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의사결정의 세계

11. 의사결정의 세계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결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보인다. 정보가 부족해서 틀린 것도 있지만 필요한 정보가 있었는데 판단을 잘못한 경우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관이 달라진 경우도 있고 결과를 보고 나서 느끼게 되는 것들도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넘어, 지금 할 것인지 나중에 할 것인지, 열어두고 검토할 것인지 닫아두고 검토할 것인지, 우리가 할 것인지 다른 조직이 해야 할 문제인지 결정해야 하는 사항들도 다양하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감이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하자는 뜻이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일을 오래 할수록 데이터만으로 좋은 의사결정이 가능한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마치 5성급 호텔의 문지기를 비용 절감이라는 확실한 근거로 자동문으로 교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줄여 자동화하는 것, 우리가 요즘 목표로 삼고 있는 방향에도 맞는다. 문지기의 역할이 호텔을 방문한 고객을 처음 맞이하는 환대, 택시를 잡아주는 것, 길을 알려주는 것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을 텐데 데이터는 이를 놓치기 쉽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과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다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과 그래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도 다른 문제다. 데이터는 의사결정을 지원하지만, 100%를 지원하지 못한다. 정답에 가깝게 길을 열어주지만 바로 답을 주지 못하는 영역도 여전히 존재한다.


AI가 발전하면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는 지금보다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몇 시간씩 자료를 찾고 엑셀을 돌려 비교하던 일도 줄어든다. 여러 선택지의 장단점을 정리해 달라고 하면 AI가 몇 초 만에 꽤 괜찮은 답을 내놓는다. 답을 얻기 쉬워진다고 결정까지 쉬워질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아질 수도 있다. 예전에는 A와 B를 비교했다면 이제는 A부터 J까지 비교할 수 있다.

무엇이 가능한지는 AI가 알려줄 수 있지만 그중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그리고 그 일을 누가 맡을 것인지는 여전히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막상 결정하려고 하면 대부분은 해결이 되는데 마지막 2프로가 부족하다. 여기에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큰 결정부터 견적을 낮추고도 공급할 것인지, 드롭할 것인지의 소소한 사항까지 많은 의사결정을 해왔다. 그중에는 지금도 이불킥을 하게 만들거나,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드는 이슈들도 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의사결정을 할까? 모든 선택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겠지만, 지금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달라질 사항들을 복기해봤다.


첫 번째로 얻은 교훈은, 급하다고 아무 물이나 마시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다.

우리 팀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제가 우리 팀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잠재 고객에게 데이터를 공급하려고 하는 순간에 우리 데이터의 기준 정보가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고객이 망설이게 되는 경우는 어떨까? 내부에서 사용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외부 고객에게는 이슈가 되기도 한다. 남의 돈 받아먹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데이터를 활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과거부터 현재까지 데이터를 연결해서 보고 여러 회사의 데이터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내부에서 우리 데이터만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밖에서는 선명하게 보인다.


고객의 불만이 생기면 현장 조직들은 마음이 급해진다. 당장 데이터를 수정해 제공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많은 현장 조직들이 ‘고객이 이런 불만을 제기하셨습니다 ‘라고 전달하는 것으로 역할을 마친다. 또는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었는데 개발팀에서 조치를 안 해서 계약을 놓쳤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AI, 데이터, 디지털 관련 조직에서는 이런 칸막이를 두기가 어렵다. 분석, 사업, 개발이 거의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기초적인 일을 누가 관리해야 하는지 조직 안에서 명확하지 않은 경우다. 중요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처럼 성과가 드러나는 일도 아니다. 회사에는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선뜻 가져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급한 사람이 움직이게 된다. 팀의 역할이 아닌데 할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그 업무를 해결한다. 회사에서 보기에는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지만 경험을 해보니 옳은 의사결정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의 불편을 해결한다는 관점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대안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시작되면 여기저기서 말이 나온다. 팀 안에서는 ‘이게 정말 우리 팀이 해야 하는 일이야?’ 불만이 속출하고, 다른 팀에서는 ’너네 팀에서 그 일을 왜 하는 거야?’ 의아해한다. 일을 하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무를 가져오면 그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데이터는 계속 들어오고 기준은 또 바뀌고 품질도 계속 확인해야 한다. 1회성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업무는 자세히 파면 팔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슈가 발견되고 해결을 기다린다.

