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데이터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가

08. 데이터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가


데이터3법, 가명정보, 합성데이터.

데이터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단어들이다. 반대로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데이터라는 산업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들을 하나씩 이어 놓고 보면 우리나라 데이터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만으로 사업을 할 수 없다. 기업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설계할 수밖에 없다.

“아니 왜 이렇게 복잡한 처리를 해서 데이터를 주세요?” 데이터를 손볼 것 없이 그냥 달라는 고객들에게 설명을 할 때마다 약간 현타를 느끼기도 한다. 진짜 뭐 때문에 이런 작업들을 하고 있지?

데이터를 실제로 활용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재미없는 제도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다. 아무런 제약 없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한 걸음 나아가는 데도 수많은 거미줄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 데이터사업을 이해하려면 먼저 어떤 법과 제도 아래에서, 기업들이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데이터를 바라본 첫 시각은 ‘보호‘ 였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가장 큰 과제는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관리하기가 어려워서 업무상 획득한 개인정보를 저장하지 않고 날려버리는 기업들이 나올 정도였다. 이때는 데이터활용에 대한 고민보다 데이터라는 것은 일단 유출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카드사나 통신사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도 데이터를 외부에 공유하거나 새로운 사업에 활용하는 일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데이터를 전송할 때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정부기관에 조금 보내보고 일반 기업에는 보내기 어려웠다. 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던 시대,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활용한다고 말할 수 없던 시기.


시간이 흐르면서 정바카라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0년 데이터3법이 시행됐다. 데이터에 대한 핵심키워드가 보호에서 활용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개인정보는 보호해야 되지만 그래도 산업적으로 활용이 될 수 있도록 숨구멍을 좀 열어주자는 게 이 법의 취지였다. 이때 가명정보와 데이터 결합이 등장했다. 이전에는 함께 분석할 수 없었던 데이터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카드 소비 데이터와 통신 데이터, 공공 데이터를 결합해 상권을 분석하거나 관광객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데이터를 많이 가진 기업만큼 서로 다른 데이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기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후 정바카라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22년 ‘데이터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에 관한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데이터는 활용을 넘어 거래의 대상이 됐다. 기업은 데이터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필요한 기업은 이를 구매하는 시장이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때 등장한 것이 데이터를 사고팔 수 있는 데이터 거래소와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들이다. 다양한 데이터들이 상품이 되어 거래소에 올라왔다.

데이터 거래 장터가 생기면서 데이터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한 느낌이다. 데이터 거래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시장이 생겨났지만, 생각보다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지 않고 기대한 만큼 시장 규모가 커지지 못했다.


최근의 변화는 어떨까? 2024년에는 합성데이터 생성 및 활용 가이드라인이 마련됐고, 올해는 AI 기본법이 시행됐다. 얼핏 보면 각각 다른 정바카라처럼 보이지만, 데이터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공통된 방향이 읽힌다.

이제 데이터의 주요 소비자가 사람에서 AI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고객이 데이터 파일을 구매해 엑셀을 열고 분석했다. 지금은 AI에게 “강남역 20대 여성의 최근 소비 트렌드를 알려줘.“라고 질문하면 AI가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 결합하고 분석해 답을 만들어 주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보고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AI가 데이터를 바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되는 것이다.


다음 세대의 데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다음 세대의 고객은 사람이 아니라 AI 에이전트일지 모른다. 사람이 데이터 플랫폼에 접속해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필요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호출하고, 여러 데이터를 결합하고, 결과를 생성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정바카라도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AI가 데이터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메타데이터 표준이 중요해질 것이고, 데이터의 품질과 출처를 AI가 자동으로 판단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해질 것이다.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방식보다 API를 통한 실시간 제공이 기본이 될 것이고, MCP(Model Context Protocol)와 같은 표준을 통해 AI와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환경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결국 정바카라은 사람이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환경에서 AI가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환경으로 조금씩 이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사업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이 경쟁력이었다. 그다음에는 데이터를 결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었다. 이제는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서비스하는 기업이 앞서갈 것이다. 역설적으로 AI가 이해하기 쉬운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기초 데이터의 정제가 정말로 중요하다. 수작업이 있을 수밖에 없고 시간이 걸리고 아무도 안 하고 싶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초데이터 전처리를 어디까지 해내느냐가 AI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앞으로는 데이터를 파일 형태로 몇 건 판매했는지가 중요한 지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데이터가 얼마나 많은 AI 서비스에서 호출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AI가 우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을 생성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꽤 큰 변화다. 사람에게 데이터를 판매하는 사업에서 AI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데이터사업을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데이터를 더 많이 팔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를 팔지 않고도 데이터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API를 통해 제공할 수도 있고, AI 검색 서비스 안에서 활용될 수도 있으며, AI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호출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데이터는 파일이라는 형태를 벗어나 서비스가 되고, 플랫폼이 되고, AI의 지식이 된다.

돌이켜 보면 데이터3법 이후 달라진 것은 판매할 수 있는 데이터의 범위만이 아니다. 데이터가 거래되는 방식이 달라졌고, 플랫폼의 역할이 달라졌으며, 데이터를 공급하는 기업과 구매하는 기업의 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데이터사업자의 역할 역시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에서 AI가 가장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기업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데이터사업의 핵심 질문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데이터를 팔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데이터가 AI에게 가장 먼저 선택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기업이 앞으로의 데이터사업을 이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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