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부동산 문 앞에서 길을 잃다

그 시절, 우리가 빌려 살던 온기

by온새미로

따스한 봄볕이

어깨 위로 내려앉는 계절이 오면

발걸음은 어느새 대로변

그 부동산 앞으로 향하곤 한다.


젊은 신혼 시절

가진 것보다 부족한 것이 더 많았던

우리 부부의 첫 시작을 지켜봐 주셨던 사장님.

그는 단순히 집을 중개하는 사람이 아니라

낯선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서툰 청춘들에게 든든한 가이드였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이 많네요. 내가 주인집이랑 잘 얘기해서 전세금 좀 깎아볼게요."


​인상 좋은 얼굴로 모니터를 보시며

툭 내뱉으시던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이사할 때마다

당신 집을 구하듯 곰팡이는 없는지

수압은 괜찮은지 꼼꼼히 살피며

우리보다 더 까다롭게 집을 골라주셨던

그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내 집 마련을 하고

삶의 무게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동안 그곳을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문득 고마운 마음이 차올라

지나가는 길에 들렀을 때

낯익은 간판 뒤엔

전혀 모르는 얼굴이 앉아 있었다.


​"아, 전 사장님요? 위암으로 몇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새로 오신 사장님의 덤덤한 대답에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못 뵈었던 몇 년의 세월은

내가 어른이 되는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나 보다.


이제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분.


​오늘도 그 부동산 앞을 지난다.


주인은 바뀌고 풍경도 변했지만

내 마음속엔 여전히 우리를 위해

계약서를 수정해 주시던

사장님의 온기가 남아 있다.


세상의 차가운 흥정 속에서도

'사람'을 먼저 봐주셨던

그 따뜻한 어른의 마음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