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9.4
봄에 심었던 작물들을 수확해서 먹고, 남은 것은 보관하고 관리하는 일까지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손이 필요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남편은 가을에는 그냥 배추와 무를 심지 말고 김치도 사 먹자고 했다.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까지 하려면 또 한동안 내가 바빠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번주에 텃밭에서 만난 베트남댁 남편분께서 중국산 배추와 관련한 포름알데히드 용액 사건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먹는 김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결국 우리 부부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냥 우리가 배추를 심어보자.”
가을작물은 9월 초순에는 심어야 한다고 하는데, 경기 북부에 자리 잡은 우리 텃밭은 시기적으로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그래도 아예 심지 않고 지나가면 나중에 후회하거나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금요일 오전, 늦었지만 가을작물을 심기로 했다.
먼저 현대농자재에 들러 배추 모종 10개와 무 모종 18개를 샀다. 둘 다 2천 원씩 해서 4천 원을 냈다. 알타리와 갓은 씨앗을 뿌리는 작물이라고 해서 알타리 씨앗 3천 원, 갓 씨앗 2천 원을 샀다. 모두 합쳐 9천 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밭에 심으려고 하니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감자를 심었던 자리에 검은 비닐을 씌울 것인가, 말 것인가. 비닐을 씌우려면 먼저 잡초부터 뽑아야 했다. 그런데 잡초를 뽑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초제를 뿌리자니 시간이 문제였다.
지난번에 노 사장님께서는 제초제를 뿌리고 일주일 정도 지난 뒤에 잡초를 정리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는 오늘 제초제를 뿌리고 며칠을 기다렸다가 다시 와서 모종을 심는 일이 쉽지 않았다.
현대농자재 여사장님께서는 제초제를 뿌리고 바로 모종을 심어도 된다고 하셨다. 제초제는 흙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초록색 풀만 죽인다는 설명도 덧붙이셨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원리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 생각하면 제초제 성분이 정말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혹시라도 새로 심는 모종에 영향을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결국 우리는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로 했다.
여사장님께서는 가을에는 봄처럼 잡초가 많이 자라지 않으니, 그때그때 뽑아주면서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남편과 나는 검은 비닐도 씌우지 않기로 했다. 하다가 잡초 때문에 도저히 안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했고, 우리 둘 다 처음 해보는 가을 텃밭이었다. 애초에 계획적으로 준비했던 것도 아니고, 배추를 심지 않으려고 했다가 뒤늦게 막차를 타듯 시작한 일이었다. 그냥 순리대로 해보기로 했다. 벌레가 너무 많이 먹으면 뽑아버리고, 잘되지 않으면 망치는 거다. 그렇다고 아예 심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때라도 심어볼걸” 하고 후회할 수도 있으니 일단 해보기로 했다. 농사는 꼭 성공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농사가 너무 잘돼서 배추가 잘 자라면 좋은 거고, 우리가 먹기에 너무 많으면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되지.”
배추 10 포기를 심는다고 해도 벌레가 잎을 많이 먹으면 겉잎을 여러 장 따내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막상 속에 남는 배추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시중에서 파는 김치 두 망 정도도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무도 마찬가지였다. 18개를 심기는 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무처럼 크고 튼튼하게 자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작게 자라면 작은 대로 깍두기를 담거나 섞박지를 만들고, 장아찌나 무절임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밭에 도착했다. 그런데 밭에 도착하자마자 뜻밖의 일이 우리를 반겼다. 잡초가 생각보다 많이 자라지 않은 것이다. 지난주에 잡초를 정리해 주고 갔는데, 한여름 같으면 일주일에 한 번 올 때마다 수북하게 자라 있던 잡초가 이번에는 정말 많지 않았다.
남편은 밭을 둘러보더니 혹시 베트남댁이 제초제를 뿌려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순간 저번엔 분양해 준 고수가 잘 자라도록 보이지 않게 풀을 뽑아준 걸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러다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에이, 아니야. 누군가를 위해 했던 선행이 오히려 부작용이 될 때가 있잖아. 그러진 않았을 거야.”
남편도
"맞아, 우리가 잡초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씨를 뿌렸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했다. 누군가 잡초를 뽑아준 것처럼 밭이 깨끗했다. 한여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와도 잡초가 무섭게 자라 있었는데,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구나 싶었다. 다른 분들도 보니 비닐을 씌우지 않고 농작물들을 심은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분들은 제초제를 미리 뿌려서 잡초를 싹 정리한 후 농작물을 심었다는 것을 잡초가 거의 없는 깨끗한 밭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남편은 쇠스랑을 가져와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배추와 무를 심을 자리를 만들고 모종을 하나씩 심었다. 가지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갓 씨앗도 뿌렸다. 예전에 쪽파를 심었던 자리도 다시 정리하고, 토마토를 심었던 곳까지 비닐을 뜯어 그곳에 알타리 씨앗을 뿌렸다. 쪽파는 심을 곳이 마땅하지 않아 이번에는 그냥 패스했다. 그렇게 하나씩 일을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온몸에 힘이 빠졌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새삼 농사를 짓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밭에서 잠깐 일을 하고도 이렇게 힘든데, 매일같이 밭을 돌보고 씨를 뿌리고 풀을 뽑고 작물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수고는 얼마나 클까. 그래서인지 수확한 작물 하나라도 허투루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힘들게 키운 것이니만큼 감사하게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밭을 일구는 동안 내가 제일 먼저 찾아본 것은 상추랑 오이도 아니고 바로 고수였다. 지난번에 심었을 때만 해도 작고 어린싹이라 과연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작고 여리던 싹이 제법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고 있었다. 딱 봐도 귀여운 고수 잎이었다.
‘잘 살아줬구나.’
기특하고 고마웠다.
상추도 제법 자리를 잘 잡고 잘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밭에서 보내온 시간들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물을 흠뻑 주고 나서 밭을 향해 인사를 했다.
“다음 주에 만나자.”
가을작물은 봄에 심었던 작물처럼 매주 와서 따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올가을에는 자전거도 타기로 했다. 봄과 여름에는 텃밭에 쏟아야 할 시간이 많았다면, 가을 텃밭에는 조금 다른 여유가 찾아오는 것 같다.
심어놓고 기다리는 시간. 매일 들여다보지 않아도 계절을 따라 천천히 자라는 작물을 바라보는 시간. 추석과 한가위가 풍성하고 넉넉하듯, 우리의 가을 텃밭도 그렇게 조금은 느긋하고 넉넉했으면 좋겠다.
텃밭 입구에 심어놓은 밤나무의 밤송이도 어느새 점점 커지고 있다.
배추도, 무도, 알타리도, 갓도 잘 자라주기를.
그리고 우리가 심은 것들이 얼마나 자랐든, 얼마나 수확되든 그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올가을 텃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일
배추 10개, 무 18개 모종과 알타리·갓 씨앗 구입
제초제와 검은 비닐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
밭을 일구어 배추와 무 모종 심기
갓과 알타리 씨앗 파종
고수와 상추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
할 일
배추와 무가 잘 뿌리내리는지 살펴보기
알타리와 갓의 싹이 잘 올라오는지 확인하기
자라는 잡초는 그때그때 뽑아주기
벌레가 생기는지 살펴보며 작물 돌보기
11월 말~12월 초 수확해서 김치와 무 요리 만들기
한 줄 요약 :
심지 않으려 했던 가을작물을 늦게나마 심고, 잘 자라주기를 기다리며 가을 텃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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