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간다는 건, 남겨진다는 뜻이다
어릴 적, 아버지 고향에 갔던 기억이 있다.
동네 큰 나무 아래서 아이들 여럿이
섞여 놀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가 다가와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나를 딱 지목했다.
“니가,섭이 아들이구나?”
이름을 불러주며 웃으시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린 마음에도 그 장면은 신기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인데.
그때는 몰랐다.
사람 얼굴에는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이 함께 남아 있다는 걸.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놀란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 속에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서 있다.
표정이 그렇고
고개를 기울이는 각도가 그렇고
무심코 짓는 웃음까지 닮았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시간은 조용히 그 일을 해냈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멋있지도, 이쁘지도 않았다.
치매였다.
말은 줄었고
기억은 흩어졌고
존엄은 조금씩 닳아갔다.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 건
좋았던 기억보다
잘 못했던 순간들이다.
그때 왜 더 다정하지 못했을까
왜 더 오래 앉아 있지 못했을까
왜 바쁘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했을까.
이제 와서 떠올리면
죄송하고
안타깝고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마주할 때마다
그 할머니의 웃음이 다시 떠오른다.
그땐 신기했고
지금은 알 것 같다.
피는 이렇게 돌아오고
시간은 이렇게 이어진다는 걸.
아버지는 사라졌지만
완전히 떠난 건 아니었다.
내 얼굴 어딘가에
내 표정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다.
그래서 요즘은
거울을 조금 더 오래 본다.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조심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라도
거울 속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