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로 친해지다

26.8.30

by푸른 잎사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말이 씨가 된다 는 말이 있다. 오늘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말의 힘을 경험한 특별한 하루였다.


어제는 텃밭에 가는 대신 호루고루 해바라기 축제를 미리 즐기러 갔다 왔기에 오늘은 텃밭에 가서 상추를 심을 생각이었다. 농기구를 자주 샀던 현대농자재에 갔는데 상추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상추가 있는지 물어보니 수요일이 되어야 들어온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 것을 심느냐고 물으니 배추와 무와 갓을 심는 시기라고 하셨다. 어쩐지 가게에는 배추 모종만 가득했다.


그래서 다른 곳을 가보았다. 예전에 5개도 천 원, 2개도 천 원인데 2개를 살 거냐고 했었던 모종가게였다. 상추를 팔긴 했으나 5개에 천 원이고 2~3개씩은 안 판다고 했다. 고민하다가 2~3개씩 팔았던 종묘상에 가보았다. 거기도 상추를 팔긴 했으나 종류가 너무 없었다.


어디를 가야 하나 싶었는데 마침 장날이라 장터에서도 모종을 파는 곳이 있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가보았는데 주인이 화장실에 갔다고 하기에 다시 5개에 천 원 하는 곳으로 갔다. 결국 상추 3개와 오이 3개를 샀다. 오이는 3개에 2천 원이라 총 5천 원을 주고 구입했다. 돈을 지불하며 텃밭이 작은 사람들은 조금씩 다양하게 심어서 먹고 싶은데, 왜 꼭 5개씩만 팔까 싶었다. 남편도 같은 마음처럼 느껴졌다.

“상추를 다양하게 심어서 먹고 싶은데 밭이 작은 사람은 어떻게 해? 5개만 심어도 엄청 많이 자라는데 한 종류만 심어서 먹으라는 건가?”


그 말을 듣더니 남편이 말했다.


“필요 없으면 2개만 심고 3개는 버리라는 거지 뭐.”


나는 순간, 천 원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장사하는 분이나 소비자들에겐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클 수 있는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필요치 않은 개수만큼을 사서 버리거나 억지로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2개에 500원에만 팔아도 좋으련만…. 오이도 1개는 안 팔고 3개에 2천 원이다. 1개 만은 왜 안 팔까 싶다. 대형마트 할인행사에 가면 물건 하나를 50% 하는 것이 아니라 2+1으로 묶어서 돈을 더 쓰게 만드는 경우가 생각났다. 장사 속인 걸 알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마음이 흔들려서 1개만 필요했는데 2-3개를 사 오며 과소비를 하게 되는 것처럼 모종도 2개만 필요한데 500원어치는 안 파니 3개를 버릴 생각으로 사거나 빽빽하게 심어서 나중에 뽑아 버려야 하는가 싶어서 잠시 씁쓸했다.


다양하게 심고 싶어서 5종류를 5천 원 주고 사면 25개의 상추를 심어야 한다. 작은 텃밭에 상추 25개를 심으면….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데…. 아직 초보농부인 나는 멀쩡한 것을 뽑아서 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어떡하든 약하고 어린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서 솎아주는 일도 맘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오이 3개 심기 전에 찰칵


오늘 텃밭에는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당연히 베트남댁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오늘은 다른 분들도 텃밭에 많이 와 계셨다. 다들 가을 작물을 심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밭에 잡초도 뽑고 예쁘게 정리한 밭들이 많이 보였다.


남편과 나는 텃밭에 도착했고, 베트남댁이 보여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받아준다.

남편분도 아내 반대쪽에서 일을 하다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인사를 한다.


“상추를 심으려고 모종 사 왔어요.”

남편이 모종을 보이며 말을 한다.


그러자 베트남댁 남편이

“배추를 심지 그래요?”

하기에


“벌레가 많이 생길까 봐요.”

했더니,


“중국배추 소동이 있어서 배추가 비싸질 수 있으니 심어 보세요.”

한다.


그래도 벌레가 많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고 하니,


“우리는 전에 샀던 유기농약 매일 뿌려요.”

한다.


“아, 중국배추 소동은 생각 못했는데 배추를 심어봐야겠네요.”

남편과 나는 서로 쳐다보며 유레카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 심고 싶었던 고수 얘기를 남편이 꺼냈다.

“원래 오늘 고수도 심어보려고 했는데 모종을 안 팔더라고요.”


