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3
긴 고랑 옆에 말랑한 흙을 타서 작은 고랑을 만들었다. 다섯 개를 지었는데 마음이 바빠서도 그랬다. 사온 옥수수 씨앗을 심어놓고 옥수수 군락이 되기를 기대했던 첫 마음. 새들이 씨앗을 모조리 다 쪼아 먹었다. 이번에는 건너편에 다시 두 이랑을 팠다. 두 번째 씨앗은 물에 발아해 옮겨 심었는데 싹이 올라오기 전에 새들이 먼저 왔다.
그런다고 포기할 소냐. 늦게까지 자라는 옥수수 모종을 구해다 40여 주를 심었다. 처음 파먹은 자리에 지인이 준 파 종자를 옮겼다. 매운맛의 파는 못 먹겠지. 매운맛도 좋아하려나? 몇 날 뒤 우린 하하 웃었다. 노란 파 종자를 오종종 파서 두렁 위에 깔아놓았지 뭔가. 매워서 먹지 못하고 두렁도 다 파지 못하고 시위하듯 늘어놨다.
잡초가 무성해진 주말아침 호미를 들고 찾아갔다. 작정하고 풀을 뽑았지만 새벽 두 시간의 노동은 어질어질했다. 모기가 쏠까 쉼 없이 움직이려니 노동량은 더 늘었다. 일어서고 엎드리고를 반복하며 풀을 메다 보니 허벅지고 팔이고 단단히 뭉쳤다. 풀을 뽑으며 보았다. 새들이 파지 못하고 남은 두렁에 파가 바늘 같은 초록 순을 뾰족뾰족 올리고 있었다. 풀에 묻힐 뻔했다.
정성 들여 옮겨 심고 씨앗을 묻은 두둑은 작물보다 잡초가 더 빨리 자란다. 온통 풀밭이다. 새파란 이파리는 다 좋아했지만 이렇게나 남의 자리를 침범할 줄이야. 꽃밭을 가꾸는 지인이 도대체 잡초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모습이 실감 났다. 오롯이 세운 생각을 침범하고 유혹하는 온갖 잡념이 이와 같을까.
풀꽃도 꽃이고 만물이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기지만 그 속에서 작물하나 키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수를 위한 일이 쉬 지탄받고 침범받는 이유도 개개의 생존전략이 있기 때문임을 풀들을 보고 새삼 깨달았다. 저들도 작물만큼이나 뿌리내리고 살고자 하는 거다. 그러면 나는 작물을 지키는 전사다. 세상 이치가 텃밭에서도 발견된다.
물과 두엄 같은 기본적인 요건만 갖추면 작물이 뿌리내리는 데는 큰 문제없다. 어느 정도 터를 잡으면 잡초를 이기는 힘도 생긴다. 정성껏 묻은 씨앗은 뽑혀나지 않으면 피어났다. 새를 쫓는 스피커를 24시간 달아놓은 농가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뿌린 씨앗을 탐하지 않도록 열매를 쪼아 먹지 않도록 인기척을 내는 장치였다.
잡초가 나듯 새 순도 난다. 시련은 있지만 애면글면 속 태우지 않아도 싹이 트고 꽃은 핀다. 그 과정에서 어떤 작물을 선택하고 어찌 키울지, 어찌 보살필지가 관건이다. 살아가지만 매 순간 어찌 살아야 할지 그 이유를 치열하게 묻는 것과 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