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음 고객은 어디에 있을까

10. 다음 고객은 어디에 있을까


국내 데이터 사업에는 한계가 있다. 한 회사가 잘 팔리는 데이터 상품을 만들면 다른 회사도 금방 비슷한 상품을 만든다. 원재료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지표를 만들고 분석 방법을 고도화해도 그것만으로 오랫동안 차별화하기는 어렵다. 고객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다. 수천만 원 이상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갑자기 크게 늘어나기도 어렵다.


지난 글에서 데이터 시장이 성장하려면 상품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데이터를 사용하는 기업의 수를 늘리고, 한 번 산 고객이 반복해서 사용하게 만들고, 더 중요한 의사결정에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해 건당 구매금액을 높여야 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을까.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1. 사람이 아니라 AI가 사용하는 데이터


지금까지 데이터 상품의 최종 사용자는 사람이었다. 데이터를 전달하면 분석가가 가공하고, 담당자가 보고서를 읽어 의사결정에 활용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기업 업무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 과정이 달라진다. 마케팅 담당자가 AI에게 “최근 3개월 동안 30대 여성의 외식 소비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지역을 찾아줘”라고 물었는데 기업 내부 데이터만으로 답할 수 없다면, AI도 외부 데이터가 필요하다.


여기서 흔히 떠올리는 것이 API다. 기존에 파일로 주던 데이터를 API로 제공하면 AI 데이터 사업이 될 것 같지만, 기술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AI가 돈을 내고 가져갈 만큼 그 데이터가 필요한가. 인터넷 검색이나 기업 내부 정보만으로 충분히 답할 수 있다면 외부 데이터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실제 결제, 이동, 구매처럼 AI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정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합성데이터가 늘어나는 것도 흥미로운 변화다. 실제와 비슷한 데이터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진짜 데이터의 가치는 떨어질 것 같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합성데이터가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 검증하려면 결국 실제 데이터가 필요하다. AI가 예측한 소비가 맞았는지 확인하려면 실제 소비가 필요하고, AI가 예측한 상권의 변화가 맞았는지를 확인하려면 실제 결제 기록이 필요하다.


사람의 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AI 상담이 흔해질수록 중요한 고객에게는 사람이 직접 상담한다는 것이 오히려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가짜 데이터를 정교하게, 거의 무한대로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 자체가 데이터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전체 시장을 100% 설명하지 못하는 데이터라도 현실을 정확하게 관측한 표본이라면 AI를 학습시키거나 검증하는 기준 데이터로 새로운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실무에서는 거창한 AI 데이터 플랫폼부터 만들 필요가 없다. 현재 보유한 데이터 가운데 AI가 검색하거나 생성해서 대체할 수 없는 데이터 10개를 먼저 골라보고, 각각 학습용·검증용·추론용 가운데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 분류해 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2. 국내에서 흔한 데이터를 해외에서 다시 본다


두 번째는 해외다. 국내 데이터 시장의 천장을 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시장의 경계를 넓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판매하던 데이터 상품의 소개서를 영어로 번역한다고 해외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은 한국 데이터가 없어서 의사결정하기 어려운 해외 고객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소비 데이터는 국내 기업에는 익숙한 시장분석 자료다. 하지만 한국의 유통기업이나 화장품 회사에 투자하는 해외 자산운용사에게는 기업 실적을 조금 더 빨리 읽기 위한 얼터너티브 데이터가 될 수 있다. 한국에 진출하려는 글로벌 브랜드에는 어느 지역에서 어떤 연령대가 무엇을 소비하는지가 출점과 마케팅 예산을 결정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구매자가 바뀌면 데이터가 해결하는 문제의 크기도 달라진다.


해외에 경쟁자가 없다고 해서 시장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에이피알 김병훈 대표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이 있다.

“아무도 없는 블루오션은 수요가 없는 곳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데이터를 해외에 팔 수 있으면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지만, 아무도 돈을 내지 않는 데이터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해외 데이터 사업의 첫 번째 단계는 수요 검증이어야 한다. 해외 법인을 만들고 영업조직을 갖추기 전에 글로벌 데이터 유통사나 이미 거래 관계가 있는 해외 기업을 통해 구매 의향부터 확인하는 편이 낫다.

실무적으로는 기존 데이터 가운데 해외에서 가치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상품 세 개를 고른 뒤 이 데이터가 없어서 돈을 잃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잘못할 해외 고객은 누구인가를 정의하고, 실제 잠재 고객이나 데이터 유통사 다섯 곳 정도에 샘플을 보여주는 것부터 해볼 수 있다.


3. 데이터를 팔기 전에 시장의 기준을 만든다


세 번째는 앞의 두 가지와 조금 다르다. 새로운 고객을 찾는 대신 처음부터 데이터를 팔지 않는 방법이다.


비자카드는 소비 데이터를 활용한 Spending Momentum Index 같은 지표를 시장에 공개해 왔다. 이런 방식에서 흥미로운 것은 무료 지표 자체에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 숫자를 반복해서 확인하고 언론과 연구기관이 인용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 지표가 시장을 설명하는 기준점이 된다. 그때부터 “전체 소비는 그렇다는데 우리 업종은 어떤가”, “서울은 좋아졌다는데 우리 매장이 있는 지역은 어떤가”, “우리 회사 실적과 이 지표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같은 질문이 생긴다.


이 질문부터 유료화할 수 있다. 전체 지수는 계속 무료로 제공하되 업종·지역·고객군별 상세 데이터는 유료로 판매하고, 특정 기업과의 비교나 전망은 분석 서비스와 컨설팅으로 연결한다. 반복적으로 필요한 고객에게는 대시보드나 API 형태의 구독 상품을 제공할 수도 있다.


데이터 사업을 하다 보면 데이터를 잘 가공해 상품으로 등록한 뒤 “이걸 누가 살까”를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반복해서 확인할 만한 숫자를 먼저 공개하고, 그 숫자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질문을 관찰한 뒤 그 질문을 상품으로 만들자.


실무적으로도 큰 투자 없이 시험해 볼 수 있다. 개인정보나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 문제가 적으면서 최소 3년 이상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데이터 하나를 골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지수 하나를 만든 뒤 6개월 정도 무료로 공개해 보는 것이다. 이때 조회 수보다 중요한 것은 인용 횟수와 추가 문의다. “우리 업종도 볼 수 있나요?”, “지역별로 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반복되기 시작한다면 그 질문 자체가 다음 유료 상품의 기획서가 된다.


AI 데이터, 해외 데이터, 무료 지수는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조금 다르게 가공해서 또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이유 자체를 바꾸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AI에는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현실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해외에서는 한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전체 시장에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참고할 기준점을 만든다.

처음부터 큰돈을 들일 필요도 없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데이터 10개를 골라보고, 해외 고객 5곳에 물어보고, 지수 하나를 6개월 동안 공개해 볼 수 있다. 해봤는데 아무도 쓰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꽤 중요한 결과다. 사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한 실험이 아니라 수요가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 상품부터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데이터 산업은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앞으로는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할지 모른다.

데이터 시장의 다음 성장은 이미 가진 데이터의 새로운 쓸모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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