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과 발라드 뒤에 숨겨두었던 '뽕끼'
젊은 시절 나의 귀는 꽤나 까다로웠다.
세련된 팝송이나 감성적인 발라드
담백한 어쿠스틱 선율이 아니면
음악 취급도 안 했다.
그 시절 트로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들리는
소위 '노인네들의 전유물'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먹어서인가
어느덧 그 꺾임의 미학이
귀에 감기기 시작하더니
가사 한 줄 한 줄이 내 인생의
굽이진 마디마디를 건드린다.
어느 날 호기심에 마이크를 잡고
슬쩍 한 곡 뽑아봤다.
그런데 웬걸
낯설기만 하던 트로트의 리듬이 내 목을 타고 능청스럽게 흘러나온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는
특유의 감칠맛을 마주하며 생각했다.
'어, 나 트로트에 소질이 좀 있나 본데?'
아내는 옆에서 노인네 같은 노래 좀 그만하라며
질색을 하지만 내 귀에는 어떤 명곡보다 솔직하고
찰진 삶의 노래로 들릴 뿐이다.
요즘 내 마음을 흔드는 노래는
진성의 보릿고개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이라는 가사를 읊조리다 보면
배고픈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삶이 주는 본질적인 허기가 느껴진다.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처절한 가사가
이제야 내 안의 어떤 갈증과 맞닿는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가슴을 툭 치고 들어오는
이 투박한 진심이
바로 트로트의 힘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트로트라면 질색하던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운 건
의외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였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로 시작되는 그 묵직한 가사를
나지막이 불러주자 삐딱하게 앉아 있던
아내의 시선이 머문다.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낸 마담"의 이야기에 우리도 모르게
흘러온 시간을 포개어 본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노래라는 필터를 거치니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아내에게도 가닿은 모양이다.
나이 듦이란 취향의 퇴화가 아니라
확장이 아닐까 싶다.
팝송이 주던 세련미보다
트로트 가사 한 줄이 주는 위로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지금
나는 비로소 삶의 박자를
제대로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하여
목청껏 불러본다.
이제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에
트로트가 당당히 메인 자리를 꿰찼다.
아내의 핀잔은 여전하겠지만,
비 오는 날 "낭만에 대하여"한 소절이면
우리 사이의 낭만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