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의 청바지는 왜 전부 똑같아 보일까

Part 1

by룰루라임

옆자리 직원과 점심을 먹다가 옷 얘기가 나왔다. 그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어우, 저는 청바지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사면 안 됩니다." 순간 의아했다. 그 직원이 출근할 때 입는 청바지는 늘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핏도 워싱도 비슷한, 거의 구분이 안 가는 청바지를 매일 바꿔 입으면서 "청바지가 너무 많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청바지를 여러 벌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바지는 그냥 '청바지'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핏만 봐도 스트레이트, 와이드, 슬림, 테이퍼드, 부츠컷처럼 실루엣 자체가 완전히 다른 종류로 나뉜다. 색깔도 마찬가지다. 물이 거의 안 빠진 진한 원단부터, 적당히 낡은 느낌의 미드 블루, 아예 하얗게 바랜 워싱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또한 같은 색이어도 원단이 두껍고 뻣뻣한지, 얇고 부드러운지, 셀비지 특유의 스티치가 보이는지에 따라 입었을 때 풍기는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그러니까 그 직원에게 "청바지 몇 벌 있어요?"라고 물으면 아마 "대여섯 벌이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비슷한 워싱의 스트레이트 핏 청바지가 대여섯 벌"이다. 그는 청바지 다섯 벌을 산 게 아니라 사실상 한 벌을 다섯 번 산 것에 가깝다. 옷장은 꽉 찼는데 입을 옷은 늘지 않는, 3040 남성들이 가장 흔하게 빠지는 함정이다.


이 글을 읽는다는 건. 패션에 대한 욕심이 어느 정도는 있다는 것일 거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근사하게 입을 수 있을까'. 혹은 근사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자리에는 이렇게 입어야지.'라는 분위기 감각 정도는 갖고 싶다는 마음.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잘 입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잘 입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그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내가 직접 사서 입어보고 실패해 본 경험이라면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딱 그만큼의 이야기다.


이 글은 그런 사람들, 정확히는 슬롯생활을 시작한 30대부터 아직 '아재 패션'으로 완전히 넘어가기는 억울한 40대까지를 위한 이야기다. 특히 출퇴근 복장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평소에는 캐주얼 위주로 입지만, 가끔은 갖춰 입어야 하는 날이 있는 사람들. 사실 나도 그중 하나다. 학생 때처럼 아무거나 걸쳐도 멋이 나던 시절은 지났고, 그렇다고 패션 자체를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다. 이 애매한 시기를 어떻게 건너갈지, '민폐만 끼치지 않는 매너 있는 옷차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 더 근사하게 입는 방법은 없을지, 같이 이야기해보려 한다.


출처: Modaza

네이비 블레이저에 흰색 옥스퍼드 셔츠, 치노 팬츠, 그리고 신발 역시 페니 로퍼를 신어서 위트 있는 클래식 룩이 완성된다. 이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기본 착장이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모든 이야기는 이 착장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아이템 한두 개를 바꾸면서 격식을 올리거나 낮추는 식으로 응용해 나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조합을 눈에 익혀두면, 뒤에 나오는 글들이 훨씬 쉽게 읽힐 것이다.


이렇게 아이템 각각이 양쪽 성격을 다 가지고 있으니, 이 착장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회사 출퇴근이든 주말의 약속이든,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도 부담을 느낄 만한 튀는 색상이나 요란한 로고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도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건, 재킷과 가죽 슈즈라는 격식 있는 아이템이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기 때문이다. 이 균형, 즉 편안하면서도 충분히 신경 쓴 티가 나는 지점이 바로 이 착장이 보여주는 멋이다.


3040이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니 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통용되는 스타일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기본 뼈대가 세워지면 그다음에 유행을 조금씩 곁들이면 된다. 셔츠나 재킷의 품이 살짝 넓어지거나 좁아지고, 바지 핏이 그해 분위기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 정도. 그 원리를 같이 들여다보려 한다.


앞으로 나올 글들에서는 두루뭉술한 조언 대신 구체적인 브랜드와 모델명을 이야기하려 한다. "좋은 옥스퍼드 셔츠를 하나 사라" 같은 말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나도 겪어봐서 안다. 대단한 기준이 있어서라기보다, 오래 옷을 사고 입고 실패하면서 정리한 ‘걸러야 할 것들과 오래 가져갈 것들'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쪽에 가깝다.


이 시리즈의 Part 2에서는 먼저 3040 남성이 유행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기준을 잡고, Part 3에서는 그 기준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떤 아이템이 좋을지 구체적으로 다룬다. Part 4에서는 이렇게 갖춘 옷들을 실전에서 오래,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Part 5에서는 그 모든 걸 뒷받침하는 태도, 즉 옷을 직접 고르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한다.