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 시대, 납득의 부재

설명 없는 기준이 만든 거리감

by다소느림

신호등 앞이었다.

바로 우회전을 해야 하는 코너였고,차량들은 뒤따라 오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가던 차 한 대가

오른쪽 모퉁이에 다가서더니,

갑자기 시동을 꺼버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려서

걸어가 버렸다.


그 자리에 차를 두고.


멈추기에도, 움직이기에도 애매한

그 순간의 감정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신고를 하고,

시간을 적고,

위치를 적고,

영상까지 첨부했다.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다.

돌아온 답은 간결했다.


안전신문고(불수용)(편집본).png

"불수용."


체감은 제자리


이 경험은 예외가 아니다.

매년 수백만 명이 동일한 순서를 반복하고,

동일한 문장을 받아 든다.


2024년 한 해

광주광역시의 안전신문고 신고 건수는

총 52만 690건으로,

전년(34만 6,945건) 대비 50% 증가했다.


신고 분야별로는 불법주정차가

50.2%로 가장 많았고,

자동차·교통 위반이 30.3%로 뒤를 이었다.

광주 한 도시에서 1년에 52만 건이다.


전국으로 환산하면 그 규모는

쉽게 수백만 단위를 넘는다.


실제로 안전신문고 신고 건수는

2014년 1,488건(일평균 16건)에서

2019년에 이미 연 100만 건을 돌파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4배가 넘는 폭증이었다.


이후에도 증가세는 꺾이지 않았다.

제도가 확대되고 앱이 편리해질수록

신고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국민신문고를 통한 민원까지 합산하면

수치는 다른 차원으로 올라간다.


국민신문고를 통한 경찰청 민원은

2021년 121만 건,

2022년 135만 건,

2023년 162만 건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했으며,

한 경찰 관계자는

정부 부처로 접수되는

전체 민원의 절반 이상이

경찰청으로 할당된다고 밝혔다.


숫자만 놓고 보면,

시민 참여의 양적 확대는

이미 충분히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많이 신고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은,

참여율 통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현실이다.

이 간극이야말로 이 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의 출발점이다.


경험이 아닌, 입증


사람에게 신고는 경험의 언어다.

직접 겪고,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긴 결과다.


그러나 시스템에게 신고는 전혀 다른 무언가다.

그것은 행정 처벌을 위한 증거 자료다.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불법주정차 신고는 앱과 PC 모두 가능하지만,

핵심 조건은 촬영 방식에 있다.


앱 실행 후 실시간으로 1분 이상 간격을 두고

촬영한 사진 2장 이상이어야 하고,

위반 지역과 차량번호가 명확히 식별되며

촬영 시간이 표시된 사진이어야 한다.


사진을 촬영한 날로부터 익일(다음날)까지

신고 접수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미 찍어놓은 사진이나

블랙박스 영상은 인정되지 않는다.

갤러리에서 불러오는 사진은

마지막 저장 시간이 기록되어

위변조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려된다.


앱에서 촬영한 사진은

위변조 방지를 위해 암호화되어 저장되며,

조회·추출·수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신고자는 현장에서 앱을 실행하고,

1분을 기다리며,

동일한 각도에서 두 장을 촬영한 뒤,

다음날 자정 이전에 제출해야 한다.


이 조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처리되지 않는다.

신고자의 경험은 배제되고,

형식만 남는다.


이 구조 안에서 시민의 서사는

처음부터 증거력을 갖지 못한다.


기준은 존재하지만, 공유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의 핵심 문제는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이 아니다.

기준이 사전에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고 화면은 시간과 위치를 입력하라고만 안내한다.

그래서 신고자는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러나 결과는 다시 같은 문장으로 돌아온다.

"불수용."


기타 종결 사유를 보면,

위반 사실이 확인되지 않거나,

위반 시각이 표시되지 않거나,

입력한 시각과 영상 속 시각이 불일치하거나,

위반일시·차량번호·위반장소·위반내용 중

하나라도 누락된 경우 모두 반려된다.


이 기준들이 신고 전에 명확하게 고지된다면

문제가 절반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이 목록을 실패를 통해 발견한다.

특히 횡단보도 5m 이내 불법주정차 신고의 경우,

안전신문고에서 제시하는 기준과

실제 지자체별 적용 기준이 제각각이다.


정지선 침범 여부로 단속하는 곳,

정지선에서 5m 이내까지로 보는 곳,

자동차 바퀴 네 개 모두가

횡단보도에 들어와 있어야만

단속하는 곳들도 있다.


같은 상황을 신고해도

어느 지자체냐에 따라

처리 결과가 달라진다.


신고는 선택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우는 구조가 된다.

이것은 참여를 설계한 것이 아니라,

혼선을 방치한 것이다.