그 말을 하자 베트남댁의 눈이 빛난다.

베트남댁 남편이

“여보 우리 밭에 고수 심은 거 있지?.”

하니 베트남댁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고수가 엄청 잘 자라요. 여기 심어 놓은 게 다 고수예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사지 말고 자기네 것을 갖다가 심으라고 했다. 씨를 뿌려 싹이 난 고수를 몇 개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는데, 갑자기 옹알이를 하다가 말이 터진 아이처럼 베트남댁의 수다가 정겹게 시작되었다.


산초도 먹어보라고 했다. 약재료라며 무언가를 하나 나누어 주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베트남 고추도 나누어 주었다.


“고수가 몸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말하니 남편분이 밭에 있는 쇠비름을 번쩍 들더니


“이것도 엄청 좋대요.”

하신다.


“이게 관절염, 고혈압 이런 데에 엄청 좋대요.”

내가 말하자


베트남댁 남편이

“우리 와이프가 그래서 이거 키워요. 근데 나는 아직도 고수는 못 먹겠어요.”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우리는 동남아 여행 가거나 할 때 음식 적응하려고 먹어보려고 하는 거예요.”

라고 했다.


그러자 베트남댁이

“어디 가시게요? 베트남 가시게요?”

하고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면서 자기 남편은 몸에 좋은 것을 안 먹어서 자기보다 약하다고 말하기에 서로 웃었다. 그렇게 고수 하나로 시작된 대화는 서로 간의 어색함을 없애주었다. 처음에는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는데 고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베트남 고추를 나누어 주면서 남편분은

“우리는 많이 못 먹으니 따서 먹으세요.”

라고까지 하셨다.



베트남 고추.......^^


참 신기했다.

말 한마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이렇게 가까이 만들어줄 수도 있구나.


오늘 텃밭에서는 벌레를 먹고 있는 깻잎을 뽑았고, 가지의 삐져나온 가지를 잘라주었고, 감자를 캤던 밭의 잡초도 정리했다. 그리고 상추 모종을 심고 고수도 심었다.



깻잎 뒷장이 벌레가 먹어서 희끗거려서 뽑았다..... 뒤에 검은 후드티를 입은 여인이 고수를 나눠 준 여인이다


그리고 콩을 뽑았다.

내 손으로 직접…. 흑흑

아끼고 기다려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뽑았다.

콩에게는 정말 미안했고 뽑혀서 누워있는 콩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콩이 남긴 콩꼬투리를 조심스레 가져왔다. 꼬투리 안의 콩이 잘 여물었다면 다음에 다시 심어보기로 초보 농부는 생각해 본다.


콩꼬투리를 조심히 수확했다.



콩이 꼬투리 안에서 또 싹이 나려고 한다.... 왜일까? 왠지 발아가 안될 것 같다.


인생도 농사도 내 계획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애정을 가져도 안 되는 녀석은 안 되는 법이고, 내 손으로 심은 것을 내 손으로 뽑아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바질을 심었던 곳에는 내가 심지도 않은 깻잎이 자라서 잎을 따먹기도 했었다.

때론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계획을 세우지 않았어도 얻어걸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이것이 순리이고,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일까.


오늘 텃밭에 다녀오며 생각했다.

고수 하나로 베트남댁과 친해졌다.


역시 고수는 고수구나.

집에 돌아와 하나로마트에서 사 온 고수를 고기에 싸 먹었다.


향이 입안에 퍼지는 순간,

역시 고수야.

고수는 고수야.

마음 가득 외쳤다.



텃밭은 늘 풍성하게 안겨준다. 빈 손으로 온 적이 없다.


한 일


상추와 오이 모종 구입

텃밭 잡초 정리

벌레 먹은 깻잎 정리

가지 가지치기

상추, 오이 모종 심기

고수 심기

콩 뽑기

베트남댁과 고수 이야기 나누기

베트남 고추와 여러 식물 나눔 받기



할 일


배추 모종 심기

고수 잘 자라는지 지켜보기

상추 잘 자라도록 물 주고 관리하기

텃밭 잡초 계속 정리하기

가을 작물 돌보기


한 줄 요약 :

고수 하나로 베트남댁과 가까워지고, 텃밭에서 농사와 인생의 순리를 배운 특별한 하루.



*대문 사진은 다른 분의 밭인데 가을작물 심으려고 예쁘게 밭을 일군 모습이 멋져서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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