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5. 24 (일)
매주 텃밭에 갈 때마다 꼭 새로운 일이 생겨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게 됩니다. 텃밭은 참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어요.
오늘은 텃밭 가기 전에 종묘상부터 들렀습니다.
가지치기할 때 쓰려고 가위를 사러 간 것이죠. 원래는 잡초 방지용 부직포나 방수포도 같이 사려고 했는데, 정작 밭 크기를 재오지 않았어요. 역시 준비성이 철저한 듯 허술한 인간이네요. 저는 ㅋ.
결국 부직포는 다음으로 미루고 가위 두 개만 7천 원에 계산하려는데, 옆에서 한 아주머니가 넝쿨콩 씨앗을 사고 계셨어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괜히 제 맘도 흔들렸습니다.
“사장님, 지금 콩 심어도 돼요?”
“지금 심으면 좋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그럼 저도 넝쿨콩 하나 주세요!”
라고 했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잠깐만…
콩이 넝쿨로 자란다고?
그럼 줄 타고 올라가고 엉키고 난리 나는 거 아닌가?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져 얼른 물었습니다.
“혹시 키우기 쉬운 콩도 있나요?”
사장님은 웃으며 신선콩 씨앗을 추천해 주셨어요. 가격은 4천 원. 원산지는 대한민국. 괜히 든든해지며 안심이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저번 주부터 마음속으로 계속
“콩 심어서 밥에 넣어 먹으면 맛있겠다…”
하고 있었는데, 마침 콩 씨앗 사는 아주머니를 보게 되었고 결국 저도 사게 되었네요.
견물생심이란 이런 걸까요. ㅎㅎ
오후 5시쯤 텃밭에 도착했어요.
햇빛은 여전히 강했고 오존지수도 높았죠.
선크림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후 각종 장비들을 갖추어 텃밭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이 먼저 나왔습니다.
첫 번째 탄성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작물들 때문이었어요.
심어놓은 것들이 어쩜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지 볼 때마다 신기해요.
두 번째 탄성은 옆 텃밭 때문이었어요.
옆집 아저씨가 이미 부직포를 깔아 잡초가 올라오지 않게 해 놓으신 것이었죠.
오늘 줄자까지 챙겨 왔는데 그대로 쓸모가 없어졌네요.
오늘의 텃밭 할 일은 제법 많았습니다.
먼저 오이 지주대를 손봐주었어요. 오이 넝쿨이 점점 뻗어 나오고 있어서 미리 자리를 잘 잡아줘야 하거든요.
쑥갓은 가운데 줄기를 잘라 수확했어요. 꽃이 피면 맛이 떨어지고 줄기가 억세 진다고 해서 이제야 제대로 수확법을 배운 대로 가위로 잘라주었답니다.
깻잎은 열십자 모양으로 위쪽 잎만 남기고 아래쪽 잎은 거의 다 따주었어요. 통풍이 잘되어야 병도 안 생기고 더 건강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가지, 고추, 오이, 방울토마토도 아래쪽 잎과 열매를 과감히 정리했습니다.
초보 텃밭 시절에는 하나 자를 때마다 너무 아까워서 거의 울면서 잘랐는데, 이제는 제법 대담해졌어요.
왜냐하면 알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해야 더 크고 튼튼한 열매가 열린다는 걸요.
농사를 하다 보면 사람 사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아까워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 더 좋은 것을 얻지 못할 때가 있죠.
때로는 과감히 덜어내야 더 좋은 결실이 생긴다는 걸 텃밭이 자꾸 알려주네요.
작업을 하다 보니 쌈채소가 정말 엄청나게 자라 있었어요.
특히 상추와 각종 쌈채소는 잎 크기가 어른 손바닥보다 더 컸어요. 하나하나 따다 보니 큰 부직포 가방이 금세 가득 찼답니다.
집에 와서 무게를 재보니 무려 2kg.
헉.
내 인생 텃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상추를 따본 건 처음이었어요.
수확의 기쁨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싶어서 자꾸 행복한 웃음이 났답니다.
남편과 쌈채소를 수확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그냥 심어놓기만 했는데 진짜 잘 자라준다.”
“햇빛 하고 비가 다 키워주는 거지.”
“자연이 주는 선물 같아. 참 감사하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가만 보면 우리는 조금 거들 뿐이고, 자연이 대부분을 해내고 있더군요.
신선콩을 어디에 심을까 찾던 중에 우리 텃밭 이랑과 이랑 사이 고랑에다 심기로 했어요. 콩 심을 자리를 호미로 쭉 줄을 그어서 판 다음 콩 알을 하나씩 올려놓았답니다. 10알 정도 심은 것 같아요. 몇 개나 싹이 날지 궁금합니다.
작업을 마치고 물조리개로 물을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어요.
“안녕하세요?”
고개를 들어보니 옆집 베트남 아낙네였어요.
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어요.
첫인상은 딱 그거였어요.
예쁘다.
젊다.
키가 크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먼저 인사를 했다는 점이었죠.
사실 처음 텃밭에서 마주쳤을 때는 우리가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혹시 낯을 많이 가리나, 우리를 불편해하나 싶은 생각도 조금 있었는데 오늘은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네주었어요.
그 짧은 “안녕하세요” 한마디가 괜히 참 기분 좋았죠.
이제는 낯가림이 조금 없어진 걸까.
우리 부부가 편해진 걸까.
아니면 텃밭이라는 공간이 조금씩 사람 마음도 열어주는 걸까.
여러 생각들이 오가며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옆집 아저씨께 부직포 깔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가는 길에 만난 장미넝쿨까지 참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하루였습니다.
오늘 한 일
신선콩 10알 심기
감자 꽃망울 발견하여 잘라주기
오이 열매 솎아주기
고추 하나 수확
각종 쌈채소 2kg 수확
지난주 씨앗 일부 발아 확인
열무는 아주 풍년처럼 올라오는 중
다음 주 계획
오이 넝쿨 올라갈 끈이나 그물 설치하기
감자 관리법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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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 텃밭은 매주 숙제를 내주지만, 이상하게 그 숙제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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