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순을 따주고 상추 첫 수확했어요

26.5.10 (일)

by푸른 잎사귀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분주한 상태로 텃밭에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밭에 도착하자마자 머릿속이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자연은 사람처럼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서 좋은가 봅니다.


오늘 텃밭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산짐승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둘러놓은 전기선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넓은 밭을 거의 전세 낸 사람처럼 혼자 돌아다녔지요. 괜히 제가 대농장 주인이라도 된 기분이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본 감자들은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쌈 채소들도 초록 잎사귀를 잔뜩 펼치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죽어가는 줄 알았던 고구마에서 작은 새잎이 올라온 걸 보고는 괜히 반가웠습니다. 속으로는 이미 “얘는 안 되겠구나…” 하고 거의 마음의 장례식까지 치렀었거든요. 그런데 식물들은 사람보다 끈질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자 잎이 무성해지고 있어요.


감자가 싹이 나서 올라오는데 비닐 때문에 줄기가 휘어져 자라고 있어서 비닐을 벗겨주었어요.


오늘은 상추를 하나씩 따서 봉지에 담아왔는데 욕심 안 부린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봉지가 묵직해져 있었습니다. 직접 키운 채소라 그런지 쌈 채소의 맛도 괜히 더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오는 기분은 생각보다 꽤 든든하고 풍성했습니다.

골고루 하나씩 조금씩 땄는데 한 봉지 가득~^^


잡초를 뽑고, 굳은 흙을 고르게 다져주고, 가지와 고추, 토마토의 곁순도 따주었습니다. 곁순을 따주는 이유는 영양분이 한곳으로 잘 모여 더 튼튼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며 사람 마음도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불필요한 걱정과 생각들을 덜어내야 정말 중요한 것들이 더 단단하게 자라나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친환경 살충제까지 뿌리고 나니 몸은 제법 고단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아졌습니다. 흙을 만지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는 복잡했던 생각들도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지요.

토마토 곁순 따주기
감자밭에 자라고 있는 잡초 뽑아주기
가지 곁순 제거
옆집이랑 같이 쓰는 공간이기에 흙고르기 하는 중
방울토마토 곁순 제거


무엇보다 오늘은 초록빛이 참 좋았습니다. 초록, 초록, 초록. 주변을 가득 채운 푸른 잎사귀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텃밭에 오기 전의 소란스럽던 마음도 어느새 조용히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유난히 아카시아 향이 달콤했습니다. 돈 내고 향수는 못 사도 자연은 이렇게 기가 막힌 향수를 선물해주네요.


아마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붙잡고 흔들리기보다, 가끔은 흙을 만지고 바람 냄새를 맡으며 자기 마음을 천천히 돌보는 시간 말입니다.

오늘 텃밭에서 돌아오는 길, 양손에는 상추 봉지가 들려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속에도 초록빛이 한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맙다, 자연.


함께하는 텃밭 전체 풍경을 찍어보았어요
죽어가던 고구마가 살아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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