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를 혁신한다는 것
군대시절, 소대장으로 전방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고된 산악훈련을 하던 중 높은 산속에 야영을 하게 됐다. 휴식시간이 되어 나는 이웃에 있던 M소위의 텐트로 놀러갔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서 준수한 용모가 돋보였고, 언행에 절도와 품위가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작은 노트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뭘 적어?”
내가 묻자, “음, 별것 아냐”라고 대답하며, 메모하던 노트를 접었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설명을 듣고 나는 놀랐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는 군대의 모습이 전혀 달랐다. 같은 장교지만 중대장이 소대장에게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있었고, 대대장이 중대장을 지휘봉으로 구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M소위가 바로 그런 상황(체벌, 구타)을 꼼꼼히 메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조금 전에 대대장이 중대장을 때렸다고 말이다.
“그걸 메모해서 뭐하려고?” 나의 질문에 그가 말했다.
“대대장님도 우리처럼 젊었던 시절이 있었잖아. 소위 시절에는 구타 장면을 보면서 분개했겠지. ‘군대가 이래서는 안 된다’, ‘저런 리더십으로 부하를 이끌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도 결국 저렇게 변하고 말았어. 젊은 날의 생각을 잊어버린 것이지. 그래서 나는 훗날에 고급 지휘관이 됐을 때, 이 젊은 날에 생각하고 다짐했던 것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해두는 거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가 적고 있던 것은 상관의 잘못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었다.
1년쯤 뒤 우리는 헤어졌고 연락도 끊어졌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M소위가 육군 중장으로 승진해 중요한 보직에 임명됐다는 기사였다. 군인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말이다.
신문 속 그의 얼굴은 예전과 많이 달랐지만, 오래전 산속 텐트에서 작은 노트에 무엇인가를 적던 젊은 소대장의 모습은 생생히 떠올랐다.
그가 그 노트를 끝까지 간직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휘관이 된 뒤 젊은 날의 다짐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과거에 자신이 싫어했던 사람을 닮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젊을 때는 권위적인 상사를 비판하지만, 자신이 상사가 되면 똑같이 부하를 몰아붙인다. 실무자일 때는 현장을 모르는 간부를 답답해하지만, 임원이 된 뒤에는 자신도 그 사람처럼 된다. 부모의 잔소리를 싫어하던 사람이 어느새 자녀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른다고 사람이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직위가 높아진다고 인격까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다짐을 붙잡아줄 나름대로의 장치가 없으면 사람은 익숙한 권력과 편리한 방식에 물들기 쉽다.
자기혁신은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배우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훗날에도 젊은 시절에 품었던 정의롭고 순수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자기혁신의 첫걸음이다.
당신에겐 어떤 ‘다짐의 장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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