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이에게 고함

살고 싶다는 몸의 비명

by철학하는 로프공


며칠 전 AI와 철학놀이에서 자살에 대해 논했다. 그대화로 과거가 생각나 써볼까 한다.




그 시절, 나는 스스로 마침표를 찍기 위해 길을 떠났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이십 대 무렵부터 반복된 삶의 거부가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었다. 그 여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여행. 짐이라고는 가방 하나가 전부였고 계획도, 돌아올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죽으러 가는 길에도 밥값이 들었다. 주머니가 완전히 비어버리자 나는 수원이라는 낯선 도시에 멈춰 섰다.


원래대로라면 노가다라도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 몸은 벽돌 한 장 들 힘이 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몸은 그 흔한 막노동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벼룩시장을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훑다가 걸린 자리가 두피 관리사였다. 수원에서 손꼽히는 원장이 있는 미용실의 부속 관리소. 죽으러 가던 인간이 남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 원장의 커트비가 백만 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알고 몇 번을 놀랐다. 누군가는 머리 한 번 자르는 데 백만 원을 쓰고, 누군가는 그 옆방에서 죽을 날을 세고 있었다.

그 방에서 『연금술사』를 읽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미동이 일었다.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볼까. 하지만 마음을 먹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으로는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월요일 점심, 밥을 먹으며 무심하게 틀어놓은 TV에 위험하지만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일자리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하나는 골프 연습장의 높은 그물망을 고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로프공이었다. 건물 외벽에 줄 하나를 걸고 매달려 유리를 닦고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들. 보통의 사람이라면 위험하다는 말에 채널을 돌렸겠지만 나는 반대였다. 그 위험하다는 조건이 나를 붙잡았다.

솔직히 말하겠다. 그때 내 계산은 이랬다.


죽기밖에 더 하겠냐.


내 목숨이 귀하다는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버리려던 목숨이니 잘됐다 싶기도 했다. 저 일을 하면 매일 옥상에 올라갈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줄에서 손을 놓으면 된다.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자리가 온라인 게임이라니, 나는 그걸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문장을 적으면서도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 그러나 나는 이 마음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그곳을 지나온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뒤져 건물 관리 청소 업체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관리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줄은 못 탄다고 했다. 실내 청소부터 하라고 했다. 나는 한 달 동안 걸레를 들고 빌딩 복도를 쓸고 닦았다.


한 달이 지나고 드디어 로프를 배우러 가라는 말을 들었다. 새벽, 약속된 건물 앞에 서서 기다렸다. 어둠을 뚫고 사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모여들었다. 여섯 명 남짓한 선배들에게 배우러 왔다고 인사를 건네자 다들 반갑게 맞아주었다. 편의점에서 산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자리에서 나의 사수가 정해졌다. 팀장님이었다.


온화하면서도 장난기가 넘치는 분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바카라임감이 강하면서도 융통성이 있었다. 다른 선배들은 자기 일 하기도 바쁜데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 초짜를 왜 가르치냐며 대놓고 짜증을 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팀장님이 자기가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며칠 동안 나는 줄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옥상 나무에 로프를 묶고 푸는 연습만 했다. 팀장님이 이건 온매듭이다, 하며 시범을 보이고 줄을 타고 내려가면 나는 온종일 묶고 풀기를 되풀이했다. 작업 한 바퀴를 마치고 옥상으로 올라온 팀장님은 내가 묶은 매듭을 확인하고, 잘못된 곳을 다시 가르친 뒤 또 일을 하러 내려갔다.


간단해 보였던 매듭은 꼬여버린 수학 문제 같았다. 손가락이 자꾸 순서를 잃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인터넷을 뒤져가며 밤늦게까지 줄을 만졌다.


죽으려고 시작한 일터에서, 나는 죽지 않기 위한 매듭을 밤새 연습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 아이러니를 눈치채지 못했다.


높이는 한 번에 주어지지 않았다. 팀장님은 십 층이 넘어가면 초보가 얼어붙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침 그 건물 옥상에는 물탱크가 있어 2층 정도 더 올라갈 수 있는 단이 있었다. 거기에 줄을 묶고 젠다이(로프공이 앉을 수 있게 만든, 줄에 매달수 있는 의자)에 앉아 내려오는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 짧은 높이조차 처음에는 벽이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을 반복하니 몸이 순서를 외웠고 무서움도 옅어졌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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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생각이 취미인 로프공 노동자. 언제나 아파트옥상에 홀로 앉아 나만의 글을 써본다. 두아이의 아빠로서 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살길 꿈꾸며 철학서를 집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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