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데이터 시장은 어떻게 커질 수 있을까
데이터가 활용되는 생태계를 더 키우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신규 고객 확보는 모든 기업의 지향점이다. 기존 고객을 더 쓰게 만드는 것도 마케팅의 오랜 추진 방향이다. 데이터도 상품이 되고 서비스로 제공되는 2026년, 데이터를 활용하는 신규 고객이 늘어나는 것도, 고객당 이용금액의 증가도 좋지만 고객의 두 번째 구매, 세 번째 구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든다. 조금은 성장한 데이터 시장에서 고객의 데이터 반복 활용은 중요한 지향점이 됐다.
AI를 처음 접했을 때 드는 생각은 놀라움과 신기함이다. 그다음에는 매일이 달라지는 기술을 알고 따라가려고 애쓴다.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업그레이드된 버전에 대한 설명,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는 시연은 충분히 맛봤다. 이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에서는 기술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수익으로 연계해서 설명할 수 있으면 훌륭한 기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알면 좋지만 몰라도 괜찮은 참고자료에 그치게 된다.
AI보다 먼저 시작한 데이터도 비슷한 경로를 지나왔다. 데이터를 직접 보는 것 자체가 신기했던 처음을 지나, 남들이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을 한다는데, 데이터를 활용해서 상권을 분석한다는데 우리도 해야 되지 않냐는 조급함의 시기도 지나왔다. 그렇다면 데이터 시장은 지금이 성숙기일까? 아니면 이제 지는 시장일까?
일부 사람들은 AI시대가 왔으니 데이터는 이제 지는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AI와 데이터를 따로 두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맛보기가 아니고 진짜 업무를 진지하게 적용할 때 데이터 없는 AI는 존재하기 어렵고, AI 없는 데이터는 성장하기 어렵다. 데이터는 AI라는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 두 번째 성장곡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성장곡선에서는 사람이 데이터를 사용했다면, 두 번째 성장곡선에서는 AI가 데이터를 소비한다. 데이터는 AI를 만나 그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기존 데이터는 공급을 늘리는 데 초점이 있었다. 데이터를 더 많이 만들고, 더 쉽게 공개하고, 더 안전하게 결합하고, 더 많은 기업이 한 번이라도 데이터를 구매하도록 돕는 것이 정바카라의 중심이었다. 예산이 부족한 기업에게는 데이터를 구매할 수 있는 일부 비용을 지원하고, 데이터를 몰라서 구매하지 못하면 컨설팅 기업을 연계해 주고, 데이터는 있는데 분석을 못하면 데이터 분석을 지원하는 형태의 정바카라들이 있었다. 오래 고민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바카라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공급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판매하면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질문은 단연 가격이다. 무엇이든 구매를 결정하려면 가격이야기 없이 진행될 수 없다. 가격 다음으로 고객들이 고민하는 부분에 대한 내용은 조금 결이 다르다.
“이 데이터를 계속 받을 수 있습니까?”
“다음 분기에도 같은 기준으로 제공됩니까?”
“우리 업무 프로세스에 넣어도 되겠습니까?”
고객이 진지하게 데이터 활용을 고민할 때 하는 생각은 이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데이터가 연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지, 내년에는 가격이 엄청 뛰어서 구매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지, 경쟁사에도 같은 데이터를 공급하는지를 확인한다.
몇 년 전 데이터 안심구역이 만들어졌다. 민감한 데이터를 안전하게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기면 활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기업은 신청하고, 승인받고, 별도의 환경에서 분석하고, 결과를 반출하는 절차보다 돈을 쓰더라도 지금 당장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좋은 기술보다 편리한 경험이 시장을 움직인다.
데이터 거래 방식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농산물 직거래 장터의 본질은 중간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줄이는 데 있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여러 단계가 존재하면서 데이터가 만들어진 배경과 활용 및 방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원본의 의미가 일부만 전달되거나, 고객마다 다른 설명을 듣는 일도 생긴다.
데이터는 파일을 전달하는 순간 가치가 완성되는 상품이 아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업무에 적합한지를 공급자와 수요자가 함께 이해할 때 데이터의 가치가 커진다. 앞으로는 불필요한 중간 과정을 줄이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시장이 필요하다.
