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 군입대를 보며 떠오른 통일과 세월

by푸른 잎사귀

내가 20대였을 때는 내 자식들이 군대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지요?"라고 물으면 우리는 아무 망설임 없이 "통일이요!"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정치도 이념도 없었다.

그저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고, 전쟁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뿐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우리는 그 노래를 부르며 자랐다.


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가.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나왔다.


"왼쪽 다리에 큰 점이 있었어요."

"귀 뒤에 작은 흉터가 있었지요."


떨리는 목소리로 기억을 더듬던 사람들이 마침내 부모를 만나고 자식을 만나 부둥켜안고 울던 장면.

그 모습을 보며 온 국민이 함께 울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눈물이 왜 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절했던 통일은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이산가족을 애타게 찾던 분들도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지금 통일이 된다 한들 서로를 기다리는 가족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통일은 우리 마음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친구 아들의 군 입대 소식을 들으니 잊고 있던 통일이라는 단어가 다시 마음속에 떠올랐다.

아들이 없는 나는 군대에 아들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친구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걱정만큼은 알 것 같았다.


곧 장마가 시작되고, 이어서 숨 막히는 무더위가 찾아온다며 친구는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재혁이는 어릴 적부터 참 순한 아이였다.


말이 조금 느려 비교를 당하기도 했고, 원래도 조용한 성격이라 친구는 더 걱정이 된다고 했다.

게다가 재혁이는 유난히 땀이 많은 아이다.

한여름이면 남들보다 더 힘들어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과 등에 땀이 흥건하게 맺히곤 했다.

그래서 친구는 장마가 지나고 찾아올 뜨거운 여름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 쓰인다고 했다.


훈련소 운동장을 뛰고, 무더운 날씨 속에서 훈련받을 아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안쓰러운 것이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의 아들이 군대에 가는데 마치 내 조카가 군대에 가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 아들이 가는 것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오랫동안 나를 언니처럼 따랐고, 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참 이상하다.

통일을 꿈꾸며 노래를 부르던 아이였던 내가 어느새 군대 가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요즘 아이들은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 통일은 현실이 아니라 교과서 속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군 입대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그날이 내가 어린 시절 꿈꾸던 통일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오늘 친구가 아들을 잘 배웅할 수 있기를.


그리고 재혁아.

네가 가장 힘들어하는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에 입대하게 되어 더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그 시간 또한 지나갈 것이고, 너는 분명 더 단단한 청년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무사히 건강하게 잘 다녀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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