지금 같은 상황이 다시 생긴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이 문제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부터 정할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그 문제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두 번째는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설계와 협의의 중요성이다. 여러 조직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만약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기획하는 시간을 훨씬 더 많이 할애할 것 같다.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와야 일이 진행되는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 것인지 빨리 정하고 개발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직접 만들어보니 개발을 시작한 뒤에 콘텐츠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비싼 비용이 들었다. 일부는 아예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다. AI시대에 개발이 실시간으로 적용되고, 화면 설계도 쉽게 지원될 것 같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있고 사람의 손을 타야 되는 업무들이 여전히 많다. 착수시기와 완료시점이 벌어질수록, 그 사이에 계속 나오는 새로운 기능들도 추가하고 싶어진다. 하나씩 살펴보면 모두 필요한 기능이다. 필요한 기능을 많이 넣는다고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 반영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 않은가?


지금 다시 한다면 이 일의 고객은 누구인가, 우리가 왜 프로젝트를 하는가, 프로젝트 종료 후에 챙겨야 하는 업무는 무엇이며 그 일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더 많이 협의하고 오래 고민할 것이다.

혼자 하는 일은 내가 하면 된다. 여러 조직이 함께하는 일은 지식보다 조율이 중요하다. 기획하는 조직, 개발하는 조직, 데이터를 만드는 조직, 판매하는 조직, 운영하는 조직이 다르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역설적으로 회의에 들어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일을 하는 사람은 소수인 상황이 생겨난다.


회의를 하면 여러 가지 관점의 의견들이 쏟아진다.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이 데이터도 추가하면 좋겠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바꾸는 게 좋겠다. 모두 필요한 의견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의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회의가 끝난 뒤 기능을 정의하고 데이터를 만들고 개발자와 협의하고 테스트하고 오류를 수정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에는 많이 알아서 말로 조언하는 사람보다, 조금 덜 알더라도 실행할 손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진행만큼 중요한 것이 유지보수다. 프로젝트에는 종료일이 있지만 서비스에는 종료일이 없다. 오픈하는 순간부터 문의가 들어오고 데이터가 바뀌고 오류가 생긴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야 하고 사용하지 않는 기능은 없애야 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참여했던 조직들이 하나씩 원래 업무로 돌아가면 결국 남아 있는 누군가가 그 모든 일을 맡게 된다. 오픈한 지 1년 뒤에도 누가 이 서비스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설사 원안이 유지되지 않더라도 담당조직은 반드시 사전 세팅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관리자가 되어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점이다.

관리자가 되면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진다. 업무가 어렵다는 말도 듣고, 다른 조직과의 협업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때로는 개인적인 고민을 듣기도 한다. 그것 역시 관리자의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는 다르다. 친한 친구를 만나 푸념하는 것과 회사 안에서의 개선점을 말하는 것은 반드시 달라야 한다. 나는 위로, 아래로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했는가? 나는 상사에게 어떤 결정을 원했는가.


사람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현재 인력으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어렵다.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먼저 하고 다른 하나는 일정을 늦추는 것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첫 번째에는 상황이 있고 두 번째에는 선택이 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데까지 판단하고, 선택지를 만들고, 내 권한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을 상사에게 가져가는 편이 낫다.


이것은 불평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려움은 말해야 하고 관리자는 들어야 한다. 때로는 해결바카라보다 들어주는 것이 먼저인 문제도 있다. 다만 업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어떤 결정을 원하는지, 이 세 가지가 있으면 대화가 달라진다.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필요한 사람은 문제를 가장 자세히 설명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선택지로 바꾸어주는 사람에 가까워진다.


과거의 결정을 다시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첫 번째에서는 내가 결정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 보이고, 두 번째에서는 시작하기 전에 결정했어야 할 것이 보이고, 세 번째에서는 내가 먼저 결정했어야 할 것이 보인다.

요즘 과거의 결정을 돌아볼 때 ‘왜 틀렸을까’보다 다른 질문을 해본다. 그때 나는 무엇을 보지 못했을까. 이 질문을 한다고 다음번에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같은 방식으로 틀릴 가능성은 줄어든다. 사업인에게는 계약이 틀어진 건에 대한 복기가 중요하다. 의사결정도 마찬가지다. 다시 생각하면 복장이 터질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문제를 이야기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알고 보면 나와 같은 편인 경우가 많다. 마치 적과 싸우는 것처럼 대화를 시작하지만, 사실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지라는 점을 잊지 말자.


결국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의사결정을 해내는 것, 나중에 후회가 하더라도 일단 지금 기준에서 판단을 하는 것, 하지만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나의 결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교훈을 얻어 다음번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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