데이터와 데이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을 생각할 때 2026년을 포함한 향후 미래를 바라보는 ‘데이터 전환기‘에서는 아직 채워야 할 빈칸이 남아 있다.
첫 번째는 데이터에 대한 반복 활용이다.
기존의 전략은 기업이 데이터를 경험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시장은 첫 구매보다 두 번째 구매에서 성장한다. 데이터를 한 번 활용한 기업이 다음 달에도 같은 데이터를 찾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길 때 가장 먼저 데이터를 떠올리고,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데이터를 사용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때부터 데이터는 비용이 아니라 업무 인프라가 된다.
데이터를 판매하다 보면 첫 계약보다 두 번째 계약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첫 구매는 위에서 내려온 수명업무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두 번째 구매는 다르다. 첫 번째 데이터가 실제 업무에서 도움이 되었는지가 재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가 보유한 데이터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우리가 구매한 데이터는 얼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데이터 가치평가를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우리 데이터가 실제로 판매된 금액이야말로 검증된 시장가격이다. 그리고 우리 데이터를 또 찾아주는 실제 기업들이 데이터에 대한 가치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데이터 시장을 키우는 것,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다시 돌아오는 반복 고객이다.
두 번째는 고객이 활용하는 데이터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지역별 소비 데이터 하나만 구매했던 기업이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인 소비 데이터, 상권 데이터, 품목 데이터까지 함께 활용하게 된다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주제별로 선명하게 구성된 데이터를 활용하다가, 카드-통신, 카드-편의점, 카드-공공데이터 등을 결합해서 더 넓게 활용해보기도 하고, 데이터를 보고서나 대시보드같이 서비스 형태로 이용하기도 한다. 뭔가를 팔려고 할 때 기업들은 새로운 고객 확보를 위해 애쓴다. 뭔가를 파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해 보면, 고객들이 더 다양한 데이터를 업무에 활용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의가 중요한 이유다.
생각해 보면 마케팅도 같은 방식으로 성장한다. 좋은 쇼핑몰은 신규 고객 수만 보지 않는다. 단골 고객이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 한 번 방문할 때 얼마나 더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는지를 함께 본다. 이제는 데이터 시장도 구매 기업 수보다 반복 활용률을, 거래 건수보다 고객당 활용하는 데이터 범위를 함께 보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전략을 추진하는 데이터 공급자들은 한 번 판매하고 끝나는 데이터가 아니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든다. 수요 기업도 단발성 임시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학생들은 예제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 산업 데이터를 다루며 배우고, AI는 필요한 순간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호출한다.
작은 잔에 여러 개가 나오는 맥주 샘플러처럼, 우리는 과거에 여러 가지 유형의 데이터를 맛보기로 체험했다. 이제 제일 맛있는 맥주를 골라 본연의 큰 컵에 한번 마셔볼 차례다. 맛있으면 다음에 또 와서 마셔보자. 맥주만 마시기 허전하면 내가 고른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도 한번 시켜보자. 데이터 활용이 새로운 나라에 가서 맛보는 맥주 체험과 다르지 않다.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지속 활용되고 각 고객들이 활용하는 데이터의 종류가 다양해질 때 진짜 데이터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이고, 생태계를 키우는 방향이다. 이는 내부에서 데이터를 활용할 때나 외부데이터를 활용할 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데이터 시장, 데이터 생태계, 데이터 경제 시스템, 비슷한 듯 다른 용어들을 떠올려 본다. 고객들이 사과를 제일 많이 먹는다고 해서, 전국에 사과 농장만 많으면 어떻게 될까? 다양한 작물을 키우는 농부가 있고, 유통하는 시장이 있고,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있고, 꾸준히 찾아오는 소비자가 있어야 생태계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지금 당장 인기 있는 데이터, 인기 있는 데이터와 비슷한 데이터를 만드는 기업만 많아서는 데이터 생태계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생태계라는 건 지속 가능한, 지속 성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잘 활용되지 않는 데이터도 발굴해서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시장을 어지럽히는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들도 걷어낼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소수의 기업들이 독점하는 시장도 좋지 않다. 모든 기업들이 몇 안 되는 데이터만 유통해서는 성장이 어렵다. 데이터를 찾고, 맛보고, 데이터를 사고, 활용하고, 분석하고, 다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늘어날 때 비로소 데이터 생태계가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