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정치란 무엇인가
1장. 정치란 무엇인가
얼마 전 필자는 인공지능에게 정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교과서 그대로였다. 정치는 공동체 안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자원을 나누는 일이며, 그 결정을 따르게 하려면 권력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것이 편견 아니냐고 되물었다. 권력과 폭력은 다르고, 정치는 권위가 있어야 하며, 쓴다면 권력이 아니라 권위 있는 폭력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인공지능은 학자들이 그것을 '정당한 강제력'이라 부른다고 답했지만, 필자의 귀에는 보기 좋은 떡으로 들렸다. 이름을 곱게 바꿔도 어차피 폭력인 것을 말이다. 폭력은 미개하다고 여기니 말을 꾸며 뜻을 숨긴 것이고, 엘리트의 비겁한 변명이다.
그래서 말의 뿌리부터 캐 보았다. 정(政)은 바를 정(正)에 칠 복(攵)이 붙은 글자로, 몽둥이를 들고 쳐서 바로잡는다는 뜻을 품고 있다. 치(治)는 물 수(氵)가 붙은 글자로, 넘치는 물을 막고 물길을 내는 치수(治水)에서 나온 말로 풀이한다. 옛사람들은 백성을 그 물의 자리에 놓았다. 한자는 정직해서, 정치라는 말 속에는 폭력이 들어 있고 치는 쪽과 맞는 쪽, 곧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도 그대로 들어 있다.
그렇다면 민주정치는 바른 말이다. 백성이 주인인 정치, 곧 국민이 지배층이 되어 몽둥이를 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와 싸울 때 평등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그런데 평등을 외치며 들어선 정부가 아직도 국민을 치고 다스리는 정치를 하고 있다면, 자본주의가 스스로 민주주의가 아님을 시인한 것 아니겠는가. 이름은 민주정치인데, 몽둥이는 뽑힌 자가 쥐고 국민은 여전히 물의 자리에 있다.
1.1 정치에서 정심으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관리사무소를 알 것이다. 주차는 어디에 하고 쓰레기는 언제 내놓는지, 관리비는 어떻게 나누는지는 입주민이 관리규약으로 정한다. 관리사무소는 그 규약대로 집행할 뿐이다. 규약을 어긴 차에 경고장을 붙이는 것도, 그 힘이 관리소장의 마음이 아니라 입주민이 정한 규약에서 나오기에 누구도 관리소장이 입주민을 다스린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관리소장이 규약을 제멋대로 바꾸고 마음에 드는 집 차만 봐준다면 입주민들은 그날로 들고일어날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이니, 정치는 국민이 해야 한다. 아파트에서 규약을 정하는 사람이 입주민이듯, 나라에서 규칙을 정하는 사람은 국민이어야 한다. 정치는 없어져야 할 말이 아니라 주인에게 돌아가야 할 일이고, 그래서 대표에게 맡겨 두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직접 정하는 직접민주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 정부의 자리를 필자는 정심(定審)이라는 말로 부르려 한다. 정(定)은 정할 정, 심(審)은 심판 심이다. 정은 국민이 한 것이고, 정부는 국민이 정한 것을 심판할 뿐이다. 경제편에서 공정(公定)을 말하며 프로야구의 로봇 심판을 들었는데, 나라도 다르지 않다. 스트라이크 존은 사람이 정하고, 로봇 심판은 정한 존대로 판정을 선언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거 때마다 하는 말부터 틀렸다. 우리는 "정치인을 뽑는다"고 말하지만, 민주국가에서 몽둥이를 쥐고 정치를 하는 지배층은 국민이니 정치인은 곧 국민이다. 국민이 정치인을 뽑는다는 말은 주인이 주인이 될 사람을 뽑는다는 말이 되어 어불성설이고, 민주국가가 정치를 뽑힌 자의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우리가 뽑아야 할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정한 것을 심판하라고 국민이 뽑는 정심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부도 힘을 쓴다. 경고장을 붙이고 벌금을 물리고 때로는 사람을 가둔다. 그 폭력을 다스리는 자의 뜻대로 휘두르면 권력이 되고, 국민이 정한 규칙대로만 쓰면 권위 있는 폭력이 된다. 규칙에는 몽둥이를 쥔 자의 사심이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치가 아니라 공정(公定)한 정심을 해야 하고, 권력이 아니라 권위 있는 폭력을 써야 맞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이익의 구조와도 이어진다. 이익은 고정되지 않고 시대마다 순서를 바꿔 왔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권력-명예-돈이었고,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권력-명예가 되었으며, 공배주의는 명예-돈-권력으로 권력을 바닥으로 내린다. 필자가 그리는 이상향은 그다음이다. 바닥에 있던 권력이 돈과의 고리를 끊고 명예 위로 올라와 권위가 되는 것, 곧 권위-명예-돈이다. 세 이익을 묶던 삼각형이 풀려 한 줄이 되고, 권위와 돈 사이에는 선이 없다.
그 끊긴 선에 모든 뜻이 들어 있다. 정경유착의 카르텔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 정부와 자본가의 이익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정부는 사익을 버리고 사유재산을 내려놓아야 권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권위는 돈을 포기해야 이룰 수 있다.
정치는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주고, 정부는 돈을 내려놓고 심판의 자리로 가는 것, 정치에서 정심으로 간다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