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6. 5 (금)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오이 지줏대에 망을 씌우는 일을 오늘 드디어 하게 되었습니다.
오이는 덩굴식물이기에 덩굴이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작업을 해주어야 하는데요. 처음에 모종을 심을 때 그런 생각을 못 했던 터라 가지와 고추 사이에 심다 보니 지줏대를 어떻게 만들어줘야 할지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덩굴이 자신이 뻗어나갈 곳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 헤매기 전에 어서 그물망을 씌워줘야겠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늦은 오후 5시 30분에 종묘상에 들러 오이망과 고랑에 덮을 부직포를 샀어요. 가격은 그물망 5,500원, 부직포 5,000원입니다.
부지런히 텃밭을 향했더니 6시가 조금 넘었어요. 텃밭 이웃인 베트남 새댁과 남편분, 그리고 아들도 같이 와서 텃밭을 손질하고 있더라고요.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모기도 달려들기에 남편과 1시간 안에 미션을 해결하고자 일단 세워놓았던 지줏대를 다 뽑았습니다.
이미 고추는 넘어져 있었고, 오이는 사방팔방 바닥에 나뒹굴며 자라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마치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꼬질꼬질하고 해진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 옆 텃밭 분들은 지줏대를 얼마나 튼튼하고 멋지게 해 놓았는지, 그곳에서 자라는 농작물들은 뷰티가 흘러넘쳤답니다.
우리 햇살 담은 텃밭 아가들도 이제는 초등생쯤 된 것 같은데, 앞으로 중등생을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잘 양육하려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초보농부 부모의 역할이겠지요. 제때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남편은 전에 이랑에 세웠던 지줏대를 다 뽑고 고랑에 다시 서로 마주 보게 삼각형 모양으로 꽂기 시작했습니다. 지줏대를 뽑으며 엎어져 자라고 있던 오이를 들어 올리니 아기 오이가 툭 떨어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그래서 집으로 데려왔어요. ㅎ
'조금만 기다리렴. 아주 잘 자랄 수 있도록 편한 환경을 만들어줄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오늘 사 온 그물을 꺼냈습니다.
사실 오이가 두 포기뿐이라 망사 그물이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조금씩은 안 팔고 대부분 묶음으로 팔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물망 사용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물망에 묶인 끈을 다 끊고 펼치는데...
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둘 다 순간 멘붕이 왔답니다.
그래서 다 풀지는 못하고 아주 조금만 펼친 뒤, 아까 대바카라 없이 풀어버렸던 그물망을 다시 케이블타이로 묶은 상태에서 새로 세운 지줏대 위에 걸치기 시작했어요.
아, 근데 이거 정말...
그물이 서로 달라붙고 엉키고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특히 옆 텃밭 사람들이 있었기에 둘 다 표정 관리해 가며 최대한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그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대하고 도와주며 연기대상감 이미지 관리까지 해가면서 간신히 그물을 쳤어요.
옆 텃밭 사람들이 없었다면 서로 짜증도 내고 징징댔을지도 모르죠.
사실은 옆집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의식되었어요. 우리 부부가 하는 모습이 철부지 아이들 장난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괜히 간섭했다가 바카라임질 일 생길까 봐 그냥 자신들의 밭을 손질하기에 바빴겠지요.
암튼 둘이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지줏대를 세우고 그 위에 그물망까지 설치했습니다.
상추도 많이 자라서 따오고 싶었지만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서둘러 철수했답니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기 전에 다시 한번 콩의 안부를 살폈는데 여전히 하나만 올라와 있네요.
그래, 너라도 잘 자라렴.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자연의 법칙이지.
집에 와서 다시 텃밭 모습을 떠올려 보는데 아무래도 오늘 만들어준 환경은 고추와 가지에게 답답한 환경이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가지는 잎이 옆으로 편하게 자라야 하는데 그물망 안에서는 답답해 보였고, 고추는 지줏대 없이 그물망만 세워줘서 강한 바람이 불면 다시 쓰러지겠기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하려니 정말 귀찮아지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거고, 재미로 하는 건데 너무 힘들이지 말자. 못 자라면 못 자라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농부의 바카라임감과는 거리가 먼 행동 같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지줏대를 다시 설치해야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가지와 고추가 그 그물 안에서 자라기는 힘들 것 같아."
남편도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어요.
"그래. 귀찮지만 내일 다시 하자."
그렇게 초보 농부 부부는 지줏대 하나 세우는 것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세우고 뽑고.
다시 세우고 또 뽑고.
그렇게 계획은 틀어지고, 다시 세우고...
아마 농사도, 인생도 그런 과정의 반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한 일
1. 종묘상에 가서 준비물 구입 (오이그물망, 부직포)
2. 기존 지줏대 철거
3. 새 지줏대 설치
4. 오이망 설치
내일 할 일
1. 지줏대 다시 재설치
2. 상추 수확하기
3. 콩 상태 확인하기
한 줄 요약 :
초보 농부 부부가 시행착오 끝에 오이망을 설치하고, 더 나은 텃밭을 위해 다시 고쳐보기로 결심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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