판단할 사람은 없는가


그렇다면 직접 확인하는

담당자가 있지 않은가.


당연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사람이 있어도 판단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판단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불법주정차 관련 신고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때

반드시 단속 공무원의 현장 조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상기록매체에 의해 위반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면

현장 출동 없이도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


다만, 불법주정차에 대한 입증 바카라임은

신고자에게 있으므로,

부과 기준 미충족 시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을 수 있다.


행정 처벌은 그 결정에 바카라임이 따른다.

그래서 담당 공무원은 상황이 아니라

기준으로 움직인다.


영상이 있어도,

맥락이 명확해도,

형식이 맞지 않으면 처리되지 않는다.

공무원 개인의 태도가 문제가 아니다.

구조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상황은 행정부 내부에서도 이미 감지하고 있다.


2025년 초,

경찰청은 안전신문고 내

교통위반 신고 증가로

경찰청 업무가 폭증하고 있어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공지를 게재했다.


시민들은 더 많이 신고하고,

처리 기관은 업무 과부하를 호소한다.

양쪽 모두 같은 구조의 피해자다.


이 시스템은 사람을 고용하지만,

사람처럼 판단하지 않는다.

전문성이 강화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제거된 것이다.


2,629만 대의 차와 1970년대 도로


위험은 어디서 오는가.

신고를 촉발하는 구조적 배경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훨씬 더 깊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2,629만 8,000대로,

인구 1.95명당 1대 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인구 2.3명당 1대였다.

차는 늘었지만, 도로와 주차 인프라는

수십 년 전의 설계 기준에 머물러 있다.


공간은 부족하고,

불법은 반복되고,

위험은 누적된다.


광주의 경우,

2024년 불법주정차 신고 26만여 건 중

횡단보도 앞 불법주정차가 26%로 가장 많았고,

교차로 모퉁이 14%,

인도주차 12%가 뒤를 이었다.


이 비율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시야가 가려지는 곳,

보행자가 다치는 곳,

사고가 나는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지목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위치에서

가장 많은 불법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위험은 실제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2019년 기준 최근 5년간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로

31명의 어린이가 사망하고

2,581명이 부상을 입었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이후

사고 건수는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스쿨존 교통사고는 2019년 567건에서

민식이법 시행 다음 해인 2020년 483건으로 줄었으나,

2021년 523건,

2022년 514건으로

다시 500건대로 올라섰다.


법이 강해져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사고는 반복된다.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환경의 설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신고는 해결이 아니라 누적


이 시스템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 아니다.

부족한 단속 인력과 구조적 결핍을

시민의 참여로 메우는 방식이다.


4대 불법주정차 주민신고제가 도입된 직후,

단 한 달 만에 5만 6,000여 건이 접수되었다.


경기도가 1만 5,496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6,271건, 인천 5,138건 순이었다.

제도가 만들어지자마자

시민들은 쏟아져 나왔다.


참여 의지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참여를 받아내는

시스템의 수용 능력과 처리 방식이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경찰 측에서는

수백 건씩 등록해놓고 연락해보면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어떤 경우든 무조건 모두 확인해야 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동시에 선의의 신고자들은

형식 기준 미충족으로 반려를 경험한다.

결과적으로 선의의 참여는 소진되고,

형식에 능숙한 반복 신고자만

시스템을 활용하게 되는 역설이 생긴다.


그래서 신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깨닫는다.

이건 해결이 아니라 누적이다.


체감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신문고는 있었다.

억울함을 올릴 수 있는 창구,

권력을 향한 백성들의 목소리.


현대슬롯로 들어서

지금은 앱이 되었고,

사진과 영상으로 제출한다.


형태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본질의 어떤 부분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목소리는 올라가지만,

그 목소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여전히 낯설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와

앱스토어의 안전신문고 앱 평점은

2점을 채 넘지 못하며,

행정안전부는 이를 알면서도

개선할 여지가 전혀 없으며

답변이 복붙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이용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2점짜리 앱에 연 수백만 건의 신고가 올라온다.

불편해도 신고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하고,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동기를

시스템이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받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


일부에서는 이 문제를

AI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상 분석을 자동화하고,

판단을 알고리즘에 맡기면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은 이미

기계처럼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누가 처리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설계되어 있느냐다.


신고 이후의 과정이

왜 그렇게 결론이 났는지 설명하지 않는 한,

기술은 불투명성을 자동화할 뿐이다.


AI가 "불수용"을

더 빠르게 판정한다고 해서

납득이 생기지는 않는다.

시스템의 개선 방향은 분명하다.


기준을 사전에 공개하고,

반려 사유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며,

지자체별 적용 기준을 통일하는 것.


이 단순한 변화가 수백만 건의 신고를

참여로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만 건의 신고는

영원히 소진으로 남는다.


신뢰는 처리 속도가 아니라 납득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