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22(토)
주말에 비가 오면 괜히 마음까지 축 처진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비가 내리면 자연스럽게 활동 반경이 좁아진다. 어디론가 나가고 싶어도 망설여지고, 하려고 했던 일도 하나둘 미루게 된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다 보니 날씨에 참 민감해졌다. 폭염이 이어지는 날에는 오전 일찍 밭에 나가거나, 해가 지고 난 뒤에야 밭으로 향한다. 더위야 피해서 움직이면 되지만 비는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농작물에게 비는 참 고마운 존재다.
한여름 뙤약볕에 농작물들이 타들어 갈 때 내리는 비는 그야말로 단비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다행이다’ 싶어 마음까지 촉촉해진다. 그런데 장마철이 되어 비가 며칠씩 계속되고 햇빛을 좀처럼 볼 수 없게 되면 마음이 달라진다.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
농작물에게 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햇빛이기 때문이다. 비를 듬뿍 먹은 작물들이 햇살을 받아야 비로소 힘차게 자라난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 것보다는 오는 편이 훨씬 낫다. 우리 텃밭은 제법 넓은 편이라 비가 많이 내려도 물이 고이거나 땅이 지나치게 습해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비가 내리면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오늘은 텃밭에 가서 물을 안 줘도 되겠네.’
남편과 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주 하는 말이다.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도 있다. 나막신을 파는 아들과 짚신을 파는 아들을 둔 노모 이야기다. 비가 오면 나막신 장수 아들은 장사가 잘되어 기쁘지만, 짚신 장수 아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속상하다. 반대로 해가 뜨면 짚신 장수 아들은 웃지만 나막신 장수 아들은 울상이 된다. 어느 쪽이든 걱정해야 하는 노모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다.
같은 날씨를 두고도 누구에게는 기쁨이고 누구에게는 걱정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도 참 간사하다. 비가 내릴 때는 그렇게 고맙다가도 농사와 상관없는 일상에서는 때로 번거롭고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나도 좋은 쪽을 먼저 바라보면 어떨까. 울상보다는 기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비도 그렇고, 삶도 그렇지 않을까.
농사를 지어보니 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특히 빗물을 먹고 난 농작물은 눈에 띄게 생기가 달라진다. 잎은 싱싱해지고 열매도 쑥쑥 자란다. 빗물 속에 무엇인가 농작물에게 좋은 것이 들어 있는 걸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몸으로 느낀 것은 분명하다. 비는 농작물에게 생명을 주는 고마운 물이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비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너그러워진다.
오늘도 오디세이 영화를 볼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예매하기도 쉽지 않았고 토요일이라 사람도 많을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집 안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비가 그쳤다. 남편과 나는 거의 동시에 외쳤다.
"밭에 한번 가볼까?"
집 정리를 뒤로하고 남편과 함께 텃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말했다.
“오늘도 오이랑 가지가 있겠지?”
밭에 도착하자마자 오이부터 살펴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자랄 것 같지 않았던 오이들이 잎사귀 사이에 숨어 있었다. 하나를 발견하고, 또 하나를 찾고.
잎을 살짝 들어 올릴 때마다 숨어 있던 오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씩 따서 모아놓고 보니 여섯 개 정도나 되었다. 모양은 꼬부라지고 반듯하지도 않았다. 예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오이들이 참 기특했다.
‘이렇게 늦게까지 열매를 맺어주다니.’
대부분의 오이는 장마철을 지나면서 물러지고 녹아버린다. 그래서 장마가 끝나면 다시 심어야 하는 작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살아남아 열매를 내어주고 있으니 신기하기만 했다. 가지도 조그맣게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가지들을 하나씩 따주었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내리기 시작하자 밭에서는 습한 기운이 훅 올라왔다. 금세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더워서 많은 일을 하지는 못했다. 간단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밭을 나서려는데, 그 순간이었다. 구름 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비가 지나간 뒤라 그런지 햇살의 빛깔이 유난히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 햇살이 농작물 위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잎사귀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빛.
젖은 흙 위에 내려앉은 햇살.
비를 머금은 농작물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
텃밭 이름이 '햇살 담은 밭'인데 그 이름에 걸맞게 햇살이 가득가득 머물고 있는 그 풍경이 어찌나 평화로운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 참 좋다.’
별것 아닌 풍경인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햇살을 가득 담은 텃밭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보고 싶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저 햇살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었다.
비가 와서 마음을 축 처지게 했던 아침이었는데, 하루의 끝에는 이렇게 따뜻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마음도 날씨와 참 닮았다.
비가 오면 흐려지고, 햇살이 비추면 다시 환해진다.
하지만 비가 있어야 햇살의 고마움도 알게 되는 것처럼, 때로는 마음을 흐리게 하는 시간도 지나고 나면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 텃밭에서 만난 것은 오이 여섯 개와 작은 가지 몇 개와 고추와 깻잎 조금이었지만, 나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왔다.
비의 고마움.
햇살의 따스함.
그리고 평범한 하루 속에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것.
비가 그치고 햇살이 찾아온 텃밭은 그렇게 조용히 내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주었다.
한 일
잎사귀 사이에 숨어 있던 오이 6개 정도를 찾아 수확
작게 열린 가지들 수확
더운 날씨에 무리하지 않고 텃밭을 간단히 정리
구름 사이로 비치는 따뜻한 햇살과 평화로운 텃밭의 모습을 바라봄
할 일
수확한 오이와 가지로 저장 음식 만들기
텃밭의 오이와 가지 상태 살펴보기
날씨를 보며 다음 텃밭 방문 계획 세우기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필요한 텃밭 관리하기
한 줄 요약
비가 그친 뒤 찾은 텃밭에서 늦게까지 열매를 맺어준 오이와 가지를 수확하고, 따스한 햇살 속에서 작은 행복을 만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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