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날의 기도

아카시아 향기 속에 숨겨진, 아비의 굽은 등

by온새미로


봄날의 아카시아 하얗게 흐드러질 때

사람들은 향기에 취해 봄을 노래하지만

한 딸의 시선은 먼 산자락에 머뭅니다.


벌통 앞에 묵묵히 숙여진

아비의 굽은 등 위로

달콤한 한 철이 무사히 채워져야 하기에

딸은 올해 꽃 드는 날이 언제일까

밀려오는 계절의 발소리를 가만히 세어봅니다.


짙은 아카시아꽃 향기 사방에 번지면

사람들은 계절의 깊이를 이야기하지만

딸의 눈은 먹구름 틈새를 뒤집니다


행여 매정한 초여름 비가 쏟아져

여린 꽃잎 툭툭 두드려 떨어뜨릴까

벌들이 거두어올 단물이 씻겨 내려갈까

창밖의 하늘을 보며 옅은 한숨을 쉽니다


남들에게는 그저 스쳐 가는 계절의 풍경이지만

딸은 그 향기 속에서 벌통을 지키는

아비의 고단함을 봅니다.


꽃이 피는 짧은 한 철은

곧 아비의 굽은 등과 땀방울로 버텨내야 할

간절한 '삶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어도 마음껏 웃지 못하고

날이 흐리면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는

딸의 다정한 걱정 위로

올해는 내내 볕이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 가득 아카시아와 밤꽃 향기 번지는 날

아비의 벌통마다 황금빛 행복이

흘러넘치도록 가득 차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아내와 장인어른의

애틋한 일상을 담은 짧은 글입니다.


매년 아카시아꽃아 필 때면

하늘을 보며 가슴 졸이던 아내였는데

정말 다행히도 올해는 꿀벌 농사가 풍년이라

한시름 놓았습니다.


장인어른의 하얀 벌통 가득 채워진 꿀만큼

제 글을 읽어주신 작가님들의 일상에도

달콤하고 행복한 풍년이 찾아오기를

가만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