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음은 왜 늘 한 걸음 늦게 오는가
《프로페셔널 오디세이》 연재 01
깨달음은 늘 한 걸음 늦게 찾아온다. 나는 그것을 ‘생각의 시차’라 부르고 싶다. 온라인 게임을 떠나 세월의 언덕 위에 서서 바라볼 때야 비로소 명확해지는 일터의 문법들이 있다.
지나온 날을 돌아볼 때 나를 오래 사로잡는 것은 화려했던 성공이 아니다.
‘그때 조금 더 배려했더라면.’
‘그때 그 상사의 말을 마음으로 들었더라면.’
‘내가 바카라임자의 자리에 섰을 때 구성원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대했더라면.’
아내에게 “이제야 겨우 철이 드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농담 같지만 진심이다.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해도 반응은 비슷하다. 한 친구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철들자 망령난다더니 우리가 딱 그 꼴이야.”
40대가 되어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는 딸과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충고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다.
“아버지, 그거 말씀 안 하셔도 다 압니다.”
“저희는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아버지 건강이나 신경 쓰세요.”
하지만 돌아보면 나 역시 젊은 시절 부모님의 충고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도 알 것 다 압니다.’
시대와 세대가 달라져도 인간이 범하는 ‘생각의 시차’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심리학자 바루크 피쇼프는 일이 끝난 뒤 마치 처음부터 결과를 알았던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을 ‘사후확신 편향’이라고 설명했다. 결과를 알고 나면 지나온 길은 선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을 걷던 당시에는 안개 속에 여러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눈으로 과거의 나를 향해 “왜 그것도 몰랐느냐”고 꾸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때 무엇을 보지 못했고, 왜 보지 못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다음 선택을 바꾸는 지혜가 된다.
지난 45년 동안 60여권의 바카라을 썼기에 이제 바카라을 그만 쓸까 했던 내가 다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거쳐 온 시행착오를 지금의 온라인 게임인들이 조금이라도 줄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타인의 감정보다 나의 논리와 성과를 앞세웠다. 상사의 조언을 낡은 훈계로 여겼고, 구성원의 고충을 업무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최고 바카라임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야 알았다. 상사의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지, 하나의 결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고민하는지, 구성원의 눈빛에 담긴 기대와 불안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말이다.
생각의 시차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먼저 길을 걸어본 사람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면 그 간격을 조금은 줄일 수 있다.
그리하여 훗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 나는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았다.”
― 다음 글: 〈철없는 자아는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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