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받은 감사패
봄비가 한차례 지나간 뒤였다.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시어머니가 점심을 드신 뒤
속이 안 좋다고 하시더니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했다.
향년 일흔아홉.
매제의 어머니이자
평생 논과 밭을 떠나본 적 없던 분이었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세대는
자신의 몸보다 가족의 끼니를 먼저 챙겼고
아프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삼키며 살았다.
치매가 찾아왔어도
가족들은 그 시간을
억지로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았고
어르신 또한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주간보호센터 생활도
잘 적응하셨다고 했다.
아침이면 옷을 갈아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고
센터에서는 식사도 잘하시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셨다.
평생 집과 밭만 오가던 분에게
그곳은 어쩌면 늦은 나이에 처음 생긴
또 하나의 슬롯였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사돈어른이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던 게 컸다.
억지로 숨기거나 외면하기보다
"이제는 도움받으며 편하게 지내셔야지"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고 했다.
여동생 내외도 참 애썼다.
젊은 시절 가족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가보신 분들이라
계절 바뀔 때마다 함께 바람 쐬러 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사드리고
사진도 많이 남겨드렸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는
가족여행 자리에서
부모님께 감사패까지 전해드렸다고 했다.
쑥스러워 웃으시던 모습이
이제는 마지막 사진이 되어 남았다.
장례식장에서
매제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한 3년만 더 사시다 가시지…”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자꾸 떨렸다.
오래 곁에서 모셔온 어머니여서였을까.
아니면 이제야 부모님께
조금은 사람답게 해 드린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참이어서였을까.
죽음은 늘 그렇게 야속하다.
조금 더 잘해드릴 걸
조금 더 같이 다닐 걸
조금 더 웃게 해 드릴걸.
사람 마음은 늘
다 지나간 뒤에야 뒤늦게 넘쳐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몇 년만큼은
밭고랑과 새벽일 대신
가족의 웃음 속에서 사셨으니 말이다.
빈소 한쪽에 놓인 사진 속 어르신도
꼭 그런 얼굴로 웃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