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복지를 실천하는 초보농부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by푸른 잎사귀

4월 5일, 감자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12일… 못 갔습니다.


일주일만 못 가도 궁금한데, 무려 2주나 지나버리니 이건 뭐 거의 “감자 안부 확인 불가 상태”더라고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빴냐고요?
운전을 못하는 저는 남편이라는 ‘이동 수단’이 있어야만 텃밭에 갈 수 있는데, 이 이동 수단이 꽤나 예약이 어려운 편입니다. 서로 스케줄이 안 맞으면 그대로 텃밭과 생이별이죠.


감자를 심은 일요일 이후, 화·수에는 낙산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왔고요.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 낙산 해수욕장에서 바닷물에 손을 담그며 감성에 젖어 있는데 3년 동안 연락 없던 친구에게 전화가 오더라고요.
순간 몇 초 망설이다가 낙산사에서 만난 파랑새 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더랬죠. 그리곤 잠깐 통화를 했는데 다음 날에 대학 동기 단톡방이 부활.

원수진 것도 아닌데 “우리 그냥 연락하고 살자…” 하는 분위기.
네, 인생은 가끔 이렇게 갑자기 리부팅됩니다.


13일 월요일엔 벚꽃이 만개했고, 목요일엔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벚꽃도, 내 청춘도 비슷한 속도로 사라지는 것 같아 잠깐 철학자가 되어 시도 쓰고 바카라도 읽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일 일요일!
각종 쌈채소를 심으러 출동했습니다.


모종 가게에 갔더니 한 줄 단위로만 판매하더라고요. 한 줄에 4~5개씩.
저는 소박하게 “종류별로 2개씩만요…”를 외치고 싶었는데, 현실은 ‘묶음 판매의 벽’.


그런데 종묘상 아주머니께서 제 마음을 읽으셨는지, 여기저기서 남은 모종들을 주섬주섬 모아주시더니 심지어 “원래 이렇게 안 해주는데…” 하시며 새것도 잘라주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VIP 고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구매액 9천 원)


버터 맛 상추, 겨자 맛 상추, 치커리, 적상추, 청상추, 가지, 오이, 아삭이고추, 청양고추, 대추방울토마토, 깻잎까지…
이 정도면 ‘미니 채소 백화점’입니다.

골고루 2-3개씩 사온 채소 모종들

신이 나서 장화 신고, 장갑 끼고, 모자 쓰고, 물조리개와 비닐 뚫는 도구까지 챙겨 완전 농부 풀세팅으로 밭에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라인에서 작업하시던 두 분이 저희 모종을 보시더니 웃으시는 겁니다.


“어머나… 뭐 이렇게 조금씩 사 왔어요?”


남편과 저는 멋쩍게,
“처음이라 골고루 조금씩 먹어보려고요…”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적다… 하하하”


순간 약간 ‘텃밭 소식가’ 취급을 받은 느낌이었지만,
“저번 주엔 감자 심었고, 다음 주엔 고구마도 심어요.”
라고 괜히 농사 큰손인 척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진심으로 이게 적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빽빽하게 심으면 결국 솎아내야 하고, 모종들도 서로 숨 막히니까요.
넉넉한 간격, 이것이 바로 ‘채소 복지’ 아닐까요.

왼쪽이 감자 / 오른쪽은 오늘 심은 쌈채소 모종들


예전에 해보니 손가락만 하던 애들이 손바닥만 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농사의 모토는 단 하나.
“욕심 버리고, 재미로 간다.”


남편과 열심히 심고 물도 주고, 드디어 감자밭을 확인했는데…
아직 싹은 안 보입니다.


네, 감자는 여전히 ‘잠수 중’입니다. 이렇게 텃밭 3주 차가 지나가네요.




오늘의 초보 농사 한마디 :
텃밭을 할 땐 욕심을 버려야 한다. (특히 남의 시선도 함께 버리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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