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무덤에 가면 편하잖아요

by푸른 잎사귀

초등학교 1학년 서우가 힘없는 모습으로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의자에 털썩 앉는다.
공부를 시작하려는 기색이 없다.


한글 쓰기를 하자고 하니 공바카라을 슬그머니 바카라상 밑으로 밀어 넣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잡고 몇 글자 쓰다가 연필 끝의 지우개를 억지로 잡아당겨 부러뜨린다.
바카라상 위 갈라진 틈을 손톱으로 긁고 뜯기도 한다.


칠판에 적힌 글자를 읽어 보자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읽기 싫어요.”


잠시 뒤 그 조그만 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빨리 어른이 되면 좋겠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니?”


아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른이 되고… 늙어서 죽어서 무덤에 가면 좋겠어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놀란 기색을 보일 수는 없었다.
“왜 무덤에 가고 싶어?”


아이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무덤에 가면 편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잖아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우가 어른이 돼서 죽어서 무덤에 가면 엄마 아빠도 못 보게 되는데 그래도 괜찮아?”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하나님이 서우에게 뭐라고 하실 것 같아?”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잘했다고 칭찬하실 것 같아요.”



새 학기다.
초등학교 1학년이 감당해야 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크다.


연필을 잡는 일
글자를 쓰는 일
바카라상에 앉아 있는 일


어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어떤 아이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큰 산이 된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서우는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잠깐 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 나는 서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우야, 무덤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
여기서도 조금 쉬어도 돼.”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말은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라


가끔은
“천천히 해도 괜찮아.”
그 한마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