 2023년 기준
전체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약 59%까지 끌어올렸다.
이 역시 20년 이상 정바카라 방향을 흔들지 않고
막대한 공공 투자를 이어온 산물이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하나다.
"줄여라"는 메시지 대신
구조를 바꾸는 데 자원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구조적으로 단순하다.
차량 5부제는 빠르고,
싸고, 즉각 시행 가능하다.
별도의 예산이 필요 없고,
입법 절차가 복잡하지 않으며,
언론에 발표하면 그날부터 효과가 생긴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신호를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보낼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이것이다.
반면 구조적 전환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전기차 보조금 체계를 정비하고
전국에 충전 인프라를 깔려면 수 년이 걸린다.
산업 부문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면
기업들의 강한 반발이 즉각 뒤따른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초기 비용이 클 뿐 아니라
발전 시설 입지를 둘러싼 지역 주민 수용성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중교통 인프라를 개편하려면
도시 계획 전반을 손봐야 한다.
어느 하나도 임기 안에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과제가 없다.
여기서 핵심적인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다.
정치적 시간표와 정바카라적 시간표는 다르다.
4~5년 선거 주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 구조에서,
10년 이상의 일관된 투자와 인내를 요구하는 구조 전환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바로 차량 5부제다.
빠르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지,
효과적이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정바카라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지금의 시민은 묻는다.
왜 해야 하는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산업 부문은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는 정바카라은,
아무리 법적 강제력을 가져도
실질적인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정바카라 순응은 납득에서 나오는 것이지,
통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정부 신뢰도 조사를 보면,
정부 정바카라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 정바카라도 예외가 아니다.
효과가 불분명하고,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바카라임은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하나다.
"왜 나만 줄여야 하는가."
이 논의에서 자주 소환되는 비교가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이다.
국민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5톤, 21억 달러 상당의 금을 모았다.
이 운동은 단기간에 외환 보유고를
실질적으로 늘리는 데 기여했고,
구체적인 효과가 측정됐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참여와 결과 사이의 연결고리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내가 금을 내면 나라 빚이 줄어든다"는 인과관계가
시민 개인에게도 이해됐다.
지금의 에너지 절약은 다르다.
내가 차를 안 몰아도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그대로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내 절약과 무관하게 생산량을 결정한다.
유가는 내 행동이 아니라
글로벌 수급과 투기 자본의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
절약은 가치 있는 실천이다.
그러나 절약은 참여일 뿐,
해결이 아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정바카라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는다.
지금 시대의 에너지 정바카라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더 많은 시민을 절약에 참여시킬 것인가"가 아니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산업 부문을
어떻게 효율화할 것인가.
전기차 전환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수요 반응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 소비 패턴을 시장 친화적으로 유도할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비용과 불편을
어떻게 공평하게 분담할 것인가.
리터당 2,000원 시대는 우리에게 선택지를 묻고 있다.
개인의 불편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을
계속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구조를 바꾸는 데
진짜 자원을 투입할 것인가.
지금의 정바카라 언어로는
그 질문에 답이 없다.
그래서, 이게 최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