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땀 흘렸던 우정은 왜 무거운 침묵이 되었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건 찰나였지만
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복싱 글러브를 끼고
그는 보디빌딩 선수 준비를 하며
서로의 근육과 땀방울을 응원하던
친한 친구 준우였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운동으로 다져진 특유의 골격과 눈빛은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박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준우야!"
분명 그는 나를 보았다.
찰나의 멈춤과 나를 읽어낸 듯한 기색.
하지만 그는 이내 차가운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남처럼 나를 지나쳐 갔다.
뻗으려던 손은 허공에 민망하게 머물렀고
뜨거웠던 반가움은 순식간에
어안이 벙벙한 서운함으로 식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교 시절 같이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던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우의 안부를 묻고
방금 있었던 황당한 일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나도 예전에 준우 만났을 때 똑같은 경험 했어.
네가 잘못 본 걸 수도 있고
아마 걔만의 무슨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지.
너무 마음 쓰지 마라."
전화를 끊고 나니
위로보다 더 깊은 사유가 밀려왔다.
우리가 함께 링 위를 달리고
바벨을 들던 그 시절
우리에게 '외면'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흘러간 세월은 친했던 친구조차
타인으로 만드는 심술을 부린 모양이다.
그는 왜 나를 모른 척했을까.
보디빌딩 선수를 꿈꾸던
소년의 당당함은 어디로 가고
아는 체하는 인사조차 건네지 못할 만큼
삶의 무게가 무거워진 걸까.
혹은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그 시절의 순수가
지금의 그에겐 오히려 마주하기 힘든
거울이 되어버린 걸까.
내 기억 속 고등학교 친구들은
여전히 땀에 젖은 운동복을 입고
거친 숨을 내쉬던 그 모습 그대로인데
현실의 우리는 서로의 안부조차
외면해야 할 만큼 멀리 와버렸다.
서운함이 가신 자리에 안타까움이 고인다.
준우가 외면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린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내가 지켜온
다정함의 온도를 가늠해 본다.
준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엔 땀 냄새 가득했던
그 시절의 너를 그대로 남겨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