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작물도 지지대가 필요하다

26. 5. 5(화)

by푸른 잎사귀

오늘은 텃밭에 가서 지주대를 세워주었습니다.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 오이 같은 작물들은 자라면서 줄기가 흔들리고 쓰러지기 쉬워 꼭 지주대가 필요하답니다.


종묘상에는 2미터짜리와 1.5미터짜리 지주대가 있었는데, 저희 부부는 2미터짜리로 13개를 샀습니다. 하나에 800원씩이었지요.


또 천연 벌레퇴치제도 함께 샀는데 작은 병 하나 가격이 3만 원이 넘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물 2리터에 약 20미리를 희석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2리터짜리 물뿌리개도 14,000원을 주고 장만했습니다.



이번에 심은 작물들은 청양고추, 아삭이고추, 꽈리고추, 백오이, 빨간 대추방울토마토와 노란 대추방울토마토, 그리고 가지까지 모두 두 포기씩입니다.
두 개씩 심었는데도 막상 밭에 심어놓고 보니 지주대가 많이 필요하더군요.


남편은 둔덕에 지주대를 단단히 박아주었고, 저는 노끈으로 고추들을 서로 연결해 주었습니다. 작은 모종들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묶어주었습니다.


곤지암에 살 때 잠시 친환경농법으로 텃밭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밭일을 하면서 경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서툴고 조심스럽기만 했던 일들이 이제는 몸에 조금 익어 자연스럽게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곁순 자르기도 하고 처음 맺힌 열매를 따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야 더 튼튼하고 많은 열매가 맺힌다고 배웠거든요. 그런데 고추 방아다리 제거는 줄기가 Y자 형태로 갈라지는 곳(방아다리) 아래에서 첫 꽃이나 첫 열매를 따내는 가지치기인데 저는 그런 거 신경 못썼고요. 그냥 첫 번째로 달린 열매라서 따주었어요. ㅎㅎ

방울토마토에 벌써 꽃이 피었습니다.
첫 번째 자란 고추는 따주는 게 좋다고 하네요.


오늘 텃밭에 갔더니 옆 텃밭 이웃도 나와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는데 남자분은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셨지만 여자분은 모자를 눌러쓴 채 조용히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못 들으셨거나 낯을 가리시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호미를 들고 밭으로 오더군요. 그런데 엄마와 나누는 말이 한국어가 아니었습니다. 동남아 쪽 언어처럼 들렸습니다.


한편 오늘은 감자싹도 제법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아무 기척이 없던 자리에서 뒤늦게 작은 싹들이 흙을 밀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너무 깊게 심겨 있었던 모양입니다.


남들보다 늦게 올라왔지만, 어쩌면 더 깊은 흙 속에서 더 오래 힘을 내며 올라온 감자가 나중에는 더 단단하고 좋은 감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문득 옆 텃밭의 여자분과 겹쳐 보였습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새로운 삶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것.
말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하루하루 자리를 잡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할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편분이 아내에게 묻는 말이 들렸습니다.

“이거 베트남 상추야?”


그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아...... 베트남에서 시집오신 분이구나.


고향의 맛이 그리워 고향 채소를 심고 정성껏 가꾸는 모습이 참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만약 내가 타국에서 살아간다면 한국의 상추와 고추, 오이와 가지가 얼마나 그리울까 싶었습니다.


신토불이라는 말처럼 내가 자란 땅에서 난 음식을 먹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지주대를 세우며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농작물도 혼자서는 곧게 자라기 어렵습니다.
곁에서 붙잡아주고 기대게 해 주고 흔들릴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있어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베트남 여인도,
깊은 흙을 뚫고 늦게 싹을 틔운 감자도,
그리고 지주대를 의지해 자라 갈 작은 모종들도 모두 누군가의 지지와 기다림 속에서 자라 가고 있음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오늘도 흙을 만지며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한 줄 마무리 :

사람도 농작물도 낯선 환경과 흔들림 속에서 누군가의 지지와 기다림이 있을 때 비로소 단단히 뿌리내리고 자라 간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오늘 텃밭 전체 모습



지주대 세우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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