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 배신당하는 슬롯
광주 북구 소재의 한 중학교 담벼락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문장을 읽지 않는다.
너무 자주 봐온 탓이다.
그런데 이 익숙함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 장면을
당연한 풍경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익숙함 아래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조용히 바뀌고 있지는 않은가.
통계청과 고용노동부가
2025년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856만 8천 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금근로자 2,242만 명 가운데
38.2%에 해당하는 수치다.
세 명 중 한 명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뜻이다.
이 비율은 2003년 관련 통계가 처음 작성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해 있다.
임금 격차는 더 선명하다.
같은 조사에서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389만 6천 원으로 나타난 반면,
비정규직은 208만 8천 원에 그쳤다.
두 집단 사이의 격차는 약 180만 8천 원으로,
이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 수준이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약 53.6% 수준에 불과하다.
시간제 근로자를 제외한 전일제 기준으로 좁혀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약 78% 수준에 머문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 격차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용 안정성 지표도 크게 다르다.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은 2년 11개월로,
정규직의 8년 5개월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슬롯보험 적용률 역시 격차가 크다.
고용보험 적용률은 정규직이 98.6%인 데 반해
비정규직은 54.0%에 그치며,
국민연금 온라인 게임 가입률은 정규직 98.6%,
비정규직 40.1%로 두 배 이상 벌어진다.
이 통계들은 분명 불평등의 실재를 보여준다.
그러나 숫자에는 맥락이 필요하다.
정규직이 누리는 안정과 보상은 어디서 오는가.
답은 단순하다.
진입 과정의 비용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4년 청년층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평균 취업 준비 기간은 약 23개월이다.
이 기간 동안 지출하는 취업 준비 비용은
월평균 52만 원 수준으로,
23개월을 환산하면 약 1,2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학자금 대출,
자격증 취득 비용,
어학연수 비용 등을 포함하면
정규직 입사 전까지
한 개인이 투자하는 총비용은
수천만 원에 이른다.
경쟁 강도 역시 수치로 확인된다.
2024년 기준 주요 공기업 및 대기업의 신입공채 평균 경쟁률은
50대 1에서 100대 1 수준이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2024년 공채에서 약 800명 모집에
6만 명 이상이 지원해
경쟁률이 75대 1을 넘었다.
서울시 공무원 9급 시험의 경쟁률도
평균 40대 1을 웃돈다.
이러한 경쟁을 통과한 결과로
주어지는 안정성과 임금 프리미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가다.
특혜가 아니라 비용에 대한 보상이다.
정규직의 임금과 안정성은
입사 이후의 노동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입사 이전에 치른 수년간의 투자에 대한 회수다.
이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고 결과만 비교하면,
논의는 처음부터 왜곡된다.
여기서 반론이 나온다.
비정규직을 선택한 사람도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론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통계청의 2024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가운데 본인이 원해서
비정규직을 선택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53.2%다.
나머지 46.8%는 정규직을 원했으나
여건상 비정규직을 택한 경우다.
즉, 비정규직의 절반 가까이는
구조적 한계 안에서의 선택이었다.
이 부분은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곧바로
"결과를 같게 맞춰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가
진입 장벽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구조적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직종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채용 기준을 비교했을 때,
정규직은 평균적으로 요구 학력, 자격증, 경력 기준이
유의미하게 높게 설정돼 있다.
진입 비용의 차이가 처우의 차이로 이어지는 구조는,
적어도 설계 단계에서는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설계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특히 교육, 보건·복지,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이 괴리가 두드러진다.
학교 현장을 예로 들면,
교육공무직으로 분류되는 조리원,
행정실무사, 특수교육지도사, 방과후 강사 등은
상시적·반복적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들 상당수는 1년 단위 계약을 반복하며,
방학 중 무급 처리, 퇴직금 산정 불이익 등의
구조적 문제에 놓여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비정규직의 연간 실질 근로일수는
정규직 교원의 약 78% 수준이나,
임금은 정규직의 40~50%에 그친다.
이 부분은 단순히
"알고 들어간 것"으로 처리하기는 어려운
구조적 불합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불합리를 해소하는 방식이 문제다.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 사항을 살펴보면,
2024년 기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의
주요 요구안에는 정규직과 동일한 호봉 적용,
방학 중 임금 전액 지급,
명절상여금 정규직 동일 수준 적용 등이 포함된다.
이 요구들 가운데 일부는 정당하지만,
일부는 진입 과정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결과만 동일하게 맞추려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이 지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고,
슬롯적 논쟁이 감정적으로 번진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야 한다.
조용히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목소리 효과(Voice Effect)'라 부른다.
불만을 표출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자원 배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현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앨버트 허시먼은
1970년 저작 '이탈, 목소리, 충성심(Exit, Voice, Loyalty)'에서
이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이탈이 어려운 구조일수록
목소리가 유일한 협상 수단이 되며,
결과적으로 목소리의 크기가
보상의 크기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이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의 단체협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은 사업장의 비정규직 임금은
그렇지 않은 사업장보다 평균 18.3% 높다.
이 차이는 생산성이나 직무 난이도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다.
조직화된 목소리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다.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라도,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 구조가 고착화되면,
노동시장의 인센티브 체계가 뒤집힌다.
경쟁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조직화하고 요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전략이 된다.
슬롯가 보상하는 행동이 바뀌면,
사람들이 선택하는 행동도 바뀐다.
이 논쟁의 핵심은 결국
공정성을 어디에서 측정하느냐의 문제다.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충돌한다.
하나는 절차적 공정성이다.
진입 과정이 공정했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논리다.
정규직이 주장하는 공정성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다른 하나는 실질적 공정성이다.
수행하는 노동의 내용이 유사하다면
처우도 유사해야 한다는 논리다.
비정규직의 요구가 기반하는 공정성의 근거다.
두 기준 모두 철학적 정당성을 갖는다.
절차적 공정성은 존 롤스의 '순수 절차적 정의' 개념에 닿아 있고,
실질적 공정성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Equal Pay for Equal Work)' 원칙과 연결된다.
유럽연합은 2023년 임금투명성 지침을 통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법제화했으며,
OECD 34개국 가운데 27개국이 관련 입법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비교정의 기준이 국제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입사 과정에 투자한 비용과 경쟁을 무시한 채
결과만 동일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불공정을 낳는다.
수년간 경쟁을 준비한 사람의 투자 가치가 희석되면,
미래의 누군가는 그 경쟁을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시장의 질 자체를 낮출 수 있다.
이 논쟁에서 지금까지 빠져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왜 비정규직 구조가 이렇게까지 확대되었는가.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 38.2%는
OECD 회원국 평균 11.4%의 세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 압도적인 격차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의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확대했고,
이후 법제도가 이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비정규직 문제의 1차 바카라임은 개인이나 노조가 아니라,
이 구조를 설계하고 유지해온 기업과 국가에 있다.
그럼에도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진입 비용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을 만든다.
진짜 공정한 논의는,
비정규직 구조 자체를 줄이는 방향과
잔존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합리적 처우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그 비용을 기업과 슬롯가
분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개인의 목소리 크기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는 구조는,
그 수혜자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공정하지 않다.
노력의 가격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목소리는 언제부터 노력보다 더 강한 가치가 되었는가.
이 두 질문에 동시에 답하지 않는 한,
학교 앞 현수막은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같은 자리에 걸릴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는
비정규직도, 정규직도 아니다.
무엇을 노력이라 부르고,
그 노력에 얼마의 가격을 매길 것인지,
그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정하는 일을,
우리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