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질한 면상과 껌 좀 씹던 포스의 조화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까지
마중 나오지 않는 정겨운 구축이다.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지상 입구를 거쳐
지하로 내려가는 '고행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길목
지하 주차장 입구엔 어김없이 그들이 있다.
남자는 며칠은 면도를 안 한 게 분명한
꼬질꼬질한 얼굴 위로 모자를 눌러썼고
여자는 젊은 시절 동네 골목에서
껌 좀 씹었을 법한 포스로
부스스한 파마머리를 휘날리며 연기를 뱉어낸다.
커플 수면바지 차림으로
최신형 폰에 몰두하는 그들의 모습은
바쁘게 넥타이를 조여 매는 온라인 게임인 눈엔
마치 '성공한 파이어족'의 유니폼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 '너구리 굴'이 점점 번창한다는 것이다.
가끔 출근하던 다른 주민들까지
그 여유에 동참해 슬쩍 합류하면
주차장 입구는 그야말로
안개 자욱한 런던의 뒷골목이 된다.
더 기막힌 건 그 흡연 구역의 위치다.
불과 담장 하나 넘어가 바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등원하는 유치원이다.
수면바지 부부가 폰을 보며 깊게 뱉어내는 연기는 담장을 넘어 아이들의 등원길로 유유히 흘러간다.
꼬질꼬질한 면상의 남자와
껌 좀 씹었을 것 같은 표정의 여자가
내뿜는 그 매캐한 '자유'가
이제 막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맑은 공기를 집어삼키는 셈이다.
비흡연자인 나는 매일 아침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저 연기 자욱한 너구리 굴을 뚫고
무산소 100미터 달리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담장 너머 아이들을 보며
대신 화라도 내야 할 것인가.
성공한 파이어족이라 믿고 싶을 만큼
여유로운 그들의 아침.
하지만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이 다니는
유치원 담장 옆에서
씻지도 않은 얼굴로 연기를 뿜어내는 건
'자유'가 아니라 '민폐'일 뿐이다.
오늘도 나는 부스스한 그들 곁을 지나며
속으로 한마디를 보탠다.
"성공해서 파이어족 하시는 건 좋은데
애들 공부하는 담장 밑에서
불(FIRE)까지 피우지는 맙시다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